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삼각지

누가복음 10:1-20

오늘 우리가 살펴본 성경 구절에서는 ‘세가지 비통함(화)’라고 불리기도 하는 유명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많은 영어 번역에서 예수님께서 ‘너에게 비통함이 있다(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너에게 비통함이 있다(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그리고 너 가버나움아.’ 라고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통함, 비통함 그리고 비통함. 그것은 고통과 두려움의 소리입니다. 이것은 마치 ‘오 주여,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와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고라신,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에 화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단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말씀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구절에 보면 세 가디 다른 도시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 ‘사악한 소돔’, ‘사악한 두로와 시돈’. 예수님께서는 이‘사악한’ 도시가 처음의 그 세 도시보다 심판날에 더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은 실존인물이었습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예수님은 유대인이었고, 약 2000년 전에 팔레스타인 지방에 사셨습니다. 팔레스타인은 크고 중요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였고요. 남쪽으로는 유대 베들레헴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고, 수도인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유한 유대지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북쪽옆쪽이 사마리아였는데, 갈릴리에서 유대와 갈라지는 지역입니다. 갈리리는, 가난한 지역인데,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자라시고 대부분의 가르침을 그곳에서 행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의 대부분의 공생애 기간의 몇년동안 사역을 갈릴리 바다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하셨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과사역이 일어났던 곳이었습니다. 갈릴리 부처에서는 이 지역을 ‘복음의 삼각지’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삼각지의 세 지점은 바로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입니다.

고라신은 갈릴리의 북쪽으로 2.5마일(약4km)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가버나움 위의 현무암 언덕에 위치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때에는 비록 중요한 도시였으나, 교부 유세비우스가 4세기의 말에 기록을 썼을때 더이상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는 고라신은 파괴된 마을이며,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벳세다는 다윗왕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곳은 기원전 10세기경 게슈르 왕국의 가장 중심부였습니다. 벳세다는 가버나움에서 동쪽으로 2마일(약3km)떨어진 곳의 갈리리바다 해변에 있는 어촌 마을(벳세다의 의미는 ‘낚시하는 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잘 알려진 기적 두 가지가 벳세다 근처에서 일어났습니다.

마가복음 8:22-25- “그들이 벳세다에 도착했을 때, 어떤 사람들이 눈먼자를 예수님앞에 데리고 왔다. 그리고 ㄷ그들은 그 사람을 만져 고쳐달라고 애원하였다. 예수님은 눈번 자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셨다… 그러고 예수님은 그의 손을 그 사람의 눈에 다시 대시자, 그의 눈이 떠졌다. 그의 시각은 완전히 회복되었으며,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누가복음 9:10-17 – “사도들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예수님께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을 말씀드렸다. 그때, 그는 조용히 빠져나와서 벳세다 마을로 향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 가시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를 따라갔다. 예수님은 그들을 환영했고,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쳤으며, 병든 자를 고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두 마리의 빵과 5개의 빵으로 5000명을 먹이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더이상 벳세다는 없습니다. 파괴되고 사라졌습니다.

세번째 장소는 가버나움입니다. 전통은 말해주기를, 가버나움은 선지자 나훔에 태어난 곳이며, 그러므로 이름 ‘가버나움’은 갈릴리의 예수님의 집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집을 소유하신게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마태복음 4장 13~14절을 보면, “예수님이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그는 처음으로 나사렛, 그리고 그곳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고 되어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바다 북동쪽 근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의 대부분의 기적들이 그 도시나 그 도시 주변에서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님(마태복음8ㅣ14-15), 백부장의 하인(마태복음 8:5-7), 다리가 마비된 자(마태복음 9:2,7), 그리고 악귀를 쫓아내는 기적(마가복음 1:23-27)까지. 그 놀라운 물고기 몇마리와 7개의 빵으로 4000명을 먹인 기적(마가복음 8:6-9) 또한 근처에서 일어났으며, 다른 많은 기적들도 그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때때로, 안식일에 유대교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마가복음 1:21)

놀랍게도, 나사렛에서 일어났던것과 마찬가지로, 가버남움의 사람들은 결국 분개하고 예수님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많은 기적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고, 그의 두 귀로 진리와 지혜의 말씀을 들었으나, 회개하고 믿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도시는 결국 망하게 되었으며, 그 잔해만이 오늘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고라신, 벳세다, 그리고 가버나움으로 직접 가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회의론자들은 예수님께서 마비된자들이 그의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실때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부터 메시야로 선택되어 그들의 죄까지 용서할 수 있는 부여 받은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두로와 시돈역시 고대 중동에서는 매우 유명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구약과 신약에서도 매우 중요한 도시 입니다. 두 도시는 레바논에 위치해 있는데, 두론은 시돈의 남쪽으로 20마일(32km)떨어져있고, 북 이스라엘 레바논 국경에서 12마일(19km)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이 도시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시돈은 아셀의 지파였고, 북쪽 국경지역에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족에게 정복당한적이 없는 도시입니다. 두론은 아셀의 서쪽 국격에 처음부터 있었고, 구체적으로 성경에서는 ‘요새 도시’라고 불리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랜드마크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두로는 두로왕 히람이 향나무, 목수, 석공들을 다윗의 집을 지을때 보낼때까지는 성경에 다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신약에서 두로와 시돈은 번영한 로마의 항구 도시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지역에는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사역의 초기에, 시돈과 두로에서 온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기 위해 왔으며(마가복음 3:8에서는 “그들은 갈릴리, 유다, 예루살렘, 에돔, 요단강 동편에서부터, 두로와 시돈의 북쪽끝에서까지 모든 지방에서 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해 치유되었습니다.(누가복음 6:17).

예수님은 시돈과 두로 지역을 방문하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치셨습니다(마태복음 15:21-28, 마가복음 7:24-31). 이곳은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내셔서 과부가 음식을 주어 먹이셨던 그 장소와 같은 곳입니다. 이스라엘사람이 아닌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그의 세번째 선교여행을 마치고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두로로 배를 타고 갔습니다. 거기서 한 그룹의 제자들을 만났고, 그 도시에서 7일을 보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소돔처럼 사악한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이교도였습니다. 그들은 부를 쫓았습니다.

고라신, 벳새다, 그리고 가버나움은 유대인의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이었고, 모세의 법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으 그 도시들에서 사시고 일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을 만났으며, 예수님을 알았으며, 예수님께 치유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 도시들에 비통함(화)이 있을수밖에요.

만약 우리가 세상의 눈으로 이 도시들을 본다면, 세 도시들을 좋은 도시, 다른 세 도시들을 사악한 도시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악한 도시들이 지옥으로 간다고 결론지었을 것이며, 다른 도시들은 천국으로 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도시들을 그 방법으로 바라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를 그런 방법으로 보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시돈입니까, 고라신입니까. 아니면 소돔이십니까. 여러분은 교회에 충실하게 참여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돈과 권력을 추구하며 여러분의 길을 따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내적인 신자입니까 아니면 겉보기 신자이십니까.

예수님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거 같습니다. 하나님은 여섯 도시에 모두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에 반응하며, 받아들이고 회개한 도시들을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보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는 주님께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십니다. 만약 우리가 메시야를 거절한다면 우리에게 비통함(화)이 있겠지요.

여러분은 아우사이더이신가요? 여러분의 죄가 너무 큽니까? 하나님은 오직 여러분이 주님이 여러분에게 사랑으로 오실때, 반응하시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주님을 따르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상황이 좋지 않을지라도 예수님을 따르는게 더 나으실 것입니다. 좋은 상태로 예수님을 거절하기 보다는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소돔, 시돈, 두로처럼 나쁠지라도 여러분을 아끼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와서 그와 같이 가자고 물으신다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십시오. 여러분의 죄가 얼마나 많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39 – “너희들이 성경을 찾는 것은, 그것이 너에게 영생을 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나에게 말한다. 그럼에도 이 삶을 받을 수 있는 나를 거절하고 있구나.”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를 처리하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그게 너무 나쁘다고 생각할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에 대해 승리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그에게 와서 용서를 받으라고 여러분을 억지로 강요해서 데려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Amen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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