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의해 살고

 

대화중에서 상대편의 얘기만 듣는 것은 참으로 짜증 나는 일입니다. 우리의 뇌는 그 나머지 공백을 채우기 위해 애써야 하니까요

2013년 샌디에이고 대학의 연구원들은 대학교 재학생들을 한 실험을 위해 모집하였습니다. 학생들은 대화를 들으면서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내용을 모두 들었고, 나머지 학생들은 한쪽의 대화만 들었습니다.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의 통화를 들은 한쪽 그룹은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들은 사람들 보다 대화의 내용과 어휘들을 더 많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쪽 편만의 대화를 들으면 불확실하고 유추하기 힘들기 때문에, 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뇌는 자연적으로 없는 부분을 메꾸려고 합니다. 비록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러지는 않더라도 말입니다.

전화통화상의 목소리 어조나 어투에 여러가지 많은 종류의 단서들이 있습니다. 이 목소리가 제거되면, 편지처럼, 대화는 이해하기 더 힘들어 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도 바울의 편지와 같은 것을 읽을 때 갈라디아서를 쓴 바울의 편지처럼 고려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다른 편의 대화를 알고 있다면 우리는 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인들에게 서신으로 말할 때, “그러므로 내가 이르노니, 성령이 너희들을 지킬것이라” 바울은 그 편지 외에 어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개척하였든 교회들에 편지를 쓰고 있으며 그 사람들 중 몇 몇사람은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떠난 뒤에 그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합니다.

사도 바울이 떠난 뒤, 몇몇 사람들이 들어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 신자들이었으며 이방인 신자들에게 사도바울이 틀렸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진리의 절반만을 말하였다고 하였으며 바울은 그들에게 믿음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를 다시 회복 시키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그 대화 중 나머지 절반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 유대인 신자들은 그 율법에 대해 올바른가요? 갈라디아에서, 바울은 그들이 틀린 이유를 설명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성령님이 너희를 인도하게 하라”

그 이상이 무엇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경계하십시오. 우리는 몰몬경이 필요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지도자들의 새로운 계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성령만이 필요합니다.

네가 바보같은 질문을 하나 하지요.

하나님은 선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요? 하나님이 선해진 것은 노력 때문인가요?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선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회상해야 하나요?

물론 아닙니다. 왜? 하나님은 자체로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만든 모든 것은 선한 것입니다. 그분이 하는 모든 일은 선합니다. 그 분에게는 어둠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유일한 선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뿌리부터 그 가지에 이르기까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다고 판단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의 선하심은 나무의 과실처럼 자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는 온전하게 순수하지 않은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연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낮추고 온유함과 친절로 다른 이들을 섬겨야 하나요? 태양에서 빛과 열기가 나오듯이 자연스럽게 우리로부터 바른 행동과 행위가 나오나요? 우리는 그렇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또한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옳은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상기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의 유산으로 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악함의 목록과 선함의 목록이 필요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23절 처럼 말이죠

주께서 이르시되, “오직 하나님만 진실로 선하시도다”

바울은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해야 할 목록을 주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따라야 할 규칙을 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거짓 선생들이 한 것이었습니다

19절에 의하면 바울의 첫 목록은 사람들이 행하는 악한 일을 묘사한 것입니다. 22절에 그의 두 번째 목록은 우리가 해야 할 선한 것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악한 것과 선 한것은 우리 욕망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억제 해야할 목록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측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행동이 성령으로 인도 되어 행하여졌을때 우리는 이 목록으로부터 알수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이 악한 본성으로부터 나온 것일 때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제 삼의 그 어떤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욕망으로 움직여 집니다. 여러분은 자유롭지 않으며 여러분의 욕망에 의해 조절됩니다. 선한 욕망도 있고 악한 욕망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여러분을 통제하고 있나요?

바울은 17절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두 세력이 서로 싸우므로, 너희는 너희의 선한 의지를 행하는데 자유롭지 않도다”

바울의 대답은 성령에 의해 통제되어라는 것입니다.

선해지기 위해 애쓰지 마십시오. 이는 대답이 아닙니다. 이는 율법주의 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도합니다. 우리가 성령에 의해 살고 있으므로 우리 삶은 모든 영역에서 성령을 따르자

성령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도록 하십시오. 성령에 의해 사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우리의 영혼을 위해 가는 것에는 전쟁이 있습니다. 바울의 충고는 하나님의 편에 서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여러분의 죄악된 본성의 성향을 거부하십시오.

크리스챤이 되는 것은 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챤이 되는 것은 주님안에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법도록 따라 선해지도록 애쓰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무엇인지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의 많은 사람들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후 에는 십계명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만약 계명을 지키면 주님께서 나머지를 용서 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선행 크리스챤입니다. 선행과 믿음이 결합된거죠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이 그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믿음만 필요합니다. 우리 삶의 과실은 우리 믿음의 증거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에서 질투를 하는 일이 있다거나 그런 증거를 보인다면 그 대답은 성령님께 더 많은 통제권을 주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삶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그 증거로는 시기, 다툼, 질투, 분노, 이기적 욕망, 그리고 이와 유사한 다른 감정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런 것들을 발견한다면,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최소한 나는 살인자는 아니지 않느냐고 두둔하지 마십시오, 이는 여러분의 죄악된 본성이 통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인입니다.

예를 들어 시기는 그 어떤 이득을 얻을 것이 없는데도 그 감정은 자신이 얻을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휠씬 많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질투는 어떠한것에 받을 것도 없으나 어떤 것에 대해 받은 것이 있는 것 처럼 여겨지는 마음을 만듭니다. 즉, 이러한 악함을 생산해 내는 마음은 그 자체를 채권자이며 다른 이들을을 채무자처럼 여기게 합니다. 육체는 그 자체의 이득으로 설득되어지고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이 원하는대로 되 갚아 줄거라고 기대합니다. 이러한 만족스러운 지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육신은 반응합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받지 못한 어떤 것이 이미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악한 과실이 근본적으로 행위에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것들이라는 바울의 서신으로 부터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대답을 새로운 마음이지 좋은 행위를 하려는 노력이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의 죄악된 뿌리가 완전히 뽑히면, 우리는 완전해 질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모든 욕망은 선함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저절로 서로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하게 될 것이며 성령님에 의해 통제 받는 그 때는 평화를 누리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 기쁨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 우리 삶을 전적으로 성령님께 드리도록 합시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시기를!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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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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