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식사

누가복음 11:37-54

오늘은, 예수님과 식사를 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지 한 번 살펴봅시다.

이 식사에 관한 이야기는 누가 복음의 중간부분에 나옵니다. 적당한 위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것이 예수님의 사역중에 중요한 부분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친밀감과 공유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중요한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먼지 가득한 길을 다니실때 하루에 두 끼를 먹는 것이 통상적이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식사는 저녁이었고요, 주로 일을 마치고 해가 저물었을 때 먹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의 그 즈음은 시원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저녁은 또한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그들의 가장 거창한 식사를 하는 때 이기도 합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바리새인으로부터 식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야외 설교를 들었던 사람에게 말입니다. 그 초대된 식사는 예수님의 그 날의 첫 식사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어로 ‘아리스타오’라는 의미 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침 겸 점심으로 정오쯤에 먹는 브런치라고 하는 간단한 식사자리 입니다.

이 식사의 중요한 점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많이 먹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이야기를 위한 자리입니다. 이런 종류의 식사는 주로 정오쯤에 이루어집니다. 그 식사의 목적은 주로 함께 앉아서, 혹은 아마 편하게 기대 앉아서 도덕적은 가르침을 듣는 것입니다. 이 것이 나중에 ‘심포지엄’이라고 불리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바리새인에게 초대받았지만, 식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간단한 식사를 나누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 위해 초대 받은 것입니다. 아침식사를 하는 중간에 설교를 시작하신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사실 초대된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또다른 이유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책잡히게 하는 말을 하게 하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의 조용한 말씀을 듣기를 기대했다면, 그 바리새인과 그의 친구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공격적인 언어와 행동에 놀랐을 것입니다.

집 주인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었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아마도 다양한 뛰어난 교사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교육을 자랑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은 식사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중에 얼마나 많으신 분들이 댁에서 그런 행동에 화를 내십니까? 예의바른 사회의 중요한 손님들은 모두 전통에 따라 그들의 손을 씻습니다. 그것이 좋은 매너이며, 유대 종교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구약에서부터 오는 원칙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매우 중요하고 강한 전통이 되기는 했습니다. 아마도 우리 역시 성경에는 실제로 나와 있지 않지만, 교회의 전통에 따라 비슷한 감정을 가지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전통들이 무시되어지면 대개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베일을 쓰지 않거나 그들의 머리를 가리지 않으면 약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문에 들어서자 마자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바로 사람의 전통을 거절하시면서 말입니다.

집 주인은 예수님의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하려 앉으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잡수시기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8절)

예수님은 그러고 나서 테이블 위의 컵과 그릇에 대해 이야기하시기 시작합니다.

그 바리새인들은 손 씻기에 대해서 꼼꼼할 뿐만 아니라 의식적인 순수함에대해서도 꼼꼼했습니다. 그들은 의례에 따라 그들을 씻고, 또한 의례에 따라 컵과 그릇을 씻었습니다.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샤마이 학교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만약 컵의 안쪽이 더럽다 할지라도 컵의 바깥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힐렐을 따르는 자들은, 소수의 입장이지만, 컵의 안쪽은 바깥쪽 이전에 깨끗해져야 하고 그렇지 않아면 전체적으로 깨끗해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힐렐의 입장에 동의하였고, 그 규칙을 테이블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하셨습니다. 확대하면,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면이 깨끗하지 않으면, 전체는 절대 깨끗해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러운-탐욕과 사악이 가득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손을 매우 꼼꼼하게 씻었고, 그들의 컵과 그들의 그릇 또한 깨끗하게 씻었지만, 그들 자신은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론 이러한 의식적인 것들을 하지 않으셨음에도 완벽하시며 흠이 없이 깨끗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외 우리 모두는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들이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하려고 준비했을 것입니다. 혹은 아마도 단지 그 생각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지를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들은 부지런히 십일조를 했고, 그들의 정원의 허브(향초)의 정확한 비율까지도 지켜 십일조를 했습니다. 구약에서는 어느누구에게도 정원의 허브까지 십일조를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허브 또한 음식인지 아닌지 그러한 주제에 대한 긴 토론을 즐기곤 했으며, 그래서 구약이 어느정도까지의 법칙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도 토론을 즐기곤 했습니다.

그들의 구약에 대한 꼼꼼한 관찰의 결과로서, 바리새인들은 또한 매우 엄격한 사회 위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공장소와 회당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지위에 따라 앉았습니다. 그들의 지위는 무엇보다도 율법에 대한 그들의 지식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관습은 다른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인사법을 사용하도록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높은 위치의 사람들을 깨끗하지 못하다고 고발하시면서 매우 공격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무시하는 자들이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성경에 나와있지도 않은 것에 대해 논쟁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 정작 중요하고 성경에서 명령한 것은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의 삶을 잠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하는 행동이, 그들을 숨겨진 무덤과 차이가 없다고 콕 집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무덤이나 죽은 사람과 접촉한 사람은 그 당신에 더럽혀졌다고 생각되어졌습니다. 시체는 의례적으로 불결함을 다른 어떤것보다 더 빠르게 퍼뜨릴 수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심지어 그림자가 시체나 무덤에 닿기만 해도 의례적으로 불결해진다고 믿어왔습니다. 숨겨진 무덤이라는 것은 그러므로 아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사람이 불시에 갑지가 불결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덤을 표나게 하얗게 칠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반대로 바리새인들이 깨끗해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4절에 보시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숨겨진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한 유명한 율법교사가 자신도 모욕을 받았다고 불평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더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교사들의 직업은 사람들을 법을 따르는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분명한 율법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율법교사의 역할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이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무수히 많은 부담스러운 의례와 관습으로 하나님의 진실의 길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견딜 수 없는 종교적인 요구로 사람들을 괴롭히며, 오히려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음식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식사는 이야기하며, 나누며, 하나님의 더 깊은 방법들을 찾아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앉아계시다면, 주님은 분명히 우리를 불편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말씀들을 하실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겸손하게 듣고 그 말씀을 따른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며 아마도 더이상 이 세상에 악한 영향이 아닌 축복만을 끼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령충만으로, 안으로부터 순결하여져서, 우리는 사람들이 만든 의식에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종교적인 법칙에 전문가가 되도록 부르신것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에 전문가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살피는 성직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이번주 한주간 우리가 우리의 삶의 부분에서 잘못된 우선 순위과 잘못된 포커스를 맞추고 살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예수님을 여러분의 식사에 초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님에게 여러분의 순결함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여쭈어 보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해 보십시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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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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