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열쇠

누가복음 11:37-54

지난 주에 우리는 브런치를 드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한 바리새인이 아침 식사시간에 예수님을 초대하여 한 무리에게 말씀을 나누시도록 했습니다. 그 바리새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신 것을 진지하게 알기 원했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아마도 그러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는 다른 바리새인들 앞에 자신의 우월함으로 보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갈릴리 출신 시골뜨기에게 영리한 질문을 함으로써 그 자신의 지혜로움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는 질문을 하려고 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예수님께서 먼저 손을 씻지 않고 말씀하시는 순간 그들을 당황하게 하신 장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47절에까지 보면, 바리새인들은 다소 불편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이 다른 유대인들보다 훨씬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화 있을찐저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은 화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명예와 영광만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한 번 이들을 살펴보고,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가리워져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니 우리 자신들 스스로가 가리워진채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닥칠 화를 보여주는 그리고 우리에게 냉철하게 말씀해 주시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의하도록 하시기 위해 이러한 것들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그 화를 피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의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순종한다면 그 화를 면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오래전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였던 사람들과 동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대 유대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박해했다고 구약성경보다 더 강조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 시대의 유대 사회는 선지자들을 기리기 위해 무덤을 세웠습니다. 다윗왕과 훌다와 같이 죽임을 당하지 않은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위해 기념물을 건립하였습니다. 랍비의 해석에 따르면, 훌다와 드로바는 주요한 여성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그 선지자들을 실제로 죽였던 사람들과 동일하게 그들도 비난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이 … 선지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기념물을 세움으로 그들의 행위에 참여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구체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죄악 가득한 사람들의 자손들에게도 여전히 그 죄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에 이와 유사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자를 벌하고 그의 죄에 대하여 그 자손 삼사 대까지 저주를 내리겠다.”

이것은다윗왕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사무엘하 21장에서 다윗왕 시대에 3년동안 지속되었던 흉년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이것에 대해서 질문했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흉년은 사울과 그 집안 사람들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여 범죄한 댓가이다.”

나의 민족과 나의 조상의 죄악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제가 행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도 회개해야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과거, 우리 민족의 죄악, 우리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을 위해 회개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그들의 형벌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화 있을찐저.

“As a result, this generation will be held responsible for the murder of all God’s prophets from the creation of the world—from the murder of Abel to the murder of Zechariah, who was killed between the altar and the sanctuary. Yes, it will certainly be charged against this generation.” (Luke 11:50–51)
그러므로 세상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죽음을 당한 모든 예언자들의 피에 대하여 이 세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음을 당한 사가랴의 피에 대해서까지 이 세대가 죄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이것을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죄’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민수기21장에서 언급된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죄는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사회 전체 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서로에게 구별된 각 개인 뿐아니라, 우리를 한 몸으로, 한 가족으로 여기시는 것의 또다른 예시입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죄를 지을 때, 우리 전체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바리새인들에게는 이것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기름 부은 선지자들이 수백년 전에 이미 끊어졌고, 그 세대의 마지막 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죄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마지막 순교자가 죽임을 당한 후 피의 샘이 성전에서 나오게 됩니다. 아벨은 첫번째 순교자였으며, 그 마지막은 스가랴 였습니다. 그들의 전통에 따르면, 수천 명의 제사장이 죽임을 당하더라도 피의 샘을 멈출 수 없다고 합니다. 이 피의 샘은 스가랴가 죽임을 당한 거룩한 곳에서부터 흘러 나왔습니다. 스가랴의 피는 복수를 외쳤습니다. 열왕기하 24장 22절에서 스가랴가 죽임을 당할 때 마지막 했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아벨의 피는 땅에서부터 호소한다고 창세기 4장 10절에서 이야기 합니다.

이 문맥에서, 예수님은 이 세대가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상상할 수 없는 참상에 대해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듣는 무리들에게 이 세대가 극도의 두려움을 넘어선 수준의 피흘림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가인부터 이 시대까지 그들의 조상들의 끔찍한 죄악 때문에 화가 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재앙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들이 행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 왜 회개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이 가인의 죄까지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특히 더 어려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조상의 죄를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저의 조상의 죄를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각자의 이름을 알고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손님으로 초대되어 그분의 신학이론을 함께 나눌 때,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앞으로 일어날 극적인 방식에 대해 경고할 때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삶을 살고자 노력할 때, 이러한 것들은 부당해 보일 수 있으며,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이제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율법학자들에게 눈을 돌리셨습니다.

율법에 있어서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율법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율법을 더 이해하기 어렵도록 만든 것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복잡하고 상세한 설명은 실제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세지의 쉬운 의미를 감추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그 열쇠를 빼앗아 가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문은 잠겨 있습니다. 지식의 열쇠가 필요한 문은 무엇입니까? 그 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 문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열쇠를 없애버렸다고 책망합니다.

그들은 매우 악하므로 스스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막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 대신에, 그들은 사람들에게 큰 짐을 안깁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가 숨겨진 채, 쓸모없는 율법과 규례로 그들 자신에게 짐을 안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매우 화나고 적대적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가면을 벗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람들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시인하는 대신에, 그들은 메시야를 대적하고, 그들 자신을 방어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예수님에 대항하여 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함으로서 예수님을 비방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규율들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식탁에서 우리들에게 성품의 중요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거룩함과 진실함이 중요합니다. 깨끗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겸손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서서 사랑의 진리를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은 여러분을 비난하고 여러분을 나쁘게 보이기 위한 모든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이야기하고, 지속적으로 사랑하세요.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의 조롱에 결코 반응하게 마십시오. 예수님도 반응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비난에 빠져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유케 되도록 진리를 말씀하시고 죄악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사랑으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이런 죄악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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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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