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본받지 마십시오

로마서 12:1-21

광고하는데 있어 가장 강력한 원리 중 하나는 강렬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광고주들은 그들이 팔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가 사고 싶은 강한 충동을 갖게 하려고 애씁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이 파는 물건을 갖고 있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이 될 꺼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면, 아이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우월합니다.

우리는 집단으로 부터 받는 사회적 압력을 경험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처럼 되기위해 애쓰며 경주해야 하는 가상의 이웃인 Jones들이 있습니다. 만일 Jones씨가 새 테슬라 자동차를 산다면, 우리는 집단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새 테슬라 자동차를 사야 합니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지도 너무 튀지도 말아야 한다는 극심한 압박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난간 위로 머리를 내밀지 마라.” 아니면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머리를 계속 숙여라. (남의 관심을 끄는 짓을 피하라.)” 만일 난간 위로 머리를 내밀면 떨어질 것입니다.

튀지 마라.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라. 일본에는 데루쿠기와 우타레루 라고 말합니다; “돌출된 못은 받드시 얻어 맞는다.” 한국인들은 말합니다. “모난돌이 정 맞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머리가 박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얻어맞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모난 부분이 깎여지기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쉬운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튀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가는 삶을 삽니다.

우리는 유행하고 있는 옷을 사고 입습니다. 우리는 인기 많은 영화와 TV프로그램을 봅니다. 우리는 인기 있는 휴양지를 찾아가고 인기 많은 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초록색 브리치와 함께 흰색으로 염색을 한다면 우리도 그렇게 염색할 것입니다.

우리는 따릅니다. 우리는 어울립니다.

바울은 로마서 12:2에서 어울리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무리하게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맞추려고 하지 마십시오. 순응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의 풍조와 관습을 따르지 마십시오. 이 세상을 본받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거나 그들처럼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우리가 난간 위로 머리를 내밀 준비가 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돌출된 못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정에 맞는 모난 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닙니다. 바리새인인 바울은 레위기 18:2,3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켜야할 법과 규정을 주면서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I am the Lord your God. 3So do not act like the people in Egypt, where you used to live, or like the people of Canaan, where I am taking you. You must not imitate their way of life.”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다. 너희는 오랫동안 살았던 이집트 땅의 풍습을 좇지 말고 내가 너희를 인도 할 가나안 땅의 풍습도 좇지 말아라.”

이것은 삶의 방식에 대한 명령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로서 우리 삶의 방식은 불순응적이어야 합니다. 따라가려는 충동에 저항하십시오. 저항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성적으로 모방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은 힘듭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바울의 가르침에 매우 조심스럽게 반응하여 모든 일을 할 때 주위 사람들과 다르게 합니다. 전기로 작동되는 그 어떤 것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차를 거부하고 오직 말을 타고 다닙니다. 그들은 일부러 사람들과 다르게 옷을 입습니다. 그들은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거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 그들은 심지어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경우만 본다면, 신실한 기독교인에 대해 잘못 판단하게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할 것입니다. 다른 정신. 다른 영혼.

하나님은 우리가 특이하거나 이상해지길 원하지 않습니다. 순응하길 거부하려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가르침은 단지 다르기 위해 달라야 한다는 그런 명령이 아닙니다. 그런 가르침은 이차적인 부분으로 그 자체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 순응하는 대신에,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은 아마도 예수님이 산 꼭대기에서 변화되셨을 때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17:2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모습이 변하여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은 눈부시게 희어졌다.”

같은 말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내면적 변화하고 말합니다.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을 바꿈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게 하십시오.

우리에게 선택권이 주어집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도록 허락하든지. 우리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눈에 띄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우리의 행동도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19-22에서 그런 예를 줍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죄성의 욕망을 따르면”그는 다음에 나오는 나쁜 열매들을 맺게 될 꺼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죄들은 사악한 세상의 악한 방식들입니다. 시기, 질투, 이기적인 욕망들 등등.

“But the Holy Spirit produces this kind of fruit in our lives: love” etc.
“하지만 성령님은 우리의 삶에서 이런 종류의 열매를 맺습니다:사랑”등등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만드는 변화는 우리의 성격과 행동의 전체 변화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것은 따라하거나 순응하게 되는 것에 대한 거절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대로 생각하기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시기, 질투 때문에 옷을 고르거나 어디에 살지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친절과 선함에 기반을 두고 어디에 살지를 결정합니다.

순응하지 않는 제자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독선적이거나 업신여기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우리 삶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끄는 차이점을 보게 되고 우리의 경건한 태도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사셨던 삶을 반영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친절하셨고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특이하거나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세상에 불순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변화되면 의롭게 되고 “의로운 사람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날 것이다.”(마태복음 13:43)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을 그만두어야 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우리는 잠깐 멈추고 우리의 삶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런 것들 중 어떤 것을 우리가 그만두어야 하고 또 어떤 것을 계속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이런 질문들을 정치, 경제, 생태계에 대해서도 해야 된다고 느끼십니까? 왜 여전히 소고기를 먹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 우리가 먹는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켜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까? 왜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왜 통에 들어있는 물을 삽니까? 오늘날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낙태, 이혼, 성형, 결혼, 전쟁, 가난, 정부부패.

우리 주위에는 도덕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독교인들은 여성학대 문제를 무시하였습니까? 우리는 변화되는 대신에 세상의 방식들에 순응해오지 않았습니까?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한 기독교의 대안은 새로운 도덕적 행위의 목록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성령님이 주시는 승리의 능력과 변화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롭게 생각하는 방식을 주시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그것은 힘든 일입니다. 예를 들어 Lord Shaftesbury가 기독교인들에게 노예제가 악이라는 것을 납득시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미국에서는 그 문제로 전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아직도 이 세상에는 전보다 더 많은 노예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1절에서 말하듯이 먼저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를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육체의 즐거움을 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방식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므로 새로운 생각의 방식을 받아들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새로운 도덕적 행위를 받아들이거나 새로운 규칙을 따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 모든 것을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노력을 포기하십시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에 순응하지 말고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변화시키게 두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 일을 하실꺼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일이 되기 위해서 당신이 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당신은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을 변화시킬 수 있게 당신의 생각하는 방식과 당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당신과 저, 우리 모두는 이 일을 함께 합니다. 우리는 서로 돕습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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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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