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

마태복음 7:13–23

한 걸음 물러서 큰 그림을 보는 것이 좋은 때가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위해 이것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순간에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닌) 즉각적인 상황만 보기 쉽습니다. 대신에 저는 제 삶의 자리에서 제 자신을 재점검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성경에서도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느헤미야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것이 어떻게 행해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느헤미야 8장에서, 에스라 제사장은 사람들 앞에서 낭독합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에스라 제사장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에 나왔다. 거기에는,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사람을 모두 나와 있었다.”

그 달 이십사일에(10월 31일),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모였습니다. “모두들 제자리에서 일어나서, 낮의 사분의 일은 주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고, 또 낮의 사분의 일은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주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그 이후 우르에서 아브람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에 대해서 시작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의 자녀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가 고소당하고 공회에서 서서 설교했을 때에도 동일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는 2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부형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주하기 전에, 아직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녀서 말씀하시기를.”

그는 솔로몬에 이어 예수님까지 계속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성경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우리가 배운 모든 이야기들은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의 일부분입니다. 우리도 그 이야기의 부분입니다. 우리의 삶은 역사속에서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래로 그 분이 행하신 큰 그림의 일부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일은 우리가 상황을 잊어버렸을 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노아에게는 신실한 아들이 하나 있었으며, 그는 노아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노아에게 그렇지 않은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의 자손은 저주 받았습니다. 아브람은 신실한 아들 샘의 후손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과 아보리 족속은 함의 아들인, 저주 받은 가나안의 계보에 있었습니다.

가장 간단하게 여기에 소개된 것은 선과 악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인과 아벨만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이 두 힘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마태는 예수님의 부활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18절 말씀 –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예수님의 승리는 사탄에게 빼앗겼던 권세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동산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여라.”’

선과 악의 세력, 또는 하나님과 사탄의 군대는 이 땅을 움직이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군대, 하나님의 편에서 싸우도록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 땅이 바로 가나안이었습니다. 그곳은 호전적인 사람들과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분이 통치하시는 땅을 세우기 위해 일하시는 바로 그 오래된 그리고 친숙한 이야기의 첫 출발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을 인류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에 의해 온 세상이 움직여 나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사탄의 지배에서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전 세계를 통치할 사람의 권세를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새롭게하고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된 가정이고, 영원히 우리의 가정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 가운데 부르신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악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첫번째 도전 중 하나는 그의 백성을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구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구별시키는 것은 다소 어려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그들과 섞이게 되었습니다. 소돔으로 간 롯은 다소 극단적인 예 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열두지파중 하나는 가나안 족속의 혈통이었습니다. 야곱의 둘째 아들인 시므온은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 애굽으로 이동시키셨습니다. 그곳에서는 목자들에 대한 애굽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시키기에 훨씬 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군대를 준비시키기 위해 수백년동안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백성을 애굽을 벗어나 광야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기간동안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그들의 땅을 주시겠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통해 온 인류가 축복받게 될 것이라고 계속해서 상기시켜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3절 –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미 다른 사람들로 가득찬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그 땅의 악한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방식과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 탄생하실 때까지 이 전쟁은 격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온 땅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늘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유혹에 빠졌고 계속해서 그들의 길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볼 때, 이전의 패턴을 따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모세처럼, 노예가 되고 무시되는 사람들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옛 왕국에서 벗어나 새로운 왕국으로 믿는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대까지, 이스라엘은 그들의 소명을 이루지 못했다. 복음은 이스라엘이 이방인(즉 로마임)의 지배하에 있는 때에 시작되었다.

요한은 요한1서 5장19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온 세상은 악마의 세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 사람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을 때, 그 땅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상기시켜줍니다. 이것은 저에게 질문을 던져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써 우리는 히브리 사람들과 나란히 서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를 지나가거나, 약속의 땅을 정복할 때가 되었습니까?

저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광야의 시기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가면, 죄 없는 땅인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미 요단강을 건너 갔다면,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땅을 주장해야 할 때입니다. 요한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곳은 죄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일하셔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도록…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구원하시는지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여 천국으로 이르도록 하는 하나님의 노력의 한 부분인가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으로부터 그분의 통치하심을 어떻게 회복시키시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한 부분인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그분의 형상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다르셔야 합니다. 우리는 기후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동물을 보호하고, 바다는 깨끗하게 유지하며, 오염을 멈추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기에 필요한 일을 해야합니다.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약속한 땅에 살고 있지만, 완전히 정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처럼 되도록, 즉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도록 권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였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그 기도처럼 해야 합니다. 우리와 다른 세상의 왕국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러번 그의 나라는 이 땅에이 이미 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움직임이며, 이것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그분의 통치하심이 임하시는 그 때에 끝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분의 통치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죄를 몰아내는 하나님의 능력의 일부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But we are looking forward to the new heavens and new earth he has promised, a world filled with God’s righteousness.” (2 Peter 3:13)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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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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