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교제의 필요

코이노니아

Acts 2:37–47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입을 열고 단어를 말할 때,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알고 있나요?

우리들 중 몇 몇은 한국말을 쓰려고 할 때 말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던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제 2외국어를 사용하는 누구라도 이러한 오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말했듯이, 우리가 오래 전에 쓰여진 글을 읽을 때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naughty’의 의미를 아십니까?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오래 전에 태어났고, 여러분이 ‘naughty’라면, 이것의 의미는 여러분이 ‘naught’를 가졌는가, 아닌가입니다. 세월이 흘러 ‘naughty’의 뜻은 ‘evil(악)’이나 ‘immoral(부도덕)’으로 변했습니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현재에는 ‘행실이 나쁜’이란 의미가 되었습니다.

‘nice’는 멍청한, 바보 같은, 단순한 이란 의미로 쓰이곤 했습니다. ‘silly’는 원래 뜻과 반대로 변했는데, 오래전에는 어떤 것이 가치 있거나 축복 받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원래 의미에서 뜻이 변해서, 약하거나 상처 받기 쉬운 사람들을 가르키는데 사용됩니다. 좀 더 최근에는 ‘silly’는 바보 같은 사람들을 뜻하도록 의미가 변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분이 수 천년전에 씌어진 책을 읽을 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해에 관한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읽는 것이 그 작가가 어떤 특별한 단어를 골랐을 때 의도했던 뜻인지를 이해하는 가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오늘 아침에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기 원하는 특별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어로 ‘fellowship’ 한국어로는 ‘교제’입니다. 이 단어는 첫번째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도행전은 한국어로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영어로 쓰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의사인 누가가 그리스어로 썼습니다. 그래서 42절에서 그가 사용한 단어는 fellowship 이나 교제가 아닌, koinonia (코이노니아) 입니다.

이 말은 신약에서 19번이나 등장하고 있으며, 기부나 참여, 나눔과 교제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fellowship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그 의미를 파티나 바베큐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함께 모이고 영화나 볼링을 보러 가는 것을 교제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아마 여러분은 우리가 모인 이 모임을 교제라고 부른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 입니다. 여러분은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의 멤버입니다. 왜 우리는 이 단어를 선택한 것일까요?

누가는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를 설명함으로써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All the believers devoted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and to fellowship, and to sharing in meals (including the Lord’s Supper), and to prayer.
“그들은 계속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며 성찬을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적으로 힘썼다.” (Acts 2:42)

43절과 47절에서, 누가는 우리에게 교제라는 단어의 정의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복음에서 교제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어떤 것을 주거나 그들이 가진 무언가를 받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알게 됩니다. 주고 받는 것은 교제하는데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주고 받는 것은 예수님의 몸 안 에서의 일상적인 생활의 한 방법입니다.

누가는 “믿는 사람들은 다 함께 지내며.”

“they worshiped together at the Temple each day, met in homes for the Lord’s Supper, and shared their meals with great joy and generosity—all the while praising God and enjoying the goodwill of all the people.”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쓰고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성찬을 나누기 위해서 집에서 모이며, 기쁨과 진실한 마음으로 함께 식사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모든 사람들의 선함을 누리면서 말입니다.

교제는 단지 함께 모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매우 친밀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에 둔 것입니다.

크리스챤 커뮤니티나 fellowship은 오순절 직후부터는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 의 의미 처럼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이것의 의미는 매일 예배를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정의대로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이것은 단지 함께 먹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정에서 기쁨과 진실한 마음으로 성찬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런 정의대로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교제를 해왔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는 2차원 입니다. 수평적이기 전에 수직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하는 교제의 실제를 먼저 알아야만, 우리들 서로에게 이루어지는 교제의 실제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이신 예수님과 교제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또한 그리스도인과 실제의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요한 1서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We are lying if we say we have fellowship with God but go on living in spiritual darkness.”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죄를 짓는 어두운 생활을 그대로 한다면 우리는 진리대로 살지 않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합니다.”

만약 우리가 진짜 교제를 갖는다면 그것은 어떻게 보일까요? 만약 이 모임이 누가가 말했던 진짜 교제라면 이것은 어떻게 보일까요?

우리에게 진짜 교제의 경험은 어떤 것일까요? 누가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A deep sense of awe came over them all, and the apostles performed many miraculous signs and wonders.”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기적이 많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제를 여러분은 경험하고 싶지 않나요? 여러분은 이런 교제를 떠올리면 가슴이 뛰지 않나요?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참된 교제를 해서는 안될 이유란 없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교회에도 표적과 기사와 영감을 주는 놀라운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참된 교제를 위하여 헌신한다면 말입니다.

몇 몇의 친숙한 단어들이 본문 구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함께’와 ‘공동’ 그리고 ‘나눔’이란 단어를 본문에서 보았나요? 그리스어로 ‘코이노니아’의 정의를 기억하시나요? koinonia의 어근이 되는 koinos는 ‘공동’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깊은 관계를 뜻합니다. 이것은 함께하고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소유를 팔고 함께 모여 집단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미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것은 멋진 일입니다. 저는 이 본문 구절이 우리에게 그것을 명령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들은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하여 자신의 소유물을 팔았습니다. 그 목적 이란 44절의 마지막 구에서 드러납니다. “각자 필요에 따라”.

이것의 의미는 참된 교제 가운데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돌볼 때,우리는 감정적인 무언가를 느낍니다. 교제 가운데 우리는 그러한 감정들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46절에서는 우리가 한마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번역으로 ‘함께’라고 되어있지만 그리스인들은 아주 특별한 단어를 썼습니다. homothymadon이란 말로 ‘한마음’ 이라는 뜻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었고, 모두 거기에 동의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매일 12:15분에 우리의 삶과 이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에 동의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서로를 섬기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하나님을 첫 번째로 두는 것에 비할 때 우리의 의도나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참된 겸손에 대한 명언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덜 생각하고, 여러분의 부족함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하게 될 때 일어날 일을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요한복음 13장 35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보게 될 것입니다.

“Your love for one another will prove to the world that you are my disciples.”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함께 식사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교제를 위한 특정한 상태에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는 우리가 함께 먹을 때, 우리의 마음도 기쁨과 진실함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함께 하는 식사는 중요합니다.

교제의 한 부분으로써 우리는 함께 둘러 앉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나눕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고 우리의 고난과 승리를 나눕니다. 우리는 서로의 짐을 덜어주는 것을 배웁니다. 서로 함께 축하하고 함께 우는 것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서로 나눌 때만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매 주일 아침 우리의 sharing time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의 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교제를 세우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것이 sharing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교제를 혼자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일 아침에 예배에 참석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제의 한 부분으로써 예배를 통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배 후에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것도 교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른 중요한 일은 우리가 매일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기도하고 있지 않다면, 기도를 시작하시기를 권합니다.

주 중에 서로 만나는 것은 교제를 성숙하게 하는 다른 부분입니다. 만약 아직 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면, 셀 그룹에 동참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참된 교제를 나누는 방법을 함께 배워봅시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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