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 과 열매

갈라디아서 5:16–26

사과 나무를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제가 최근에 읽었던 방법인데요, 하나의 나무와 20킬로그램 나가는 스무 박스의 사과만 있으면 됩니다. 모두 400킬로그램의 나무가 되겠죠. 어떤 종류이든 상관없이 나무는 충분히 크기만 하면 됩니다.

또한 많은 줄이 필요합니다. 이제 각각의 사과를 나무의 가지에 하나 씩 묶으면 됩니다. 만약 여러분 이ㅡ 사과가 중간 크기 라면, 2500개 남짓한 사과를 달 수 있을 거에요.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이 힘든 과정을 거치고 나면, 여러분은 사과로 뒤덮인 한 나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방금 사과 나무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사과 나무를 방금 만들어 낸 건가요? 아니죠. 그것은 착각이지요. 사과 나무 인것 처럼 보이는 것 뿐입니다.

이것은 ‘일’이지요. 정말로 쓸모없는 일입니다. 차라리 사과를 박스에 두고 저장해두는 것이 훨씬 더 나았을 것입니다. 이 나무는 멀리서 보 았을때 사과 나무처럼 보일 뿐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진짜 사과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사과나무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로 과실을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대로, 우리가 어떤 크리스챤 인지를 스스로 자문하고 생각해 봅시다. 행함이 있는 크리스챤 으로서 우리는 죽은 가지에 과일을 놓고, 그런 척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행함이 없어도 참된 그리스도인 으로써 열매가 절로 맺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 아침에 저희가 읽었던 본문 19절에서는 ‘일 혹은 행함’이 나오고, 22절에서는 ‘열매’가 나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일’의 목록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적 부도덕성, 불순, 욕정, 우상숭배, 마법, 적대감, 다툼, 질투, 화를 못참음, 이기적인 야망, 불화, 당 짓는 것, 시기심, 술 취함, 난잡한 파티, 그리고 이와 같은 다른 죄들.”

바울은 또한 우리에게 열매의 목록 또한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충성, 상냥함, 그리고 자기 절제.”

분명, 그는 이 두 가지 목록을 목적을 가지고 비교하여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들에게 분명히 그 모든 ‘일’들은 나쁘고, 열매 들은 좋은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열매는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반응으로부터 우리의 가지에서 나타납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상태에 대한 외적인 증거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한 사과나무라면, 우리의 열매는 사과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에게 바울이 말했던 목록들에 따른 열매 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께서 마태복음 7장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사실은 사악한 늑대이면서 마치 순한 양처럼 위장하고 다가오는 것을 주의하라. 너희들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듯, 사람들의 행동으로 그들을 구별할 수 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가 된 것처럼 느낀 적 이 있습니까? 열매가 없는 거죠. 우리가 그렇게 느낄 때는 우리는 종종 우리 마음속에서 오는 성령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시도할 때 입니다. 우리는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사랑으로 대하고, 귀찮게 대하는 친지들 에게도 친절하고, 정부에도 충성스럽게 봉사할 것이라고(비록 우리 자신이 그것에 대해 불평할지라도) 결정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더 훈련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성령의 열매를 재 생산 해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절대로 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루 종일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바울의 말을 다시 한번 들어 봅시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나는 다른 모든 사도들 보다 더 열심히 일 하였노라.”

분명 바울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은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과 ‘일’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설명하였습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 에 의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이유로, 여러분 혼자의 힘으로 할 때 그것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일을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 할때 그것은 ‘열매’ 로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자신의 삶을 정말 열심히 살아왔고, 스스로 훈련된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 바울의 목록에서 ‘당 짓는 것’ 같은 태도에서 그들은 덜 성공적인 사람들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기적인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덜 성공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해 왔던 것을 본받아 해야 하고, 자신들처럼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에는 우리는 정말 열심히 일하지만 실패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시기심과 질투를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는 화를 내기도 합니다. 바울의 목록에서 제시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행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죄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판단과 절망 역시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망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내가 어떻게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일 수 있지? 나는 그리스도인 로써 실패작이야.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쓰일 수 있겠어? 모든 사람이 나보다 더 나은것 같아.’라는 말들을 스스로에게 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런 것들은 겸손한 영혼에서 오는 생각들이 아니라, 독선적인 생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 없음과 약함에 대해 제가 놀라야 할까요? 내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잘못된 믿음은 나의 완전한 무능함을 성령의 역사와 따로 떨어져 생각한다는 것에 놀라야 합다. 절망은 단지 독선에서 온 판단의 하나 일 뿐입니다.

갈라디아서 의 이전 장에서 바울 은 이것의 예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라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였으나, 아브라함은 일과 열매 사이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아이를 만들려고 하였다. 갈라디아 4장 23절에서는:

“The son of the slave wife was born in a human attempt to bring about the fulfillment of God’s promise. But the son of the freeborn wife was born as God’s own fulfillment of his promise.”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해 인간의 노력으로 시도하여 노예의 부인의 아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자유한 부인의 아들은 하나님의 그의 약속의 말씀의 성취로 태어났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그들 자신의 손으로 성취하여야 한다는 책임을 가지기로 결심 했습니다다. 그것은 ‘일’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이 사고방식의 다른 예는 하갈이 아브라함의 아이를 낳았을 때에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항상 예배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 하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쁨, 인내, 친절함, 사랑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감사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바울 이 언급하였던 선한 목록들입니다. 우리는 기뻐하지만, 우리 자신의 의로움으로 인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은 우리 안에서 절로 생겨나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애쓰고 있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들을 예수님께로 초대하기를 계속 할 뿐입니다. 예배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모두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와서 주님을 바라보세요. 저 또한 잃었었지만, 지금은 찾은 바 되었습니다. 저는 눈 멀었었으나, 이제는 볼 수 있습니다.”

교만한 판단의 상처가 예배 하는 얼굴의 빛을 망칠 수 없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가 실패를 직면할 때에도, 성령님은 우리가 절망적인 생각과 마음속에 초점을 두는 것을 막으십니다. 대신, 우리는 회개하고 다시 예배를 통해서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의 죄와 함께 가는 대신,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예수님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슬퍼하고, 우리의 구원 안에 더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실패들은 그의 희생 속에 녹아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과감하게 은혜의 왕좌로 나아가서, 자비를 구하고 은혜가 우리의 필요를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열매는 오직 예수님안 에서만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5:4-5) 나뭇 가지에 과일을 달리게 하려고 우리가 수고를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그가 그저 주실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열망을 만드셨고, 성령 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와 함께 흐르는 우리의 아름다운 열매 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좋은 열매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마음 에서 부터 흐르는 사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에서 의인 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신뢰하시겠습니까? 여전히 우리가 의로움의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 아직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우리의 생각에 성공적이라는 것에 맞추어 살아야 겠습니까 아니면 내가 하기에는 너무 어려워 보이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해나가야 할까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모든 에너지를 나무에 사과를 매다는데 에너지를 다 쓰겠습니까 아니면 모든 에너지를 주님께 맞추어 성령의 열매가 절로 맺히도록 주님을 신뢰하시겠습니까?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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