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아모스 7:1–9

인간이 죄를 짓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를 무시한 듯 보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교만했습니다. 마음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깔보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인 들은 확실히 자신들이 무지한 히브리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빌로니아인들도 마찬가지였지요.

도시의 발달로 새로운 구역이 만들어졌습니다. 통치 계층과 권력자, 지식층이 도시로 유입되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사람들을 무식하고 하찮게 여겼습니다. 시골 사람이 큰 도시에 가면, 촌스러운 패션과 무식함으로 경멸을 당합니다. 도시 사람들은 무식한 농부와 시골뜨기를 조롱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견해가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패션 감각이 없는 사람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색깔과 무늬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교육 수준이 낮고 월급이 적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요? 우리는 이와 같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나요?

We remember that one of the most despised jobs in Palestine at the time Jesus was born was ‘shepherd’. Yet it was shepherds who God went to first with the good news of Jesus’ birth. It was fishermen who Jesus chose as his first disciples.

우리는 예수님이 태어난 시대에 팔레스타인 지방 에서 가장 비천한 직업 중의 하나가 ‘양치기’ 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처음으로 예수 탄생 소식을 전하게 한 것은 양치기였습니다. 예수님이 첫 사도로 삼은 사람은 어부였습니다.

여러분 나라에서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마을 출신의 가장 낮은 지위의 사람을 상상해 봅시다. 그 사람이 권력을 얻어, 여러분 나라의 지도자들과 대화하려 노력한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현실적으로 일어나긴 어려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택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가장 잘 전달해 줄 사람을 택하십니다.

그러한 기준에 맞는 사람이 바로 아모스였습니다. 아모스는 지난 주일 말씀에 나왔던 호세아 보다 약 40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양들과 무화과나무를 돌보던 비천한 시골뜨기 양치기였습니다. 아모스는 남유다 왕국의 남쪽에서 줄곧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그의 억양, 옷차림과 직업을 경멸할 법한 북이스라엘 왕국이 있는 북쪽으로 보냈습니다. 아모스는 예루살렘 남쪽 12마일, 야생 사자가 살고 있던 정글 가장자리에 위치한 드고아 지방 출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벧엘로 보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매우 부유했으며, 사치 스런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벧엘에서 금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과 가르침을 노골적으로 어겼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다시 그 에게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시어,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 했습니다. 너희가 하고 있는 것을 멈추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자로 먼 시골 출신의 한 가난하고 무식한 농부를 선택했습니다.

아모스가 바알 사원 계단에서 서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때, 심한 사투리를 쓰면서 설명했습니다. 아모스는 사람들에게 오랜 여정 후 구걸하는 거지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를 미워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저 라면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거 같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조차도 믿기 어려웠을 겁니다.제 게 겸손한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메시지를 놓치는 것은 쉬울 것입니다.

아모스서는 시적으로 쓰여 있는데,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정보나 사실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가끔 씩 우리에게 상황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하십니다. 또 어떤 때에 하나님은 우리와 교감 하시길 원하십니다. 이때 하나님은 우리가 말과 의미에만 집중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을 움직이기 위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감동 시켜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하는 시를 쓰십니다. 시를 읽을 때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터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시는 우리를 행복하거나 슬프게 하며, 때로 우리를 변화 시키기도 합니다.

7장에서 그 시의 흥미로운 부분이 나옵니다.

유례 없는 경제 발전을 거치면서 북 이스라엘 왕국의 도덕 기준은 붕괴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정의를 실천하며, 자선을 베푸는 율법의 계명은 무시되었습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였고, 힘이 곧 정의였습니다. 부패가 만연한 시대였습니다. 도덕이 퇴보함에 따라, 우상숭배도 자연히 증가하였습니다.

1절에서, 아모스는 “주 여호와께서 모든 땅에 메뚜기 떼를 준비하여 보내려 하신다는 것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다고 말합니다.”

아모스는 움이 돋기 시작할 무렵, 메뚜기 떼가 그 땅의 푸른 것을 모조리 먹어버리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우리 생각에 어쩌면 이것이 공평하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제일 잘 아시고, 그들은 이런 일을 당해도 싸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늘 옳은 건 아니신가요?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모스가 그들의 적에 대해 예언해 줬을 때는 행복했을 것입니다. 2장에서 아모스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모압사람들이 죄를 짓고 또 지었다, 나는 모압땅에 불을 내리겠다.”

그는 다마스쿠스, 가자, 두로, 에돔, 그리고 암몬에 대해 비슷하게 예언하였습니다.

아모스는 7장 2절에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는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계획을 바꾸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무식한 농부이자 드고아의 양치기인 아모스는 하나님과 의견이 다릅니다. 아모스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계획을 바꾸십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마음을 돌리셨다.”

넓은 가슴을 지닌 작은 자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십니다. 우리가 무화과나무를 키우는 아모스보다 못한가요? 물론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길 원하신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모스는 원치 않는 일을 하시라고 하나님을 압박하진 않습니다.

메뚜기 떼로 인한 파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4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큰 불을 내려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전 국토”를 삼켜버릴 수 있는 불을 보내려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모압에 행하려 하시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모스는 하나님의 처음 생각에 반대하며, 재빨리 자비를 간구합니다.

“O Sovereign Lord, please stop or we will not survive, for Israel is so small.”
“주 여호와여, 그치소서! 주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 남을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아주 미약합니다.”

드고아지방의 어떤 누구도 하나님과 논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번개로 벌을 내리는 대신에 계획을 바꾸십니다. 아모스가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불을 내리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4절에서 모세가 기도했을때, “여호와께서는 뜻을 돌이키셔서 말씀하신 재앙을 자기 백성에게 내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관점으로 그의 결정을 바꾸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새로운 결정을 내리기 위한 새로운 정보가 필요치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사랑과 긍휼이 하나님이 이미 하고자 원했던 것을 거두시도록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요? 늘 그렇지는 않겠지 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 기울이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하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기도할 때 경건해 질 필요는 없습니다. 기도할 때 위대해 질 필요도 없습니다. 모세는 그가 기도할 때 순종적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말을 들어주셨습니다. 아모스는 양치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정의와 자비를 원하는 것을 알고,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하나님은 탐욕스럽거나 이기적인 기도에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시면서, 이러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사람들이 새겨 듣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모스는 그 사람들을 메뚜기떼와 불의 심판에서 보호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하였습니다. 아모스는 8절에서, 하나님이 그의 기준으로 우리를 측량하신다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다림줄에 견주어 곧지 않으면, 그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일단 용서하시면 그 죄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기를 거부하면, 하나님은 결코 그 죄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는 우리를 다림줄로 시험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곧지 않으면, 그 결과에 고통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가 필요할 때 천사를 보내시어 회개하게 하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예언의 끝에 그의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9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I, the Sovereign Lord, am watching this sinful nation of Israel. I will destroy it from the face of the earth. But I will never completely destroy the family of Israel.”
“나 주 여호와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주시하였다가 지상에서 없애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나라가 아닌, 그의 백성을 회복 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우리는 멸망으로부터 사랑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아모스의 경고는 결국 희망의 메시지로 바뀌게 됩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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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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