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림절의 이야기

Isaiah 53:1–12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데 이상한 방법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논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삶 에서부터 아셨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어떤 한 방법으로 하셨을 일 이지만 우리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이것과 같습니다.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놀라운 이야기 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상한 방법을 사용 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 것이 왜 예수이 사셨던 당시의 사람들 대부분이 메시아의 오심을 놓쳤는지에 대한 이유일 것입니다.

강아지들과 고양이들은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자연적으로 사람들은 그것들을 좋아합니다. 단지 귀여운 강아지의 사진을 보는 것 만으로 우울을 떨쳐버리고 기쁨을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왜 인터넷상에 강아지들과 새끼 고양이 사진으로 가득한것 처럼 보이는 이유일 것입니다.

아기들도 또 다른 귀여움의 차원입니다. 그들은 귀중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모든 아기들은 자연적으로 사랑스럽다는 것은 만능적인 사실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들을 껴안고 싶어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한 아기의 부모님이면, 당신이 사는 동안 그 아기를 보호 할 것입니다. 아기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아기를 데리고 가서 버리는 것은 정말 이상한일로 여겨집니다. 이런 일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안다면 믿지도 않았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아기 주셨을 때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분인가 우리 자신들에게 상기 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기들을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기는 힘 없고 죄인인 부부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있는 힘있고 부유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을 양육하고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지식층들을 선택하지 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지구로 보내셨을 때, 그의 부모님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들은 죄인이었으나, 겸손하고 순종적이며 사랑스러운 한 부부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를 알고 순종 하려는 하는 두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순종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들과 그 분의 말을 듣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죄인이나 믿고 순종 하려는 사람들을 찾습니다.

모세는 노예여인로 부터 태어났습니다. 다윗은 양치기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이런 방법으로 태어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같지 않았고 그래서 메시아를 놓쳤던 것입니다.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관점은 메시아가 유대인을 향한 정치적과 영적인 구원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그들을 이스라엘로 보낼 것이며 예루살렘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이사야 11:11~12 ; 예레미야 23:8 , 30:3 ; 호세아 3:4~5 ).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을(이사야 2:2~4, 11:10, 42~1) 향한 모든 세계 정부의 중심이 되는 이스라엘에 정부를 세울 것입니다. 그는 사원을 재건할 것이며 예배를 새롭게 시작할 것입니다 (예레미야 33:18).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법정 제도를 복구할 것이며, 이 땅의 율법으로써 유대 헌법을 세울 것입니다 (예레미야 33:15).

이러한 유대인들의 왜곡된 메시아관에 가장 가까운 요구를 충족시킨 사람은 예수님이 오신 한 세기 후에 한 남자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Shimeon ben Kosiba 입니다. 그는 별의 아들이라는 Bar Kokhba라 알려 졌으면 그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뛰어났지만 폭군이었고 군지도자였습니다.

유태인역사에 가장 위대한 학자인 랍비 아키바는 그 가 메시아라고 믿었습니다.

Bar Kokhba는 로마 제국을 대항하여 싸웠으며 예수살렘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사원을 다시 재건할 계획을 갖고 있었고 사원 부지에 희생제사를 재게하였습니다.그리고 임시정부도 수립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찾고 있는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예수 님은 확실히 이들이 찾고있는 메시아에 맞지 않습니다.

로마제국은 이 혁명을 제압하고 Bar Kokhba를 죽였습니다.

그의 죽음후에 모두는 그가 진짜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오시는 권세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독인들은 다릅니다.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일 하시는지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또한 왜 기억하는지 상기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는 시간입니다. 메시아는 다윗 왕처럼 정치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다웟 왕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아기, 예수 님은 어둠과 사단 세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기를 적의 영토안으로 적대적인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한 때 거의 적들은 그 아기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반가운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로 세상 그때나 오늘 이나 투쟁과 폭력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세례 요한 날부터 오늘까지, 천국은 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폭력은 무력에 의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수 님이 지옥 같았던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요즘 한국인들은 이러한 이유로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릅니다.

그 때 그리고 오늘날, 갈라디아서 5장 말한 것 처럼,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축하하는 그 아이의 탄생은 유대인의 생각처럼 위대한 정치적인 권력을 건설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날마다 우리가 체험하는 지옥의 현실을 경험하고 극복하려고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기쁨,평화,인내 ,친절함, 선함, 믿음, 온유함 그리고 자기 절제를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을 극복하고 세상적인 힘을 다른 권력으로 바꾸지 않는 새로운 왕국을 개관 선언했습니다.그 분은 사막에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았을때 그 길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예수님이 경험 하셨던 그 와 같은 고통을 알 것이며, 그가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도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닮으시므로 우리는 그를 닮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대적하고 폭력적인 사람들이 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우리는 평화의 사람들이 지배하는 다른 세계에 삽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세상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사랑의 왕국을 설립했습니다.

이미 여러분도 아다시피 ‘거룩한’ 뜻은 구별 된다라는 것을 알것입니다.

당신이 세계 ‘거룩한’ 의미가 구별되는 것을 알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합니다. 그가 거룩하므로 우리도 거룩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같은 기준을 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는 달라야 한다는 것과 거룩해야 하는 것을 아는 것 입니다.

크리스마스 이후, 구별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이 날을 축하해주는 것입니다. 이 것은 메시아 이름을 따서 이름 불렀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입니다. 마스는 옛날 라틴 언어에서 왔습니다. 오늘날 의미는 ‘거룩한 성찬식’이지만 원래 misse 였고 선교적 단어로써 ‘파송하다’ 의미였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공휴일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특별한 날을 표시한 방법이 세상으로부터 다르다는 것을 또한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세상은 산타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즐기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이야기와 관련이 없습니다. 세상은 쇼핑과 먹는 것을 즐기지만, 크리스마스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요?

다음 주일, 크리스마스날,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는 거룩한 사람으로 우리를 표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상징과 말들이 우리는 다릅니까 아니면 세상사람들과 같이 보입니까?

예수님이 태어났던 실제 날이 아니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과 메시아의 오심을 축하하는 것을 구별하려고 표시하는 의미로 동의한 날입니다. 고난의 삶과 투쟁이 로마 십자가에 죽음으로 끝나고 사탄 세력을 이겨 냈다는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의 승리를 공유하고 예수님의 삶과 같이 살기 위해 따로 구별하기로 결정한 날입니다. 세상의 생각과 삶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방법을 받아들이는 날입니다. 다음 주일에 축하를 위해 우리가 마음으로 준비함으로써, 크리스마스가 정말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려고 합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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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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