50일 간의 기다림

사도행전 2장1절-13절

성경을 보면 모세는 산에 올라가 두 개의 돌판에 새겨진 십 계명을 받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 거기에 동물들로 가득 채운 유일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어떤 사건들은 특이합니다.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또 다른 어떤 사건들은 반복됩니다.

만약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반복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이 있다면, 미리 대비하십시오.

성경에서 어떤 일이 한 번 이상 언급되고,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우리는 그것들이 일반적이라는 싸인을 받습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오순절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오늘은 사도행전 2:1에 기록된 기독교 기념일인 오순절입니다. ‘Pentecost’는 ’50 번째’를 의미하는 헬라어(Pentēkostē)입니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50번째 되는 날입니다. 이 날을 ‘White Sunday (하얀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유대 축제일 중 Shavuot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기념일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Shavuot이라는 단어는 “주(週)” 혹은 “서약”을 의미합니다. 유월절이라 불리는 또 다른 기념일이 있습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신 것을 기억하는 축제입니다.

Shavuot 은 유월절이 지난 후 7주 주기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부터 시내 산으로 이동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돌아가셨고, 50일이 지난 Shavuot 에, 하늘에 올라가신 다음 10일 후에, 오늘날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도 놀랍지 않습니다. 첫째 이유로는 그 날이 Shavuot 이었고, 그 다음 이유로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었기 때문입니다. 행1:4, “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그리고 눅 24:49,”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그리고 일어났던 첫 번째 일은, 집안 가득 강력한 폭풍 같은 소리가 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지요. 오직 이 구절에서만 일어난 일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찬들이 모여 있다로 해서 폭풍 소리가 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각자에게 불꽃 혹은 불의 혀와 같은 것들을 보았습니다. 이것 역시 일반적인 형상이 아니지요. 성경은 오직 이 구절에서만 그것에 대해 기록해 놓았습니다.성경에 보면 기도하는 중에 건물이 흔들리는 예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4:31 “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불꽃이 일어나길 바래서는 안 됩니다. 불꽃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불꽃이나 불의 혀는 그 상황에서 특이하게 일어난 일입니다. 진동 역시 또 다른 상황에서 유일하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성령으로 가득 차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의 첫 부분인, 성령으로 가득 찬 것은 일반적인 일입니다. 성경은 그것에 대해 늘 이야기하며, 특별히 사도행전에 많이 언급됩니다. 우리는 이미 몇 개의 예를 보았습니다. 계속해서, 구약과 신약을 보면, 사람들은 성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 충만하도록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령께서는 정말 오셔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8:17을 읽어 보십시오 –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우리는 이 일이 정말 일어났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가득 차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성령 충만하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열흘 동안, 신실한 자들은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커다란 용기를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후, 그들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단 열흘을 기다리고 나자, 이 격동적인 임재가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오시자 120명은 능력을 입었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말씀을 가르쳤고 약 3,000명이 변화되어 교회에 일원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날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첫 번째 가르침은 성령에 의해 권능을 입었습니다. (사도행전 2:38);”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그것은 우리를 향한 약속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성령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천국이 땅에 임한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요엘서를 인용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내가 나의 영을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주리니’. 모든 사람들은 여기서 믿는 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요엘이 말했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저와 여러분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 모두를 지칭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 이미 가 계신 그 곳으로 갑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크리스찬들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 안에 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에 의지합니까? 우리가 성령의 은사들이 흐르기 위해 열려 있는 통로입니까?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합니까? 성령의 열매(사랑, 기쁨, 화평 등)가 우리의 삶에서 자라고 있습니까?

우리 중 일부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 가운데 살아가지만, 우리는 성령을 제한합니다. 우리의 두려움, 낮은 기대감, 그리고 거짓된 기대감들로 성령을 제한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일들을 왜곡합니다.

교회는 중요합니다. 교회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일을 하실지 스스로 선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실 때 이메일이나 카카오톡 메세지와 같이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은 하늘로부터 각 사람에게 따로따로 오지 않았습니다. 성령은 고립된 개인들이 스스로 갇혀서 침묵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오시기로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은 무리 가운데에 능력으로 오셨습니다. 성령은 믿는 자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능력으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기다리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ㄲ께서 이 세상에서 일하시는 모습입니다.

성령은 다국적이고 다양한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지금 우리의 모습처럼 국적을 혼합하기를 좋아하십니다.

성별, 나이, 민족적 배경, 혹은 사회적 지위와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얻습니다.

에베소서 4:12에서는 저와 같은 목사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도록 하는”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저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으로의 부르심을 받았음을 여러분이 되새기기를 바랍니다. 저나 찬양 밴드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 충만하셔야 합니다. 이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 분을 따르는 자들도 역시 그래야 합니다.

성령께서 매일 여러분을 인도하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이 교회를 인도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가로막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도록 기도합시다. 불꽃이 있든지 강한 바람 소리가 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언어로 이야기 하는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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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올리워가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일이 있을 것을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몇몇 제자들에게 이 놀라운 사건은 믿기 어려웠고 예수님은 그들을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40일 동안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이 끝이 아니라고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용기를 북돋아주시느라 바쁘셨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승리였습니다. 이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승리하기 위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 우리는 영혼에 대한 개념으로 씨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계셨던 40일 동안, 그에게는 육체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졌고, 그분은 식사를 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벽을 통과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십자가의 상흔을 가지고 있는 그분의 육체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이 육체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것이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15:35에서 말합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을 갖게 됩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바울은 우리에게 답을 주려고 애씁니다. 그는 말합니다. “육체의 몸으로 묻히지만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고린도전서 15:44)

이 시점에서 우리는 육체가 있고 영혼이 있다는 그리스 철학으로 쉽게 빠져 들어가기 쉽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본질은 영혼이고, 그것은 우리 주위를 떠다니는 어떤 한 종류로서 실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예 수님이 몸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의 영혼이 영의 몸을 차지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죽을 때, 우리는 썩지 않을 새로운 몸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죽어가는 쇠약한 몸보다 더욱 실질적인 진짜의 몸입니다. 우리의 현재 몸은 예수님이 가지셨던 것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뀔 것입니다.

40일 동안 예수님은 실제적이고 견고한 영광스러운 몸으로 걸어다니시고 이야기도 하시며 먹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후에 떠나서 하늘로 가셨습니다. 성경은 그 사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마가복음 16:19 – “주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리워 가셔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

누가복음 24:51 – “예수님이 그들을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리워 가시자.”

사도행전 1:9 –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이 지켜 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시자 구름에 가려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은 올리워 가셨습니다. 그 일은 부활절 이후 40일이 지나고 일어났습니다. 즉, 오늘로부터 3일 전 5월 25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감람산에 계셨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이 스스로 올이워진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 올리워져서 천국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유령처럼 떠다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진짜로 실질적인 몸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그 몸은 슈퍼맨 같았을까요? 보이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서 있는 남자 같았을까요? 밧줄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를 끌어 당기고 있었을까요?

여기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평범하고 온전한 인간이였고 평범한 부활의 몸을 가진 부활한 사람이였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예수님이 가지신 똑같은 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떠다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역사속에 있어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슈퍼맨처럼, 예수님은 수직으로 출발하여 구름너머 우주공간으로 날아 올랐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예수님이 우주공간에 살고 계시지 않는 것을 압니다. 만일 그가 감람산에서 수직으로 올라가셨다면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수직으로 내려오셨을 것입니다. 이 견해에 대한 반작용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의 승천은 하나의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예수님은 진짜로 육체를 갖고 있지 않았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그의 영혼이 온 세계에 흩어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의 영혼 안에 같이 있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종 예수님이 죽을 때 육체없이 하늘로 바로 가셨다는 생각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 우리는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물질로 만들어진 실제로 존재하며 사라질 수도 있는 영의 몸을 가진 세상에 살고 있다고 우리가 생각하길 요구합니다.

세계를 인지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그릇으로 바라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물리적인 세계는 하나의 장소 – 하나의 그릇, 하늘은 또 다른 하나의 장소 –또 다른 하나의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곳에 또는 다른 한 곳에 있을 수 있지만 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성경은 하늘과 땅을 연관지어 봅니다. 그것들은 창조할 때 다른 장소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차원이 다릅니다. 과학은 실제로 이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T.F.토랜스와 같은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른 차원으로 옮겨지셨다고 말합니다. 이 다른 차원은 하늘을 말합니다. 하늘은 예수님이 사는 곳입니다. 그는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그곳에 사십니다. 우리도 새로운 몸을 입을 때 이 다른 차원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이 두가지 차원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둘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사람의 몸으로 있는 사람 예수님은 이 차원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돌아와 너희를 데리고 가서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 마태복음 28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받았다.”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하늘이 실제로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합니다. 그곳은 실제하며 견고한 곳으로 우리가 실제하며 견고한 몸으로 그곳에 살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일러줍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사람으로서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죽은 모든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살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억합니다. 그는 육체를 가지고 떠났던 모습 그대로 돌아오실 것 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영광스런 몸을 갖게 되고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그 동안에 인간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분은 하늘에 사십니다. 우리는 관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그분의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우리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떠나시기 전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말했듯이 성령이 이곳에 계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러나 너희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거라.”

누가복음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떠나시는 것을 보고 벅찬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와 계속 성전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곧 돌아오셔서 세상의 왕이 되실 것이기 때문에 신 이났던거 같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채워져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하심을 모든 사람들에게 얘기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시고 하늘에서 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돌아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님을 믿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전할 우리의 메세지는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이 땅과 하늘을 다스리는 왕과 함께 살도록 초대 받았다는 것입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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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n up into heaven

Acts 1:6–14

After Jesus was crucified and buried, he was resurrected. This was something that he said would happen, but his followers were still surprised. This amazing event was hard for some of his disciples to believe, but Jesus visited them and talked with them. For 40 days, Jesus was busy encouraging his followers and teaching them that the crucifixion wasn’t the end. The crucifixion had been the victory. Now the next stage had begun, living out that victory and establishing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One part of this that we may struggle with is our concept of spirit. During his 40 days, Jesus had a body. The Bible is clear that he could be touched, and he could eat. It also says he could pass through solid walls and vanish. It says that though people didn’t recognise his body, it still had the scars of the crucifixion.

Talking about this body, Paul says it is spirit. He says in 1 Corinthians 15:35, “What kind of bodies will they have? What a foolish question!”

It may be a foolish question, but Paul tries to answer it for us. He says, “They are buried as natural human bodies, but they will be raised as spiritual bodies.” (1 Corinthians 15:44)

At this point it is easy to slip into Greek philosophy, which says there is a body and there is a spirit. We think that the essence of a person is the spirit, which kind of floats around and has no substance. But Paul isn’t saying that. He says Jesus had a body. His spirit occupied a spiritual body. When we die in faith, we get a new body that is immortal. A real body that is more substantial than our current decaying body of death. We will exchange our current bodies for glorious bodies like the one Jesus had.

For 40 days Jesus walked and talked and ate in this real, substantial, glorious body. And after 40 days he left and went to heaven. Scripture records the event.

Mark 16:19 – “When the Lord Jesus had finished talking with them, he was taken up into heaven and sat down in the place of honor at God’s right hand.”

Luke 24:51 – “[Jesus] left them and was taken up to heaven.”

Acts 1:9 – “[Jesus] was taken up into a cloud while they were watching, and they could no longer see him”

Jesus was taken up. It happened 40 days after Easter, which was three days ago on Thursday 25 May. Jesus was on the Mount of Olives with his followers. He did not take himself up. He was taken up by God into heaven.

Jesus did not float up like a ghost. Jesus had a real and substantial body. So was it like Superman? Was it like a man standing on an invisible elevator? Was a cable lowered from the sky so that he was pulled up?

Let’s make an important point here. Jesus was fully human. He was a completely normal, fully human resurrected person in a normal resurrection body. You will have exactly the same body as Jesus one day. Jesus didn’t float away on a cloud because he was God.

There have been in history various views of the ascension. One is that like Superman, Jesus did a vertical take-off and soared into outer space above the clouds. Most of us realise that Jesus isn’t living in space, and that if he had gone straight up from the Mount of Olives it would have been straight down for people on the other side of the world. In reaction to this view, other people have suggested that the ascension is a metaphor. This theory says Jesus didn’t really have a body, and what actually happened was that his spirit was disbursed through the whole world so that he is with us in spirit wherever we are. This often connects with the idea that when he died Jesus went straight to heaven without ever getting a body.

The ascension requires us to think differently about our world. It asks us to think that we live in a world where people can have substantial and real spiritual bodies that can vanish.

A common way to perceive the world is called the receptacle view. This view says the physical world is a place – a receptacle. Heaven is another place – another receptacle. You can be in one container or the other, but not both at the same time. This is not the biblical view. The Bible sees heaven and earth as being related. They are not different locations in creation. They are rather different dimensions. Science is actually coming around to that view.

Theologians such as T.F. Torrance say that Jesus did not rise through the air until only his feet were sticking out of the bottom of a cloud. These theologians say that Jesus was taken into another dimension. This other dimension is heaven. Heaven is where Jesus lives. He lives there as a human being in a body, just as we shall when we get our new bodies and are moved to this other dimension.

These two dimensions are connected. They have a relationship. The human being Jesus in heaven in his human body is in charge of this dimension. In John 14 Jesus says, “When everything is ready, I will come and get you, so that you will always be with me where I am.”

In Matthew 28 Jesus says, “I have been given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

The ascension of Jesus is when we are reminded of the reality of heaven. We are reminded that it is a real and solid place where we will live in real and solid bodies. We are reminded that Jesus is already living there as a human, along with all who have already died in faith.

And we are reminded that he is coming back. He is coming back the way he left in his real and substantial body. When we die, we will get a glorious body like his and live with him.

In the meantime, there is a human being in charge. He lives in heaven. We don’t need to be in charge, we just need to follow his orders.

We also have the spirit of God within us. The Holy Spirit is here, as Jesus told his followers just before he left. “And now I will send the Holy Spirit, just as my Father promised. But stay here in the city until the Holy Spirit comes and fills you with power from heaven.”

Luke tells us that after his disciples saw Jesus depart, they were filled with great joy and rejoicing. They went back to Jerusalem singing and praising. And they spent all of their time in the Temple, praising God.

It seems quite likely that they were excited because Jesus was coming back soon and would be king of the world. While we wait for the return of Jesus, we have much to do. We have to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tell everyone about the resurrection and ascension of Jesus.

Jesus is alive and living in heaven. Jesus is coming back. Jesus is already ruling.

We believe in the three in one,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 Holy Spirit.

Our message to everyone is that they are all invited to be citizens of God’s kingdom, and to live with the king of that kingdom here on earth and in heaven.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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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의해 살고

 

대화중에서 상대편의 얘기만 듣는 것은 참으로 짜증 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뇌는 그 나머지 공백을 채우기 위해 애써야 하니까요

2013년 샌디에이고 대학의 연구원들은 대학교 재학생들을 한 실험을 위해 모집하였습니다. 학생들은 대화를 들으면서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내용을 모두 들었고, 나머지 학생들은 한쪽의 대화만 들었습니다.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의 통화를 들은 한쪽 그룹은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들은 사람들 보다 대화의 내용과 어휘들을 더 많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쪽 편만의 대화를 들으면 불확실하고 유추하기 힘들기 때문에, 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뇌는 자연적으로 없는 부분을 메꾸려고 합니다. 비록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러지는 않더라도 말입니다.

전화통화상의 목소리 어조나 어투에 여러가지 많은 종류의 단서들이 있습니다. 이 목소리가 제거되면, 편지처럼, 대화는 이해하기 더 힘들어 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도 바울의 편지와 같은 것을 읽을 때 갈라디아서를 쓴 바울의 편지처럼 고려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다른 편의 대화를 알고 있다면 우리는 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인들에게 서신으로 말할 때, “그러므로 내가 이르노니, 성령이 너희들을 지킬것이라” 바울은 그 편지 외에 어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개척하였든 교회들에 편지를 쓰고 있으며 그 사람들 중 몇 몇사람은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떠난 뒤에 그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합니다.

사도 바울이 떠난 뒤, 몇몇 사람들이 들어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 신자들이었으며 이방인 신자들에게 사도바울이 틀렸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진리의 절반만을 말하였다고 하였으며 바울은 그들에게 믿음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를 다시 회복 시키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그 대화 중 나머지 절반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 유대인 신자들은 그 율법에 대해 올바른가요? 갈라디아에서, 바울은 그들이 틀린 이유를 설명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성령님이 너희를 인도하게 하라”

그 이상이 무엇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경계하십시오. 우리는 몰몬경이 필요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지도자들의 새로운 계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성령만이 필요합니다.

네가 바보같은 질문을 하나 하지요.

하나님은 선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요? 하나님이 선해진 것은 노력 때문인가요?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선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회상해야 하나요?

물론 아닙니다. 왜? 하나님은 자체로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만든 모든 것은 선한 것입니다. 그분이 하는 모든 일은 선합니다. 그 분에게는 어둠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유일한 선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뿌리부터 그 가지에 이르기까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다고 판단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의 선하심은 나무의 과실처럼 자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는 온전하게 순수하지 않은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연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낮추고 온유함과 친절로 다른 이들을 섬겨야 하나요? 태양에서 빛과 열기가 나오듯이 자연스럽게 우리로부터 바른 행동과 행위가 나오나요? 우리는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또한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상기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의 유산으로 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악함의 목록과 선함의 목록이 필요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23절 처럼 말이죠

주께서 이르시되, “오직 하나님만 진실로 선하시도다”

바울은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해야 할 목록을 주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따라야 할 규칙을 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거짓 선생들이 한 것이었습니다

19절에 의하면 바울의 첫 목록은 사람들이 행하는 악한 일을 묘사한 것입니다. 22절에 그의 두 번째 목록은 우리가 해야 할 선한 것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악한 것과 선 한것은 우리 욕망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억제 해야할 목록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측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행동이 성령으로 인도 되어 행하여졌을때 우리는 이 목록으로부터 알수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이 악한 본성으로부터 나온 것일 때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제 삼의 그 어떤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욕망으로 움직여 집니다. 여러분은 자유롭지 않으며 여러분의 욕망에 의해 조절됩니다. 선한 욕망도 있고 악한 욕망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여러분을 통제하고 있나요?

바울은 17절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두 세력이 서로 싸우므로, 너희는 너희의 선한 의지를 행하는데 자유롭지 않도다”

바울의 대답은 성령에 의해 통제되어라는 것입니다.

선해지기 위해 애쓰지 마십시오. 이는 대답이 아닙니다. 이는 율법주의 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도합니다. 우리가 성령에 의해 살고 있으므로 우리 삶은 모든 영역에서 성령을 따르자

성령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도록 하십시오. 성령에 의해 사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우리의 영혼을 위해 가는 것에는 전쟁이 있습니다. 바울의 충고는 하나님의 편에 서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여러분의 죄악된 본성의 성향을 거부하십시오.

크리스챤이 되는 것은 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챤이 되는 것은 주님안에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법도록 따라 선해지도록 애쓰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무엇인지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의 많은 사람들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후 에는 십계명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만약 계명을 지키면 주님께서 나머지를 용서 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선행 크리스챤입니다. 선행과 믿음이 결합된거죠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이 그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믿음만 필요합니다. 우리 삶의 과실은 우리 믿음의 증거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에서 질투를 하는 일이 있다거나 그런 증거를 보인다면 그 대답은 성령님께 더 많은 통제권을 주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삶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그 증거로는 시기, 다툼, 질투, 분노, 이기적 욕망, 그리고 이와 유사한 다른 감정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런 것들을 발견한다면,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최소한 나는 살인자는 아니지 않느냐고 두둔하지 마십시오, 이는 여러분의 죄악된 본성이 통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인입니다.

예를 들어 시기는 그 어떤 이득을 얻을 것이 없는데도 그 감정은 자신이 얻을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휠씬 많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질투는 어떠한것에 받을 것도 없으나 어떤 것에 대해 받은 것이 있는 것 처럼 여겨지는 마음을 만듭니다. 즉, 이러한 악함을 생산해 내는 마음은 그 자체를 채권자이며 다른 이들을을 채무자처럼 여기게 합니다. 육체는 그 자체의 이득으로 설득되어지고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이 원하는대로 되 갚아 줄거라고 기대합니다. 이러한 만족스러운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육신은 반응합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받지 못한 어떤 것이 이미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악한 과실이 근본적으로 행위에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것들이라는 바울의 서신으로 부터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대답을 새로운 마음이지 좋은 행위를 하려는 노력이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의 죄악된 뿌리가 완전히 뽑히면, 우리는 완전해 질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모든 욕망은 선함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저절로 서로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하게 될 것이며 성령님에 의해 통제 받는 그 때는 평화를 누리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 기쁨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 우리 삶을 전적으로 성령님께 드리도록 합시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시기를!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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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 by the Spirit

Galatians 5:16–26

Hearing half a conversation is so annoying. Our brains go into overdrive trying to fill in the blanks.

In 2013, researchers from the University of San Diego recruited 164 undergraduate students for an experiment. The students performed a complex task while listening to a conversation. Some students heard both sides of the conversation, the rest heard only one side.

The group that overhead half a mobile phone conversation was better able to remember the content of the conversation, as well as more words from the exchange, than those who eavesdropped on a two-sided conversation.

Hearing one side of a conversation makes it more uncertain and unpredictable, so our brains are naturally drawn to filling out the missing parts, even if we aren’t consciously trying to eavesdrop, according to the researchers.

With a phone conversation there are all kinds of clues in tone of voice. When that is removed, in a letter for example, it can be even harder to understand. This is something we need to take into account when reading, such as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It helps our understanding greatly if we know something about the other side of the conversation.

When Paul writes and tells the Galatians “So I say, let the Holy Spirit guide your lives”, he is referring to something outside the letter. Paul is writing to churches that he planted, and so he knows some of the people personally. Others joined after he left. He is writing to them because there is a problem, and he wants to show them the way out of this problem.

After Paul left, other people came in and took over as leaders. They were Jewish believers and they told the Gentile believers that Paul was wrong. They told them that Paul had taught them only half the truth. He had taught them about faith, but they couldn’t enter the kingdom of heaven unless they also obeyed the law of Moses. They want to bring back legalism.

So that is the other half of the conversation. It is the question Paul is answering. Are these Jewish believers correct about the law? In Galatians, Paul explains why they are wrong.

“So I say, let the Holy Spirit guide your lives.”

Beware of anyone who says there is more that has been left out. We don’t need the book of Mormon, for example. We don’t need some leader’s new revelation. We just need Jesus and the Holy Spirit.

Let me ask you a silly question.

Does God need to try hard to be good? Is it an effort for God to be good? Does God have to keep reminding himself to be good?

No, of course not. Why? Because God is good. All that he made was good. All he does is good. In him there is no darkness. God is only good all the time. God is good from root to branch. He does not need to be told to be good. His goodness grows like fruit on a tree.

We are not good. In us, the root is not wholly pure. Do we spontaneously and naturally and consistently humble ourselves and serve others in meekness and kindness? Do right attitudes and actions come out of us as naturally as light and heat come out of the sun? We know they don’t. God knows they don’t. We need to be reminded of what is right. We need to be told repeatedly what it is that can keep us from inheriting the kingdom. We need a list of bad things and a list of good things, like we get here in Galatians 5:19–23.

Jesus said, “Only God is truly good.” (Mark 10:18)

Paul is writing against legalism. We need to remember that. He hasn’t given us a list of things to do. He isn’t laying out the rules to follow. It was the false teachers who did that.

Paul’s first list from verse 19 describes the evil things that people do. His second list from verse 22 describes the good things we should do.

Paul says the evil things and the good things we do are all the expression of our wants. They are not lists of things to do or refrain from doing. They are a measure. We can see from this list when our actions are being directed by the Holy Spirit. And we can see when our actions are being directed by our sinful nature. It is one or the other. There is no third choice. You are being moved by your desires. You are not free, you are controlled by your desires. There are good desires and evil desires, which force is the one controlling you?

Paul says in verse 17, “These two forces are constantly fighting each other, so you are not free to carry out your good intentions.”

Paul’s answer is to be controlled by the Holy Spirit.

Don’t try to be good. That is not the answer. That’s legalism. That’s impossible.

Paul instructs his readers in Galatia (verse 25) in what to do. “Since we are living by the Spirit, let us follow the Spirit’s leading in every part of our lives.”

Let the Holy Spirit guide your life. Live by the Spirit. Follow the Spirit’s leading in every part of your life.

There is a war going on for our souls. Paul’s advice is to take sides with God. Deliberately follow the leading of the Holy Spirit. Deliberately reject the inclinations of your sinful nature.

So you see, being a Christian is not about being good. Being a Christian is not about having faith in Jesus and then making a great effort to follow his rules and be good.

There are many people in my country who misunderstand what a Christian is. Many of the people in our churches misunderstand.

They think that after having accepted that Jesus is the Christ, they have to obey the Ten Commandments. They think that if they do their best to obey them, then Jesus will forgive them the rest. This is do-good Christianity. It is works plus faith.

Paul wants the Galatians to remember that it’s God who does the work. We need only faith. The fruit our lives bear is the evidence of our faith. If your life shows evidence of jealousy, the answer is to give more control to the Holy Spirit. Other signs that the Holy Spirit is not in control of your life are envy, quarrelling, jealousy, outbursts of anger, selfish ambition, and other things like this. If you find any of these in your life, don’t say that it’s human nature and at least you aren’t a murderer. These are signs that your sinful nature is in control.

Envy, for example, does not aim to merit anything, but it is the product of a heart that thinks it merits more than it is getting. Jealousy is not calculated to earn any pay, but it is the product of a heart that expected to be paid what went to another. In other words, the kind of heart that produces these vices is a heart that thinks of itself as creditor and everyone else as its debtors. The flesh is convinced of its own merit and expects God and man and nature to pay dues by giving the satisfaction it desires. When these payments of satisfaction are not made, the flesh reacts. It does not react to earn anything, but because it feels it has already earned what it didn’t get.

We can see from Paul’s list that the bad fruit of our life are things of the heart, not primarily actions. The answer is therefore new hearts, not an effort to perform good actions. When one day our root of sin is pulled out, we shall be perfect. On that day our every desire will be to do good. We will automatically love each other without any effort. We will have peace when we are controlled all the time by the Holy Spirit. We will experience joy when we take every step hand in hand with God.

Let’s resolve from this moment to give our lives over entirely to the Holy Spirit. Let the Holy Spirit guide your lives.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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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선택

고린도전서 15장 1절-11절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40일동안 신도들을 방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적들이나 그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러 다니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께 일하시는 방식을 권한다면, 예수님께 유대지도자를 만나시라고 제안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죽였던 예수님이 저녁 식사하는 동안 식당으로 걸어 들어온다면 유태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예수님은 걸어 들어와서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진정한 메시아이며, 너희들은 나를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렇게 했다면 유대인들은 그를 사기꾼으로 여기고 거절했을 지도 모릅니다. 인간들이 어떤지 아시지요,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옳다는 것만 증명하기 위해 거짓 주장을 만들기를 좋아한다는것을요. 그들은 경험을 합리화하고 여전히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진실을 부정하기 위해 다소 현학적인 방식을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늘 가장 잘 아시고 예수님이 항상 최선의 행동을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 주님은 그의 추종자들, 그의 제자와 사도들과 보내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5:6절, 7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셨는데 그들 가운데는 죽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이 두 절에서 특이한 것을 알아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겁니다. 6절은 500명의 추종자들을 얘기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이토록 많은 추종자들이 없었으므로, 추정하건대 그들이 갈릴리 호수가 언덕에서 모여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 올리브나무동산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1장은 120명의 추종자들이 예수님을 목격했다고 말합니다. 갈릴리는 대부분의 예수님 추종자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또한 이 때까지도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모이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7절은 모든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12사도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12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5절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서 그 분(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고 그 후 열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으며.” ‘모든 사도’는 12명을 의미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을 이미 보았습니다. 모든 사도란 바울이 사도로 여겼던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의미하는 듯 보입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예수님이 파송하셨던 72명의 제자를 의미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두 그룹 사이에 야고보라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만약 우리가 성경을 너무 빨리 읽거나 묵상하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면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칠 것이며, 야고보를 제자들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그는 제자가 아니고, 바울에 의해 그럴만한 이유로 이름이 불려집니다.

그럴만한 이유 중 하나는 야고보가 AD53년경 바울의 증언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제가 여러분과 같이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이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그의 형제 앞에 나타나셨을까요?

알다시피, 다른 모든 사람들은 추종자였습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요한 7장 5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형제들조차 예수를 믿지 않았다.”

성경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롬이라는 사람이 AD347년 그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성직자이자, 신부이자, 신학자이자 역사학자였습니다. 그는 성경 대부분을 라틴어로 번역(불가타성서로 알려진 번역)하였으며, 복음에 대한 해설서로 유명하였습니다. 그의 저서는 방대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의 많은 저술 중 하나인 ‘On illustrious Men’에서 제롬은 ‘유대인의 복음’을 인용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유대인의 복음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을 겁니다. 그 내용은 여러분 성경에는 없습니다. 한 때 매우 초기 교회에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와 예루살렘교회에서 널리 읽혀지던 복음입니다. 그리어스를 말하는 유태 기독교 사회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복음이라고 불렸습니다.

오늘날 유대복음의 일부분이 초기 교부였던 클레멘트, 오리게네스와 맹인 디디모에 의해 간략히 인용되고 있으며, 제롬의 글에서도 발견됩니다. 비록 정경의 일부가 아니고,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에도 없지만, 그것은 작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한때 받아들여졌습니다.

제롬에 의해 인용된 유태인복음은 예수님 부활후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롬은 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세마포천을 제사장의 하인에게 주고, 야고보에게 가서 그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왜냐하면, 야고보가 예수님이 그 들 가운데 잠에서 깨어나는 걸 보기 전까지는 빵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테이블과 빵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빵을 가지고 축도 하시고 그것을 떼어서 야고보에게 건네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여, 이 빵을 먹어라, 인자가 그들 가운데 깨어났음이니라.”(예로니모, De Viris Illustribus, 2장)

이 단락은 야고보가 그의 형제가 십자가형을 당했을 때 너무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단식을 결정하게 되었다는 제롬의 주장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그 순간에 믿음을 가지게 된 듯이 보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났기 때문에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야고보가 이미 믿었기 때문에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을 보기 전에 믿은 것입니다.

야고보가 어떻게 혹은 언제 믿게 되었는지, 혹은 십자가형 이전에 믿은 건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야고보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기 전에 그의 형제인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도자 역할을 맡긴 사람은 베드로가 아닌, 그의 형제였습니다.

누가 예수님 사후 교회의 첫 지도자였을까요? 야고보였습니다.

사도행전에 그 증거가 나옵니다.

사도행전 12:16,17 – 한편 베드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서 문을 열어 보니 베드로가 아니겠는가! 그들은 베드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베드로는 손짓으로 그들을 조용히 하게 하고 주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셨는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도 이 일을 알리게 하고 그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이 사건에서, 베드로는 야고보를 교회 지도자로 대우하고 있습니다.

훗날 바울과 다른 이들 사이에 신학적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은 교회지도자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이 도착했을 때, 바나바와 바울은 사도와 장로들을 비롯한 전 교인들에게 환영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하신 모든 것을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파에 속했던 신도들 몇 몇은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이방인 신도는 할례를 받고 모세율법을 따라야 합니다.”

다음에 일어난 사건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15:13,19 – 그들의 말이 끝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십시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히지 말고.”

야고보는 결심 하였습니다. 야고보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예수님을 따랐던 모든 이들의 지도자였습니다.

흔히 제기되는 첫 번째 질문은 왜 예수님은 지도자로 야고보를 선택했는가 입니다. 이것은 전통적 복음에서 베드로가 명백히 12사도의 제자였다는 주장과 섞여 복잡해집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지도자의 변화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헤게시푸스는 그의 저서 ‘교회의 역사’에서 야고보가 AD69년에 순교한 직후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고보가 순교한 직후, 주님과 같은 족보인, 예수님의 삼촌 글로바의 사촌인 시므온이 다음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모든 이가 그를, 주님의 사촌이었기 때문에 두 번째 지도자로 세웠다.”

베드로는 야고보를 계승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로 갔습니다. 교회는 메시아의 친척을 교회의 다음 지도자로 선택하였습니다.

우리가 베드로 였다면, 비록 다른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왕이 라기보다는 국무총리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야고보라면, 하나님이 우리 믿음이 걸음마 단계에 있더라도 우리를 택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야고보는 실제로 예수님을 그의 전 생애 동안 알고 지냈습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하나님이 베드로 대신 야고보를 지도자로 세웠을 때 하나님이 그가 하신 행동을 알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베드로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야고보를 지도자로 여길 수있나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야고보는 비범하고 뛰어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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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lection of a leader

1 Corinthians 15:1–11

Jesus spent 40 days visiting the faithful after he rose from the dead. It seems that he didn’t bother to visit his enemies or trying to persuade non-believers. Perhaps, if we were advising God on how to do his job, we would have suggested that Jesus visit the Jewish leaders. We might have thought about how they would react if the Jesus they had killed walked into their dining room during dinner. Can you imagine it? Jesus walks in and says, Guess what? I’m not dead! I really am the messiah, and you must believe in me.

He didn’t do that. I suppose that if he had they would have protested that he was an imposter. You know how we human beings are, and you know the false arguments we love to create just to prove ourselves correct. They would probably have found some sophisticated way to rationalise the experience and still deny the truth of who Jesus is.

As believers we trust that God always knows best and Jesus always does what is best. This is a basic standpoint for us. According to the Bible, our Lord thought it best to spend his time with his followers, with his disciples and the apostles. We see this in 1 Corinthians 15:6, 7.

“After that, he was seen by more than 500 of his followers at one time, most of whom are still alive, though some have died. 7Then he was seen by James and later by all the apostles.”

You probably noticed something peculiar in those two verses. I expect you have a question now. Verse six talks about 500 followers. Jesus didn’t have this many followers in Jerusalem, so it is generally assumed that they were meeting on a mountainside in Galilee. When Jesus ascended he was on the mount of Olives near Jerusalem, and Acts 1 says that 12o followers witnessed the event. Galilee is where most of his followers lived. It is also a fact that by this time it wasn’t safe for followers of Jesus to meet in Jerusalem.

Verse seven speaks of all the apostles seeing the resurrected Jesus. Since you know that there are 12 apostles, you automatically assume this means the 12 closest disciples of Jesus. Turn back to verse five and see what it says.

“He [Jesus] was seen by Peter and then by the Twelve.” The phrase ‘all the apostles’ doesn’t appear to mean the twelve. Jesus saw the twelve already. All the apostles appear to mean a larger group of his followers who were referred to as apostles by Paul. That suggests the 72 whom Jesus sent out, though this is not sure.

In between these two groups there is a person named James. Who is this person? If we are reading quickly and we don’t stop to meditate, this point may pass us by and we shall think this James to be one of the disciples. In fact he is not, and he is named by Paul for good reasons.

One of those good reasons is that this James was still alive to testify to the truth of Paul’s statement in around ad53. Most scholars agree that he is James the brother of Jesus.

The question I have now, and you may have also, is this. Why did Jesus appear to his brother?

You see, everyone else was a believer. James was not. We find this reported in John 7:5 – “even his brothers didn’t believe in him.”

There is no answer in Scripture. There are however some interesting things said by the very earliest Christians. Jerome was born in ad347 in Greece. Jerome was a priest, confessor, theologian and historian. He translated most of the Bible into Latin (the translation that became known as the Vulgate), and is famous for his commentaries on the Gospels. His list of writings is extensive. This is to tell you why we should take seriously what he says. In one of his many writings, named ‘On Illustrious Men’ (De Viris Illustribus), Jerome quotes ‘The Gospel of the Hebrews’.

You have never read The Gospel of the Hebrews. It isn’t in your Bible. At one time in the very early church it was a widely read Gospel in the churches of Alexandria and Jerusalem alongside Matthew, Mark, Luke and John. It was called The Gospel of the Hebrews because it was used by Greek-speaking Jewish–Christian communities.

Today only fragments of it survive as brief quotations by the early Church Fathers Clement, Origen and Didymus the Blind. And in the writings of Jerome. Although it is not part of the canon and isn’t in our Bibles, it has some small authority and was once accepted.

The Gospel of the Hebrews, as quoted by Jerome, records an event that happened after the resurrection of Jesus. This is what Jerome writes.

“And when the Lord had given the linen cloth to the servant of the priest, he went to James and appeared to him. For James had sworn that he would not eat bread from that hour in which he had drunk the cup of the Lord until he should see him risen from among them that sleep. And shortly thereafter the Lord said: Bring a table and bread! And immediately it is added: He took the bread, blessed it and brake it and gave it to James the Just and said to him: My brother, eat thy bread, for the Son of man is risen from among them that sleep.” (Jerome, De Viris Illustribus, Chapter 2)

This passage is used by Jerome to claim that when James saw his brother crucified he was so shocked that he decided to fast from that moment on. James appears to have come to faith at that moment. James did not come to faith because Jesus appeared to him. Jesus appeared to James because James was already a believer. James came to faith before the appearance.

Just how or when James came to faith, at or just before the crucifixion, is not the point. The point is that he had come to faith in his brother before the resurrected Jesus appeared to him.

It was to his brother that Jesus handed over the role of leader, not to Peter.

Who was the first leader of the church after Jesus died? James was.

For evidence see the book of Acts.

Acts 12:16, 17 – Peter continued knocking. When they finally opened the door and saw him, they were amazed. 17He motioned for them to quiet down and told them how the Lord had led him out of prison. “Tell James and the other brothers what happened,” he said.

In this incident, Peter treats James as the leader of the church.

Later on there was a controversy over theology between Paul and some others. To get this resolved, Paul went to see the leaders of the church. When they arrived in Jerusalem, Barnabas and Paul were welcomed by the whole church, including the apostles and elders. They reported everything God had done through them. But then some of the believers who belonged to the sect of the Pharisees stood up and insisted, “The Gentile converts must be circumcised and required to follow the law of Moses.”

This is what happened next.

Acts 15:13, 19 – When they had finished, James stood and said, “Brothers, listen to me.” … “And so my judgment is that we should not make it difficult for the Gentiles who are turning to God.”

James made the decision. James was the undisputed leader of all who followed Jesus.

The first question normally raised is why was James selected by Jesus as the leader? This is normally compounded with the assertion that Peter was obviously the leader of the twelve apostles in the gospel tradition; thus the sudden change of leadership is hard to explain.

Hegesippus, writing soon after the time, recorded in his ‘History of the Church’ what happened after James was martyred in ad69.

“And after James the Just had suffered martyrdom, as the Lord had also on the same account, Symeon, the son of the Lord’s uncle, Clopas, was appointed the next bishop. All proposed him as second bishop because he was a cousin of the Lord.”

Peter did not succeed James, but instead left Jerusalem and went to Rome. The church chose a close relative of the Messiah as the next leader of the faithful.

When we are a Peter, we need to have faith that we are still a rock even though another person is the leader. Peter was more prime minister than king. And if we are a James figure, we must trust that God was right to pick us even though we are new at walking in faith. James had actually known Jesus his whole life. Most of us must just have faith that God knew what he was doing when he made James leader instead of Peter. Do you have a James as your leader when you think it should be Peter? Trust God. He knows exactly what he’s doing. James was a man of extraordinary and outstanding faith. Bless you.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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