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어떻게 기도 하셨을까요?

우리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이 기도해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기도에 능한 자가 되고 싶어하지요. 어쩌면 우리의 기도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주님께서 얼마나 많이 기도하시는지 보았으며 그 들 또한 우리처럼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누가 복음 11장에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 묻는 부분이 있지요.

어떤 이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에게 그녀의 기도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요. 전 그저 이렇게 기도할 뿐입니다: 세탁을 할 때, 저는 ‘주님, 제 마음도 깨끗하게 씻겨주세요.’ 라고 기도하고, 다리미 질을 할 때에는, ‘주님, 제 힘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모든 문제들을 말끔하고 평탄케 해주세요’ 라고 하죠. 그리고 빗자루 질을 할 때에는, ‘주님, 제가 이 바닥을 쓸어내듯이 제 삶 구석구석의 티끌을 쓸어 내 주세요.’라고 기도해요.

이는 참으로 모범적인 답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훌륭한 기도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질문에 이와 비슷하게 대답하셨는지 한번 살펴 봅시다.

우선, 저는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그 무언가를 지적하고 싶네요. 주님은 기술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셨으며 외적인 자세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쩌면 주일 학교에서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으라고 교육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만지작거리거나 시선이 딴 곳으로 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시대의 일반적인 기도 방식은 일어서서,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당시에 이런 모습으로 기도하였으며 현재 기독교 교회에서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누가 복음 18장 10절에 나타나는 또 다른 기도의 자세는 일어서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두 손을 움켜쥐는 것입니다.

이는 정복자인 왕 면전으로 끌려가는 쇠고랑을 찬 전쟁 포로의 전통적인 자세입니다. 두 손은 손목에 쇠사슬로 채워져 있습니다. 두 눈은 시선을 피하는데, 고대에 정복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었으며 당장에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자세는 순종적인 청원 또는 중보나 참회 기도를 위한 것입니다.

누가 복음 22장에, 주님은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으셨는데, 이는 왕에게 청원을 구하는 전통적인 자세였으며 회개나 간구하는 기도를 위한 전통적인 자세가 되었습니다. 기원 후 323년 니케아 회의에서 주일에 무릎 꿇는 것을 금하였는데, 이는 부활을 축하하는 동안 참회의 기도가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현대 기도의 자세는 앉아서 하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중세시대, 즉 개신교 혁명 바로 직전에 교회용 긴 의자를 고안해 내었습니다. 개신교 개혁은 본질적으로 긴 설교를 통한 기독교인 교육 운동이었기 때문에, 개신교에서는 그 긴 의자를 고수하였습니다-비록 그 외 다른 것들은 로마의 발명품으로 간주되어 개신교에서 타파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 결과, 앉아서 하는 것이 많은 서구 교회들에서 기도를 위한 일반적인 자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누워서 얼굴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결사적이거나 참회, 또는 중보기도의 전통적인 자세가 되었는데 이 자세는 여전히 동부 지역 교회에서 사용되는데 왜냐하면 이 지역 교회들은 긴 의자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넉넉한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세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세에 대해서 강조하여 말씀하신 유일한 것은, 기도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서 칭찬을 받으려고 길거리에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태도는 자세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끊임없이 주님을 이해하는 것에 실패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여러 곳을 다녔고 주님이 행하시고 말씀하시는 것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은 항상 주님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주님의 지혜와 능력의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주님이 식사하시고, 잠드시고, 가르치시고, 여정을 떠나실 때, 제자들은 항상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자로써, 그것이 제자들이 해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계시다가 기도를 멈추자 제자들 중 한 명이 주님께 말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주님이 기도하시는 것을 지켜보고는 틀림없이 제자들 중 한 사람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의 마음속에 불현듯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이 기도의 삶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주님이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중 한 사람이 다른 모든 제자들을 대변하여, ‘주여,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 할 지를 가르쳐 주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분명 지금껏 줄곧 기도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더 강한 기도의 형태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방법과 주님의 기도의 결과물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그 특별한 것이 그들의 삶 속에도 나타나기를 원했습니다. 특별한 기도 문구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고 주님의 기도하는 삶과 놀라운 능력과 지혜가 모든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우선 주님과 함께 기도는 필수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생애에서 이따금 씩 행하는 관행이 아니었으며, 주님의 일생 동안의 습관이었습니다. 내면과 마음의 태도였습니다. 주님께서 살던 곳의 대기였으며 주님께서 숨쉬는 공기 그 자체였습니다. 주님께서 하셨던 모든 것은 기도로 부터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은 문자 그래도 쉬지 않고 기도 하셨습니다. 분명 항상 격식을 차린 기도를 드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주님께서 때때로 무릎을 꿇으셨지만 항상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었으며 지속적으로 머리를 숙인 자세로 일어서서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으면, 주님은 여태껏 행하신 그 어떤 것도 이루어지도록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아들은 그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없도다.’

우리의 주님,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홀로 하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은 기도를 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는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지만, 사실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제자들이 주님에게서 본 두 번째는 기도가 필수적일 뿐 아니라 또한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 어떠한 힘 겨움도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강요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주님에게 기도는 자기 훈련이나 의무의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기도는 결코 의무가 아니라 오리려 항상 기쁨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기도할 시간을 요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지 않듯이, 주님께서 바쁜 일상 속에서 기도를 위해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시간을 소모 시키는 과중한것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때때로 주님은 여러 시간 또는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따금씩 주님께서는 엄청난 군중들이 주님께 엄청난 것을 요구할 때,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 큰 군중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다가왔으나, 주님께서는 스스로 황야로 떠나시어 기도하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의 진정한 소통을 경험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천사가 나타나 주님을 강하게 하였으며 주님이 직면하고 있던 큰 압박 한가운데에서 지켜주었습니다. 주님의 기도의 삶을 추적하면, 우리는 이 이름 없는 제자가 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는 주님 에게 아주 필수적이고, 쉬우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나 힘이 들까요?

기도 모임이 있을 때 우리는 왜 그렇게 갑자기 바쁘게 되는 걸까요? 왜 우리는 보통 종교적으로는 기도를 선호하고 특별한 경우에는 지독하게도 기도를 거부하는 걸까요? 아마 적어도 지금 우리의 적군은 기도에 관한 두가지 분명한 것을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적이 최소한 우리들 중 몇 명에게 이렇게 말 하고 있지 않을까요? “물론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지만, 네가 주님처럼 살 수 있을것 같니? 너는 정말 네가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수준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그런 삶은 너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게 확실하지 않니? 결국 넌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기독교인에 지나지 않아.”

주님은 우리가 은밀하게 기도해야 함과 먼저 아침에 기도 해야 하는 것, 우리 자신보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 겸손함으로 기도하고, 먼저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며, 심지어 우리를 미워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함을 본을 보여주심으로써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한때 회개하고 우리의 죄를 고백하여 우리의 믿음을 구세주되신 주님 안에 내어 놓기전 하나님을 미워하는 존재들 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느 때나 간단하게 기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수적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주 기도문에 있는 말들은 아주 간단하며 모든 사람들 에게도 친숙합니다. 기도하기 위해 화려한 어휘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맺기만 하면 됩니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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