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기위해 버려야 할 것

마태복음 6장19~34절

여러분은 원숭이 같은가요?

여러분이 원숭이의 모습을 닮았느냐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원숭이처럼 행동하시는지요?

원숭이처럼 살고 계신지요?

여러분이 벗어버릴 수 없는 생활 양식 이나 관습 내에서 탐욕의 덫에 걸려있나요?

아니면 욕심은 아니지만 다른 어떤것에 당신의 삶이 덫에 걸려있나요?

잠시 후에 원숭이 얘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여기에 2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을 더 닮았는지요?

여러분은 선한 기독교인이자, 충직한 남편, 애정어린 아버지, 근면한 직장인, 충실한 아들입니다.

그러나 때로 여러분은 화가 납니다.

직장에 큰 프로젝트가 떨어졌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여러분의 출세에 영향을 끼치고 , 얼마나 더 버는지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나아가 이 프로젝트는 여러분의 가족을 얼마나 잘 보살피고 알마나 잘 먹여살릴 수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동시에 여러분의 양심은 교회와 하나님의 일에 좀 더 전념하라고 재촉하고, 여러분의 아내는 자정 30분 전에 귀가하는 당신을 좀 더 보고 싶어합니다.

아이들은 당신이 주말에 일하러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당신과 놀고 싶어하고 가족들은 당신이 그들을 위해 이렇게 일하는것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유형 1의 사람이면, 화가 날 텐데, 여러분에게 없는 시간을 하나님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나치게 요구하고 있죠.

여러분은 교회와 하나님의일에 좀더 참여하고 싶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화를 냅니다.

그리고 현실에 있어서 여러분은 좀 더 시간이 날 때 까지 하나님을 포기하기로 작정합니다.

여러분이 유형2에 속하는 사람이면, 여러분은 역시 화가 날 텐데, 여러분에게 없는 시간을 직장이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승진하고 좀 더 벌고 싶지만 하나님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고용주에게 화를 냅니다.

그리하여 현실적으로 시간이 좀 더 날 때까 고용주를 포기하기로 결심합니다.

기본적으로 두가지 경우 에서 우리가 화를 내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전부를 원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 전부를 갖도록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게 바로 당신이라면 여러분은 원숭이처럼 덫에 걸린 겁니다.

이 비디오를 보면 제 뜻을 아실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으며 모든 것을 바라서도 안된다고 하십니다.

산상의 설교에는 다음처럼 “… 라고 너희가 들었다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는 형식을 보이는 일련의 진술이 있습니다.

마태복음마태가 기록한 기쁜 소식 5장이죠.

6장에는 다음처럼 시작되는 ‘너희가.

할 때에 … 하지 마라.

대신에 … 하라”는 또 하나의 형식이 있습니다.

예시해드리면, 마태복음6장 5절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에게 나타내려고 회당과 길거리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하노니 그들은 받을 상을 이미 다 받았다.

그러나 너희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이것은 영적수련에 관한 일련의 사례들인데, 여기의 예에서는 영적 수련이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본적으로 말하는 것은, 영적인 수련인데, 이것은 그 실천의 잘못된 길이있고 올바른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더불어서 예수님은 영적인 수련으로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부하기와 단식하기를 언급합니다.

여러분께 실제적인 한두가지의 예를 보여 드리기로 하죠.

저는6층의 계단을 걸어 올라 이 방까지 올 수 있지만 스위스의 아이거Eiger 산정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저는 느린 속도로 짧은 구간을 뛰어갈 수는 있지만 달리기 훈련을 한 적이 없으며 그럴만치 튼튼하지도 못합니다.

만일 제가 내일 마라톤을 뛴다면 이튿날 화요일에 여러분은 저의 장례식에 참례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경우일지라도 저는 격렬한 심장 박동, 근육 경련, 여러 군데의 물집으로 인해 쓰러지고 말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훈련을 받고 스위스의 아이거 봉을 오를 수 있다해도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요?

도전해 봄직한 아이거 산 북쪽 벽의 등반에 드는 시간은 통상 3일입니다.

어떤 남자가 이것을 3시간 안에 해냈습니다.

놀라지 마시고 율리 스텍(1976~,스위스)이 아이거 북벽을 2시간 47분에 등정하는 이 짧은 동영상을 보시죠.

그러나 예수님이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우리에게 한갖 수련이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올바른 수련이 필요하다는 점이죠.

마라톤을 뛰거나 아이거 산정의 등반을 위해 여러분을 옳은 방식으로 훈련시켜줄 전문가가 요구됩니다.

영적인 수련상의 전문가인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르기를 율법주의자 바리새인과 유대 율법학자들이 많은 훈련을 쌓았으나 그 훈련이 그들에게 이롭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른 습관과 부패한 삶의 방식을 형성해가고 있었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중심되는 진실을 분명히 지적하고 계십니다.

삶의 중요한 것은 삶의 숨어있는 부분이죠.신상품 의류, 심각하게 금식중인 것처럼 보이기, 유창하게 기도드리기처럼 외면적인 것은 무가치합니다.

올바름이 그릇됨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올바름이란 일종의 긍정적 실천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수련의 하나로서 가난한 이들을 도와줄 것을 예수님이 열거하신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2명의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재물을 주인으로 섬긴다면, 곧 바로 여러분은 그것을 버리라고 명하는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긴다면, 돈이란 삶의 모든 곳에 스며들어 여러분을 노예로 만들려 한다는 것 때문에 재물에 불쾌함을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압제를 무너뜨리고 성지聖地를 점령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메시아가 오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군사적인 지도자를 왕으로, 즉 반란에서 자신들을 이끌어갈 사람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평화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목수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압제를 무너뜨리고 다른 점령자를 바꾸기 위해 오셨습니다.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과 마음을 진실로 점령한 것은 가이사Caesar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권력, 성적 쾌락, 재물의 3가지 거점을 가진 사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3가지 힘, 이 3가지 어둠의 세력에 대한 반란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첫째, 가난한 이들을 향하여 덕을 베품 으로써 재물과 탐욕과이기심에 맞서기.

둘째, 금식을 통해 성적쾌락 및 육신의 만족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모든 것들에 맞서기.

세째, 용서와 화해를 담은 기도의 수련으로써 으스대는 권력 추구에 맞서기.

이 세가지는 모두 사적인 수련입니다.

가시적으로 막대한 효과가 나타날지라도 이 모든 수련은 우리의 태도와 우리의 은밀한 영적 삶의 양식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가지 그른 것-성적 쾌락, 재물, 권력을 위해 살아갈때, 우리는 언제나 불안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다음 예수님이 언급하는 게 바로 그점이죠.

28절을 보시죠.

우리가 자신들의 주위에 있는 만물을 둘러 봐야 함을 그리고 하나님이 이 만물을 어떻게 돌보는지를, 예수님은 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훨씬 더 사랑하지 않는지요?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를 훨씬 더 잘 보살피지 않겠는지요?

우리가 이렇게 하기를 배우고, 예수님이 살았던 것처럼 살기를 배울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노력과 모든 생각과 모든 마음을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삶에서 무엇이 정녕 문제인지요?

이 모든 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구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시죠.

33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삶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일이라고 우리에게 말하십니다.

다른 모든 것에 있어, 다른 모든 것의 위에, 다른 모든 것에 앞서 하나님 나라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혼자서만이 아니라 가족으로서 모두 함께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 찾는 일을 여러분의 모든 삶에서, 여러분이 맺는 모든 관계에서, 여러분의 모든 생각에서, 모든 행동에서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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