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듣게 하려면

누가복음 4장 31절-44절

성경에서 예수님이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신다고 말할 때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이 무엇을 말하시든지 간에 모든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즉각 순종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예수님의 권위와 일반적인 권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4:32에 쓰인 ‘authority'(권위) 라는 단어는 exousía 입니다. 그것은 골로새서1:13에 나오는 ‘kingdom'(권세, 나라)에 사용된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출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6:7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 exousía]”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으며 동시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렇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사람들이 치유되고 폭풍우가 그칩니다.

exousía는 éxesti 에서 파생됩니다. – 그것은 허용되고 합법적이며 행동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Exousía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말하고 법률상의 권리를 다루는 법정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였습니다. 이 단어의 ‘ex’부분은 힘이나 권위가 예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outside'(외부)에서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그것은 위임 받은 권위였습니다.

예수님은 능력과 권위를 가진 사람이였습니다. 그가 말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우리가 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처음 말씀하신 것은 창세기 1:3입니다. – 그때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고 말씀하시자 빛이 나타났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되풀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있으라, 있으라, 있으라. 그러자 빛, 공간, 땅, 낮, 밤, 식물, 동물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계속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권위의 특징 중 하나는 진실성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은 듣는 사람들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권위가 있습니다. 그 말들은 말씀하시는 분의 참된 모습을 확실하게 나타내는 믿을 수 있는 말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들은 또한 그가 정치인들이 하는 것처럼 지어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것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제가 발견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에는 한결같이 목적이 있다는 것 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언어의 목적은 의사소통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말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빛과 어두움, 그리고 바다와 땅을 만들기 위해 말을 하셔야 했습니까? 왜 그냥 만들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왜 말씀하셨습니까? 왜 예수님은 조용히 돌아다니면서 그의 능력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변화 시키고 고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그와 같은 권위가 주어졌다면 왜 우리는 능력이 없다고 느낍니까?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말에는 어느 정도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말을 통해 그의 힘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왜 애초에 말을 창조하셨을까요? 제가 여기서 계속 말하려고 하는 요점은 하나님에게는 항상 목적이 있다는 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그리고 목적을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을 압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하나님이 말에 대해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우리가 하는 말들이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 맞는지 아닌 지를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예수님처럼 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을 하는 방법과 말하는 이유에 대해 예수님처럼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왜 말을 합니까?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아마도 이전에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하신 적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왜 말을 할까? 이어서 나오는 질문은 ‘나는 왜 들을까?’ 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기 위해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1에서, 하나님은 그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분과 관계를 가지고, 그리고 서로와 관계를 가지는 지에 대해 가르치시기 위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십계명의 목적입니다.

히브리서 12:5에서, 하나님은 격려하고 훈련하시기 위해 말씀하십니다. 격려와 훈련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향상시키고 개선하는 두 가지 행동입니다. 마태복음 17:5에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말씀하셨습니다. 구름 속에서“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목적을 가지고 듣도록 격려하는 말이였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구축하게 할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영 이며 인간의 육체는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다.(요한복음 6:63)

바울은 말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11에서 그는 말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 아이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판단하였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일을 버렸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정말로 중요한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어른처럼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성숙한 자녀들답게 말할 수 있습니까? 실제로 어떻게 예수님처럼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22:35-40, 마가복음 12:28-31, 그리고 누가복음 10:25-28에서 우리에게 사랑이 바탕이 되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첫 번째는 사랑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하지만, 지금 우리의 초점은 말하는 것에 있습니다. 말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말할 때 듣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향상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얘기하는지 보기 시작한다면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에 한참 멀어져 있는지 놀라게 될 겁니다. 예를 들면, 험담하는 것 입니다. 험담함으로써 사람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도와줄 수 있습니까? 저는 아마도 없을 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분명하게 험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험담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험담은 우리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 중에 하나입니다.

누군가를 칭찬할 때는 어떻습니까? 좋은 가요? 저의 첫번째 반응은 못된 말보다 좋은 말을 하는 것이 항상 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자들은 잘 생겼다거나 힘이 세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입니다. 여자들은 예쁘다는 얘기를 듣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칭찬받기를 좋아하지만 얼마나 그 칭찬의 말에 사랑이 나타납니까? 경기에서 이겼을 때 우리가 받는 칭찬의 말들 중 얼마나 많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도와줍니까? 여러분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사실, 공허한 칭찬은 여러분을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는 대신 자신의 지성을 의지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화하는 방법과 우리의 말이 가질 영향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칭찬을 할 때 듣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여러분과의 관계가 향상되는 방향으로 해야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어떻게 얘기합니까? 당신은 의도적으로 그분과의 관계가 향상되는 방향으로 하나님과 이야기 합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말하고 하나님이 주시도록 설득하는데 열심히 애씁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말이 오직 그분과의 관계를 쌓는 데 집중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그리고 서로 간에 관계가 더 좋아지도록 돕는 진실된 말을 하며 사랑이 바탕이 되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하고 우리의 말을 신뢰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한결같고 진실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권위를 가지고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전에 힌트를 드렸듯이 이것은 전체 이야기의 반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또한 듣는 데에도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말 속에서 하나님의 진실된 목소리를 듣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의 말과 함께 천국의 귀를 개발시켜야 합니다. 듣는 것은 개발되어야 할 기술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는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대부분 많은 시간동안 우리의 생각으로 분주합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말씀을 하실 때, 그 당시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은 몇 안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고 생각한 것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정말로 달랐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현실을 왜곡하여 말을 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기 위해 말을 이용합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말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들을 때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듣는다는 것을 종종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듣는 것에 헌신하기 위해 부르심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듣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듣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맛 보았을 뿐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사람들과 하나님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이웃과의 관계를 잘 쌓도록 돕기 위해 저는 설교말씀대로 나가서 실천하겠습니다.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말합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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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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