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메시야 한 분만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0-17

가끔 교회를 보며 우리는 머리를 긁적입니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그 다음에 우리는 종종 이유들을 찾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비난하고 우리의 문제를 초기 기독교까지 거슬러 가져가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거기에는 많은 진실들이 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콘스탄틴은 이교도들의 예배 장소를 기독교인의 예배 장소로 바꾸었습니다. 이도교에 있었던 많은 것들의 이름을 다시 지어 기독교라고 불렀습니다. 저에게 그것에 대해 다 적어 놓은 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낭만적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애틋한 마음으로 초대 교회가 얼마나 놀랍고 순수했던가 상상하며 어떻게 해야 사도 행전에 나오는 교회처럼 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도 많은 진실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의 끈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우리를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고린도에 교회를 세운 것은 바로 바울이였습니다. 고린도에서 그 교회를 보살핀 것도 바울이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교회의 구성원이였으면 하고 바라고 계시지 않습니까? 바울은 그리스보와 가이우스, 그리고 스데바나의 가족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는 박해가 대단히 심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를 포함해 도시들로부터 쫓겨났습니다. 대부분의 사도들은 정상적인 죽지 못했습니다. 요한을 제외하고 모두 순교했습니다.

고린도는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쉬운 장소가 아니였습니다. 부유한 도시였고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2,000명의 창녀들과 함게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사랑과 미, 그리고 풍요를 상징했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들 중 고린도교회보다 더 많은 문제를 가진 곳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감사하게도 고린도교회는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놀라운 가르침 들을 남겨 놓았습니다. 슬프지만 우리에게는 고린도교회가 가졌던 같은 문제들이 좀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모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전 후서 에서 우리에게 제시하는 해답은 사랑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에서 바울이 다루고 있는 문제는 분열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의 편지에서 씨름하는 첫번째 문제입니다. 바울은 먼저 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누구인지 일깨워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소망을 주고 격려합니다. 7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에 여러분은 전혀 흠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그를 진짜로 힘들게 하는 문제로 곧장 뛰어듭니다. 교회의 일치가 가장 주된 관심사 입니다.

초대 교회에는 교회 건물이 없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서로의 집에서 만났습니다.

그래서 보통 부유한 사람들이 모임을 위한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임 장소는 여러 개 있었지만 교회는 오직 하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인 거 같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딱 우리와 같았습니다.

정치를 보십시오. 사람들은 정당에 들어가 당원이 되는 것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함께 결합하여 라이벌 정당에 반대하는 것을 즐깁니다. 국가를 위해 자기의 당이 최고라고 주장하고 다른 당들은 최악이라고 선언합니다. 야구와 축구에도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유럽의 축구팬들이 가장 격렬할 것 입니다.

이렇게 경쟁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그 결과로써, 오늘날 세상에는 33,000여개 이상의 기독교 교파가 생겨 났습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를 대단히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이에는 어떤 교파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왔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그저 믿음의 동역자들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당파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경쟁 집단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지도자를 뽑고 다른 이들보다 더 떠받치고 있었습니다.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12절에서 네가지 예를 열거했습니다.

‘Some of you are saying, “I am a follower of Paul.” Others are saying, “I follow Apollos,” or “I follow Peter,” or “I follow only Christ.”’

‘여러분은 저마다 “나는 바울파다.” ,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베드로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철학자들과 랍비들은 실제로 이런 종류의 충성을 부추겼습니다. 고린도에서 경쟁하는 학생들과 제자들이 때때로 주먹다짐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방법이지 우리의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이 고린도 교회 안으로 살금살금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충성파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에 속해 있습니다. 그가 우리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바울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었으므로 다른 이들보다 바울의 말을 들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다수가 바울을 따랐을 것입니다.

문장가들(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흥미진진한 설교에 끌렸습니다. 그들은 아볼로 주위에 모였습니다. 사도 행전에서는 아볼로를 뛰어난 웅변가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리스 사람들은 웅변술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는 특히 구약 성경을 우의적인 표현으로 가르치는데 탁월했습니다. 그에게 고린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칭찬이 쏟아졌을 것입니다. “오! 아보로의 설교 너무 좋아요! 아볼로는 위대한 설교가입니다. 그는 정말로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는 따뜻해요. 아볼로는 유능할 뿐 아니라 연설도 잘합니다. 아무도 아볼로 만큼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경 말씀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그 다음 전통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항상 전통주의자들은 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글쎄요, 나는 바울이나 아볼로에 대해 잘 모릅니다.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오리지널을 원합니다.” 베드로는 아마도 고린도에 있었고 설교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베드로와 같이 있을 때 굳건한 기반에 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 그분에게 첫번째 제자로 불리던 사람 중 한 명이였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스승들이 가지고 있는 다른 장점들에 대해 분쟁하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네번째 그룹은 약간은 자부심이 강하거나 오만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월하고 각별히 영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바울 아니면 베드로 아니면 아볼로 편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편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들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밖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이런 독선적인 사람들이 성도들 사이를 가르고 나누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우리에게도 여전히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옳음에 관한 질문이 아닙니다. 정말로 아볼로가 바울보다 더 나은 설교가 였는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은 그것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치를 잘못된 것들에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들을 전혀 중요하지 않는 것들을 위해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7절에서 말합니다:

“Christ didn’t send me to baptize, but to preach the Good News—and not with clever speech, for fear that the cross of Christ would lose its power.”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기쁜 소식을 전파하라고 나를 보내셨습니다 – 그리고 인간의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설교를 하든지 간에 교회에 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설교가가 있을 때만 교회에 참석합니다. 만일 그들이 설교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교회에 가지 않을 것 입니다. 하지만 기쁜 소식은 천국 시민인 우리 모두에 관한 것 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고 형제요, 자매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하나님의 파트너들입니다. 교회는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대해 있는 것 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을 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 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명령하시는 것은 서로 사랑하고 하나로 연합하라는 것 입니다. 바울은 10절에서 서로 갈라지지 말고 의견을 모아 한 마음 한 뜻으로 굳게 연합하라고 말합니다.

Titus 3:10-11 says, “If people are causing divisions among you, give a first and second warning. After that, have nothing more to do with them. For people like that have turned away from the truth, and their own sins condemn them.”

디도스 3:10-11에서 말합니다, “분열을 일삼는 사람은 한 두 번 경고한 후에 물리치십시오. 그대도 알겠지만 이런 사람은 이미 타락하여 스스로 악한 줄 알면서도 계속 죄를 짓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하나된 마음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자신의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자신의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들을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7:20-23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나는 아버지와 내가 하나이듯이 그들도 모두 하나가 되길 기도합니다. –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않에 있는 것 같이.”

만일 우리가 연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연합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서로에게 연합하는 방법 말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의 마음을 바꿔야 한다면, 우리를 변화 시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번 주는 크리스챤 연합을 위해 기도하는 주간입니다. 전세계에서 지난 일 주일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연합을 위해 기도하셨듯이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은 믿는다면 우리 모두도 그것을 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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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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