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예수님, 하나의 복음

골로새서 1:13~29절

다른 사람들은, 즉 오늘날 우리의 고통 때문에 비난받고 있는 불특정한 가상의 분들의 경우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수준까지 바울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집착하죠. 그리고 어떤 분들은 중도를 택하려고 하지만 어느 쪽을 따를 지 고민을 피하지 못하죠.

이것은 현재의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인데 우리는 복음福音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라고 들었고 바울은 바로 그 임무를 행하여 우리에게 진정으로 최초의 모범이 되는 분이기 때문이죠.

명백히 바울이 하지 않았던 것은 밖으로 나가 예수님께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말과 이야기들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산상수훈’을 암기하고 모든 상황에 맞춰 독백하거나 하지 않았죠. 바울은 심지어 예수님의 어투를 따라하거나 비유담을 쓰지도 않았죠.

그러나 바울의 삶과 말을 살펴보면 우리는 바울이 예수님과 동일한 메세지를 전하되 청중과 그 문화에 어울리게 변용한 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유물로서 새로운 문제점, 의문, 기회, 요건을 지닌 또 하나의 급격하고 다른 상황을 우리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기반위에 서 있었고 우리는 바울로 부터 오늘에 이르는 우리의 영적인 선조들에 의해 놓여진 토대 위에 서있습니다.

예수님은 창녀, 세리와 더불어 먹었죠. 바울은 유대인 및 비유대인과 더불어 먹었죠. 두분 모두 포용의 삶의 살며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먹고 있나요? 그리고 우리는 누구에게 배타적인가요?

예수님은 ‘하늘 나라가 곁에 있다’ 했는데, 바울은 ‘그 나라가 도래했다’고 하죠. 오늘 아침의 ‘성경 읽기’ 부분 골로새서 1장 13절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어둠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그분이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겨 주셨습니다.’

골로새서 4장에서 바울은 하늘 나라에 봉사하는 동료들에 관해 이야기하죠. 통 털어 바울은 예수님이 언급한 하늘 나라에 대해 12차례 이상의 언급을 합니다.

바울이 하늘 나라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보다 미묘한 방식들이 있는데, 우리가 이점을 알고나면 불현듯 하늘 나라에 관한 예수님 자신의 메세지가 바울의 서한에 얼마나 생생히 살아 있는지를 발견할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적인 메세지를 세계 전역의 비유대교인을 위해 번역하는 거죠. 바울의 상황에서 볼 때, 어느 누구나 로마제국의 험한 속박 아래에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이미지는 정치 조직으로서 로마제국 그리고 그 수장으로서 가이사였는데, 바울이 이 이미지를 가져와 교체하여 교회가 조직이 되고 예수님은 그 수장이 되죠. 바울이 사용한 이미지를 모를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새로운 환경 속에 살고 있으므로 새로운 이미지를 사용할 필요가 있죠.

로마제국에서 충성의 맹세는 그리스어로 된 ‘Caesar ho Kurios군주님은 가이사’였습니다. 기독교인이 ‘예수님은 우리 주님’이라고 말할 때마다, 다른 나라의 다른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점이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은 최대의 이유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사회, 문화에 공명이 퍼지는 새로운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늘 나라의 메세지를 함께 나누어야겠죠.

15절을 보시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죠.

현재 북한의 모든 가구, 사무실, 학교, 공장마다 벽면의 높고 좋은 자리에 3개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조각상, 그림, 옷깃에 다는 뱃지도 있죠. 북한 지도자의 이미지는 언제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것은 지도자가 여러분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으며 다른 모든 사람들에 우선한다는 환상을 유지하기 위함이죠. 지도자 동지가 언제나 주시하며 돌보고 있다는 환상말이죠.

로마제국에서 가이사의 이미지는 모든 동전 표면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던진 그 기만적인 질문을 기억하시나요? 바울은 여기서 명백히 제시하죠. ‘이제 새로운 왕이 계시니 그는 하나님이시다. 또 하나의 나라가 로마에 대적하여 지상에 세워졌다. 동전의 표면에 하나님의 이미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들 사이에서 ‘예수’라 불리며 살아 숨쉬는 사람에게 있다.’

바울의 시대에 이것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북한의 이 거짓 신들이 자신들의 지위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과 유사한 체제 도전에 대하여 얼마나 괘씸하다고 여길 것인지 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은 위험한 것이죠. 북한 만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복음의 위에 두려고 할 때마다 말이죠.

가이사의 경우, 북한처럼 권력이 부자간에 승계됩니다. 이것이 왕국의 운영 방식이죠. 민주주의가 아닌거죠.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첫째 아들이요 우주만물의 상속자이며, 죽음에서 부활한 이래 새로운 만물들의 상속자임을 두 차례 선언하죠. 한 왕국의 지도자는 절대 권력을 가지며 가이사는 극존의 권위자였는데 바울이 ‘예수님이 만물의 지존’이며 상좌에 있다고 말하고 있죠. 바울은 심지어 예수님이 모든 왕위, 나라, 통치자, 권력을 만들었다고 극언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물론 가이사가 예수님에게 로마제국과 그 권력에 감사하게 하려 했으나 가이사가 실로 예수님의 큰 연못에 사는 한 마리의 피라미에 불과함을 보여주죠.

로마제국의 황제들과 북한의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신이라고 주장하죠.

우리는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살아 계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청중들이 이해할 언어로 예수님의 하늘 나라의 메세지를 선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같은 것을 할 수 있죠. 우리도 같은 일을 해야합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가짜 신들을, 그것이 북한에 있는 것이든 우리가 살며 일하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든 밝혀야 합니다. 우리의 친구, 지인들이 관련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예수님과 바울과 같은 하늘 나라의 메세지를 알려야 합니다.

로마제국의 평화와 통일과 번영은 십자가에 못 박는 뭇 공개 사형들이 증명하듯이 잔인한 폭력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죠. 그러나 종국에는 파탄이 났죠. 북한의 현 상황은 공개 처형과 죽음의 수용소 운영에 의한 훨씬 더 나쁜 수준의 잔인성에 의해 강요당한 것입니다. 이 또한 하루에 무너지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 나라와 이 타락한 세계의 모든 가짜 왕국들 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성 어거스틴은 황제와 해적의 유일한 상이점이 해적은 배 한척을 가졌을 뿐인데 황제는 여러 척을 소유한 것이라고 했죠.

세상의 거짓 제국들은 폭력과 고문을 권력 유지를 위해 사용하여 모든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합니다. 이들 제국은 정복과 압제에 의해 움직이죠. 그러나 하늘의 이 새로운 나라는 평화로이 옵니다. 왜냐면 그 왕이 이미 자신의 피를 흘렸기 때문이죠.

피 흘린 목적은 화해이죠. 인간을 하나님께 화해시키기, 형제를 형제에게, 자매를 자매에게 화해시키기, 북한과 남한을 화해시키기. 로마 카톨릭을 정교회와 콥틱교회와 화해시키기. 진보를 보수와 화해시키기. 기독교인을 유대교인 그리고 이슬람교도와 화해시키기.

에베소서 1장9~1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가지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 계획을 분명히 이루실 것입니다. 땅과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하늘 나라’로 불렀을 법한 대목에서 흔히 ‘신비한’ 계획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같은 계획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 일부인거죠.

우리는 바울이 그러했듯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비밀스러운 계획을 알리고 다니는 살아있는 우화요 그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바울이 우리의 시대, 사회, 상황, 문화, 연령에서 지녔을 것 같은 말과 행위로써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기적같은 이 기쁜 소식을 알리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승의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이란, 북한 같은 사악한 나라들이 사라져 가고 있으며 평화와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이 기쁜 소식들은 또한 여러분께서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의 덕택입니다.

희망은 여러분은 가슴과 삶에 씌어지는 거죠. 이것도 한 기쁜 소식입니다.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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