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wer of love

옛날에 열렬한 신앙을 갖고 있는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는 정통적 근본주의자들이었고 자신들의 아이들이 주변 환경으로부터 오염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을 세상으로부터 격리 시켰습니다. 이 엄격한 부모는 하나님을 향한 헌신에 절대적이었고, 어쩌면 약간 지나칠 정도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확실하게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기서 부터 아주 먼 터키에,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살았으니까요. 어쨌든 그들은 모든 바깥 세상의 영향들을 세속적인 것(믿음과 대치되는 것)들이라 경멸하며, 그들의 집으로부터 차단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했는데, 그 이유는 그 언어가 바로 그들의 신앙의 원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들이 13세 되었을 때 그를 그들의 성스러운 도시에 있는 엄격한 종교 학교에 보냈고, 그 아들은 뜨거운 종교적 열의를 지닌 열성적인 젊은 남성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따르는 종교에 위협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종교인들에 대한 가차없는 박해를 함으로써 자신의 젊은 시절을 거친 폭력으로 물들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살았습니다. 그는 고등 교육을 받은 종교적 극단주의자에다가 무서운 남자였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특별히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특정 급진적 추종자들을 뿌리 뽑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그 추종자들을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추종자들을 잡는 것이라고 믿기 시작하자 이 일에 더욱 무자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단언컨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라고 믿는 종교적 테러리스트들보다 더 무섭고 더 포악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사울이 바로 그런 종교적인 테러리스트였습니다. 사도행전 8:3절은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라고 진술합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35마일 떨어져 있는 도시에 더 많은 희생자들을 찾기 위해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 도시에는 수 천만 유대인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에 있는 그의 친구들에게 그 곳의 현지 지도자들이 자신의 테러 작전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편지에서 유대교 제사장들은 ‘그 길`의 모든 추종자들을 체포하는데 협력할 것을 확언해야 했습니다..

권위로 무장하고, 열의에 가득 차서, 사울은 유대교의 이단자들을 제거하는 데 착수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이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고 어쩌면 영화에서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사울과 그의 동료들은 아마도 도보로 6일 정도 걸리는 다메섹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늘로부터 밝은 빛이 비취었습니다. 그 빛은 셰키나(Shekinah)라고도 불리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 분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사울은 땅에 엎드렸고 누군가가 그에게 왜 그들을 박해 하는지 물었습니다. 종종 사람들은 신성한 만남에 땅에 엎드립니다. 종종 그리고 나서 그들은 다시 일어날 것을 요구 받습니다. 사울은 사막에 엎드려진 채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사울에 대해 그다지 기쁘지 않으셨음을 보여 줍니다.

이런 상태에서 사울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온전하게 겸손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던 게 분명합니다. 그는, “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뭉툭한 질문에 예의 바른 ‘주’라는 호칭을 갖다 붙입니다. 이는 헬라어로 kuros 인데, 주인 혹은 주 혹은 경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것은 하인이 자신의 주인을 반기기 위하여 사용하는 존경의 호칭입니다. 하나님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10절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그것은 하나님을 일컬을 때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사울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들었고, 자신이 앞을 못 보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자주 눈이 멀게 되는 것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물리적인 측면과 영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사울은 이제 장님이 되었고 자신을 지시하는 곳에 가야만 합니다. 그가 그렇게 할까요? 그가 순종하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람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서 눈을 멀게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6:18-

‘As the Aramean army advanced toward him, Elisha prayed, “O Lord, please make them blind.” So the Lord struck them with blindness as Elisha had asked.’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 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 지라’

사울의 이야기에서 더 특이한 것은 그 일과 관련하여 신령한 만남을 한 또 다른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랍니다. 그의 대답은 “네, 하나님!” 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대면했을 때 했던 훨씬 더 바람직한 대답이었고, 그는 kuros를 주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확실하게 사용했습니다.

이 두 번 째 사람의 이름은 아나니아 입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지시들을 정말 이해했는지 하나님과 확인했습니다. 이는 열정적으로 잘못된 길로 달려 나가 잘못된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말씀하신 것을 명확하게 하시는 것에 대해 전혀 꺼리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해 들었을 때 놀랐습니다. 그는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믿는 자들에게 저질렀던 끔찍한 일들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마지못해, 어쩌면 의심이 가득한 채.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임하셨습니다. 1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Instantly something like scales fell from Saul’s eyes, and he regained his sight. Then he got up and was baptized.”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하나님과 협력하여. 믿음과 순종으로.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그 때 서야 하나님께서 비늘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사울은 이해했습니다. 그는 회개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변화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만큼 이나 열정적으로 하나님께 응답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이야기입니다.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이야기 하기를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고 이것은 우리에게 단순한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교훈입니다. 이것은 예시입니다.

아람 군대가 공격해 왔을 때 그들의 눈이 멀게 된 것은 엘리사가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울을 위해 기도했나요? 그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을 사울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밤이면 밤마다 절박하게 기도했나요? 그들이 사울의 영혼이 구원받게 해 달라고 날마다 부르짖었나요?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기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의 눈을 멀게 하신 후에, 그들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왕은 그들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고 집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축복입니다.

사울을 멈추게 하신 후에,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을 그에게 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하고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함한 것에 대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리 자신만을 위해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장님이었었지만 이제 볼 수 있게 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마지막 20절은 이것을 이야기합니다.

‘Saul immediately began preaching about Jesus in the synagogues, saying, “He is indeed the Son of God!”’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제가 이 이야기에서 보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고 모든 곳에서 경험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치유와 완전함과 모든 인류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창조물을 품는 전세계적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값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지성적이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체계보다 더 낳은 형태의 신앙 체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구세주와의 만남입니다. 그것이 사울이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는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했습니다. 용서. 사랑. 은혜. 자비. 그의 배경 덕분에 사울은 성서를 통해 설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배경을 갖고 당신은 다른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당신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것은 만남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랑의 경험을 할 가능성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듣는 것입니다. 행동하고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하십시오. 당신의 간증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관한 당신의 경험은 중요합니다.

복음을 함께 나눕시다.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당신은 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만약 그들이 듣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조차 축복하길 원하십니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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