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에서 선포로

부활절이 지나갔습니다. 부활절을 보낸 것이 이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부활절 기간 동안 우리는 거의 이 천 년 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님이 AD30년에 돌아가셨다면, 예수님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986년 전에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사이 기간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죽음 이후 일어난 사건은 오늘날 지금 이곳 진주와 전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9절로 가봅시다. 이 절을 읽으면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하나님은 예수의부활 소식을 전하는 최초의 사람으로 누구를 선택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일곱 귀신에 씌었던 한 여인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가버나움에서 약 5키로 떨어진 갈릴리호수 해안가의 번성했던, 인구가 많은 도시에 살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리아가 창녀였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발전하지만, 그녀에 대한 나쁜 평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언급하는 경우에도 그녀의 이름을 올리지 않습니다. 누가 복음에서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부도덕한 여자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테이블 주위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죄인이라고 수근거리지만, 성경은 그녀의 이름을 불러 그녀를 수치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이미 용서 받은 것은 잊혀져야 하며, 우리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여행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자질을 갖춘 여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부활이라는 기쁜 소식을 직접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사람으로 그녀를 선택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에서 총 열 네 번 언급됩니다. 그녀는 다른 여자와 함께 언급될 때 종종 첫 번째로 불립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역 중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었습니다. 여자가 말을 하는 것에 대해 그 당시에는 강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여자들을 신뢰할 만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르게 보고 계십니다. 오늘날 여전히 여성에 대한 심한 편견이 있는데, 저는 지금도 여성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남성이라면, 여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시기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라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한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11절에서 예수님 제자들을 보세요. 마라아가 그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때, “그들은 그녀를 믿지 않았습니다.”

12절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떨어진 시골 길에서 두 제자를 봅니다. 아마 두 사람은 누가 복음에서 언급된, 엠마오로 가는 길 위의 두 명과 같은 사람일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친히 그들에게 인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은 갑자기 영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서둘러 돌아가서 말했지만, 아무도 그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믿기를 거부하는 고집 센 제자들을 계속 보고 있습니다. 다시 그리고 다시, 그들은 복음을 거부합니다. 저는 이러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쉽게 좌우되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리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이후 믿게 되었는데, 이는 제자들이 진정으로 설득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증거는 실질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증언은 신뢰할 만 했습니다.

저는 제자들이 강력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고 말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들은 진실이라고 믿길 원하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과 정신이 변화된 방식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요? 저는 어렸을 때 예수님을 최초로 알아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나는 그 어리석은 제자들처럼 행동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실제로 저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만약 시장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걸어오고 있는데, 여러분 중 그가 예수님인 줄 알아볼 사람은 몇 이나 될까요?

14절에서는 예수님이 생각하신 바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He rebuked them for their stubborn unbelief because they refused to believe those who had seen him after he had been raised from the dead.”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만약 여러분이 사람들에게서 믿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들이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죽기까지 고문을 당하고 창에 찔리고 땅에 묻힌 사람이 걸어 다닌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소식을 전할 때 사람들이 당신을 조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말을 믿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일곱귀신에 씌인 적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 사람들이 마음이 완악하고 냉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할 부분은, 우리는 어디 서나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 그를 쉽게 못 알아 볼 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겐 예수님을 알아보는 열린 눈이 필요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우리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이야기입니다. 매일의 삶이 모험입니다.매일 매일 한 여인이 하나님의 진실에 대해 당신과 나눈 바로 그 날일 수도 있습니다. 매일 매일이 한 사람이 거리에서 당신을 위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준비한 그 날 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관습에서 벗어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특정 직업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을 통해 교회 안에서만 말씀하시도록 자신을 한정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가 복음에서는 우리가 일단 귀 기울여 듣고 믿게 되면, 우리에게 의무가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녀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렸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것은 사적인 사건도 아니요, 개인적인 사건도 아닙니다.

시골 길 위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 서둘러 돌아갔습니다.”

반복되는 똑같은 반응입니다. 예수 님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완악한 사람에서 열정적인 사람으로 금방 바뀝니다. 변화는 극적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이 땅에 계셨던 단지 며칠 동안의 변화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2년 후 예수님은 시골 길의 한 여행자에게 나타나 말을 거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에게 와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사울이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인 후 열정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지금도 일어날까요? 예. 일어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에게 귀 기울일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변화됩니다. 이슬람 테러의 시대에 무슬림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회심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예수님과 우연한 만남으로 회심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그들이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을 때까지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경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일어났던 일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주 단순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귀 기울일 때,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여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닫혀 있다면, 누군 가의 도움이 없이는 늘 닫혀있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 1:21절에서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 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유일한 출구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에게 오직 필요한 것은 이제 멈춰 서서 예수님께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충분한 믿음입니다.

누가 복음 24: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은 열린 마음을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여신 후, 그들은 온 사방으로 가서 말씀을 전파하였고 주님은 많은 표적을 통해 제자들이 애기한 것을 증명하시며 사역을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여러분들이 주님께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단지 주일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늘 이렇게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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