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안에서 안전함

시편 23:1–6

우리는 방금 전에 성경에서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구절들 중의 하나를 읽었습니다. 시편 23편은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 중에 하나이고, 특별히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것의 시적인 표현이 두드러진 전통 버전을 선호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감정들을 뒤흔드는 시와 노래입니다. 그것은 행복감을 주며 희망에 가득 차 있습니다.

The first verse says, “The Lord is my shepherd; I have all that I need.”
첫 번째 구절에,“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양이 목자의 보살핌 아래에 있으면, 그 양은 자신이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고 있습니다. 양은 자신의 목자를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이 구절은 우리로 하여금 양과 같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 주는 것은, 만약 우리가 그 목자를 우리의 주인으로 삼는 이상 우리에게는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삶의 목자를 갖고 있습니까? 시편 23편의 저자는 다윗 왕이며, 그는 여호와를 자신의 목자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또 다른 목자가 있습니다. 우리 목자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Jesus said, “I am the good shepherd.” “나는 선한 목자이다. ”
“The good shepherd sacrifices his life for the sheep.”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친다.” (John 10:11)
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오셨고 예수님이라고 불리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가졌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삶에 두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계실 때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적혀 있습니다.

“He lets me rest in green meadows; he leads me beside peaceful streams.”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이 구절에 나오는 푸른 목초지, 혹은 푸른 풀밭은, 먹음직스러운 풀이 가득한 얕은 언덕 위에 양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을 생각하도록 의도되지 않았습니다. 그 목초지는 벽과 튼튼한 울타리로 보호된 안전한 곳을 묘사합니다. 그 안전한 장소 안에는 풀과 같은 음식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 우리는 여기 저기에 떠돌아다니도록 내버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에 계시면 우리는 우리의 적들로부터 보호받는 안전한 장소에 있을 것이고 안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쉴 만한 물가, 혹은 잔잔한 물가는 물을 마실 수 있는 시원한 장소 이상을 가리킵니다. 네, 물론 이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새로운 예루살렘의 중심으로 흐르는 생명의 물을 일컫는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2:1)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물이 또 다른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천지 창조를 통해, 하나님께서 물을 정해진 장소에 두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가 오직 한 가정을 제외하고는 거대한 홍수로 전멸하는 것을 봅니다. 또 출애굽기에서는 군대 전체가 물에 잠겨 익사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들은 쉴 만한 물가가 아닙니다. 이들은 거칠고 파괴적입니다. 그 때의 물들은 괴물들의 집이 됩니다.

Psalm 74:13 says,
“You split the sea by your strength and smashed the heads of the sea monsters. You crushed the heads of Leviathan and let the desert animals eat him.
시편 74:!3에서는, “주께서는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가르시고 바다 괴물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악어 같은 괴물의 머리를 부숴 사막의 짐승들에게 먹이로 주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Psalm 77:16 says,
“When the Red Sea saw you, O God, its waters looked and trembled! The sea quaked to its very depths.”
시편 77:16절에서는“하나님이시여, 홍해가 주를 보았을 때 두려워하여 그 깊은 곳까지 진동하였으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중심에 두게 되면, 그 물들은 잠잠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가 되시면 그것들은 잔잔하고 평화로운 곳이 됩니다. 거칠고 혼란스러운 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물러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질서를 척결하시고 평화와 질서를 가져 오십니다.

시편 77편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홍해 가운데에 걷게 하실 때에 물은 물러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그들의 주로 섬기지 않는 자들이 그곳을 건너려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물들을 제자리에 오도록 만드셨으며, 그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우리가 인도된 물가는 예수님께서 그 물을 잠잠케 하시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들을 정복하셨기에 잔잔하고 고요합니다.

저는 삶이 힘들어지거나 시험들로 괴로울 때에, 하나님 혹은 예수님께서 저에게 오셔서 저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용기를 얻기 위해 이 시편을 종종 읽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시편을 읽을 때마다 그것이 삶의 방법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루 종일 그리고 모든 시간,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낮과 밤의 모든 순간들 동안 혼란의 힘들은 저를 억누르려 하지만, 오직 저의 주님이시고 구주이신 분만이 그것들을 물리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는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듯 우리의 주변에는 격렬한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영적 세력들 간에 커다란 충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만 안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중심에 두지 않으면, 혼란의 벽들이 우리를 뭉개고 익사시킬 것입니다.

3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서 우리는 이 시편의 가장 유명한 구절에 이르게 됩니다.

“Even when I walk through the darkest valley, I will not be afraid, for you are close beside me.”
“내가 죽음의 음산한 계곡을 걸어가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가장 음침한 골짜기’는 사망의 그림자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tsalmâveth로써, 깊은 어둠 혹은 깊은 우울함을 말합니다.

앞에서 말한 창조 이야기에서 어둠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누가복은 1:79절에서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예수님에 관한 예언을 합니다. 스가랴는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라고 말합니다.

Matthew 4:16 quotes Isaiah 9– “the people who sat in darkness have seen a great light. And for those who lived in the land where death casts its shadow, a light has shined.”

마태복음 4:16절에서 이사야서 장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 “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어둠과 죽음은 원수의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악한 힘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어둠과 죽음의 세력은 우리들을 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힘든 시간을 보낼 때에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걷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곳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편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신다면 우리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어둠에 의해 패배하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한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John 1:5 says,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can never extinguish it.”

요한복음 1:5절에 말하기를, “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또한 요한은 말하기를, 만약 우리가 그 빛을 거부하단면, 우리는 그 댓가로 인해 고통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대한 홍수 때와 홍해를 건널 때 믿음이 없었던 자들의 머리 위에 물이 덮쳤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And the judgment is based on this fact: God’s light came into the world, but people loved the darkness more than the light, for their actions were evil.” (John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한복음 3:19)

다윗은 하나님과 어린 양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던 삶의 끝에서: “나는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지막에 이르기 위해서는,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8:14절에서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For all who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are children of God.”

우리는 성경을 통해 계시된 것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를 속에서부터 변화시키시는 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 이 모두가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입니다. 로마서 12:2절에서 바울은,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의의 길로 걸어가기 위해서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의로움을 따라 가려 할 수 있지만 외적인 의로움만 구하는 사람들은 – 성도들을 이끌고 그들에게 힘을 주는 기쁨과 사랑과 평안이 없는 허무한 형식주의자들이 될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은 협력하여 마음을 변화시키고, 이러한 방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는 의의 길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을 우리들을 이끌어 가십니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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