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신 주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의 몸 밖으로 생명이 떠나가고 그리고 주님은 사망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의 능력은 사그라들고 주님의 빛은 꺼져버렸습니다.

사탄은 필시 뛸 듯이 기뻐 하였을테죠. 이것이 그가 원하던 바로 그것이었으니까요. 사탄은 마치 자신이 이긴 것 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이 욥을 공격 하기전에 하나님과 했던 거래를 기억하십니까? 이 사건은 욥의 사건과 사뭇 비슷하게 여기질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예수님을 모든 인류와 맞바꾸어 갖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인류에는 여러분과 저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계시지요.

집안의 불을 켤 때, 여러분의 스위치를 누릅니다. 이것은 전기 회로에 연결되어 에너지가 전구에 흘러들어가게 해주죠. 그리고 전구는 빛을 내고 우리는 그 빛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전기 회로를 부수면 전구는 나가버립니다. 즉, 여러분이 전기 회로를 부수면 그것은 죽어버립니다. 생명은 하나님께로 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연결이 끊어지면 여러분은 죽게 됩니다.

로마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으로 부터 주님께서 연결되던 회로는 부서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막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El’는 하나님 또는 야훼를 뜻하고 ‘i’는 나, 나를, 또는 나의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li’는 나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거죠.

이는 아람어 버전 시편 22장 1절 입니다.
“My God, my God, why have you abandoned me?”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회로가 부서지자마자, 주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죽음 속에 잠기셨습니다. 예수 님은 더 이상 생명의 근원 야훼, 주님, 엘, 권능의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날은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주일입니다. 우리는 여기 축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죽음의 상태에 머물러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회로는 고쳐졌고 생명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 성령의 힘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아 나시어” 이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1장 4절에 우리에게 이르는 말씀입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 진것 같던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실패 하신것 처럼 보이던 바로 그 순간에, 주님은 성공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이 힘들고 모든 것이 어긋나는 것 처럼 보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이 승리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십지가 고난을 실패로 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노예들은 모세에 의해 이집트에서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구원 받는다는 것이 오이도 상큼한 멜론도 없이 사막을 헤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 구원을 실패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승리였습니다. 우리는 사탄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믿음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상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믿음은 텅빈 무덤과 같습니다. 믿음은 마치 승천하신 메시야와 같습니다.

삶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는 예수 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셨을 때에만 가능해 졌습니다. 그 때에 비로소 우리는 사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의 몸입니다.

이제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부활하심을 나누는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아니면 주님께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그 자유를 거절하는 것도 우리의 선택입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상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를 알게 됩니다. 구약 성경 전체에,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예수 님께서 오셨을 때도 그들은 주님의 오심을 놓치고 맙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제대로 알고 있나요?

이른 부활절 아침 주님의 텅 빈 무덤을 발견하였던 그 여인들은 무엇을 보게 될 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저 주님의 죽으신 몸이 누워 있는 그 무덤을 방문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제자 마가는 마가복음 16장 1절에 “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또 살로메가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두었다가 “라고 적었습니다.

그들은 무덤이 비어 있고 주님께서 사라져 계시리 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죽음에서 살아나리 라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마태는 다음과 같이 적었는데 “ 그 여인들이 급히 무덤으로 부터 달려 나와” 마태는 이것을 “그들이 몹시 두려워하여” 라고 말하였습니다. 마가는 그들이 “두려워 떨고 갈팡질팡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11 제자들을 갈릴리로 보내어 그를 만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주님을 만났으나 “그 들중 몇몇은 의심하였습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방식을 생각하는 세상에서 양육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오직 한 가지 방식만 알고 있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우리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마침내 부활절 주일에 주님께서 따르는 계획 속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우리는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목적에 도달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전략 들을 이해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으나, 우리는 단지 그 목적 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였을 때 에덴 동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게 됨으로써 우리는 시작하게 됩니다. 창세가 3장 4절로 가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동산 밖으로 내쫓으신 후에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Yahweh] placed a flaming sword that flashed back and forth to guard the way to the tree of life.”
“ [야훼] 생명 나무로 이르는 길을 지키기 위해 양날에 검이 달린 불타는 검을 두시고”

그들의 죄로 인해, 그들은 생명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들은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연결은 부서졌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그 이후 그 연결을 고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 이르는 그 연결은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주님은 그에게 이르사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장 10절- 주님은 자신의 목적이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예수 님께서 생명을 주실까요? 죽으심으로? 네, 죽음과 다시 살아나심으로 입니다.

메시야의 전적인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질 수 있는 길을 여시는 것입니다.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랑의 교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는 그 사랑을 돌아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적이며 생명의 의미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부활절 주일에 우리가 텅 빈 무덤을 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할 때 이 사실이 날카롭고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생명의 의미는 세상이 가르치는 것처럼 잘 교육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지식은 하나님과 더 나은 교제에 그 지식이 헌납 될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의미와 목적은 좋은 직업을 가지고, 가족을 부양하고 요구 사항을 충족시킬만한 충분한 돈, 멋진 휴가를 위한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의미와 목적은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오직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생명력 있는 교제를 나눌 때에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의미와 목적은 주님이 메시야 임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이미 오래전 여러분 보다 먼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의미는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것은 말도 안된다고 여러분에게 이야기 하나요? 오래전에 죽은 유대인과 생명력있는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하나요? 그들은 주님이 살아 계심을 모릅니다. 주님을 죽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많은 이들 중에 처음 되십니다.

영적인 성공을 위한 6번째 법칙은 ‘하나님과 가까이 머물기’ 입니다.

1 Peter 3:4 – “You should clothe yourselves instead with the beauty that comes from within, the unfading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s so precious to God.”

베드로 전서 3장 4절 – “유순하고 정숙한 마음가짐으로 속 사람을 아름답게 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귀한 일입니다.”

Philippians 4:8 – “Fix your thoughts on what is true, and honorable, and right, and pure, and lovely, and admirable. Think about things that are excellent and worthy of praise.”

빌립보서 4장 8절 – “형제 여러분, 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이 무엇이든 거기에 미덕이 있고 찬사를 보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들을 생각하십시오.”

주님과 사랑과 교제를 나누는 모든 사람은 또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연결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이 있으며 우리는 주님 안에서 희망이 있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가 아니라.

실제인 것, 중요한 것,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것, 이러한 것들을 붙드십시오. 우리의 삶 속에서 풍성한 열매를 만드시는 성령을 꼭 붙드십시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은,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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