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위한 분투

마태복음 10:16–31

제가 영적 승리의 첫 번째 법칙을 적용하며 예배하기 시작했을 때 정말 놀라웠습니다. 영적 승리의 두 번째 법칙을 적용 했을 때에는 항상 감사했으며 그것은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 발판에서 고르지 않은 땅바닥으로 내려가면서 발목을 접질렀고, 그것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수 일 동안 저는 통증에 시달렸고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단지 인과 관계에 지나지 않는 일일까요, 하나님의 경고일까요, 불운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제가 여러분에게 제안하는 것은 이것이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삶은 힘들고, 삶은 어렵습니다! 항상 거짓을 팔고 다니는 광고들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들과 여러분의 증조부들도 이러한 슬로건으로 광고 하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더 좋아진 원료로 만든 상쾌한 레몬 향 ‘Easy Clean 305 (쉬운 청소 305)’ . 한 번 뿌려주고 닦으면 때가 바로 사라집니다. 레몬 향이 나고 상쾌하며 당연히 좋고, 무엇보다 너무나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이 쉬워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기독교인이 되면 삶이 쉬워질 거라고 생각하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그저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불행해 질 것입니다. 삶이 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망할 것입니다. 삶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주어진 임무이고,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그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들 일곱 가지 법칙을 적용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삶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포기하지 않았고 제 발목을 삐었을 때에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삶이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지내야만 합니다.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도 인내하며 그들의 믿음에 변함이 없이 지낼 수 있을까요? 반면에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에 대해서 포기하거나 하나님을 탓하기 시작할까요?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아마도 다음의 네 가지 일반적인 원인들 때문에 사람들이 곁길로 빠진다는 것을 알아차리실 것입니다.

  1. Trials and troubles in life discourage them.
    삶에서 나타나는 시험과 문제들이 그들을 위축시킵니다.
  2. They start to have doubts about their faith and cannot deal with them.
    그들은 믿음에 의심이 생기고 이것에 대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3. Persecution from others presses down on them and they are overcome.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괴롭힘이 그들을 억압하고 거기에 압도당합니다.
  4. They sink into sin and don’t know how to rise back out of it.
    그들은 죄에 빠지고 그것으로부터 되돌릴 줄 모릅니다.

우리가 이야기 했듯이 삶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삶의 문제들로부터 위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셨고 사람들에게 삶은 어렵다고 말씀하셨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Here on earth you will have many trials and sorrows.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하기 마련이다.
“But take heart, because I have overcome the world.”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John 16:3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문제를 모면하게 하시거나 그것들로부터 우리들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손을 우리에게 내미셔서 우리가 그 분의 손을 잡고 그 분에게 매달려서 어려움들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을 붙잡고 있어야 하고, 아버지의 강한 손을 절대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넘어져서 자신들의 발목을 다치기도 하는데 믿음이 있는 사람들만 절대 넘어지지 않고 다치지도 않는다면 정말 이상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세상 다른 모든 사람들은 법에 복종하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섬긴다고 공언하면서 그 법이 우리에게는 유보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 되면 교회는 자신의 죄의 결과를 피하는 것이 자신의 유일한 동기가 되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보험을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을 극복하셨습니다. 우리는 방금 그 분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 이 승리는 우리 안에 살아 있고,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인내하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의심이 생길 때, 그것으로 인해 염려하지 마십시오. 의심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불신과는 매우 다릅니다. 의심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해서 두 가지 생각을 갖고 각각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분리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한편 불신은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두렵거나 정면으로 그것과 맞딱드리고 싶지 않아서 의심을 키운다면, 의심은 자라서 불신으로 변할 것입니다. 태양이 뜨는 것만큼 확실하게 의심은 올 것입니다. 죄된 백성들인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에게 많은 의심들을 줄 것이고, 그리고 만약 우리에게 의심이 동나기 시작하면 그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더 많이 공급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 의심들에 자신의 거짓말들을 결합시켜서 우리를 불신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의심에 대한 대답은 믿음으로 인내하고 계속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의심이 있다고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십시오. 의심을 극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아가야만 합니다. 사탄은 사기꾼이므로, 사탄에게 굴하지 않았던 야고보의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마귀가 달아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야고보서 4:7) “마귀를 대항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도망칠 것입니다.”

정직하게 다뤄진 의심은 여러분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고 믿음을 더 깊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적을 무너뜨리는 예수님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러지 곳은 여러분이 질문을 전혀 하지 않았을 때보다도 더 강하게 결합되고 치유될 것입니다.

의심에 의해 압도된 사람들은 자신의 의심들을 키우는 데에 시간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의심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분의 의심을 키우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말씀으로 돌아가서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는 사람들입니까? 여러분들이 단지 굴하지 않고 인내한다면, 의심들은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독교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영국에서 그러한 이유로 직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비웃고, 조롱하고,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여러분을 잘못되게 묘사하고 여러분의 믿음으로 비방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길 원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도시 밖으로 데려가서 로마인들의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사회로부터 멸시당하시고, 내쫓기고 거절당하셨습니다.

브리인들에게 쓰여진 편지는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야의 신실한 제자들이라는 이유로 박해 당하는 남자와 여자들에게 쓰여진 것입니다. 그들에게 전해진 메세지는 절대, 절대, 절대로 굴복하지 말고 항상 서로 만나 격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 전체는 믿음으로 어떻게 인내할 것인지에 관하여 여러분을 위한 충고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충고로 맺습니다.

“So let us go out to him, outside the camp, and bear the disgrace he bore.”
“그러므로 우리도 성문 밖에 계신 예수님에게 나아가서 그분이 겪은 수치를 함께 당합시다.” (Hebrews 13:13)

우리는 이 세상과 그 길에서 떠나,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을 따라 도시 밖으로 자발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지 않지만, 저나 여러분이나 그 누구에게도 삶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님을 따르시나요? 왜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 당하고 조롱 당하면서, 사회의 벽 밖에서 살려고 하나요? 여러분이 이러한 어려움을 인내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지옥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아니면 책임의식 때문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견디고 순종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가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오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비밀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서 박해 속에서 순종으로 인내하는 것이 그 분에게는 짐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뻐할 수 있게 되면, 인내하는 것이 기쁨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발견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사탄의 덫에 걸리면 무엇을 하실 건가요? 여러분은 넘어지고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 죄책감에 사로 잡히는지요. 실패해서 포기하나요? 그것이 별것 아닌 척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그리 나쁜 죄는 아니었다고 하지 마십시오. 살인이었다면, 살인이었다고 말하십시오. 그것이 탐욕이었다면, 탐욕이라고 말하십시오. 정직하게 여러분의 죄와 대면하고, ‘그것은 모두가 하는 것’인 척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모두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독교인들이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정교한 변명을 늘어 놓지만, 거기에는 어떠한 정당한 이유도 없습니다. 진짜 문제는 유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 유혹에 굴복하고 인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말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런 다음 그것을 잊고 계속해서 나아가십시오.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 경주에는 많은 장애물과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 바울은 우리의 경주를 마치고 상을 받으라고 우리를 부릅니다. 세상의 경주들과는 달리, 이 경주에는 종점에 도달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상이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가야만 합니다. 인생은 어렵지만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And so dear brothers and sisters, this is the third law of spiritual success.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것이 영적 성공의 세 번째 법칙입니다.
The third law of spiritual success is to keep on keeping on. It is to persevere.
영적인 성취의 제3 법칙은 지속을 계속 이어가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일이죠.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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