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인간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에 “그러므로 주님은 모든 점에서 자기 형제들과 같이 되셔야 했습니다“ 라고 말함을 알게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큰 형님입니다. 그는 단지 죄가 없을 뿐 모든 면에서 당신과 같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당신과 같다면, 그러면 당신의 죄를 제외하고 예수님과 비슷하다는 의미로 가정이 됩니다.

그 말씀은 살이 되었으며 우리와 같이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났습니다 (누가복음 2:7). 그는 자랐습니다 (누가복음 2:40,52). 그는 피곤했습니다 (요한복음 4:6) 그리고 목이 말랐습니다 (요한복음 19:28) 그리고 배고팠습니다 (마태복음 4:2). 그는 육체적으로 연약했습니다 (마태복음 4:11; 누가복음 23:26). 예수님은 명백하게도 사람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는 “놀라웠습니다”(마태복음 8:10). “그의 영혼이 죽음과 같은 비탄으로 짓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울었습니다” (요한복음 11:33~35).

존 칼빈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육체와 더불어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읽을 때, 우리는 이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테플론 으로 코팅되고 세상 혹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단절된 감정 없는 초 인간적인 사람의삶에 대해 읽지 않고 있습니다.

제 게는 자식들이 있고 또 손녀가 있습니다. 그 들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약간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어려움에 있을 때는 저는 기쁨으로 가득하지 못합니다.제가 원하는 것은 아이들이 사랑과 평화로 가득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아이들과 얘기할 때면, 아이들의 상태가 어떠냐 에 따라서 내가 기뻐거나 슬프거나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믿는다면, 예수님 께서도 이와 같은 감정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분들을 향한 부성애적 감정은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그의 형제 자매들에게 가지신 희미한 감정의 그림자가 아닌가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가진 희망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지 시는그 희망의 빙산에 일부분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고 성전 주위를 둘러보심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관광객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 주위의 모든 것을 주의 깊게” 둘러 보시면서 예수님은 이러한 감정과 생각을 경험하십니다. 제가 제 자식들을 바라 볼 때 보다 엄청나게 더 풍부하게 혹은 여러분이 자신의 사랑하는 이를 볼 때 보다도 더 예수님은 강한 희망과 바램으로 성전의 사람들을 바라 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감정과 생각으로 베다니로 돌아갔을까요? 그 날 밤 성스러운 성전 주위를 주의 깊게 보시고 발견하신 것을 생각하시면서 마음 속에는 어떤 생각 들이 스치고 지나갔을까요?

다음날 아침, 예수님은 돌아 오셨습니다.우리는 예수님께서 배고프다고 들었습니다. 사용된 그리스어는 peináō입니다. 이 의미는 단지 배고프다는 뜻입니다. 사실상 우리가 간식을 먹고 싶을 때 사용하는 영어 hungry 보다는 의미가 강한 단어 입니다. 그래서 정말 배가 고프거나 음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항상 hungry로 번역이 됩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들어 예수님께서 진짜 육체적인 배고픔을 느낄 수 있는 구절로 볼 때 사용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 후 배가 고플 때 사용한 단어와 동일합니다.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보았던 것들에 대해 밤을 새워 기도했기 때문에 배가 고팠던 것일까요?

슬픔으로 가슴이 아파서 잠을 자지 못해서 아침 식사를 걸렀기 때문일까요?

부지런한 마사가 과연 그렇게 하게 했을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예수님은 나뭇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 한 그루를 보았습니다. 여러 분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기 위해 무화과나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 라는 말은 열매가 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잎이 생기기 전에 열매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 무화과 나무는 열매가 있다고 광고를 한거나 같습니다.

만약 나무에 과일 없이 잎만 무성하다면 그 한 해는 열매가 없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열매를 맺기에 너무 이른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했다는 14절을 읽을 때 충격을 받습니다. 바로 다음 구절에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격렬하게 탁자를 뒤집는 것을 우리는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약간 덜 충격적 인 것처럼 보이지만, 평화와 인내의 예수님은 어디로 갔습니까?

“The next morning as they passed by the fig tree he had cursed, the disciples noticed it had withered from the roots up.” (Mark 11:20)

“그들이 그가 저주했던 무화과 나무를 지나간 다음날 아침, 제자들은 뿌리부터 위까지 말라 죽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마가복음 11:20)

무화과 나무의 이 이상한 이야기가 성전의 이야기 사이에 불쑥 던져 넣은 것 같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상하게 보입니다. 이것은 의도적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언가 더 큰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 서로 서로 보완된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배고픈’단어로 돌아갑시다.

비록 이것은 단지 배고프다, 필요하다는 의미이지만, 이것은 강한 비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열렬히 갈망하다, 갈망 욕망을 찾다.’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마태복음 5:6)에서, “의을 위해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 들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 6:35에서, 예수님께서 대답했습니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내게 오는 사람은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은 굶주림을 비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열렬하게 정의를 갈망하고 갈망으로 정의를 찾는 굶주린 사람들을 축복한다고 저 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삶을 위해 열렬한 갈망이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올 때 그들은 만족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 가 이 구절들을 읽을 때 그의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고 생명의 빵을 먹을 수 있도록 열렬하게 갈망하는 한 사람을 저는 봅니다. 예수 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거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습니다,그 분의 사랑은 너무나 위대해서 이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기 위해 가시는 길 이었습니다.

예수 님께서 찾은 것은 무엇 입니까?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모습입니다.

이 성전은 영광스럽게 나뭇잎만 무성합니다. 그 곳은 거룩함이라는 올가미에 둘러쌓였습니다. 성전에 대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위대함에 대해 외칩니다.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전 사업으로 바쁘며 거룩한 성전의 옷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예수 님께서 그 무화과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을 때 예수 님은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성전과 같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둘 다 잎사귀만 무성합니다. 그 어느 것도 열매가 없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이야기는 왜 예수 님께서 성전에 있는 탁자들을 뒤엎었는 지를 설명합니다.

달리 말 하자면, 예수 님께서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열매를 찾고자 하는 열렬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열매는 없으나 열매를 광고하는 나뭇잎들을 보았습니다. 여기에는 단지 나뭇잎들만 무성했습니다.

열매가 없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그 무화과나무는 사라졌으며, 그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열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만약에 당신의 삶에 열매는 없고 나뭇잎들만 있다면, 어떤 희망이 있을까요? 우리는 열매를 맺기 위해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런다면, 우리는 이러한 갈망으로 예수 님께 다가가세요, 그러면 예수 님은 여러분의 갈망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약속해왔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예수님은 ‘ 당신의 눈은 몸을 밝히는 등불이다 .당신의 몸이 건강할때 몸은 빛으로 가득 차고 당신의 눈이 건강하지 못할 때, 당신의 몸 은 어둠으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생각하는 빛이 실지 로는 어둠이라면 어둠은 얼마나 어두운 것일까요!”

우리는 우리 안에 사랑이나 빛이 있는 척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눈은 실지로 우리가 양의 옷을 입은 늑대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잔과 접시의 바깥만 닦는 사람들임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을 깨끗이 씻지 않고 서는 바깥은 깨끗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한다고 보십니다.

저주 받은 무화과나무의 이야기는 나뭇잎이 아닌 열매에 대해 우리의 절대적인 필요를 이야기 하는 한 우화입니다. 우리는 나뭇잎처럼 가장하는 믿음의 가면이 아닌 실제 살아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을 주시려고 얼마나 고파하시는지, 얼마나 열정적 이신 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 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깊이 느끼시는지 를 말 하는 이야기 입니다.

예수 님은 여러분 모두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예수 님께서 돌아 가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예수 님은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것을 갈망해야 합니다.

겁을 먹지 마세요. 잘난 척 하지 마세요.

배고픈 사람이 되세요.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 열렬하게 갈망하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을 가지세요.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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