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자라나기

크리스마스가 막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약간 김이 빠진 듯 하죠. 마리아와 요셉도 그랬을까요?

천사들이 모두 떠났습니다. 양치기는 그들의 양 에게로 돌아갔고요. 마리아와 요셉은 동방 박사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가 누가 복음에서 크리스마스의 사건에 대해 읽었던 대로, 실제로 어떤 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부부에게 돌봐야 할 아기가 생겨났다는 것 외에는 말이죠. “마리아는 이것들을 모두 마음에 품고, 종종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녀는 일상의 일을 계속했고, 비교적 평소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밤의 놀라운 일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이 여전히 지루하고 일상 그대 로인 동안에도 예수님의 놀라운 탄생에 대해서 계속해서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다음 해에 대해 생각하거나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쉽지요.

누가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의 행적을 매우 신중하게 썼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는 중요한 것을 썼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선별해내 썼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삶의 끝부분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누가 복음에서 그는 예수님의 30년의 삶의 대해서는 단 2장 52절로 기록하였습니다. 당시에 중요한 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누가는 처음에 우리에게 예수님이 유대인의 법에 따라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지 40일 되었을 때에 그의 부모님은 그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아이를 위해서 두 마리의 비둘기를 정결케 하는 제물로 드렸습니다. 역시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그렇게 행한 것입니다.

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동방 박사가 다녀간 이후에 애굽으로 가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몇 년 동안 거기에 머물렀다가 그의 부모님은 그를 나사렛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다음으로 누가가 언급한 것은 예수님이 12살이 되었을 때 입니다. 그의 부모님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매년 그를 예루살렘의 회당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젊은 시절의 예수님에 대한 정보가 더 있어야 한다고 하며, 이야기를 꾸며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열 두 살 때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것만을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깊은 의미가 없는 단순한 재미있는 이야기, 일화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에서 제가 처음 생각한 것은 사라진 사람들입니다. 그의 가족들이 사라졌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그를 남겨두고 다른 자녀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숙모와 삼촌들과 조부모님도 사라졌습니다. 그의 친구들도 사라졌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혼자 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혼자 있도록 선택 받았기 때문에 혼자가 된 것입니다.

아마 정확하게 혼자는 아닐 것입니다. 그는 성전에서 종교적인 선생님들과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그들 뒤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는 길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기적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보아도, 예수님은 그저 평범한 12살 소년이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에 어떻게 쓰여있는지 한번 살펴 봅시다.

“그는 하나님이시나, 하나님과 똑같아 지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셨다. 대신에, 그는 특권을 내려놓으시고, 겸손하게 종의 계급을 선택하시고, 인간으로 태어나셨다.”

평범한 가정은 하나님의 선택이었으며, 사람들이 거룩하고 죄 없이 길러질 수 있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은 그가 없어진 것을 3일이 지나서야 깨닫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서 그를 찾았습니다. 누가는 기록하기를, “그의 부모님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소중한 어린 아들이 사원의 많은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앉아 있었습니다. 이 신학자들은 “그의 이해력과 그의 대답에 매우 놀라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살 이었습니다. 그는 전문가에게 말할 성경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아마 천재였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이해력으로 인해서 특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이해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놀라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곧 다루기 힘든 그의 아들에 대해 걱정과 좌절을 표현하였습니다. 무슨 생각을 한거니? 왜 이런 일을 한거니? “너의 아버지와 나는 정말 미칠 것 같구나” 불쌍한 마리아는 무척 이나 걱정을 하였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녀는 일반적인 보통 어머니였습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 거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성전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단어가 보이시지요?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자신이 진정 그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부모님에게 마리아가 계속 그녀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12년 전의 일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본다는 것은 정말 혁신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가까이 있어 보살펴주시는 따뜻한 아빠의 개념을 우리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어린 나이 일지라도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 그의 첫 번째 특권임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전에는 아버지로 불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코 그렇게 친밀하게 불리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에게 그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자주 언급하는 만큼, 그는 또한 ‘나는~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설교해야 한다. 고통 받아야 한다. 올려져 가야 한다. 는 말을 볼 수 있습니다.

50절에서,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뜻을 따라 고향인 나사렛으로 부모님과 함께 돌아갔습니다. 그 이후 18년 동안 그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그 18년 동안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지혜가 자라고, 위상이 높아지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되었다 .”

이것이 우리의 세 번째 포인트 입니다. 예수님은 성장하셨습니다. 그것은 지루하고 신나지 않지만, 우리는 자라날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소년으로 태어났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이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언제나 모든 것에서 그에게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장해갔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난 날부터 갑자기 메시야로서 행동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52절에서 보는 것과 같이 예수님은 30년을 성장하시는데 필요했습니다.

첫째로, 그는 지적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지혜가 자라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지혜란 단지 사실을 이해하는 지식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에서 지혜를 얻는데 노력을 해야 합니다.

둘째로, 물리적으로 위상이 자라나셨습니다. 성숙함과 신체적 성장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신체적으로만 성장 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숙해 지셨습니다.

셋째로, 영적으로 자라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지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은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이 의미는 예수님이 자라나면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점점 받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혜를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우리에게 해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 은혜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가 그의 복음서에 이것을 기록한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중심에 있는 가정이 얼마나 중요 한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일반적인 가정에서 말입니다.

그의 아들을 인간의 가정에 보내어 그를 보살피도록 하신 것보다 더 어떤 방법으로 가정의 중요성을 나타내실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예수님에 대한 선택이셨습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부모의 역할을 한다는 것도 무척 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해 못해도 우리의 자녀들을 그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리아에게서 처럼 고통스럽고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들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이 하나님을 따르도록 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 하실 때 요셉과 마리아처럼 반응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언제든지 우리의 삶이 불편하거나 연기 될 때, 하물며 고통스럽거나 괴로울 때, 화를 내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해주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께서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기를 기대하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영적인 성장은 예수님 에게도 중요하였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성장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놀라운 것을 주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들 대신에 다른 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있고, 예수님의 육체에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해 기도하고 순종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것도 이러한 영적인 성장의 중요한 의미로부터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없습니다. 2016년에 인사하면서 우리 예수님처럼 성장 하기를 맹세해봅시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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