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진보

골로새서 1장15절-23절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 가는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행동에 영향을 끼칩니다.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 우리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믿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 인가에 따라, 우리의 행동은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은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자유의지 안에서의 믿음이 도덕적 책임의 기초가 된다고 밝힌 과학적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여러분은“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가? ” 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해 궁금해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질문은 종종 살인은 항상 나쁜가 등의 예시와 함께 제시됩니다. 살인은 일반적으로 가장 나쁜 죄 중의 하나로 생각되는데, 그러면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괜찮을까요? 도덕적 논쟁으로 보이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과학이 추가로 설명할 것이 있는 듯 합니다.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서, 사람들이 수단에 집중할 때 자유 의지와 책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목적에 집중할때 는 자유의지와 책임은 관계없는 것 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의 도덕적 판단에는 단기와 장기적 관점 간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의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한 방식은 진보적 시각입니다. 여러분의 믿음 안에서 이러한 시각이 일부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보적 시각은 특히 정치인과 세속적인 전문가들에게 발견할 수 있는 신화입니다. 그들은 진보에 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이해 시키고자 노력합니다. 나에게 투표하면 세상이 좋아질 거라고 말이죠. 이 신화는 서양 문화에 깊은 뿌리를 갖고 있고, 그 뿌리의 일부는 크리스찬입니다.

진보 주의는 인간이 점점 성숙하고 발전하여 계속 진보 하게 되면 결국 어떤 종류의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시각은 특히 계몽주의로 발전되었습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교육, 자유민주주의와 더불어 과학과 경제발전에 대한 낙관 주의가 있었습니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완벽한 평화의 시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번영이 바로 눈 앞에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꿈은 크리스찬의 천국 소망에 대한 패러디입니다. 진보 사상은 헤겔에 의해 촉진되었습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완벽함으로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신의 축복이 필요 없으며, 다만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산물이 찰스 다윈이었습니다. 그의 진화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헤겔 사상을 옹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생물학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진보가 혁명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지속된다는 것을 과학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며 인간 존재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류에 칼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편승하였습니다.

많은 크리스찬 사상가들도 또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예컨대 전쟁은 하나님이 적자 생존을 위해 선택하시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옹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는 전쟁은 좋은 것이며, 더욱 더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사회적 복음(번역 주: 20세기 초기의 미국에서의 종교 운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회적 교훈과 그 사회 생활에의 적용 강조) 을 전파하였고, 방대한 자선 사업을 행하였습니다. 비록 그것이 좋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냈습니다.

진보에 대한 신화의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악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보로써 이 세상의 악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혁명적인 낙관 주의가 기근, 테러, 범죄, 이혼, 민족주의, 파시즘, 아동포르노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시리아와 이라크 전쟁, 북한, 부패, 난민 문제를 진보에 대한 신화로 해결하려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악의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진화로 인해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터지게 되었고, 북한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세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은 우주가 대폭발로 시작되어, 혁명적인 완벽함이 아닌, 대붕괴로 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진보에 대한 맹신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여, 여러분도 그것이 옳다고 일부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보 주의는 하나님을 배제하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시어 악을 해결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누군 가가 진보 주의를 믿지 않는다고 여러분을 조롱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역사를 바로잡으실 분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생각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 또 다른 신화가 있습니다. 플라톤과 부처가 그것입니다.

그들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허상입니다. 세상은 실제적 진실의 흔들리는 그림자입니다. 실제적 진실은 시공간 밖에 존재합니다. 혼잡한 물질 세계는 단지 일시적인 것입니다. 악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으면 썩기 마련입니다. 낮이 가면 밤이 옵니다. 봄, 여름이 가면 가을과 겨울이 옵니다. 건강 뒤에는 질병과 고통이 따릅니다.

힌두교, 불교, 플라톤 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상들이 진보에서 비롯된 고통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 현상들이 인간이 이 세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더 훌륭한 영적 세상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믿음에서 살아가려면, 우리 자신을 모든 물질 세계와 분리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육체를 극복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육체를 초월하라고 합니다. 기독교 중에서는 영지 주의가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영지 주의자들은 물질 세계가 악이라고 믿습니다. 영원 불멸의 육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 그들은 영적 존재로 나아갈 수 있고, 이 악한 물질 세계를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타락이 물질 세계를 낳았고, 삶의 목적은 타락 이전에 우리의 순수했던 영적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지지한 사람들에는 예츠, 블레이크, 괴테, 그리고 융이 있었습니다. 이 ‘단지 세상을 거쳐가는’ 기독교에는 창조는 중요한 것이 아니며, 관심의 대상도 아닙니다. 환경은 오염되고, 생태계는 파괴됩니다. 하나님이 물질로서의 우주를 곧 파괴할 것이므로, 재활용하거나 오존층을 파괴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단지 일시적인 악일 뿐이라면 누가 아마존 우림 지역을 보호할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크리스찬으로 사는 목적은 단지 천국에 가는 것이고 죽으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됩니다.

또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 이 두 잘못된 견해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께 하신 일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고자 합니다. 모든 창조물을 위해서요.

초기 크리스찬들은 세상이 스스로 진보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세상은 더욱 더 나빠지고 결국 모두 탈출해야 한다 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초기 크리스찬들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새로운 육체를 주셨습니다.

크리스찬들은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강조하신 것처럼, 창조는 좋은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악은 실제입니다. 악은 강력합니다. 악은 인간의 창조와 관련이 없습니다. 악은 우리가 순수한 영혼이 아닌 오히려 물질에 가깝다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계절을 바뀌게 하시고 낙엽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악은 바로 하나님과 그의 질서에 대항하는 반역자입니다.

우리는 진보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거쳐간다는 것도 믿지 않습니다. 크리스찬은 변형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님의 육신을 부활의 몸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예수 님은 우리 몸과 똑같은 육체를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 시키고자 성령을 그의 자녀들 즉, 우리들에게 머물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복종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우리의 육체를 없애는 것이 아닌, 우리를 빛과 사랑으로 치유하며 채우는 것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모든 창조물은 예수 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 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창조물의 관리인으로서 인류를 원래대로 회복시키고자 오셨습니다.

우리가 바꿔어질수록 이 세상도 바뀌어 질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은 천국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찬들이 처음으로 믿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첫번째 몸보다 더욱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새로운 몸이 주어졌습니다. 그 몸으로 예수님은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는 육체를 가지고 천국에서 살면서 통치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 육체를 지니시고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과 똑같은 새로운 몸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좋은 소식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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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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