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만나는 것

Psalm 8:1–9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품에 안고 함께 찬양하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인 줄 알지만 뼛속까지 느껴지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운아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제로 자신에게 적용되는 느낌을 받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실패와 연약함 또한 자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보다 자신의 무가치함이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를 깔아뭉개기도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우리가 우주의 폐기물 같다고 말하고, 우리는 이러한 말을 믿게 됩니다. 선생님이 여기에 동의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의 첫 번째 거짓말은 사단이 이브에게 하나님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며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4).

여러분이 존귀하다는 사실을 느끼기 힘들 때, 현실로 돌아온것을 환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느낍니다. 이것은 사단이 오랫동안 반복해온 거짓말이고,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보기 힘들게 합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하는 일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축복하십니다.

이것은 새로운 느낌이 아닙니다. 창세 전부터 이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윗왕은 이것을 깨닫고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유년시절 양치기였습니다. 밤에 종종 그의 양들과 함께 언덕에 있었습니다. 양들은 그와 함께 있으면 안전했습니다. 다윗은 하늘의 달과 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하시고 권능이 있으시지만, 그에게 대적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 대적들이 하나님께 맞서 싸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상처 입힙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보며 그가 매우 작은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강하게 만드시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다윗이 자라 왕이 되었을 때 시편 8편을 썼습니다. 이는 그가 베들레헴에서 30km 떨어진 팔레스타인 도시 가드에 있을 때 쓴 시일 것입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왔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모든 가축과 들짐승”을 기억했고 “주께서 베풀어두신 달과 별”을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매우 작은 자라는 것을 기억했습니다. 신약에서 선지자라 불리우는 다윗왕은 그가 느끼는 모든 것을 시편 8편에 적었습니다.

스스로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 다윗의 질문을 생각해보세요. 4절에서 다윗은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고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의 삶에 대해 뭐라고 하든 여러분의 삶은 무가치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정말 놀라운 존재들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을 5절에서 말합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여러분과 나 우리 모두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만들어졌고, 하나님께서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운 존재들입니다.

이 내용이 히브리서 2장에 언급된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예수님께서 천사들보다 조금 못한 위치에서 영광의 관을 쓰셨다고 말합니다. 시편과 히브리서에서 ‘엘로힘(elohim)’보다 조금 못하다고 표현했는데, 엘로힘은 하나님 혹은 신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엘로힘보다 조금 못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다윗왕이 시편 8편을 썼을 때, 메시아보다는 우리에게 초점을 맞춰 썼을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메시아 예수님은 많은 이의 장자이며, 우리는 그와 같이 되어 하나님 영광의 관을 써야 합니다.

사단이 여러분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거짓말할 때, 여러분은 오늘의 시편을 읽으며 여러분이 누구보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이며 그의 형상을 따라 빚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생각하시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돌보시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를 통해 경고하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쿠웨이트 부근 이라크 남쪽의 해안도시 우르에서 한 남자를 불러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게 하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소돔과 고모라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 갈대아 우르에서 온 남자의 후손을 구출하신 이유입니다. 모세가 애굽의 노예들에게 돌아가 자유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나타나 니느웨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신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 가운데 하신 위대한 일을 깨닫기 위해 소설 같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이를 돕기 위해 벽면에 하루에 10장씩 읽을 수 있는 성경읽기계획표를 붙여놓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실수를 만들지 맙시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상을 따라 그보다 조금 못하게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릴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고, 모든 가축과 들짐승, 공중의 새, 바다의 물고기, 바닷길에 다니는 것을 우리의 아래에 두셨습니다.

이것이 진짜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타락과 죄의 흔적에 가리워 우리의 진짜 정체성을 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이유입니다. 인간 외에는 천사를 비롯해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과 이러한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가오실 때 우리가 반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응답하지 않아 성경에서 지워진 이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맺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이 당신은 다르다고 말하지 않도록 하세요.

스스로를 집에서 도망친 탕자 혹은 집에 머물러 아버지를 도운 착한 아들이라고 생각하든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두 사람 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이 사랑받는 아들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이 사실을 잊어버리도록 만듭니다. 사단의 거짓말이 우리의 정체성을 오해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닮게 그리고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누구인지 잊지 마세요. 사단의 거짓말에 속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가치를 결정하게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관계의 일부분임을 잊지 마세요. 우리는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진실된 관계를 맺는 것 외에는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의 관을 받을 것입니다. 영광과 존귀의 관을 여러분에게 씌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환영하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받으세요. 하나님께 달려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하나님의 자녀된 영광을 누리세요.

여러분은 놀랍고 하나님을 닮은 존재이기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시고 사랑하시고 함께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잊지 마세요.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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