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명령으로

Psalm 33:1–22

그 분이 예수님이기 전에 누가 예수님이었습니까? 이상한 질문같이 들리지 않습니까?

천사가 요셉에게 아들은 가지게 될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 천사는 그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기 전에 존재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그는 누구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었냐는 질문과 비슷합니다. 성경은 이 질문에 창조 전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존재했었다고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33편은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The Lord merely spoke,
and the heavens were created.
He breathed the word,
and all the stars were born.
여호와의 명령으로 하늘이 만들어졌으며 그의 말씀으로 수많은 별들이 생겨났다.

이 시편구절은 창세기에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우리에게 상기시켜줍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자 그곳에 빛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이렇게 설명하며 시작하고 있습니다:

“In the beginning the Word already existe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말씀 되시는 그리스도가 계셨다.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셨다.”

그분이 예수님이기 전에 누가 예수님이셨습니까? 그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은 아주 쉽게 넘어가거나 집중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서 잠시 멈춰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한 ‘말’에 대해 마음속으로 상상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냥 말하는 것으로, 그냥 한마디 내뱉는 것으로 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아주 가볍게, 아주 즉석적으로 생겨난것 처럼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말한 이 말은 무엇일까요?

이 말은 실제 그리스어로 ‘logos’입니다. 히브리어로는 ‘dâbâr’입니다. 그는 예수님이기전에 그는 Logos였습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logos(말씀)가 그리스의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말씀되신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So the Word became human and made his home among us.”
“말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Logos라고 말하면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그는 그것을 다시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서를 읽을때마다 이것을 기억해야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그의 모든 말에 전제되어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에 헤라클레이토스라고 불리는 사람이있었습니다. 그는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썼던 에베소에 600년 전쯤 살았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과학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세상에 대해 ‘왜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살피며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헬라클레이토스는 과학적 조사를 발명했습니다. 그는 법과 논리를 추구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사용했었던 말’ 왜일까’가 Logos입니다. 그는 ‘모든 독립체는 이Logos와 일치함으로 형성됩니다.’는수수께끼 발언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가 삶을 인식할 때 그는 Logos를 찾았습니다. 그가 날씨에 대해 조사 할 때 그는Logos를 찾았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항상 어떤 숨겨진 그 이유를 생각했고 그는 이것을 Logos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왜 우리가 생물학, 또는 사회학, 또는 지질학이라고 각기 다른 영역의 학문을 칭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보다시피, 에베소에서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쓸 때 Logos는 간단한 의미의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Logos라고 말했으며 예수님이 모든 일어났던 현상의 궁극적인’이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헤라클레이토스 이후 몇백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 유명한 대학이 있었습니다. 이 도시에 유대인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히브리와 그리스 사상 결합하는 것을 잘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구약이 그리스어로 번역이되었습니다.

필로는 번역에 참여한 한명의 교수였습니다. 필로 교수는 Logos는 ‘그것’ 이 아니고 항상 ‘그’라고 말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필로는 잠언에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지혜로운 여인과 같은 아주 유사한 방법으로 Logos를 의인화했습니다.

요한은 이 두가지 이해와 결합을 취합니다. Logos는 모든것의 뿌리인 그냥’왜일까’가 아니라 Logos는 한명의 인격입니다. Logos는 그냥 인격이 아니라 그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logos입니다. 그 이유는 창조 이전에 존재했습니다. 그 후에Logos는 육체를 가지고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주어진 이름이 예수님입니다.

애초에 Logos는 하나님이 한 쌍의 개념을 창조한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은 의도적인 양극입니다. –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그러나 선과 악이 아닌.

예수님안에서 하늘과 땅이 결합 할 때,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피조물인 남성과 여성을 재확인하고 모든 창조물에 대한 영광스러운 목적은 베일을 벗게됩니다. 예수님은 신랑으로 오셨으며 신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한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그 자신이 하나가 되기 위해, 우리를 위해 오셨습니다.

Logos는 하나님 그 자신이 세상으로 온 것입니다. 그 완벽한 사람에 대한 계획은 예수님을 통해 완벽한 사람에 대한 실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요한이 기록한 모든 것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도덕적 원칙들이거나 여러분의 실체를 찾아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괜찮다고 하는데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Logos는 우리가 반드시 판단해야하는 것에 대한 반대 기준입니다. 우리가 logos를 보면 우리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속으로 들어온 logos의도착은 심판을 가지고 왔습니다. 물론 그는 사랑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우리 가운데 걸어오셨으며 우리에게 우리가 괜찮지 않다고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변화의 방향을 제공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그것은 logos입니다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사랑밖에서 살수있는 존재로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명확하며 예수님은 정확하게 그가 육체의 옷을 입었을 때 logos처럼 보인다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이며 하나님의 계획을 행하십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압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하며 logos또한 우리의 삶의 모범이 되어야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살펴본 logos는 아이들을 만드는 하나님의 청사진 같습니다. 어쩌면 DNA 처럼. 그가 그의 형상대로 그의 아이들을 만들었을 때 그 형상은 logos였습니다. 그 청사진은 우리가 창조된 그 순간 우리에게 각인인되었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청사진을 조절하는 동안 우리는 어떤 진정한 만족도 가질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우리 삶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 동안 우리는 결코 완벽한 평화나기쁨을 알수 없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이 세상에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더러운 것과 사탄으로 부패한 우리를 정화합니다. 그는 logos 로써가 아닌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들을 깨끗게 하시며 logos로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그는 logos입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기전에 그는 logos 였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과 살기 위해 우리가 모두 창조한된 그 곳에서 그와 하나가 될 것 입니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말한 그 완벽한 도시 새 예루살렘에서.

Logos는 그냥 말이 아닙니다. 그것을 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를 돕습니다.

Logos는 예수님입니다. Logos는 여러분과 나를 위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입니다. 그 logos가 무엇인가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심판하는 그리고 세상을 구하는 말씀이며, 그 말씀은 지금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치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감성적으로 다루지 마십시오; 말씀안에서 배우세요.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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