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째 성전

말라기 3:1–15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하나님을 위한 화려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이 솔로몬의 성전을 부수고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데려갔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백성을 바빌론의 망명생활에서 이끌어 내셨느지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두 번째 성전을 짓기 시작하여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그 성전을 완성되었습니다.

단지 5만명의 사람들만이 그 기나긴 고향으로의 여정을 선택하였습니다. 바빌론에서 태어난 나머지 사람들은 그곳에 남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아주 부유하였으며, 그들은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바빌론은 무역의 중심지였기에 경제가 번성한 시기였습니다. 유다는 가난과 고난의 지역이었지요. 그 결과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매우 신실한 사람들로 7명의 사람에 한 명의 선지자로 구성된 여러 무리들이었습니다.

귀향한 사람들은 첫 성전이 있었던 제단 부지에 그들을 제단을 지었습니다. 그 성전은 이전보다 훨씬 작은 규모 였습니다. 전혀 화려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성궤와 천사상이 없었기에 성막은 비어있었지요.

그 성전은 기원후 70년에 로마가 찢어놓을 때 까지 제룹바벨에 의해 재건 되어져 있었습니다. 재건은 기원전 200년경에 의로운 시므온에 의해 착수되었습니다. 헤롯왕은 기원전 20년에 실질적으로 그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시온으로 귀향한 사람들은 그들의 꿈-하나님의 집을 재건하여 하나님께서 그 곳에 영원히 거하시도록 하는 것-을 성취하였습니다.

귀향 한지 백 년이 지났지만 유대의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은 여전히 황폐하였으며 외곽 지역은 대다수 불모지였습니다. 추수량은 극히 적었고 메뚜기 떼는 잘 자란 곡식을 먹어 치워버렸습니다. 삶은 힘겨웠으며 고단하였습니다. 그 곳에서의 삶은 전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새로 지은 성전은 너무나 협소하여 사람들의 사기를 끌어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외곽지역의 숨겨진 곳 에서 더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왕이 없었기에 궁궐도 없었습니다.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집트 밖으로 이끌어 내었을 때, 거기에는 6십만명의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총 인구는 백오십만에서 이백 오십만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정복하였고 많은 큰 도시들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곳에는 오직 몇개의 작은 언덕 도시들과 마을들만이 있었기에 그것은 과거의 영광에서 먼 기억이었습니다. 인구 5만은 너무나 적었습니다.

사람들은 실망하였고, 낙심하였으며, 좌절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긴 여정을 통해 돌아온 것이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지 묻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백 년이 걸려 돌아왔으나 그들의 왕국이 건설될 징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어두운 분위기가 만연하던 가운데, 한 가지 빛이 보였습니다. 귀향하였던 신실한 사람들은 적어도 한 가지 교훈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신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종교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면은 좋았으나, 동시에 그들의 신앙은 너무나 엄격해 졌습니다. 예배는 형식적으로 변했습니다. 성전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곧 죽은 신앙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이 하는 것이며 그들 자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시간의 양을 정하였으며, 그들이 줄 수 있는 최소의 금액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성직자들도 그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성직자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참석하는 지나 그들이 얼마나 신실한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적 업무를 이행하여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예배는 진지하게 드려지지 않았으며 하나님께는 최고가 아닌 두 번째로 좋은 것이 드려졌습니다.

종교적 생활에 대한 이러한 진지함의 결여는 그들의 도덕적인 삶에도 번졌습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을 신경써야하냐는 질문으로 부터 이는 왜 그들이 굳이 신실하게 되여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이르는 작은 한걸음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장사를 하는 것이 잘못된 일임을 알고 있었지만, 도시 벽 바깥에서 장사함으로써 교묘하게 이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신실해 지고자 하는 지점을 보기를 멈추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정직해지는 것도 멈추었습니다. 이혼이 번번히 일어났습니다.

정죄를 왕도 정부도 없었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탓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다, 그가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시니 우리도 그분께 신경쓰지 않겠다. 만약 하나님이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지 않으시므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연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산 사람들에게 어떠한 보상도 없으시며 악인들에게 벌하지도 않으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말라기의 시대의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완고한 백성들에게 분노하시여 그들에게 400년이 지나서야 말씀하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멈추셨습니다.

말라기는 책의 이름이며, 선지자의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지자의 이름을 모릅니다. 말라기는 전언자라는 의미입니다.

말라기는 하나님꼐서 어떻게 그가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원수들을 미워하는지 말씀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I have always loved you,” says the Lord.
But you retort, “Really? How have you loved us?”
And the Lord replies, “This is how I showed my love for you: I loved your ancestor Jacob, but I rejected his brother, Esau, and devastated his hill country. I turned Esau’s inheritance into a desert for jackals.”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 하고 말씀하시는데도 너희는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하고 묻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여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유산으로 물려받은 그 땅을 광야의 들짐승에게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시대동안 백성들을 지키시고 에돔을 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지 않으시고 상황을 모른척 하신다는 백성들의 말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눈을 열어서 감사해야할 것들을 깨닫도록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평할 때, 우리는 그 불평을 멈추고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햐 실질적으로 행하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말라기서에 나오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메세지 뒤에는 분명한 원칙 있습니다.

말라기는 하나님을 과거의 창조자로 묘사합니다. 말라기는 하나님을 현재의 왕으로 보고 있습니다. 말라기는 하나님을 미래의 심판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말라기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값싼것들 드리는 것을 멈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것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신에게 자신의 최상의 것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말라기는 당시 성직자들이 사람들이 듣고 싶은 것만 말하고 하나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음을 책망하였습니다. 성직자들은 사람들에게 신실하게 살도록 촉구하여야만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11절에, “그들이 당한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며 세상 끝 날을 눈 앞에 둔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로서 기록되었습니다.” “These things happened to them as examples for us. They were written down to warn us who live at the end of the age.”

그때 일어난 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최상을 것을 쥐고 우리의 안락과 쾌락을 우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법 아래에 있으며, 그 법은 모세의 법보다 훨씬 더 엄격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쓰라고 자유를 부여 받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우리가 천국을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400년전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희망의 메세지 였습니다.

The Lord of Heaven’s Armies says, “The day of judgment is coming, burning like a furnace. On that day the arrogant and the wicked will be burned up like straw.” (Malachi 4:1)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용광로의 불과 같은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에는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가 다 지푸라기처럼 타서 없어질 것이며 그들 중에는 하나도 살아 남는 자가 없을 것이다.”

“Look, I am sending you the prophet Elijah before the great and dreadful day of the Lord arrives. His preaching will turn the hearts of fathers to their children, and the hearts of children to their fathers. Otherwise I will come and strike the land with a curse.” (Malachi 4:5,6)
“보라! 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를 보내겠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들에게 돌아서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이 아버지에게 돌아서게 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그들의 땅을 저주로 치겠다.”

최악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종결시킬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악한 자들이 이와 함께 쓸려 나가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를 기억하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다시 말씀하실 것과 자기 백성을 구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상실하거나 현실에 안주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엘리야가 다시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언젠가 다시 오실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관심으로 인해 곤경에 처함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때때로 곤경들은 우리의 믿음이 우리 삶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 징조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또한 우리에게 돌아오실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걸음을씀하실 그 험난한 시기에 대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와 관계에서 적극적인 양방향 방식을 찾으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양 방향적인 방법을 찾음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단련시킵니다. 우리의 행동에 사랑을 담도록 합시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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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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