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 에서 완전한 믿음

제 아버지가 서른 살 일 때, 끔찍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 믿음을 깨뜨려버리셨지요.

그때 전 겨우 4살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제 아버지를 전적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저의 조그마한 어린 세계속에서, 아버지는 신 같은 존재였어요. 신과 같은 존재였기에, 아버지가 잘못 된 일을 할 리는 없었죠. 아버지께서 완벽하시기 때문에 제 생명처럼 아버지를 믿을 수 있으리라 저는 단연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아기를 공중으로 던지는 아버지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여러분은 아마도 그 사람이 아이를 어느 순간에 떨어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아기는 꺄르르 거리며 웃고 있습니다. 아기를 공중으로 던지는 아버지는 어쩌면 좋게 볼 수도 안 좋게 볼 수도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사람들을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지만, 정작 그 아기는 공중으로 던져지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사랑하는 부모의 손안에서 이루어지는 공중 곡예 만큼이나 해맑은 웃음을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거죠. 왜 그럴까요?

성경에서 너무나 사랑 받는 부분은 전도서 3장입니다. 모두들 이런 구절로 시작하는 이 시를 아실 겁니다.

“To everything there is a season,
and a time to every purpose under the heaven.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a time to plant, and a time to pluck up that which is planted.
A time to kill, and a time to heal:
a time to break down, and a time to build up.
A time to weep, and a time to laugh:
a time to mourn, and a time to dance.”
천하의 모든 것에는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을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있으며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도다.

이 구절은 너무나 운명주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구절은 마치 아빠가 자신의 아기를 떨어뜨린다면 그건 그 때가 아이가 떨어졌어야 할 때라고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 비추자면, 제 아버지가 제 믿음을 무너뜨린 것은 그 때가 바로 제 믿음이 부서졌어야 하는 시기였다는 뜻이 되겠지요. 저는 이 생각에 전혀 동의 하지 않습니다.

11절을 한번 보십시오.

“God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for its own time. He has planted eternity in the human heart,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나니…”

최근 사회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육신을 떠나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에 대한 믿음은 우리 각자들 마음속에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합니다. 죽지 않는 영혼을 믿는 것은 명백하게 종교로부터 나온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타고난 부분이라는 것이죠. 과학자들이 현재 성서 속에 언급된 영생 대한 우리의 지식에 대해 전적으로 확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이 영원하다는 것을 아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으니까요.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그 진실을 거부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것은 무언가를 가르킨다고 보여지는데요.

우리가 태어날 때,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특성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전적으로 우리의 부모님을 신뢰하는데요,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으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사탄이라는 이름의 한 천사가 하나님에 대한 하와의 신뢰를 저버리고 하나님 대신 사탄 자신을 믿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전적으로 부모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여러 분분 중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을 전적으로 신뢰 한다 고는 생각지 않지만 말이지요. 여러분 중 다수는 부모님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거나, 적어도 신뢰도가 줄어들었을 겁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경 말씀 덕분에 우리는 또한 왜 우리의 부모님이 완벽하지 않은 지를 알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탓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을 이해하고 용서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믿음을 깨뜨린 아버지에 대한 용서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면,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를 용서해야 합니다.

제가 정말로 상처 받은 것은 제 아버지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저는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제가 있던 곳, 그 날의 날씨, 그리고 처음으로 아버지가 완벽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감정을 저는 아직도 기억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완벽했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설계하셨으니까요. 사탄이 그 설계를 부수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은 저의 삶을 영원히 바꿔 놓았습니다.

그 신뢰가 무너졌을 때 우리 모두의 삶은 변했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반복적으로 무너졌겠지요. 거짓말에 의한 붕괴, 이것이 사탄이 하나님에 대한 하와의 믿음을 부순 방법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아이라고 말할 때마다, 신뢰는 무너집니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과장된 일종의 거짓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완벽해야 한다고 여기기에 상처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심어 놓으셨으니까요.

공중으로 던져 지는 아기는 자신을 던지는 부모를 전적으로 믿기에 해맑게 웃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에 대한 반응이지요.

아기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놀랍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부모조차 자신의 아이를 향해서는 무한한 사랑을 가지게 되죠. 제 아버지를 향한 저의 신뢰가 깨진 것은 몇 년이 지나서였습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는데요, 아버지는 제게 한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다지 큰 것도 아니었지만 어린 아이 였던 저 에게 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지만, 아버지께서는 정작 그 시간이 되었을 때 약속한 것을 잊어버리셨어요. 그것 뿐이었습니다. 그 약속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아버지는 깜빡 하신 거죠. 아버지께서는 그 약속에 제게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모르셨던 것입니다. 그 순간, 믿음이 깨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신뢰를 깨뜨리고 난 몇 년 후, 어떤 사람 들은 믿을 사람은 없다 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변호사들은 믿을 수 없고, 목사들도 믿을 수 없으며, 그리고 심지어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우리는 신뢰와 함께 사랑에 반응하도록 창조 되었으나 누군 가를 믿는 것이 불가능한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다지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분을 향한 믿음을 절대로 깨뜨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면 모든 것은 가능해 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 속에 살도록 하셨고, 그 때가 올 때 까지 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곧장 수리 작업에 돌입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회복하시려는 노력이 담긴 이야기 입니다. 성경은 모든 자녀들이 전적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결코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는 부모를 갖도록 해주려는 하나님의 사역의 이야기 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종종 연애편지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며 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키시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백성들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구 하신 뒤 먹이시고 입히시는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신뢰할 만한 분 이신 가에 대한 예들로 가득합니다. 사막 한가운데 매일 아침마다 태양이 떠올라 만나가 땅에 있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물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내주셨으며, 주님은 삶 속에서 그리고 죽음 가운데서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믿음은 회복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부모님을 전적으로 믿도록 창조 되었지만 부모님을 결코 완전하게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 되었던 대로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영원히 신뢰할 수 있는 아버지와 함께 하도록 해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저버리시기 전에 기꺼이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떠나신 이후 성령을 보내 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을 읽으셨듯이, 여러분이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 한지에 관한 예들을 거듭하여 볼 수 있습니다. 사탄의 거짓말, 즉 하나님을 신뢰하지 말라는 그 거짓말은 흘려버리세요. 여러분이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는 그 거짓말이 여러분을 떠나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말하는 그 거짓말들을 거부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다는 그 메세지 만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주님께 순종 하기만 한다면 주님은 여러분을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듯이, 여러분은 하나님 안 에서 신뢰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이를 공중으로 던질 때 아기가 까르르 해맑게 웃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아기이며, 하나님은 여러분의 자애로운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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