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딜레마

사도행전 5:12–42

우리들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써, 우리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질문을 하는가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직업을 갖길 원하시는지 아니면 다른 직업을 갖길 원하시는지?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기 원하시는지 아니면 혹시 저 사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싱글로 남길 원하시는지?

이러한 질문은 결코 멈추지 않고, 그 대답 또한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미 로마서12장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혜로 충만해질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요? 내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요? 그것은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잊어버린 때가 있었습니다. 아담은 알고 있었고, 그는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사탄과 보조를 맞추게 되자, 인류는 인류의 아버지이자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잊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신 또는 신들이 있다고 믿었지만, 그들은 온 우주만물의 창조주가 누구이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 암흑과 같은 세상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이교도 부모님을 보고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들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아브람은 크고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우르라는 도시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후, 그는 거칠고, 단순하고, 유서깊은 양치기 베두인(유목민)이 되었습니다.

그의 딜레마는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에게 가르쳐줄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에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첫번째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행하였던 것은 그 시대에 다른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하는 방법을 모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교도들처럼 바위로 제단을 쌓았지만,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 그것들을 바쳤습니다. 그는 이교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동물을 희생시켰지만,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 그것들을 바쳤습니다.

그 이후 수 세기동안 그의 자손들인 히브리 사람들은 이러한 관습을 계속해서 발전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동물들을 희생시키길 원하신다고 생각했던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러한 관습을 지속하도록 허락해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가장 좋은 최선의 것이어야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인들에게 화가 나셔서, 이사야라는 이름의 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사야서 첫 부분에, 하나님께서는 5절에서부터 이러한 문제를 지적합니다.

“Why do you continue to invite punishment? Must you rebel forever? Your head is injured, and your heart is sick.”
“너희가 벌을 더 받고 싶은가? 어째서 계속 거역하느냐? 너희 머리는 병들었고 마음은 약해졌으며”

하나님께서는 죄악 때문에 멸망한 도시 사람들과 똑같이 악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끔찍한 비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희생제물을 바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악하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다같이 10절 말씀에서 생각해봅시다.

Listen to the Lord, you leaders of “Sodom.” Listen to the law of our God, people of “Gomorrah.”
“What makes you think I want all your sacrifices?” says the Lord. “I am sick of your burnt offerings of rams and the fat of fattened cattle. I get no pleasure from the blood of bulls and lambs and goats. When you come to worship me, who asked you to parade through my courts with all your ceremony? Stop bringing me your meaningless gifts; the incense of your offerings disgusts me!”
“예루살렘아, 너희 관리와 백성들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같구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라.“너희 수많은 제물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너희가 숫양이나 짐승의 기름으로 드리는 제물에 이제 싫증이 났다.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양의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 누가 너희에게 그런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느냐? 너희는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다. 너희는 무가치한 제물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아라. 너희가 분향하는 것도 나는 싫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을 나누길 원하시고 “선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 정의를 추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대신에 이러한 것들을 하길 원하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대신이 아닌 진실된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그분의 실재가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그분의 빛으로 빛을 비추시고, 이 세상에서 그분의 영광이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모세는 또다른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놀라운 방법으로 모세를 사용하였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서게 하실 그 약속의 땅으로 백성들을 이끌어내셨습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광야를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목 말랐고, 모세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야 할 지 물었습니다. 민수기 20장 8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보는 앞에서 저 바위에게 명령하여라. 그러면 그 바위가 그 속에 있는 물을 밖으로 흘릴 것이다.”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물을 밖으로 흘러보내도록 ‘만들기’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모세는 바위를 한 번이 아닌 두 번 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매우 화가 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화를 내셨던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광을 보여주시려고 했으며, 모세는 이를 망쳐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물을 허락하셨지만, 모세는 불순종의 결과를 겪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일어서야 하며,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걸어야 하며,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행동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시도록 멈춰서야만 합니다. 행동해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딜레마입니다. 우리는 꾸준히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행동해야할지, 말해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역대하20장에 큰 두려움의 시기에 대한 이야기 있습니다. 에돔으로부터 큰 군대가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이 소식에 아주 두려웠고,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할지 구하였습니다. 기도와 금식 후, 왕은 군대에 앞서 찬양하는 사람들을 세웠으며,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분의 거룩한 영광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들이 노래하고 찬양하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암몬과 모압 군사들, 그리고 세일산에서 온 군대들이 서로 치기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록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싸움을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일어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로 돌아가서,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을 봅시다.

“And having chosen them, he called them to come to him. And having called them, he gave them right standing with himself. And having given them right standing, he gave them his glory. What shall we say about such wonderful things as these? If God is for us, who can ever be against us?”
“하나님은 예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면 누가 감히 우리를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차 있다면, 그 세부사항들은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찰 때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뜻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차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렵게 노력해야 하며, 우리의 수고는 하나님을 성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바리새파 사람이자 공의회의 구성원인 가말리엘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해서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사울이라 불리는 유명한 문하생을 둔 바로 그 가말리엘이며, 나중에 그 청년은 큰 복음 전도자인 사도바울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8절은 가말리엘이 의회에 한 이야기입니다.

“So my advice is, leave these men alone. Let them go. If they are planning and doing these things merely on their own, it will soon be overthrown. But if it is from God, you will not be able to overthrow them. You may even find yourselves fighting against God!”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만 이 사람들에게 간섭하지 말고 내버려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일 이들의 계획이나 하는 일이 사람의 생각에서 나왔다면 무너질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면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위험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손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 위험은 믿음에 의해서가 아닌, 다른 이들의 시선이 바라보는 대로 걸어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하나님이 뜻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 자신을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션은 그분의 영광의 이 어둠의 세계에 비치도록 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무는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후에 제자들은 사도행전 5장 42절에서 이야기한대로, 열심으로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Every day, in the Temple and from house to house, they continued to teach and preach this message: “Jesus is the Messiah.”’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쉬지 않고 가르치며 전도하였다.’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는 모두 그들의 열심에 빚졌습니다. 그들처럼 되고자 하는 열심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차도록 노력하고, 교회와 거리에서 그분의 영광이 비추도록 노력합시다. 가정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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