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방문

누가복음 19:28–45

오늘은 극적인 한 주의 첫 날 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드라마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실제로 그기에 연루되는 것은 그리 재미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최근에 TV에 나온 드라마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박 근혜나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정치 드라마를 이야기 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드라마는 재미있고, 우리는 이것들이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을 앞둔 성 주간인 이번 주는 드라마 같다는 느낌이 종종 듭니다. 아주 낯이 익습니다. 매년 이 시기에 우리는 같은 드라마를 다시 봅니다. 이것은 정말 위대한 드라마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저는 부활절이 다가오면 늘 희망찬 흥분을 느낍니다. 저는 종려주일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극적이지만 TV드라마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으로 예수 님께서 승리를 예고하시며 입성하신 오늘은 가장 멋지고 영광된 날입니다. 이 날에 하나님께서는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전으로 가셔서 희생 제사를 위한 동물들을 팔고 있던 상인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이제 사탄은 패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사탄을 이스라엘로부터 떼어내어 몰아내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목요일에 우리는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적들에게 은 삼십 개에 예수님을 팔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노동자들의 약 120일의 일당과 같았습니다. )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이제는 사탄이 막 승전타를 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세가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부터 빠른 속도로 내리막을 치달으며 총체적인 재앙으로 갑니다. 예수님은 체포되셨고 다음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사탄이 이긴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도 이것이 종려 주일에 그들이 기대하던 승리의 결말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잠깐만요.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뒤집는 가장 극적인 반전을 맞이합니다. 사탄은 패배했습니다. 그는 더 깊은 진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주일에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배웁니다. 부활의 날에 하나님은 완전히 승리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 드라마의 끝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마지막 때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끝나는 어느 날, 여러분은 다음 세대에게 여러분이 세상의 마지막에 살았었다는 사실을 말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관점으로, 누가 복음 19장으로 돌아가 봅시다. 여러분은 모두 이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28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셨다.”

예수님은 행렬 또는 행진을 이끌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만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후 예수님께 다가올 일을 아셨습니다. 여행을 함께하고 있던 모든 순례자들은 잔치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망아지 한 마리를 데려오도록 하셨고 그것에 올라 타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종려나무가지를 길 위에 펼쳐 놓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감람산 비탈길 가까이 오셨을 때 수많은 제자들이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에 대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 복이 있다! 하늘에는 평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 하고 외쳤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흥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승리가 보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 되시려 하고 그들의 모든 문제들은 끝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진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하기에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하나님은 이 행진을 보시고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행복하셨을까요? 무엇을 생각하고 계셨을까요?

하나님은 그의 하나 뿐인 아들이 죽음을 향하여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목요일에 있을 배신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금요일에 그의 아들에게 어떤 일을 할 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그의 아들에게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장에 대해서 얼마나 자주 사려 깊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이러한 관점으로 잠시 멈춰 서서 하나님이라면 어떠셨을까라고 얼마나 자주 생각하고 있나요. 찬양과 경배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는 우리의 올바른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을 언짢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마도 그렇게 적은 사람들이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슬프셨을지도 모릅니다. 40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Trees and animals welcome Jesus. Even the stones in the road welcome Jesus. 나무들과 동물들이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길에 있던 돌들마저도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 유명해지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기를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진정으로 어떤 분이신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고난을 겪는 결과에 이를 것입니다. 이런 마음들은 너무나 단단하고 죄에 빠져 있어서 바로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것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부 이해한 사람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너도 오늘날 너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시기 위해 그의 백성들에게 찾아오셨고, 이제 그들의 다가올 고통을 생각하며 울고 계십니다. “지금 너희는 하나님이 너희를 찾아 오신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위해 기나긴 시간을 준비해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날이 마침내 찾아왔지만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순례자들은 종려주일에 노래했지만 금요일에는 예루살렘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로마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를 것입니다.

이 둘 중 하나님은 어떤 모습을 원하실까요? 예수님을 메시아로써 경배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을 원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비록 군중들이 어떤 일이 일어 날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그들과 같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셨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어깨에 무거운 짐과 같았을 것 입니다. 이삭이 자신이 제물이 되기 위해 필요한 나무들을 스스로 지고 갔던 것 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순종과 신뢰로 나아갔습니다. 이삭과 달리, 예수님께는 자신을 대신해 줄 양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주실 바로 그 양이셨습니다.

모든 잃은 양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너무나 깊고 넓고 순수했기에,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저녁에 제자들에게 잔치를 열어주셨습니다. 자신을 죽이도록 팔아버릴 그 한 사람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그들은 목요일 저녁에 유월절 식사를 하기 위해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빵을 함께 쪼개고 포도주를 함께 마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나중에 우리가 함께 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포도주를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이제 곧 배신하려고 하는, 그 한 사람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인 우리는 이것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 유월절 만찬을 재연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행진을 재연하라고 가르치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서로의 발을 씻어주기를 원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성찬식을 행함으로써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끔찍한 상황에 처할 때나, 특별히 최악인 상황에 있을 때에도,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주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품으시는 마음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는 우리의 찬양을 듣기 바라시고, 우리가 서로를 위해 섬기는 것을 보기 원하십니다. 그는 그것을 너무나 원하셨기에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깨닫고 따르는 우리가 됩시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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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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