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전 세계의 기쁜 소식

마태복음 8: 16절~20절

일반적인 논리에서 볼 때, 무엇을 모아 들이자면 먼저 그것을 획득해야 하죠. 더 많이 소유하자면 더 많이 획득해야 하는거죠.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 많이 소유하려면 여러분은 더 많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원하시면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거죠. 이것은 배워두면 여러분에게 유익할 영적인 원리입니다. 그 기쁜 소식 즉 복음은 만인을 위한 것이며 여러분 만을 위한 것이 아니죠. 여러분께서 그것을 공유하지 않으면, 그건 기쁜 소식이 아닌 거죠. 여러분 혼자 그것을 간직하여 누구에게도 기쁜 소식이 되지 않으면, 결국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위한 기쁜 소식이 되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의 첫부분 4편은 복음서, 풀어 말하여 ‘복음福音’,‘기쁜 구원의 소식’에 대한 기록으로 일컬어집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 여러분은 뚜렷한 차이점을 보게 되죠. 강조법, 구사하는 언어, 사건들의 개입이나 생략에 있어 이 4편은 서로 다릅니다만, 그러나 결말은 모두 일치를 보입니다. 마태복음 8:16~20절(오늘 우리가 읽는 부분),누가복음24:29절과 사도행전1:8절, 요한복음20:21절그리고 마가복음 16:14~20절 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16:14~20절: 나중에,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고 있는 열한 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믿음이 적음과 마음이 굳은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난 후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상으로 가거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믿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증거가 따라올 것이다.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배우지 않은 새로운 말을 하고,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을 것이며, 환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마치시고, 하늘로 들려 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제자들은 곳곳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일하셨고, 증거를 보여 주심으로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얼마간의 차이가 문체와 자구선택에서 있지만, 핵심적인 임무는 4복음서 모두에서 분명히 같죠. 그건 이렇습니다. ‘가서, 바로 내가 너희에게 전했던 것과 같이, 온 세상에 기쁜 소식을 알려라. 너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행하지 못할 것이므로 성령에 의지해야 한다. 국경에서는 정녕 멈추되 모든 경계를 넘어라. 나이,인종,성별,종교,문화,사회,교육의 경계를 넘어라. 모든 장벽을 깨고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이 기쁜 소식을 함께 하라.

그리하여 그들로 제자를 삼고, 공동체를 일으키고, 신앙의 가족을 이루어라.

내가 너희에게 기쁜 소식이었듯이 너희도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 돼라.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기쁜 소식이 되는지 가르쳐 준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쁜 소식이 되는지를 가르쳐 주어라. 내가 너희와 함께 걸었으니, 이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가야한다.’

여러분께서 이 전언의 급진성이 어떠한지 아마 알아차리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의 신자들보다 예수님을 추종했던 유대인들에게 훨씬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고대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많은 신을 믿었죠. 이 모든 신들은 어떤 영역에 한정되어 있어, 심지어 한그루 나무, 혹은 바위, 혹은 들판에 국한되기도 했을 겁니다. 당시로서 상당히 이상한 발상이 지상의 어떤 장소나 언어, 문화 혹은 종교에 제한되지 않는 하나의 신을 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신의 특정 정치 체제나 문화를 보급하려하지 않는 것이 특히나 이상했습니다.

우주에 편만하신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의 신앙은 특이하게 주어졌기에, 유대주의는 전도하는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유대주의는 로마 점령 및 민족의 종교적 도덕적 생활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자신들의 내부 문제에 골몰했죠.

심지어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하죠.

그러나 보다 더 이상한 것은, 최초의 유대인 아브라함이 전 지구적인 소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2:3절에서 말하죠. “땅위의 모든 백성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기쁜소식을 가지고 모든 나라로 가라’는 명령에 반향하는 강한 울림을 가지죠.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 역사에서 유일신주의 유대인은 참으로 그들의 다신주의 이웃들과도 같이 자신들을 위해 축복을 얻기에 골몰했습니다.

유대인은 세상의 축복이 되라는 가르침을 망각하여 억누르거나 무시했습니다. 유대인은 자신들의 소명을 독점적인 것으로 즉 모든 여타 민족으로 부터 선택됨에 은총을 받은 것으로 여겨 모든 민족의 이익을 위해 축복을 받았다거나 소용이 되어야한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때로 가끔은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보내어 그들에게 전세계적인 소명을 상기시키고 그들의 이기심과 지역주의적인 배타주의를 힐문하실 겁니다. 비록 유대인들이 예언의 말씀에 관해 생각했을지라도, 아마 그 실현은 미래의 어느 때이지 자신들이 해방될 때까지는 아니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혹시 어느 훗날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지배당하고 있는한 오늘은 아니지.’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어떤 선결요건 때문에 기다릴 필요가 없죠.

이것이 바로 그 기쁜 소식, 위대한 사명인거죠. 예수님은 기쁜 소식이 바로 당장 유효하다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고 아브라함의 축복을 공유하십시요. 모든 민족, 인종, 계층, 종교의 만백성들에게 하나님과 그 창조물이 함께하는 역동적인 친밀함의 네트워크에 동참하자고 말하십시요. 예수님이 말하시죠. 너희들은 가거라, 무엇을 기다리느냐? 얼른!

그리하여 그들은 실행에 옮겼습니다. 사도들이 그 기쁜 소식을 갖고 길을 떠나 세계로 가서 모든 민족, 만백성들에게 말했지요. 여기에 관한 제반사를 누가Luke의 두번째 저술 사도행전에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3년간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방법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시범보였죠. 예수님은 음악연주의 거장이었고 사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음악을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는 명장 직접지도 그룹masterclass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명장이 되었고, 자신들의 제자를 택해, 명장 직접지도 모임을 열고,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늘의 나라에서 사는 방법을 시연했던 거죠.

이것이 사도의 삶이죠. 밖으로 가서 훈련하고 하늘 나라의 음악을 연주하고 다른 음악인들에게 가르치죠.

본보기가 되어 사는 것으로써 지식을 전수하라.

어린애와 부모, 스승과 제자, 장인과 도제, 교사와 학생, 친구와 친구. 하늘 나라에서 사는 방법은 대를 거치며 전해져옵니다.

수세기를 거쳐서 그 방법이 우리에게 이르렀습니다. 때로 그 음악은 참으로 아름다와 인간을 눈물로, 달콤함으로, 천상의 쾌적함으로 감동시켰습니다. 그러나 다른 때에 그 음악은 추하고 명장의 성가에 미달했었죠. 곡조에서, 리듬에서 빗나가는 불협화음으로 인해 새로운 명장이 재연주하기 전까지 그 방법은 거의 실종되었죠. 성 프란시스, 아비야의 테레사, 힐데가드 빙겐, 죤 웨슬리, 마더 테레사.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는 매우 조악하게 연주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음악을 연주하던 전통을 부활시킬 새 명장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본보기를 망각하고 음악에 대한 우리 자신의 재능에 눈 돌렸던 때마다 우리는 추해졌습니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지상에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잊고 대신에 지상에서 도망쳐 하늘로 가는데 골몰해 왔던지요. 얼마나 자주 우리는 평화에 관한 그리고 반대의 뺨을 돌려 대주고, 이방인을 환영하라는 예수님의 교의를 망각하고 그 대신 전쟁과 개혁운동에 복을 기원했으며, 인종주의의 이름을 붙여 불의를 옹호했었던지요?

우리는 그 기쁜 소식을 배반했습니다. 우리는 돈, 죄, 힘, 두려움, 통치, 신분에 몰두해 왔습니다. 우리의 연주는 얕고, 불협화의, 생기 없으며, 기교적인 정확성에 주의하되 열정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아니면 간혹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졌던 악보와 리듬과 조화음을 따르지 않는 열정을 갖고 있었던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일어나리라 말했죠, 그리고 말하기를, 이것이 일어날 때 우리가 발 아래 짓밟히리라 했죠.

마태복음 5:13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입으로 말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잎이 무성하나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같아 질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중지한다면 우리는 냉담하면서 비판하기 좋아하여, 돈과 권력에 탐욕스러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쓸모 없어져, 사람들은 우리가 사기꾼임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교적인 과장된 말과 가슴이 없는 단조로운 신앙을 혐오합니다.

여기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에 있는 우리들은 희망적이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 기쁜 소식 즉 복음의 음악을 배우거나 연주하기를 서로 서로 돕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며, 이로 인해 다른 이들이 그 기쁜 소식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을 접하여 변형되고 있으며, 그 결과 성령은 우리의 일터, 가정, 학교, 가족관계, 문화, 세상을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혹적이거나 흥미진진하지 않죠, 성령에 의한 그 변화는 소리없이, 가만히, 반죽 속의 효모처럼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령이 우리에게 현존하는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감지할 줄 압니다. 그 순간은 미묘하여 포착하기 힘든데, 그러나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메세지는 전해지고 있습니다.

형제와 자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음악을 지속적으로 시연해 봅시다. 우리 그 음악대로 살아 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진짜로 만들어 줍시다. 사랑을 통해 표현된 우리의 믿음을 우리 눈으로 봅시다.

아멘.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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