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보다 더 가까이

요한 복음 21:1–14

성 금요일날, 예수님께서는 죽음 일보 직전까지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낚시 바늘이 박혀 있는 채찍으로 태형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지요. 로마 군인들은 죽지 않을 정도이지만 극심한 고통과 상처만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의 채찍질을 가하기 위해 주의하며 예수 님을 쳤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많은 채찍질을 당 하셨는 지 모릅니다. 보통 유대인들은39번이면 멈추었지만, 로마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 후에 자신을 처형하는 형틀을 사형 집행 장소로 옮기는 일을 직접 하도록 강요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심하게 상처 입으셨기 때문에 이 일을 완수하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의 죽어가는 상태였고, 그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 재차 확인 받기 위해, 창에 찔리셨습니다. 이는 매우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기억하기 위해 이 사건을 되새깁니다. 사실 그 분이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받아야 마땅했던 이 모든 고통과 아픔, 끔찍한 상처를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겪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여전히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자리에 들어 오셔서,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멀어지셨습니다. 사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자신들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분리된 영원한 죽음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자리에 대신 오시고, 하나님과 함께 계신 그 분의 자리에 우리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들에게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무덤은 예수님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지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어떠한 청구도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활절 아침에 다시 살아나시고 우리 가운데 걸어 오셨습니다. 우리는 현재 믿음의 기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기간은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신 후에 다시 살아나셔서 40일 동안 이 땅 위에서 지내셨던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을 떠난 지 14일이 된 때이고, 앞으로 26일 동안 이 땅에서 더 지내시다가 떠나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흩어졌었습니다. 그들 중 몇 몇은 다시 어부의 삶을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자신들의 옛 삶으로 되돌아간 것이지요. 본문의 앞 장인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원래 11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분의 임재에도 불구하고, 다음 장을 통해 우리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 본래의 생업을 되돌아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과 얼마 전에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분의 가장 가까웠던 제자들이 배반했습니다. 그 들 때문에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합당하지 않은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때에, 우리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저는 운전을 할 때에 다른 운전자가 제 앞에 끼어들거나 제 앞길을 막을 때에, 보통 그들을 향해 큰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줄을 서고 있는데 누군가 제 앞에 끼어들면, 저는 그들을 향해 거친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들은 가해자들이고 저는 피해자라고 느끼며, 그 들 때문에 제가 고통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모욕을 견디는 것은 어렵습니다.

만약 무례하고 야수 같은 사람이 저를 공격하고, 때리고, 모욕하고, 벌거벗기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면 제가 어떻게 느낄지 상상만 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그 사람은 이 보다 훨씬 더 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 분은 훨씬 가혹하게 시련 받으셨지만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 위해 돌아오십니다, ‘네가 행한 일은 용서할 수 없 것이지만 그래도 너를 용서한다.’

이것이 제가 이 40일이라는 기간에 대해 첫 번째로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자비를 넘치게 흘러 보내 주십니다. 그 분은 복수하기 위해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자신을 핍박했던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만 특별히 나타나셨습니다. 먼 후에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있던 사울에게 나타나셨던 것은 예외입니다. 고린도전서 15:7에 보면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여전히 의심하던 자신의 형제인 야고보를 찾아가 주셨던 적도 있습니다. 그 만남 이후에, 야고보는 충성스러운 제자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들과 이야기하고 걸으셨습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 하셨습니다. 어떠한 비난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은혜와 자비와 격려만을 보여 주십니다. 사랑하시고 가르치십니다.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12절에 흥미로운 언급이 있습니다.

‘None of the disciples dared to ask him, “Who are you?”’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어쩌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본래 육의 모습과는 똑같아 보이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옆에 계셨던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 중에 하나였고 그 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여행하며 다녔지만, 그 때까지 예수님을 정원사라고 생각했습니다.(요한복음 20:15)

예루살렘으로부터 7 마일 떨어진 엠마오로 두 명의 제자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서로 대화하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누가 복음 24:13-16)

바로 이 기간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매우 중요한 가르침 들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의 양들을 먹이고 그들을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제자들에게 위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16-20)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들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많은 일들을 행하셨지만, 그 중에 극히 일부만 기록되었습니다. 요한은 말하기를,(요한복음 21:25)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되었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이 아니라 삽자가에 처형 당하신 후 40일 동안 하신 일들입니다.

지극히 일부분 밖에 알려지지 않은 이 기록들을 통해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기간 동안 사역에 집중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망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찾아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예수님을 고통 가운데 몰아갔던 사실로 인해 방해 받지 않으십니다. 동일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찾아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물고기를 잡고 있을 때에도 찾아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희망을 잃고 이 세상에서 일상의 생업으로 돌아갈 때에 예수님께서 찾아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분으로부터 멀어지거나, 그 분을 잘못된 장소에서 찾고 있을 동안에도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찾아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을 행해서 찾아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의롭기 때문에 찾아가시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럴 자격이 있어서 찾아가시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면, 어쩌면 여러분에게 가시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분이 오신다 해도 여러분이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그 분을 알아보는 사람은 그 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비겁하게 그 분을 따랐다고 해도, 그들은 다시 시도할 것입니다.

그 분은 자신의 임재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오셔서 보여 주시고, 그 분은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시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양떼를 먹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을 제자 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계시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그 분의 사랑을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벽을 통과하시고 마음대로 사라지셨습니다. 듣고자 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그림자 같으셨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거나, 혹은 무엇을 믿을지 선택하던 간에, 그 분은 그림자보다 가까이 계셨습니다. 여러분은 어쩌면, 가령, 가족의 죽음과 같은 악몽 같은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 평안을 주실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건강에 대한 염려,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이 땅에서 자신이 서 있을 곳에 대한 걱정을 갖고 있을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인도하시기 위해 어둠의 언덕을 걷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전한 곳을 주실 것을 기억하십시오. 집이나 직장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을 꼭 껴안고 계시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기도하고, 믿었지만 여전히 응답을 받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신뢰가 이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 분의 사랑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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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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