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과 당혹감

고린도후서 4:1–10

제가 존경하는 한 분이 이번 주 저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자신이 젊은 기독교인이었던 시절, 자신이 이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치기를 꿈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랐습니다. 현재 그 분의 목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이해합니다. 종종 저는 이 세상에서 제 삶의 목적과 목표를 혼돈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문제로 고심한다면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Jeremiah 17:9 – “The human heart is the most deceitful of all things, and desperately wicked. Who really knows how bad it is?”
예레미야 17:9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마는”

예레미야는 저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저는 갈등했습니다. 제 마음은 한 쪽에서는 이것을 말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다른 것을 말했습니다. 참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보내는 그의 두 번째 편지에서 말했듯이, 저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제가 왜 당혹스러웠을까요? 저의 내면은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마치 제 몸 안에 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거룩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즐거움, 명성, 그리고 부를 원했습니다. 제 안에 있는 두 사람은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탄의 존재가 사실임을 인식한다면, 이것은 이해가 되는 상황입니다. 사탄은 분열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혼란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제 감정이 잘못된 곳을 향하고 있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문제이지만, 저의 마음에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그 분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 Corinthians 13:12 – “Now we see things imperfectly, like puzzling reflections in a mirror, but then we will see everything with perfect clarity. All that I know now is partial and incomplete, but then I will know everything completely, just as God now knows me completely.”
고린도전서 13:12 –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제 문제의 깊이를 아시겠나요. 저의 감정과 마음은 갈등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둘 다 옳지 않았습니다. 혹시 누군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라가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나요? 저도 그러한 조언을 받아 보았습니다. 저는 한 참이 지난 후에 이러한 엉터리 조언들을 따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대신 성령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에게 귀 기울여야 할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John 14:26 – “But when the Father sends the Advocate as my representative—that is, the Holy Spirit—he will teach you everything and will remind you of everything I have told you.”
요한목음 14: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이것이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4장을 다음과 같이 말하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님에 의지하여 인도함을 받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무엇을 이루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에게 목표와 꿈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위대한 크리스쳔 영웅들처럼 되기 원하십니까? 한 때 저의 영웅은 아시시의 프란시스였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오직 명성과 영광과 영예를 갈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프란시스는 많은 어려움 끝에 부제로서 임명 받았습니다. 저는 프란시스가 자신의 마음의 욕망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따르게 된 일에 대해 그를 존경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과 아시시의 프란시스는 오직 한 사람 뿐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그들처럼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믿음의 삶을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은 거대하지 않고 명성을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 목표이기도 한 그 거대한 목표를 가질 때 발생하는 한 가지 현상은 그 일에 대해 나중에 우리 스스로 실패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리의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크리스천이 되길 원한다고 합시다. 제가 그랬었는데, 후에 제가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로 인해 제 스스로 형편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바울이 7절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입니다.

제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 이메일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지난 몇 주간의 설교 주제들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선택 받은 사람들이 수 세기 동안 분열되고 추방되고 돌아오는 것을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 몇 명은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살았던 나머지 수 천명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저 살아가고, 먹고 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이러한 위대한 드라마의 순간들의 공백들 가운데에 그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것을 느꼈을까요? 인생의 대부분은 이러한 공백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공백들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에는 마치 하나님께서는 침묵 하시는것 같고 실제로 그러하십니다. 때로는 악이 승리하고 우리는 선을 위해 아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깨지기 쉬운 질 그릇들입니다. 우리는 순금으로 된 귀중하고 아름다운 그릇들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인생을 오로지 일만 하며 살던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기에 그들은 그 어떤 면에서도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그들을 만났다면 그들의 삶을 가치 없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들은 해가 뜨고 지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일하고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거나 설교를 하거나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아들들은 자라서 그들과 같은 노동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중년 시절, 자신의 주변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아무런 목적도 없이 한 방랑자의 발걸음을 쫓아다니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방랑자가 예수님이었고, 그들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이 깨지기 쉬운 질그릇 안에 거대한 보물이 들어있다고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God, who said, ‘Let there be light in the darkness,’ has made this light shine in our hearts.”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저는 더 이상 젊지 않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저의 경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저는 은퇴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은퇴를 할 때 저의 인생에서 저는 무엇을 이룰까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것은 매우 일반적인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러분의 인생에 무엇을 성취하고, 앞으로 무엇을 이루길 원하시나요? 이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부디 이 질문으로 인해 잘못된 길로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에 무엇을 이루기를 구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통해 무엇을 이룰지 구하십시오.

현 시점에서 저는 제 인생에서 어떤 것도 이루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 삶에 의미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배우기로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닙니다.

제가 배운 것은 제가 천국의 빛을 가득 담은 질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친다고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지만, 제 안에 빛나고 있는 것은 매우 특별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빛입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일을 하지도 않습니다.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의 힘은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입니다.

네, 7절부터 적혀 있는 말씀을 보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빛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힘의 목적은 우리가 억눌리거나 절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 힘의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해 이 세상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 이 세상을 바꾸도록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빛이 우리 안에 이유는 삶이 힘겨울 때에도 우리가 절망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생은 힘이 들기 때문이지요. 삶은 늘 순탄하지 않습니다.

2 Corinthians 4:8 – “We are pressed on every side by troubles, but we are not crushed. We are perplexed, but not driven to despair. We are hunted down, but never abandoned by God. We get knocked down, but we are not destroyed.”
고린도후서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이제 제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빛이 가득 채워져 있는 질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저의 목적은 제가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성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과 빛이 가득한 이 삶을 살기 위해 제가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가르치는 것”이고 저는 그 분의 종입니다.

이것에 대해 그 어떠한 마케팅 속임수도 없습니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단순히 질 그릇이 되어 오로지 진실 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부끄러운 행동들과 부정적인 방법들을 거절합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속이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실을 말하고 , 모든 정직한 사람들은 이것을 압니다.

질 그릇인 우리들은 그 누구도 강제로 믿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천국에 대해 사람들과 논쟁할 수 없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빛으로 채워지도록 강요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Satan, who is the god of this world, has blinded the minds of those who don’t believe. They are unable to see the glorious light of the Good News. They don’t understand this message about the glory of Christ, who is the exact likeness of God.”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4절)

저는 더 이상 제가 누구 인지에 대하여 혼란스러워 하지 않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저의 목적 때문에 곤란해 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빛으로 채워지고 그 분께서 일하시도록 한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성공할 것입니다. 그 어떠한 영향력도 하나님의 힘에 의한 결과일 것입니다. 저의 의무는 겸손하게 살고 그 분의 빛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저의 의무는 저의 모든 말에 정직하고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 단순한 것처럼 보이나요? 별로 가치 없는 일로 여겨지나요?

전혀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 삶에 가장 위대한 부르심입니다.

제가 하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 모든 것에 대한 이해를 주실 것입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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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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