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제자리에 두세요

Galatians 5:16–26

오늘 아침 기분이 어떠신가요? 슬픈가요? 배고픈가요? 피곤한가요? 쓸모없다는 느낌? 추운가요? 무서운가요? 거절당했나요? 두려운 감정이 혹시 있으신가요? 성경에 따르면, 여러분이 두려워한다면 현명한 것입니다.

“Fear of the Lord is the foundation of true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discipline.”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첫걸음이건만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교훈을 멸시하고 있다.” (Proverbs 1:7)

두려움은 느낌입니다. 성경은 감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감정은 우리를 현명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정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실제로 감정을 설명하거나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2차 세계 대전중 일부 영국 군인들이 이집트 사막을 행군하고 있을 때 그들은 갑자기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군대의 선두가 그들을 가장 가까운 물가로 데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갑자기 호수를 보았고,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것은 신기루였으며 그들 중 한 명은 죽기 전에 일지를 썼습니다. 그들은 훈련을 경멸한 것으로 보입니다.

창세기 3:6절로 돌아가서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 이유를 살펴봅시다. 그것은 그녀의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의 과일을 보니 먹음직스럽고 보기에 아름다우며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였다.” 아름다움은 맛과 마찬가지로 감정의 영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감정을 확신했으며, 그 감정에 속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감정이 없어야 하나요? 우리는 우리가 감정을 이름지어 부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감정을 갖고 있고, 감정들을 수백개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감정은 특별한 축복인 동시에 예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우리의 삶 가운데 감정의 위치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감정들을 통제함으로 바꿀 수 있도록 감정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된 사람은 새로운 생각을 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The sinful nature wants to do evil, which is just the opposite of what the Spirit wants. And the Spirit gives us desires that are the opposite of what the sinful nature desires. These two forces are constantly fighting each other, so you are not free to carry out your good intentions.”

우리 감정은 전투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7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육체의 욕망과 성령님이 바라시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서로 대적하여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합니다.”

우리 감정은 우리를 감동시키고 움직입니다. 그들은 유인하기도 하고 내쫓기도 합니다. 사람들이“기분이 좋으면 해라.” 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적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찾고 살고 있는 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곧 그들은 감정에 중독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살도록 의도하신 방식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감정들을 멀리할 수 없으며, 의지대로 만들어 낼수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에 굴복하며, 여러분은 이와 관련된 많은 예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감정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틀렸다고 믿습니다. 이런 경우에서는 누가 하나님일까요? 그 사람은 자신의 감정의 노예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순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특히 절망이나 고통 또는 쾌락에 대한 극단적인 느낌으로 싸우지만, 우리는 그들을 통제하지 않습니다.

우리 목표는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 모두는 죄를 피해야 하지 않나요? 로마서 6:12절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악한 욕망을 따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욕망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죄에 대한 유혹과 이끌림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죄의 행위에까지 미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잘못된 것은 욕망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누군가에게 화를 낸다면, 너희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성장하는데 중요한 한 부분은 특정한 감정을 갖지 않으려는 마음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감정을 싫어하는 마음을 점점 더 많이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감정을 원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감정에 대한 갈망을 느낍니다. 이는 첫 번째 단계이지, 마지막은 아닙니다. 전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죄 많은 자아를 거부하고 대신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완전히 새롭게 거룩하게 되기를 갈망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모든 우리의 감정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해야 함을 인정합니다.

예수님은 강도를 당한 사람을 도와주길 거절한 레위인과 도와준 사마리아인 애기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마리아인처럼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33절 –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 중에 그 길로 지나다가 그를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예수님께 듣고 있는 것은 사마리아인이 가졌던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거부하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들도 감정이 있지만 잘못된 것들입니다. 그들은 혐오했거나 경멸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인 감정과 완악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고통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희생적인 감정과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파괴적인 감정을 갖습니다. 야고보 3:16절은, “시기와 이기적인 욕망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일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결과를 제거하는 부조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잘못된 감정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감정을 부정함으로써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것에 저항해야 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 감정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문둥병은 환자의 모습을 흉칙하게 만들어 버리는 끔찍한 질병입니다. 최근까지도 그 피해자가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흉칙한 모습을 만들어낸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상처를 입어도 감각이 없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손상시켰습니다.

감정은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평화는 어떤 상태나 조건을 말합니다. 그 느낌은 평화로움이라고 불립니다. 우리가 평화를 찾을 때, 평화로움을 대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 길은 감정을 찾는 길입니다. 예를 들어, 흔히 일어나는 문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사랑 자체를 찾기 보다는 사랑의 느낌을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과는 논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논리와 진리는 그들을 움직이지 않으며, 그들은 다만 감정에 의해서만 설득됩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Those who belong to Christ Jesus have nailed the passions and desires of their sinful nature to his cross and crucified them there.”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Galatians 5:24)

제가 할 이야기는 훨씬 많지만,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여러분의 감정들은 하인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주인이 아닙니다. 감정들이란 천사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섬기도록 주신 것입니다. 하와는 천사와 감정에 의해서 지배되었고, 이것은 창조의 질서를 역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였습니다. 그것은 악이었습니다. 그것은 하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했습니다.

아름다운 일몰을 볼 때면 제 안에선 감정이 일어납니다. 저는 그 감정을 하나님과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살도록 하신 방식입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이 저에게 말씀하신 것을 듣습니다. “나의 아들아, 나는 너를 위해 그것을 창조하였다. 그것을 보고 내 사랑을 느껴보아라. 경이로움으로 그것을 생각하고, 내가 너를 영광스러운 일몰을 감상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도록 하여라.”

어떤 사람이 여러분 손목에 못을 박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처럼 여러분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그들을 하나님 앞에 데려 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감정들로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어떻게 죄의 노예가 되는지, 그리고 그들 스스로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깨닫도록 하실 것입니다.

생각은 우리의 감정을 이끌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이 생각을 유도해서는 안됩니다. 생각은 감정을 잡아서, 그것을 적절한 행동으로 유도합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권능만이 올바른 질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죄책감을 느낄 때, 그 감정을 하나님께 가져오세요. 그 감정이 당신을 조종하지 못하게 하세요. 하나님은 그가 당신의 죄책감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속삭이실 겁니다. “우리 마음도 우리를 책망할 경우가 있는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더욱 책망하시지 않겠습니까?” (요한일서3:20)

제자로서, 우리는 내키지 않는 일을 하도록 요청받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싫어하는 감정을 하나님께 가져오고, 그는 그것을 통제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스스로 절제하는 것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사실 하나님게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통제하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훈련입니다. 경멸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이 여러분을 다스리실 때, 갈라디이서 5:23절에 열거된 사랑, 기쁨, 평화 등이 바탕이 된, 감정을 가질거라고 약속하십니다.

성령님이여, 오셔서 다스려 주옵소서.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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