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

Romans 12:1–21

10대 때의 저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 두려움의 근원은 믿음의 부족이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이 저의 주인이라고 말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제가 싫어하는 모든 종류의 일들을 저에게 요구하실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조건부의 순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그를 사랑하게 될거라고 말하지만, 그가 한달에 2000$을 지불할 때라는 조건을 거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요구하실지 모르는 모든 불편한 일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선교사로 가는 것이라던지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위한 저만의 의지가 있었고, 하나님의 뜻이 그것을 방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어렸고, 얼마나 어리석었던지요.

우리는 로마로 보내는 바울의 서신을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12장 1절에서 2절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선하고 기쁘며 완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것이 ‘또는’ 이 아닌, ‘그리고’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동시에 앞서 말한 세가지를 모두 충족합니다.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선한 것, 기쁜 것, 완전한 것이라는 세 단어가 서로를 정의하도록 도와줍니다. 선한 것이란, 이 문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수 있다는 것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선한 것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의는 보잘 것 없습니다. 우리의 일과 욕망, 생각은 그것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그것들을 만족하실 수 있을 때만 선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또한 완벽합니다. 그것은 흠이 없습니다. 그것은 티없이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해가 되는 어떤 잘못된 욕구나 의지도 없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데살로니가전서 4:3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입니다.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나 완전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그 자체가 거룩합니다.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누구에게 이 메세지를 쓰고 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는 저의 10대일때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격려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성숙하고 신실한 크리스챤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림으로써 어떻게 크리스챤이 되는지를 알려주는 설명서가 아닙니다. 크리스찬이 되기 위해 여러분이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로마인들은 그들의 친구들이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로마인들은 잘못된 민족이라는 이유로 추방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강제로 추방되었고 소유물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이유로 끔찍하게 박해받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카타콤이라고 불리는 지하무덤과 동굴에서 예수님을 예배해 온 사람들입니다. 로마에 있던 그들은 이미 많이 희생하였는데도, 바울은 여전히 그들에게 희생에 대하여 촉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와 같이, 이 편지를 처음 읽었던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1절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세요”라고 촉구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신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클럽에 입회허가처럼 한번에 되는 것이 아니었고, 재가입처럼 다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매일 매순간에 계속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비를 끝없이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우리 몸을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 끝없이 드리도록 권유 받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이 장에서 내려놓은 내용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그저 여러분이 걷고 돌아다닐 수 있는 살과 피의 성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지체로써, 우리는 함께 이곳에 모이고 한 몸이 됩니다. 이러한 한몸 된 지체 또한, 바울이 우리를 설득하는, 하나님께 우리를 지속적으로 제물로 드리라고 말하는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거룩한 희생입니다. 자비는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왔고,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로 드려집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십니다. 새로운 생각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시고 완벽한 뜻으로 오십니다. 서로서로 연결되어 우리는 앞으로 또 뒤로 갑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선물과 같이 거룩하고 만족할만한 것입니다.

각각의 경우 이 단어는’euárestos’로, 그 뜻은 기쁨과 만족할만함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보여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계속 제공해드리는 것은 이러한 관계에서 시작되고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어둡고 불쾌한 우리의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깨끗하지 않은 마음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의 정신을 두고 새로운 마음과 생각을 창조해나갈수 있는 우리의 몸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살과 피와 몸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믿음의 지체로서 한몸이 되는 몸을 드리기를 바라시며, 그의 마음과 생각을 우리의 모임 한 가운데 심도록 허락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일에 모이는 이유는 하나님께 우리가 한 몸됨으로 함께 드려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가르치실 수 있도록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사랑과 자비로 우리에게 처음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응답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사랑하십니다. 그의 방대한 사랑의 창고로부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뜻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우리 안에서 일하심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현실로 이끌어주십니다.

이것은 어떻게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가 되는가를 말하는 교훈이 아닙니다. 삶이 불가능할정도로 어렵고 혼란스러울 때에도, 어떻게 여러분의 믿음으로 살아내는지를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저는 바울이 말하고 있지 않은것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좋고 완벽해지기 위해 해야할 새로운 리스트를 가르쳐주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이라고 그가 말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설명서를 받을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생각이 하나님께 좋고 기쁨이 되며 완전한 길로 여러분을 이끌 것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가, 무엇이 완전한가를 알고 행하기에 힘쓰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른것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것을 명령하시지 않을 겁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목표는 완전함입니다. 결국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완전함입니다.

2절에서 3절에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경고가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위험이 되는 것들입니다. 바울은“스스로를 실제 있는 그대로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라고 경고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실제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알고 하는 경고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하여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것을 피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너무 조금 생각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 정직하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너무 잘 아는 것 처럼,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얼마나 잘평가하고 계십니까? 그 평가는 어디에서 시작하나요? 우리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기준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은 서로서로를 향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그런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를 서로 비교하여 우리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 마리의 개미가 서로 말싸움하면서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독수리를 훨씬 더 닮았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 모두는 독수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 스스로가 측정해야 할 기준은, 바울이 말하는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가지고 기준을 삼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닌 어떤 것이 기준이 될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보여왔는지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믿음은 자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칭찬을 받을 것이 없습니다. 뽐낼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정직한 평가는 우리의 믿음을 보고, 그것을 점검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이 선물은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분량의 믿음을 여러분에게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믿음은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충분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이 믿음의 선물을 너무 높게 또는 너무 낮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선물을 깨닫기 위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완전한 뜻을 위해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러한 관계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믿음과 자비가 그 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쁨과 만족을 찾으십니다.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각자의 몸으로 또 믿음의 공동체의 몸으로, 이 한 주동안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삶으로 살아낼지를 찾고 구합시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reviously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in South Korea. Currently a resident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They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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