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길

마태복음 6:1-6,16-18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취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축복받는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완벽해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고, 의로워지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우리에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자유란,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권리나 힘.’  모든 사람이 중력의 법칙 아래에서 우리는 아무도 중력에 거스를 수 없다는 측면에서 보면, 여러분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란 무엇입니까? 물론 그는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억압에서 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2, 5, 1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선에서 자유롭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사람들의 종교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독실함의 세가지를 예를 사용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그는 1절에서 즉시 경보를 울리며 첫 번째로 말합니다. “조심하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것을 위해, 공개적으로 보이기 위해 좋은 일을 하지 말라. 그리하면 천국의 아버지께 상급을 받지 못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존경 받기 위해 공개적으로 종교적인 행위들을 한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축복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심령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여러분은 잃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와 금식에 대해서도 이것을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세 가지의 분명한 패턴을 만들고,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그 메시지는 못 마땅하게  당시의 일반적인  종교생활의 양식을 거부하고, 반항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메시지는 위선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들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남모르게 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이 그 사실을 알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종교적인 어떤 의무에서 팡파레와 포스트로 대대적으로, 공공연히 알리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때에만  보편적으로 있는일이 아니라, 우리도 아직 그렇게 하고 있는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본성에 내재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예수님께서 그것에 대해 그렇게 강조하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하지만, 점점 자기 자만심과 자신의 흥미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금액을 교회에 헌금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하지 마십시오. 그저 관대하고 은밀하게 하십시오.

어떻게 여러분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보여주기위한 기도는 하지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주 기도하시고 즉각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해야한다면 길가에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적인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주의를 끌기 위한 목적으로는 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예배시간에 여러분이 대표기도를 한다고 해서, 특별한 목소리로 바꾸어서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대표기도를 할 때 목소리를 조금 바꾸어서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또는 평상시 대화에는 전혀 사용하지도 않는 단어들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주님께서는  거룩하시며’ 대신에 ‘당신(thou-당신의 옛말)은 거룩하시며’라는 단어들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또한 ‘안전한 여행’이라는 단어 대신에 ‘여행하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금식에 대해서는 아마도 우리가 금식을 자주 하지 않기 때문에 덜 일어날 것입니다.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저녁 파티에 참석해서는 지금 금식중이라 먹을 수 없다고 하며 종교적인 행위를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 부지런히 기도하고 금식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서 입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섬기는 것입니까?

위선자의 문제점은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갈망하듯 사람에게 보여졌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잃는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슬픕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영성이 깊은 자유에 대해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속박을 벗어나는 자유를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일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진정한 영성은 최대의 은밀함에 있습니다.

진정한 영성은 숨겨진 깊이에 있습니다.

진정한 영성은 많은 훈련 속에서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반복해서 하나님께서는 보이지않으시며 우리는 은밀하게 영적인 행위들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진정한 동기가 이렇게 살아날 때, 우리는 종교활동을 공개적으로 펼치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서도 무시할 수 있는 자유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남다른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이것이 팔복에서 정의하는 우리가 살아야 할 방법의 제일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가난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축복의 삶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축복을 정의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우리는 다른 곳에서 그가 말씀하셨던 성부,성자,성령의 깊고 친밀한 교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를 잘 가려내라고 이런 가르침을 주신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선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그 들을 비난하라고 허락을 하신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은  여러분 스스로 점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주 성능좋은 현미경아래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삶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비춰보고 있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얼마나 남에게 보이게 했으며, 얼마나 개인적으로 이루어졌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공개적으로도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배드릴 때, 평상시의 목소리로 그리고 평소 사용하는 단어들을 사용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개인기도를 위한 빙산의 일각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대부분의 기도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도하는 유일한 시간이 공적인 기도라면,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공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면, 또한 스스로를 점검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가난한 자들에게 관대하게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장 친한 친구조차 당신이 너그럽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더라도 괜찮습니다.  하나님만이 그 사실을 아셔야 할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금식하는데 아무도 모릅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오늘날의  대부분의 금식은 다이어트로 불려지고 비밀과는 거리가 멉니다. 또한 완전히 다른 이유로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그 에 따른 이득도 이 생에서만으로 제한 될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자신이 사람들에게 보이는 종교생활의 방법에 흔들리고 있지 않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은밀한 영적인 방법으로 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로움의 길 입니다.

우리는 공적인 행동의 필요에서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공적인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필요에서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필요에서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위선에서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종교적인외관을  유지하는 것에서 자유롭습니다.

여러분은 비밀리에  여러분의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는 삶을 유지하는 것에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진정한 영성은 하나님의 시선을 위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걱정은 그만하십시오. 여러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줄 때, 은밀하게 주님을 찾고 그와 함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나눌 때, 그리고 남모르게 금식할 때 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기다리실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대표기도를 할 때, 여러분이 평소에 사용하는 언어와 문장으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이 종교적인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기억하실 것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마음으로부터 오는 진실한 기도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한주간 우리자신을 돌아봅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우리들의 아버지, 모든 것을 보시고, 상 주실 그분을 말입니다.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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