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자유

 

마태복음 6:7–15

이번 주에는 기도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종교로 부터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하지못한 구절을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7절에는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 가르치셨던 익숙한 구문들이 있습니다. 그의 첫 번째 가르침은 간단합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방인들처럼 쓸데없는 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비디오 클립에서 그것의 예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또 다른 예는 엘리야에게 패한 바알의 예언자들 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시는지 아니면 바알의 예언자들의 기도를 들어시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에게 도전을 했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을 읽어보십시오.

갈멜산 꼭대기에서, 바알의 예언자들은 아침부터 정오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고 단 주위에서 춤을 추며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엘리야는 아마도 잠자는 그들의 신을 깨워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28절에서 말하기를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외치며 그들의 의식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그들은 정오가 지나고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미친 듯이 부르짖었으나 아무 응답도 없고 대답하는 소리도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그 모든 외침, 노력, 활동으로부터 아무런 결과가 없었고, 이것들은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었지요.

오직 진실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확실한 것 이외에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두가지 주요한 가르침은 이것입니다.

첫째, 그들은 기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만약에 당신이 올바른 방법으로 춤을 추거나 자기 몸을 정확하게 베어야만 기도의 답을 얻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둘째, 그들은 노력에 사로잡혀있었는데. 이것은 만약 당신이하나님으로 부터 답을 얻기를 원한다면 더 오래 아니면 더 크게 소리쳐야만 한다고 가정합니다.

이 같은 잘못된 추정의 근원은 모두 우리 하기에 달렸다는 잘못된 생각에 있습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거짓 예언자들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우리를 둘러싼 교회구석구석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도는 여호와를 조종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기도는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명료하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계시지만, 여러분이 구하는것을 자동적으로 주시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 여러분은 기도하시겠습니까?

저는 이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을 놓을 수 있습니다. 조용히 당신의 아버지가 된 우주의 하나님께 존경하는 방식으로 말하십시오. 그는 바쁘거나 멀리 있지 않습니다. 기도는 겸손한 호소입니다. 기도는 감정, 생각 그리고 경험을 나누는 것입니다. 기도는 진실함과 사랑의 관계이므로 너무 어렵고 힘든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음으로 예수님은 기도에서 우리가 ‘주기도문’ 또는 ‘우리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기도에서 ‘우리의’그리고‘우리’라고 말하도록 가르치십니다. 이것은 크리스천들이 그들의 공통된 아버지께 함께 말하는 기도이고 우리가 매주 일요일마나 함께 말하는 이유입니다.

기도는 3개의 진술의 2 그룹을 포함합니다.

첫 번째 기도의 진술은 하나님 이름, 왕국 그리고 의지입니다 . 이것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우리 모두가 따를 것이고, 그의 나라가 속히 오셔서 우리 모두는 그의 나라 안에 살게 하실 것이고,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따를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에게 우리를 맡기고 그의 능력으로 악으로부터 구해 달라 간청합니다. 이것들은 지금 사실이고, 우리는 앞으로도 이 땅에서 언젠가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다음 세 개는 우리의 요구입니다. 우리의 요구는 음식이 첫 번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도할 때 예수님이 삶의 양식이라는 것과 우리가 그에게 의존한다는 것 또한 매일 기억합니다.

용서에 대한 필요성과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혹이란 꼭 잘못된일을 하는 유혹 말고도 ‘시련기’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박해를 견뎌내는 것, 개인적인 어려움, 죽음에 직면할 때에 시험에 들게 하는 것들로 부터 도움을 요청합니다.

저는 ‘우리 죄를 용서해주소서’라고 간구하는 기도에 좀 더 길게 얘기를 하고싶습니다. 항상 우리는 함께 모여 이 기도를 드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필요로 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가 죄 된 본성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가 완벽해질 때까지 내면의 전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용서에는 조건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14절에 그의 예시 기도문 다음에 이 지시를 덧붙였습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하나가 오면 다른 하나가 뒤따라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당신이 용서하면 ‘그런 뒤에’ 그 분이 용서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용서를 보상 받는 것 입니다. ‘그런 뒤에’라는 단어는 이 부분에서 빠져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것은 미묘하게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 인과관계 가르침이 아니라 관계의 가르침입니다.

만약 당신이 결코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라면, 당신은 용서를 받을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관계와 당신의형제자매와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여러분이 이 원칙에 찬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시간이 지나서 미래의 어떤 시점에,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같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향한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빚을 탕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것을 탕감하고 부채를 적은 책을 덮어세요. 그런 뒤에 그 책을 묻어버리세요.

진정으로 주기도문을 기도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가 기도할때 용서하지 못한 모든것을 버려야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 준 것처럼’ 라고 말할 때 (또는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나는 이제껏 나에게 잘못했던 사람들을 모두 용서해주기를 분명히 말한다‘라고 의미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매번 이 기도를 할 때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는 선택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정한 믿음의 장식품이 아닙니다.이것은 핵심입니다. 용서 없이는 하나님과 또는 다른이와 서로간의 건강한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것은 그릇의 다른 과일까지 썩게 만드는 것이고, 쓴맛과 비통을 키우는 것입니다. 썩은 과일은 버려야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것은 과거로 향하는 다리입니다. 그 길은 아픔과 고통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속에 살도록 유지하여 항상 피해자로 만들어버립니다. 그 연결고리를 깨고 용서하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세요. 고통은 과거에 남겨두십시오.

당신은 당신이 완벽하지 못하는 것과 실수하는것으로 부터 자기 자신을 용서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다른 이들, 심지어 국가와 상황을 탓하기도 합니다. 또는 나이 들어가는 것에 속상해하고 우리 자신의 몸에 좌절을 느낍니다.

용서는 의지의 행동입니다. 당신이 이것을 하고싶다고 느낄 때까지 미루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하세요. 바로 지금!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아마 당신이 일지도 모르지만,어떤 사람들은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당신은 쉬운 문구나 좋아 보이는 충고가 아닌 연민어린 도움과 지지를 받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용서는 종종 오랜 시간에걸쳐 걸어가야할 고통과 어려움의 여정이고 계속해서 나아가야만 합니다. 한 걸음씩 나아가세요. 고통스러운걸음 이후 또 한 걸음씩 내디디세요. 예수님은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결코 용서의 어려움으로 죄책감을 느끼시도록 그 어떤 말씀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함께 이 여행을 가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말씀에서 관계의 중요성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용서를 알 수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오랜 시간 기도에도 불구하고 불만을 극복할 수 없는 비극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함을 숨겨 놓는 한 당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를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괴팍하거나, 비판적이거나 불평을 하는 동안에는 깊은 기도의 삶을 구축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위해 긴급한 요청을 하고 계십니다.

우울증과 쓴맛의 늪에서 등을 돌리십시오.

당신의 시선을 삶의 고통으로부터 당신의 삶을 여호와께 돌리십시오.

다른 이들을 비방하는 것으로 부터 벗어나 당신의 삶의 순수성을 추구하세요.

용서하세요, 그리고 하나님과친밀한 새로운 세상으로의 탐험을 시작하세요.

당신의 기도의 진정한 자유를 발견하세요. 용서. 오늘 그리고 내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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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ereby declare that right now I _____________________ entirely forgive anyone who has done me any wrong ever.’
‘지금부터 (자기이름)는 나에게 잘못을 했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기로 선언 합니다.’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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