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신 그 분

요한복음 1:1–18

셀주크(Selçuk)는 터키의 한 도시입니다. 그 도시의 본래의 헬라어 이름은 사도 요한을 기리는 의미에서 Agios Theologos입니다. 요한은 이 곳에서 남쪽으로 2 킬로미터 (1마일) 떨어진 에베소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에베소에서 그는 복음서를 작성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요한이 계시록에서 언급했던 일곱 교회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의 크리스천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사도라 주장하지만 실제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였고, 그들이 거짓말 하는 자들임을 발견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에베소에 사는 동안, 그 교회는 거짓 가르침에 관한 문제로 인하여 분쟁 중에 있었습니다. 요한이 복음서를 쓰고 있을 때, 그의 가장 주된 목표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잘못된 가르침에 대하여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에베소에 있는 어떤 무리는 세례 요한을 따르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그들에게 가르쳐주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이 있을 당시에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너무나 숭배하는 나머지 또 다른 종파가 생길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처럼 도덕성을 강조하고 회개를 강조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령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놓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도 요한의 복음서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가 세례 요한에 관하여 언급할 때마다, 그는 세례 요한을 낮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는 세례 요한이 세상의 빛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오직 그 빛을 향해 가리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단 한 번도 기적을 베푼 적이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인 부분을 말하자면, 그는 예수님에 관하여 두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언급했다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짊어질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것. 둘째,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죄를 없애실 수 있으십니다. 세례 요한은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방향을 제시한다는 그 사실에만 집중을 한 나머지 그 방향의 끝에 누가 있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힌두교도들이나 무슬렘들이 그들의 경전들이 예수님을 가르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문제입니다.

무슬렘의 거룩한 경전인 코란은 예수님을 가르키고 있고 그가 선지자들 중에 유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천국에 가셨고 여전히 그 곳에서 알라와 함께 살아 계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는 부활의 날에 돌아오실 것입니다.

힌두교는 속죄를 위한 완벽한 제사(purusha)에 대해 가르칩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완벽한 희생물이기에 힌두교는 예수님의 절대적인 필요에 대해 강조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 모두는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코란에 의해 예수님께 인도된 독실한 무슬렘들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Ali Pektash라는 터키 사람은 자신의 삶이 혼란 가운데 있을 때에 성지 참배를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메카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그의 삶에 명쾌한 답을 얻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에 와 있는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꿈에 두 번이나 나타나셨습니다.

Sadhu Chellappa는 남쪽 인도에 있는 Tamil Nadu에 사는 크리천입니다. 그는 힌두교인으로 자라났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Shlokas를 암송하고 있는데, 베다경에서 언급되는 “Prajapati”(인간들의 주)의 전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인물은 기록에 의하면 세상의 죄를 지고 그것을 위해 죽는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죄가 없어야 하고 그의 머리에 야생 가시 덩굴을 쓴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죄로 인해 죽고 부활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Sadhu Chellappa는 Rig Veda에서 “조용히 고통 받는 자”로 언급되는 Prajapati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Prajapati에 대해 조사하시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전에 있는 다른 많은 성직자들과 브라만들에게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Prajapati가 누구인지 알아내야만 했습니다. 이는 매우 긴 이야기이고 그는 이 과정에 관한 책도 저술했으며, 결국 Sadhu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중하는 대신 우리는 그 손가락이 어디를 향해 가리키는지 바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의 복음서에서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향해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믿는 자들, 목사님들과 모든 제자들은 또한 예수님을 향해 우리의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의 복음서가 풀려고 하는 첫번 째 문제는 세례 요한에 관해 지나치게 높은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두번 째 문제는 예수님에 관한 너무 낮은 관점이었습니다.

부분적으로 이는 당시 만연된 일반적인 관점이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은 사람들에게 인생은 두 개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그것은 – 영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신령한 것과 세속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들 중 어느 한 쪽 영역이 다른 쪽 영역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서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플라토는 영적인 것이 더 실제적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적인 것이 더 진정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위의 두 영역을 다 포함하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가르치는데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 세속적인 것과 하늘의 신령한 것, 신성과 인성 – 이 두 가지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철학을 바꾸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려고 시도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어떤 면이 진짜인가에 대해 결정지으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첫번 째 시도는 예수님께서 신성을 가지시고 단지 인간처럼 보이실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단은 ‘도체티즘(그리스도 가현설)’이라 불리고, 예수님은 단지 혼령이었고 그의 몸은 환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두번 째 시도는 예수님께서는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평범한 인간이었고 단지 그가 하나님과 완벽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누구나 죄가 전혀 없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양자이지 친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이단은 양자론이라 불리고, 여러분들도 가끔 이것에 동의하는 설교는 특정 장소들에서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번 째 시도는 예수님께서 이 두 가지 영면성을 동시에 조금씩 지니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오늘 날에도 보편화 되어 있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께서 절반만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절반만 인간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그들만의 말씀 해석본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말씀이 ‘한’ 하나님(‘a’ God)이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본래 헬라어 성경에서는 절대로 ‘한 하나님’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넷째, 이들 이단에 대한 사도 요한의 대답은 예수님께 완벽한 하나님이시자 완벽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사람들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믿었던 예수님과 동일한 분을 믿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인성을 보여주기 위해, 요한은 예수님께서 친구의 죽음에 슬퍼 우시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배가 고팠고 목이 말랐으며 피곤하고 놀랐던 것을 말해 줍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이 진정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어떤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도하셨는가를 강조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얼마나 기도해야 하는가를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필요로 하셨고 우리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셨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본 눈의 증거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인간들은 그럴 수 있습니다.

요한은 또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매우 강조합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고백은 요한의 복음서의 중심부에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세 가지 주장을 하며 각각의 주장에는 일곱 개의 요점이 있습니다.

첫번 째 주장은 증인들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일곱 명의 사람들의 개인적인 간증들이 있습니다. 그 일곱 명은 세례 요한, 나다나엘, 베드로, 도마, 요한, 그리고 예수님 자신입니다. 유대교 법에서는 오직 세 명의 증인만 있으면 되지만 히브루인들에게 일곱은 완전한 수입니다.

두번 째 주장은 기적입니다. 요한은 일곱 가지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들은 모두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요한은 다른 누구도 행할 수 없는 특정한 기적들을 골라 언급합니다. 예를 들어, 당시에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5,000명을 먹이신 이야기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것과 세 가지의 놀라운 치유를 하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을 이야기합니다. 니고데모가 말했듯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만 이러한 일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나는’ 이라는 단어를 일곱 번 되풀이 합니다. 예수님께서 5,000명을 먹이실 때에 ‘나는 천국의 떡(빵)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장님의 눈을 보이게 하실 때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때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나는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리고 ‘나는 참 포도나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셨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삶을 그 분께 의탁할 수 있습니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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