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의 구성원

에베소서 4:17-32

예수님은 우리를 제자가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가 제자가 되면, 우리에게 사람을 낚는 방법을 가르쳐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을 때,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목적임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전의 삶의 목적을 옆에 두고, 새로운 목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분명 우리는 이 목적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태복음 12:30절에서와 같이,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의 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와 함께 있지 않으면 나를 반하는 자이며, 나와 함께 일하지 않는 자는 실제로 나와 반하여 일하는 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 이상의 것임을 배워왔고, 또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의 제자로써 사람을 낚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3장에서 이러한 새로운 삶에 대하여 기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가 사랑하시는 거룩한 사람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비, 친절함, 겸손, 부드러움 그리고 인내로 옷을 덧입어야 합니다.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고, 여러분을 공격하는 누구라도 용서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셨기 때문에,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완벽한 조화 속에 모두를 함께 묶는 사랑으로 옷 입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십시오. 하나의 몸의 구성원으로서 여러분은 평화 속에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십시오.”

이 부분이 바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의 의미입니다. 우리를 완벽한 조화 속에 함께 엮는 것입니다. 하나의 몸을 이루는 구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나타내는 또 다른 비유는, 헛간에 곡식의 수확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지만,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구원받았습니다. 차가 운전되어지길 위해 만들어지듯, 곡식이 먹기 위해 요리되기 위한 것이든, 여러분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과, 하나의 몸을 이루는 구성이 되는 것의 이미지는 여러분이 이미 눈치챘듯이 제자가 된다는 것은, 사람과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자가 된다는 것이 여러분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과, 여러분 주위에 아무도 여러분을 방해하는 사람 없이 혼자 유유히 여러분의 길을 걸어가는 것임을 바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낚는 어부는 나가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이 아무리 어려울 지라도, 이제 그것은 여러분 삶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훈련시키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 여러분은 그들을 예수님과 연결시켜야 하며 그래야 여러분이 그런 것처럼 그들이 하나의 몸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영적인 사람들의 느슨한 연결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되는 것’과 ‘하는 것’이 단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완벽한 조화 속에 함께 엮어진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을 때, 우리는 혼자 가서 낚시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함께 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함으로 낚시를 하고,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의 일부분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주로 여기는 복음이며, 신뢰와 순종의 복음입니다.

기독교 공동체의 가치는 예수님의 몸에 강함과 성숙함을 가져오는 것보다 훨씬 더 먼 곳까지 미칩니다. 그런 공동체들은, 그들의 성격과 그들의 행동에 의해, 세상에 하나님의 권세와 존재의 증인이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인간들에게 원하는 모습의 모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마태복음 5:13-16), 별과 같이 빛나며(빌립보서 2:15), 하나님의 영광을 비춘다(고린도후서 3:18). 종종 히브리인들의 구조 경험이 보내졌을 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래서 그들과 그 나라는 ‘내가 주임을 알게 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비슷한 방법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구별시켜주는 화합과 상호간의 사랑은 예수님이 사실은 아버지로부터 보냄 받은 것임을 나타내줄 것입니다(요한복음 17장).

이러한 유대감은 세상을 향한 그의 복음의 증거인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변화되었을 때, 이것은 우리가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몸으로 변화되어야 하는데(골로새서 2:2), 이것은 그를 머리로 두는 것입니다(골로새서 2:6). 우리는 사랑과 진실로 함께 엮어졌습니다(골로새서 3장). 우리는 서로간에 사랑 안에서 진실을 이야기 합니다(에베소서 4:15). 우리는 용서하고 서로를 받아들입니다(골로새서 3:13). 우리는 서로를 가르치고 또 지혜를 함께 나눕니다(골로새서 3:16).

만약 우리가 이 몸을 거부한다면, 이 몸의 머리인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신 것은 서로 의존적인 이 공동체를 그에게 그리고 서로간에 의지하도록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사람을 낚는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떠나 예수님이 중심에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함께 하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는 매력적입니다. 이 공동체는 용기를 북돋워주고, 봉사하며, 사랑하고, 용서하며, 비그리스도인도 함께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는 그의 몸의 일부가 되지 않고서는 그를 따를 수 없으며, 이 공동체가 바로 그의 몸입니다. 그것은 일요일 아침 이 장소에 모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중동안 우리의 관계에서 세워진 살아있는 공동체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만나도록 노력해야 하며, 서로 이야기 해야 하며, 주중에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소그룹 안에 들어서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고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엄격한, 아마도 심지어 혁신적인 방법으로 공동체의 부름에 따라야 한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워싱턴에 있는 세비어 교회나, 아메리커스와 소주너에 있는 코이노니아 같은 공동체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예를 보여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체 기독교인의 동료애의 원칙을 가르쳐 줍니다.

동시에, 우리는 성경에 어떤 특별한 형태의 공동체가 필요하다거나, 혹은 특별한 형태의 공동체에만 특별한 축복을 주시지 않는 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구조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다양한 방법- 우리의 직업이나 가족 그리고 다른 공동체들을 방해하지 않는 방법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계획 아래 만들어졌습니다. 좋은 것은,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사랑을 쏟아부어주기 위한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형태는 중요하지 않을지라도, 크기는 중요합니다. 공동체는 잠재력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고 개인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작은 그룹이어야 합니다.

초기 기독교인은 작은 규모를 제안했습니다. 그들은 종종 구성원의 집에서 만나서 밥을 먹고 가르치고, 예배하고 기도했습니다(사도행전 2:44-46, 12:12-17).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서, 모두가 가르침 또는 드러남으로 준비되어야 한다고 충고했을 때 더욱 분명해 집니다. 그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모임이기를 기대했습니다(고린도전서 14:26).

기독교인의 공동체의 실제는, 매우 간단하게, 복음을 살아있는 실재로 만듭니다. 그것은 구체적이며, 예수님 안에 함께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우리가 부름 받은 방법대로 살 수 있도록 강하게 해 줍니다, 그것은 세상에 하나님의 생명과 권세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자 인간으로서,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급자족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들을 이세상에 혼자 살도록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어우러진 삶 없이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기쁨과 능력을 충분히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삶을 함께 경험하지 않고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정말 놀라운 것들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공동체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그 위험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보상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의도하신 방법으로 살도록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러한 제안을 머뭇거릴 수 있겠습니까?

Amen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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