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성령

2 Corinthians 3:1–11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언약의 일꾼 ‘minister’가 되도록 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minister’는 경제부나 국방부 같은 정부의 장관을 뜻합니다. 이 사람은 맡은 부서의 장으로써 담당구역을 대표합니다. 가장 중요한 minister는 다른 장관들은 다루는 수상입니다.

이런 면에서 장관은 아주 중요한 인물로 보여집니다. 사실 ‘minister’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minus’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더 적은’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였습니다. 최고의 권력인 여왕이나 왕, 또는 전제군주 보다는 더 적다는 말이지요. 비록 오늘날 우리들은 장관을 아주 중요하고 강력한 인물로 여기지만 장관이라는 단어는 사실 일꾼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도한 구절에서 minister라는 단어는 집사라는 명칭을 일컫는 것입니다.

집사와 일꾼 두 단어 모두 종이나 심부름꾼을 뜻합니다. 심부름을 하기 위해 달리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 특히 자신의 주인에 맞추는 사람 말입니다. 크리스챤의 경우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죠.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 분의 종이 되도록 하셨다고 종종 이야기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지로 무엇을 하도록 자격받을 것이 아니라 모든 우리의 자격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많은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관이 되고 싶고 또한 자신이 명문대를 나왔으므로 그러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프린스턴대, 예일대, 또는 옥스포드대난 캠브릿지대를 나왔겠죠. – 그외에 명문대가 뭐가 있죠? – 동경대, 서울대, 기타등등..그리고 이는 그들에게 자격을 부여하죠.

더 충분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뒤에 박사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으며 유명한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죠. 사도바울은 일꾼이 되기위한 자격으로 그러한 것을 사실 필요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대중앞에서 말할 수 있는 은사는 어떤가요? 대중들의 시선을 2시간여 이상 동안 끌고 그들앞에서 말 할 수 있는 자질이 오히려 설교자로서는 더 중요한 자격같습니다.

제 가족은 십여 세대, 아니면 20 여 세대가 지나도록 성직자 가문이었기 때문에 제가 자격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목사가 되기 위한 면접에서 제 아버지가 진주의 주교이시고 저는 가난한 자와 방황하는 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성경이 오직 한가지만을 가리킬 때 많은 다른 것들은 자격으로써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이 구절에서 우리에게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추천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추천서는 사도 바울의 시절에 그러했듯이 오늘날 흔하게 요구 되는 것입니다. 유명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위해 편지를 쓰면 그는 그 것을 가지고 필요할 때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곳으로 가거나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아야 할 때 말이죠.

여러분은 추천서를 보여주고, 그 추천서를 본 사람은 그 편지를 쓴 사람을 신뢰하고 여러분에게 머물 장소를 제공하고 자신의 친구들에게 소개시켜주며 사업거래에서 당신을 전폭 신뢰하게 될겁니다.

이는 영국에서 매우 일반적인데 그 이유는 영향력 있는 위치에 외부인이 접근하기 상당히 힘들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언약의 일꾼을 위해, 이 추천서는 하나님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편지 또는 계약 또는 법률은 말씀으로 적혀 있습니다. 이는 그 자신만의 고유한 정신과 필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할까요?

모든 단어는 무언가를 지명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단어는 어떤것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표지판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글과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세주이신 주님안에서 살아있는 믿음을 요구하는 성경의 글로 인해 크리스챤이 되는것은 전적으로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성서를 완벽하게 외울수 있지만 그것을 가리키는 생명력에서는 부족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례에서 물은 영혼의 정화를 가리키는 단어 입니다. 단지 물이라는 물체만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그것은 가리키는 정화를 받아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성찬예식에서 우리는 빵과 포도주를 취합니다. 그것들은 단어입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의 속죄하신 죽음의 은혜는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입니다. 성찬이라는 단어를 의지하고 그들 자신의 죄나 속죄에 대한 생각 없이 빵과 와인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찬의 은총을 잃어버리고 영을 놓치는 위험속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 ‘나를 따르라’는 초청을 받아들인 사람은 동일한 선택사항을 가집니다. 갈리리 이곳 저곳에서 도시와 성전, 그리고 산에 이르기 까지 주님과 동행하고 닿을 수 있는 한 가장 먼 곳까지 그 분의 영과 힘 없이 단지 이 초청의 단어만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를 수 있고 우리의 영혼을 잃어 버릴 수 있습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글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기로 했을 대, 영과 진리로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한 그 분의 삶읜 본보기를 따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명칭으로만 크리스챤이 되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실망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속에서 생명을 찾지만 구원받기 위해 주님앞에 나아오는 것을 거부합니다.

6절에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이것은 언약이오 글로써가 아닌 영으로 된 것이니.”

글이 있고, 그리고 영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에게 주어졌던 법률에 적힌 글자에 의지하였고 그들의 스승이 해석한 법률에 의존하였습니다. 이는 생명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생명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법률에 의해 판단되어졌고 그들 중 누구도 그 기준에 다다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종교재판의 죄인으로 선고받아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영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법률이 가진 영적인 의미를 찾지 못했고 결국 주님게서 오셨을 때 주님 조차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새로운 언약은 이러한 영적은 것들을 드러내고 우리 앞에 놓아 두고 있습니다. 새 언약은 법률의 이유와 목적을 보여줍니다.

일꾼은 법률의 이유와 목적을 드러내는 임무를 주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보내신 편지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모두 일꾼임을 알기를 원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가 법률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인 서신이라는 것입니다.

3절: 이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며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그 분의 영과 함께 당신의 심장 위에 새겨 주십니다. 우리는 그 법률대로 살아가므로, 그리고 우리 안에 활동하는 강력한 하나님의 영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이것으로만 자격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격을 부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학위를 가지든 얼마나 열심히 일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살아서 우리와 함께함으로 자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법률은 영과 합해질 때 비로소 생명과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으로 가득찰 때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났을 때, 7절 말씀에, 사람들은 그 얼굴이 너무도 환하여 그를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 빛은 장막으로 가려져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광의 빛은 곧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방법의 영광은 훨씬 더 빛납니다.

사도 바울은 8절에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하물며 영의 직문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리고 새로운 방식에서 그 장막은 제거 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장막을 거둔 우리들 모두는 주님의 영광을 보고 비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이신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영광스러운 이미지안에서 변화될 때 더욱 주님과 같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돌아와 주님을 따를 때 까지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가리워져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그 때 법률은 우리의 마음위에 새겨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없다면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정확이 에스겔 36장 26절에 예언된 것이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주님을 거부하였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 찌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집안의 종이 되도록, 하나님의 나라의 장관이 되도록 자격을 주셨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믿음안에서 당당하게 걸어나가십시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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