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두 가지 길

마태복음7:13~29절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시는지요?

여러분은 예수님이 진짜라는 걸 믿으시는지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시나요?

어느 정도로 믿으시는지요? 하늘 나라에 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로 믿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에 대해 또한 그 메세지에 대해 들어 알고 있으며, 그 들은 바를 여러분이 좋아하여, 이제는 왕중의 왕인 메시아 예수님과의 옳바른 관계를 맺고싶어하며 또한 예수님의 새로운 나라에서 다른 동료 시민 모두와 옳바른 관계를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이 굉장한 일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이 이루어지는데 조력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데 조력하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시나요?

어떻게 여러분은시민권을 옮겨 과거의 나라로 부터 또는 사신 숭배, 두려움, 질투, 인종차별, 소비주의, 향락주의, 자기 중심주의, 및 여타의 나쁜 모든 주의들로 부터 사랑, 감사, 평화, 관용 그리고 다른 모든 영적인 과실들이 영그는 새로운 나라로 전환할 수 있을 까요?

그것은 결심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과거의 나라를 좋아하지 않고 과거의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의 읽기는 산상의 설교로 일컬어지는 비교적 긴 대목인데 ‘ 둘의 대비’로 가득합니다. 사물을 보는 두 가지 방식, 삶의 두 가지 방식, 등입니다.

마태복음마태가 기록한 기쁜 소식 6장19절에서 예수님이 말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세상에 재물을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이 먹거나 녹슬어 못 쓰게 되고 도둑이 와서 훔쳐 갈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의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하늘에서는 좀이 먹거나 녹슬지 않으며 도둑이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할 것이다. 네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예수님은 말하기를 삶의 두가지 방식이 있으며 여러분은 어느 방식으로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방식대로 살고 싶은지요 아니면 지상의 방식대로 살고 싶은지요. 이를 행하는 첫단계는 어러분 자신의 방식이 옳지 못하며 그것이 나쁜 상황으로 인도할 뿐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이 들은 것을 여러분의 가슴으로 깊이 생각하는 일입니다. 이 심오한 방식으로 듣는 일은 한갖 경청하는 일을 넘어서는 무엇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생각하기입니다만 단순한 생각하기 이상의 무엇이기도 하여 예수님의 빛 속에서 모든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빛은 밝게 빛나서 우리 인생의 모든 결함을 우리가 볼 수 있기에 충분합니다.

이 빛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삶에서 멀어져 우리가 쌓아온 그 불결함으로 부터 청결해지려는 깊은 욕망으로 인도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이 회개라 부르는 것이죠.

이것이 만사에 대한 즉각적인 변화는 아닙니다. 바뀌고자하는 새로운 갈망과 매사를 보는 새로운 방식이죠.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방식에서 여러분이 아내를 대하는 방식까지, 여러분이 투표하는 방식에서 쇼핑에 대해 여러분이 생각하는 방식까지,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서 부터 여러분을 슬프게 혹은 미치게 만드는 것까지 말입니다.

이 회개는 여러분의 인생에서 많은 것이 전적으로 잘못이었을지 모른다는 깊은 느낌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것이 선한 경지로 고쳐지고 여기에 연결되고 싶은 진실한 욕망을 수반합니다.

일단 여러분이 회개하면, 다른 한 양식의 삶이 시작됩니다. 회개는 계속 일어납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될 수 있는 것보다 더 미약하기 때문이죠.

결심을 했다면 여러분은 이미 2번째 단계에 접어든 것입니다. 이는 신앙과 믿음의 단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단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더 신뢰하려고 여러분 자신을 덜 신뢰하는 일의 또 다른 일면이죠.

이 단계는 ‘그것의 존재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존재 가치까지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관한 이 사실이나 저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실재와 그 가치를 믿습니다. 우리는 기쁜 소식에 관한 이것이나 저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의 실재와 그 가치를 믿습니다. 얼마나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요? 만일 몇가지의 의혹을 품고 있다면 여러분은 실격일까요?

예수님은 말했습니다. ‘너희가 믿는데 요구되는 양은 한알의 겨자씨와 같은 크기이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은 최소한의 믿음만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죠. ‘너희가 믿는다고 말하고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면 너희의 믿음은 공허한 것이요 그것은 죽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면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 뿐이죠. 심지어 아무리 작은 양의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렇죠. 바울이 갈라디아서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5장6절에서 설명하듯이 말이죠.

아니면 예수님이 오늘 아침의 읽은 대목에서 말하듯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잘려서 불 속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너희가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듯이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그들이 누구인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나무 혹은 나쁜 나무, 이 2가지 중의 여러분의 선택은 살아있는 믿음 혹은 죽은 믿음인거죠.

3째 단계는 인정 내지 수용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권을 신청한 후에 우편배달부가 그 여권을 갖고 왔을 때, 쫓아내면서 그의 배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여권을 받지 못하죠.

이는 새로운 나라에서의 새로운 삶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려고 하시는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하고,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모든 것-용서, 사랑, 희망, 힘, 격려, 인내- 실제로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 나라에서 살려면 필요한 모든 것들, 그리고 더욱 많은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성령을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이주하기의 3째 단계는 하나님의 성령을 기쁘게 받아들여 우리 삶의 전 분야에서 또 우리 가슴 속에서 그 성령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우리가 하는 일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하는 일, 예수님이 행한 일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4째 단계는 앞의 3단계를 거쳤음을 선언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친구들과 세상에 전하여 여러분이 과거의 삶을 중지하고 새로운 삶에 착수했으며 여러분이 과거의 나라와 절연하고 새로운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알리는 일입니다.

이것이 전통적으로 행해진 방식이 세례에 의해서입니다. 세례는 씻어냄을 통한 상징적인 정화의 의식이죠.과거에는 더러웠으나 이제 씻기우고자 한다는 여러분 스스로의 믿음을 의례를 통해 표현하죠. 이것은 또한 회개이죠. 여러분의 과거의 삶을 씻어 내어 그것을 물 아래로 침하시키는 회개인거죠. 이것은 또한 믿음이죠. 나는 과거의 나라를 떠나 새로운 나라로 예수님을 따라갈 만치 메시아 예수님을 신뢰한다는 믿음인거죠. 그리고 이것은 또한 받아들임이죠.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이 나에게 주려하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거죠.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지, 그 물은 강에 있어야 하는지 혹은 욕조 혹은 항아리에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세례받는 여러분이 물에 잠겨야 하는지 혹은 물이 여러분에게 뿌려져야 하는지 등의 문제를 두고 몇가지 견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사실상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세례를 받을 때 여러분의 마음의 상태일겁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시민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려하는 왕과 그 새로운 나라에 대한 서약이요 정성인거죠.

세례 후 그 다음의 조처는 이상에 언급한 4가지의 정점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전 생애 동안 지속되는 조처입니다.

여러분이 취할 다음의 단계는 매일 매일, 매 순간마다예수님을 따르는 방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과거의 삶의 방식을 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기 시작해야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아침의 우리 성경읽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몰아치면 크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방식의 삶에 착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나라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1단계에서 거절했던 과거의 삶의 방식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 예수님이 가르쳐 준 모든 것의 실천과 성령이 가르치는 모든 것의 실천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예수님이 산상의 설교에서 대략을 제시한 어떻게 옳은 선택을 하는지 그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 산상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두 갈래의 길이 있지만 오직 하나 만이 하나님의 완벽한 길이라고 보여주시죠.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삶면서 점차로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살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언어와 관습을 배우는 새로운 나라에 있는 거죠. 처음에는 익숙하지 못하지만 이윽고 우리는 평화, 감사, 관용, 사랑, 신실함, 진실, 개방, 신뢰 등등의 방식을 배우는 거죠.

참을성 있게 그리고 실천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과 본보기로 가르쳤던 대로 살아갑니다. 도중에 서로를 돕는거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것이죠.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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