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은혜

Luke 21:25–38

어느 날 저녁,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방문하시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유월절과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있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일 성전에 가셔서 가르치셨고, 저녁에는 감람산에서 밤을 지내기 위해 돌아오셨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걸어오면서, 제자 중 몇 명이 성전의 멋진 석조물과 성전 벽에 있는 기념 장식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길,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제자들은 물질적인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사물을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눈으로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들 첫 제자들과 동일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 신학자, 그리고 과학자인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은 기록하기를 “우리는 영적인 경험을 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경험을 하는 영적 존재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 그는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인지에 대해 올바른 지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진실되게 바라보지 못하곤 합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부인 우리들을 한 몸으로서의 공동체로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이것을 영적인 맥락에 적용하는데 고군분투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중 몇몇 분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는 물리적인 육체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입니다. 만약의 혼돈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분께 말씀 드리는 것은, 부활의 몸이 실질적인 물리적 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의 말에 동의하는 맥락에서 진정한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는 육신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우리에게 아무리 육신이 진짜인 것으로 보여질지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이 우리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눈 혹은 피부의 색깔은 우리 자신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몸매가 우리 자신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몸이 온전하건 깨어졌건간에 그것이 우리의 영을 보시고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바꾸지 않습니다. 제 뼈의 일부분은 부러져 있고 그 중 없는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누구인지를 바꾸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체 안에 생각과 희망을 갖고 있는 영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Genesis 2:7 says: “Then the Lord God formed theman from the dust of the ground. He breathed the breath of life intothe man’s nostrils, and the man became a living person.”

창세기2:7에이르기를: “여호와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성경은 삶에 있어서 영적인 것들이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듣게 되는 것은,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거룩함도 중요합니다.

지난 주 저는 여기에 있지 않는 다른 곳에 있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친구가 이야기하는 이 세상이 처한 상황에 대해 들으면서 저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제가 생각한 것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영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게 되면 많은 불행한 결과들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부족의식입니다. 부족의식이란 사람들은 마치 부족으로 나뉘었으며, 자기 자신은 그 부족의 일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고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대게 세상적인 부족들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잘못된 생각에 빠질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부족들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를 여러분은 정치에서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어떠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정당을 넘어뜨리는 것이라고 외칩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이 세상의 문제꺼리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 영국이 프랑스를 보며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예수님의 제자인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면, 공산주의자들이 교회가 어려움에 빠지는 이유라며 비난할 것입니다. 혹은 그들은 동성애자들이나 불교도들을 비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라고 가르치셨습니까?

제가 홍콩에 살 때에 ‘gweilo’ (鬼佬)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의 뜻은 ‘유령 같은 사람’ 혹은 ‘외국의 악마’입니다. 현지인들은 백인들을 향해 그렇게 불렀습니다.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들을 ‘frog(개구리, 프랑스인들을 모욕적으로 부르는 말)’이라 부르고,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을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그 분의 길들은 우리의 길들보다 훨씬 더 위에 있고, 그 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못된 길 가운데 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사명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 두 가지의 위대한 사명들을 순종할 노력이 부족하도록 만드는 것일까요? 다른 부족들이 하는 일 때문인가요?

여러분은 천사라 불리는 영적 존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쩌면 저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그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천사가 여러분에게 메세지를 갖고 다가온다면 그 천사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영적인 경험을 하게 되어 흥분하게 될까요? 두 가지 종류의 천사가 있다고 하는데, 어떤 천사가 말을 했는지 어떻게 아시겠습니까? 천사들 중에는 그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천사인 사탄을 따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천사들은 온 세상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충성하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항상 민감하고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 나와 있듯이 제자들에 전쟁과 커다란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커다란 핍박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끔찍한 일들이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너무 무서워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하늘의 권능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이는 나쁜 일들로 여겨지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수 있기 때문에 좋은 소식이입니다.

이 모든 일에 커다란 위험이 하나 있는데, 그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죽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데, 이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 날에 가장 위험한 것은 무뎌진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다른 부족이 아닙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사실 이 세상의 거룩하지 못하거나 악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위험한 것은 둔한 마음입니다. 둔한 마음은 사랑이 약한 것입니다. 둔한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잃고 말씀이 지겨워지는 것입니다. 둔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동기부여가 없고,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둔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삶의 열정이나 기쁨이 없고, 오직 안전과 편안함에 대한 욕망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둔한 마음은 위험한 것인데, 그것은 걱정에 의해서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세상의 삶에 대해서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신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둔해질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걱정과 염려로부터 마음을 떠나 보내기 위해 이 세상의 즐거움들을 찾는 데 시간을 보낸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점점 더 둔해질 것입니다. 둔감한 마음은 딱딱하고 차가워진 돌과 같은 냉담한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부드럽고 민감하고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이 쉽게 상처 받기 쉬울 수 있다는 의미인데,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마음에 상처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사랑의 계명을 이행할 수 있습니다.

“Watch out! Don’t letyour hearts be dulled by carousing and drunkenness, and by theworries of this life.”

34절에예수님께서,

“너희는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라고말씀하셨습니다.

염려하는 대신, 강해질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우리 모두에게 어려움은 올 것이지만, 그것들이 다가올 때 여러분의 마음이 무뎌져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우리 자신에게 가득 채워야 할 사명이 있고, 우리 안에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랑을 더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거룩한 불길로 타오르는 뜨겁고 예민한 마음과 열정을 소유한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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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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