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기다리며

누가복음 21장 22~28절, 34~36절

Wait a moment! 잠깐 만요!

Hang on. 기다리세요.

Sorry, just be patient. 미안하지만 참으세요.

여러분은 내가 그런 말을 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나요?

여러분 중에 몇 명은 이미 불편한 느낌을 받았을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일이 진행되는 것을 바라고 시간 낭비는 하고 싶어하지 않지요. 많은 운전자들은 빨간 신호등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운전자들은 그것을 무시합니다. 그들은 기다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가 복음 21장에서 미래에 있을 어떤 시간에 대하여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돌아올 때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될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멀리 계시지만 우리를 위해 몇 가지 지침을 남겨두셨습니다.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전까지 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집에 혼자 있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처음 에는 아주 기분 좋은 상황입니다. 하루 종일 잠잘 수 있고, 좋아하는 음식을 맘껏 먹고, 컴퓨터 게임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언가에 깊게 빠져 열중하고 있던 중에, 문득 현관문을 여는 열쇠 소리를 듣게 되면, 해야 할 일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 기분은 더 이상 좋은 기분이 아니게 됩니다.

그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설겆이를 하고, 빨래를 하고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 님은 그가 돌아오시기 전에 경고가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지요. 우리는 생각하고 준비할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 경고란 집 밖에 차가 주차 될 때 나는 소리 같은 것일 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너무 늦은 것입니다. 덫 안의 쥐처럼 잡혀버리게 될 겁니다. 34절에서 예수 님은 “그날이 너희에게 덫과 같이 덮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요셉은 파라오가 그를 풀어주기까지 감옥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모세가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고자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선택 받은 사람들은 메시야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그 시간이 왔을 때 준비되지 못했던, 제대로 기다리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히브리노예 들은 모세를 따라 애굽을 떠나 사막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님을 따라 그들의 오랜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길로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기다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치과의사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잡지를 휙휙 넘겨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끄덕 끄덕 졸거나 자면서 기다리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이름이 언제 불리게 될지 알면서 기다리고 있습니까? 이것은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는 수동적인 기다림입니다.

이런 기다림에는 약속이 없습니다. 필요한 활동이나 에너지도 없습니다. 지루한 기다림이지만 괜찮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시는 동안 우리는 뒤에 물러 앉아 있습니까? 이런 기다림은 기도, 예배, 전도, 성경 읽기로 귀찮아질 필요도 없고, 의지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이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돌아올 예정인 어떤 사람을 위하여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릇을 씻고, 빨래를 하고, 식사를 준비합니다. 그것 뿐 아니라, 테이블을 세팅하고 싱싱한 꽃을 꽃병에 담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기다림입니다. 차가 멈추고 열쇠가 열쇠구멍에 꽂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차오를 것입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기대되고 신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아침을 기다리는 기다림처럼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시고 다시 오실 것을 믿는다면, 얼마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 주인의 일은, 저와 여러분에게 위임 되어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종입니다. 그는 우리가 충성된 종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주인이 돌아오실 때 우리에게 작은 걱정과 초조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염려는 주인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충성 되게 다 했는가 입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에게 주셨던 임무를 위해 신실하게 일 했는지 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하고 술 취하고 인생살이 걱정하다가 마음이 둔해져서 뜻밖에 그 날이 너희에게 덫과 같이 덮칠 것이다. 그 날은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들을 겪지 않고 내 앞에 설 수 있도록 언제나 정신 차리고 기도하여라.”

마지막 때의 사인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와 달과 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이며 땅에서는 성난 바다와 파도 소리에 놀라 민족들이 불안에 떨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적극적으로 기다린 사람들에게는 기쁨과 기대의 사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때에, 예수님의 어머니는 아홉 달 후에 예수님이 태어나실 것을 알았고 적극적으로 기다렸습니다.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6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146.5킬로미터인 거리입니다. 자동차로 1시간 39분이 걸립니다. 여기서 대전까지의 거리와 같지요. 마리아와 요셉은 이 길을 걸어서 갔습니다. 그들이 걸어 갔을 때, 마리아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그 길은 그 시절에는 대략 193킬로미터(120마일)였습니다! 한국과 일본사이의 거리와 같습니다. 거기다가 그 길은 거친 길이었습니다. 임산부의 몸으로 걷는 속도를 생각해보면, 그들은 하루에 20마일 정도를 갔을 것입니다. 전체 여정은 일주일이 걸렸을 것입니다. 좋은 날씨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가정 하에 말입니다.

그들은 어디에서 잤습니까? 어디에서 목욕을 할 수 있었습니까? 어디에서 편하게 쉴 수 있었습니까? 어디에서 음식을 먹었을까요? 여러분이 보아왔던 성탄극과 영화에서 배운 것과 달리, 마리아가 나귀를 타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했을 때,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고 누구도 반겨주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기다림, 메시아의 탄생을 위한 기다림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목동들과 현자들이 발견한 큰 기쁨의 사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헤롯 처럼 세상의 일들을 원하던 이들에게는 재앙의 사인이었습니다.

오늘은 대강절의 첫 주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위한 우리의 기다림의 시작입니다.

대강절은 교회력으로 우리가 얼마나 능동적으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하는 시기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우리 스스로에게 해볼 만한 시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나는 얼마나 진지하게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기다리고 있는가? 점점 관심을 잃거나 하나님과 그의 교회에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삶에 대하여 반쪽 짜리 마음과 미지근한 방식으로 살아오고 있지는 않는가? 그저 나를 기쁘게 하거나 사람들을 따라서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매 순간 기도하는 것에 만족하며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가?

얼마나 진심으로,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예배가 지루한 일상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하루 일과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거나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어떤 생각도 없지는 않은가?

나를 더욱 이롭게 하기 위하여 나 스스로 허락하고 있는 어떤 특정한 죄는 없는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 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깨어서 기도하라” 만약 우리가 이 말씀에 순종 한다면, 두려움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것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질 것입니다. 우리 자신만의 힘으로 넉넉히 이겨낼 강한 힘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그 두려움이 드리어져 있습니다. 기다림은 거의 끝났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천국의 능력이 우리를 흔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동안에도 굳게 서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의 기다림을 능동적으로 해야 할 그 때입니다. 지금이 기도하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하신 모든 일들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내일은 너무 늦을 지 모릅니다. 지금이 술취함과 방탕함을 멈출 때입니다. 아니면 여러분의 삶 속에 있는 그와 같은 것들을 그만 둬야 할 때 입니다. 지금이 이 생에 대한 염려를 보내고, 우리의 에너지를 다음 생에 집중해야 할 시간입니다. 점심 시간 이후가 아닌, 바로 지금이 그 때 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This entry was posted in Sermon - Korean.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