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선택

고린도전서 15장 1절-11절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40일동안 신도들을 방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적들이나 그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러 다니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께 일하시는 방식을 권한다면, 예수님께 유대지도자를 만나시라고 제안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죽였던 예수님이 저녁 식사하는 동안 식당으로 걸어 들어온다면 유태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예수님은 걸어 들어와서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진정한 메시아이며, 너희들은 나를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렇게 했다면 유대인들은 그를 사기꾼으로 여기고 거절했을 지도 모릅니다. 인간들이 어떤지 아시지요,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옳다는 것만 증명하기 위해 거짓 주장을 만들기를 좋아한다는것을요. 그들은 경험을 합리화하고 여전히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진실을 부정하기 위해 다소 현학적인 방식을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늘 가장 잘 아시고 예수님이 항상 최선의 행동을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 주님은 그의 추종자들, 그의 제자와 사도들과 보내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5:6절, 7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셨는데 그들 가운데는 죽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이 두 절에서 특이한 것을 알아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겁니다. 6절은 500명의 추종자들을 얘기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이토록 많은 추종자들이 없었으므로, 추정하건대 그들이 갈릴리 호수가 언덕에서 모여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 올리브나무동산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1장은 120명의 추종자들이 예수님을 목격했다고 말합니다. 갈릴리는 대부분의 예수님 추종자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또한 이 때까지도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모이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7절은 모든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12사도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12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다시 5절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서 그 분(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고 그 후 열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으며.” ‘모든 사도’는 12명을 의미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을 이미 보았습니다. 모든 사도란 바울이 사도로 여겼던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의미하는 듯 보입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예수님이 파송하셨던 72명의 제자를 의미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두 그룹 사이에 야고보라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만약 우리가 성경을 너무 빨리 읽거나 묵상하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면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칠 것이며, 야고보를 제자들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그는 제자가 아니고, 바울에 의해 그럴만한 이유로 이름이 불려집니다.

그럴만한 이유 중 하나는 야고보가 AD53년경 바울의 증언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제가 여러분과 같이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이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그의 형제 앞에 나타나셨을까요?

알다시피, 다른 모든 사람들은 추종자였습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은 요한 7장 5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형제들조차 예수를 믿지 않았다.”

성경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들이 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롬이라는 사람이 AD347년 그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성직자이자, 신부이자, 신학자이자 역사학자였습니다. 그는 성경 대부분을 라틴어로 번역(불가타성서로 알려진 번역)하였으며, 복음에 대한 해설서로 유명하였습니다. 그의 저서는 방대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의 많은 저술 중 하나인 ‘On illustrious Men’에서 제롬은 ‘유대인의 복음’을 인용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유대인의 복음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을 겁니다. 그 내용은 여러분 성경에는 없습니다. 한 때 매우 초기 교회에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와 예루살렘교회에서 널리 읽혀지던 복음입니다. 그리어스를 말하는 유태 기독교 사회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복음이라고 불렸습니다.

오늘날 유대복음의 일부분이 초기 교부였던 클레멘트, 오리게네스와 맹인 디디모에 의해 간략히 인용되고 있으며, 제롬의 글에서도 발견됩니다. 비록 정경의 일부가 아니고,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에도 없지만, 그것은 작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한때 받아들여졌습니다.

제롬에 의해 인용된 유태인복음은 예수님 부활후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롬은 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세마포천을 제사장의 하인에게 주고, 야고보에게 가서 그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왜냐하면, 야고보가 예수님이 그 들 가운데 잠에서 깨어나는 걸 보기 전까지는 빵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테이블과 빵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빵을 가지고 축도 하시고 그것을 떼어서 야고보에게 건네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여, 이 빵을 먹어라, 인자가 그들 가운데 깨어났음이니라.”(예로니모, De Viris Illustribus, 2장)

이 단락은 야고보가 그의 형제가 십자가형을 당했을 때 너무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단식을 결정하게 되었다는 제롬의 주장에 인용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그 순간에 믿음을 가지게 된 듯이 보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났기 때문에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야고보가 이미 믿었기 때문에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을 보기 전에 믿은 것입니다.

야고보가 어떻게 혹은 언제 믿게 되었는지, 혹은 십자가형 이전에 믿은 건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야고보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기 전에 그의 형제인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도자 역할을 맡긴 사람은 베드로가 아닌, 그의 형제였습니다.

누가 예수님 사후 교회의 첫 지도자였을까요? 야고보였습니다.

사도행전에 그 증거가 나옵니다.

사도행전 12:16,17 – 한편 베드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서 문을 열어 보니 베드로가 아니겠는가! 그들은 베드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베드로는 손짓으로 그들을 조용히 하게 하고 주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셨는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도 이 일을 알리게 하고 그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이 사건에서, 베드로는 야고보를 교회 지도자로 대우하고 있습니다.

훗날 바울과 다른 이들 사이에 신학적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울은 교회지도자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이 도착했을 때, 바나바와 바울은 사도와 장로들을 비롯한 전 교인들에게 환영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하신 모든 것을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파에 속했던 신도들 몇 몇은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이방인 신도는 할례를 받고 모세율법을 따라야 합니다.”

다음에 일어난 사건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15:13,19 – 그들의 말이 끝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십시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히지 말고.”

야고보는 결심 하였습니다. 야고보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예수님을 따랐던 모든 이들의 지도자였습니다.

흔히 제기되는 첫 번째 질문은 왜 예수님은 지도자로 야고보를 선택했는가 입니다. 이것은 전통적 복음에서 베드로가 명백히 12사도의 제자였다는 주장과 섞여 복잡해집니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지도자의 변화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헤게시푸스는 그의 저서 ‘교회의 역사’에서 야고보가 AD69년에 순교한 직후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고보가 순교한 직후, 주님과 같은 족보인, 예수님의 삼촌 글로바의 사촌인 시므온이 다음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모든 이가 그를, 주님의 사촌이었기 때문에 두 번째 지도자로 세웠다.”

베드로는 야고보를 계승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로 갔습니다. 교회는 메시아의 친척을 교회의 다음 지도자로 선택하였습니다.

우리가 베드로 였다면, 비록 다른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왕이 라기보다는 국무총리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야고보라면, 하나님이 우리 믿음이 걸음마 단계에 있더라도 우리를 택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야고보는 실제로 예수님을 그의 전 생애 동안 알고 지냈습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하나님이 베드로 대신 야고보를 지도자로 세웠을 때 하나님이 그가 하신 행동을 알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베드로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야고보를 지도자로 여길 수있나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야고보는 비범하고 뛰어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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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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