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야기 중의 그사람

누가복음 4:1–22

낱말 연상 놀이를 해 보죠.
제가 단어 하나를 말하면 여러분은 마음에 이미지 하나가 생기도록 하는 겁니다.

What did Jesus look like

Is this what Jesus looked like?

예컨대 제가 ‘빨강’이라 말하면, 여러분은 어떤 섬광의 영상을 이를 테면 풍선, 페라리, 빨간망토소녀 혹은 저마다 개인적인 어떤 것을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준비되셨나요?
마음을 텅 비우세요, 그럼 단어 하나를 말합니다.

예수님예수님!!

어떤 그림이 떠오르셨는지요?
사람들에게 가장 비근한 이미지는 이 건물 아래층의 주차장 벽을 장식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긴 금발에 이상한 의상을 걸친 마른 사내가 어린 양을 겨드랑이에 끼고 택시를 부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다른 경우로는 예수님이 무릎에 아이를 안고 앉아 있습니다.
똑같은 사나이가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 역시 흔하죠.

Jesus face

The BBC recreated Jesus face by computer.

그 사나이는 여러 곳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덮여 있을 테지만 그 모습은 깨끗하고 단정해 보입니다.
예수님이 거기에 있으므로 제가 죽은 뒤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최고의 행적은 내 죄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당신께서 대신하여 죽은 것입니다.
이것은 심히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벌어지는 삶으로 부터 그 경이로운 자취는 대개 소멸되지요.

이 소멸이 참으로 역사적 사실이나 정치적 역학관계에 결부된 일은 아닙니다.

Jesus with sheep

Jesus carries a lamb and glows in the dark.

우리가 자주 보는 또 다른 예수님의 모습은 위대한 스승의 면모입니다.

우리가 자주 보는 또 다른 예수님의 모습은 위대한 스승의 면모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만 예수님이 군중을 대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을 구경하고 나서 자신들은 옳으나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에 예수님의 말씀이 쓸모 있음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죠.
우리 모두는 각자 여러 예수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제가 분명히 알기로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그 모습 은 위의 예에서 보인 것보다 훌륭합니다.
그러나 말이죠!

Jesus on cross

The crucifixion of Christ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은 자신을 생각 했을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한 관점을 가져올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 드리건대, 우리들 모두는 자신의 국적, 인종, 성별의 측면을 통해서 스스로를 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우리가 살고있는 역사적 순간의 측면에서 보죠.

Crucifixion

Jesus on the cross

다시말해 우리가 현재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어떤 존재인지 이것을 형성해온 모든 사건의 축적이라 할 역사의 한 순간의 측면에서 보는 거죠.
간단히는 21세기의 한 남,녀의 관점에서 우리 스스로를 보고 있는 거죠.

예수님은 한 이야기의 일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봅니다.

Jesus with children

A child sits on Christ's lap

그 이야기에서 중심 되는 인물은 하나님입니다.
보조 출연진으로 아담, 이브, 아브라함, 사라, 모세, 다윗이 함께 하죠.
하나님은 창세기의 처음부터 중심에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고 생명을 부여하죠.
하지만 창조된 그 만물은 결코 독자적이지 못하여 하나님은 비를 내립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긴밀하게 관여합니다.
창세기 제 2장에서 아담과 이브가 나옵니다. 최초의 인간들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 대로 만들어졌지요.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하나님의 모습을 갖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매우 빠르게 아담과 하와의 친밀한 관계는 타락하여 이 둘은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Jesus teaching

Jesus teaching a crowd

이야기의 여기서부터 수치심, 이간질, 폭력, 천지만물과의 불화, 사람 사이의 오해, 갈등 따위가 있습니다.
창세기 3장은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가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었던 자유를 폐하지 않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길을 따라 살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파멸시킴으 로써 모든 것을 재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대응은 구조대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들을 구조할 대원들을 준비하고 훈련시킬 테지요.
하나님의 극한 임무 구조대의 창설 대원은 한 늙은 부부입니다.
이 부부의 소임은 첫째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도를 잊지않고 기억하는 것이죠.
다음으로 이 부부가 모든 사람을 상대로 하여 흥기시켜야 할 것은 진실, 축복, 지혜, 치유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들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늙은 부부 (아브라함과 사라) 에게 훗날 히브리 자손 백성으로 번성할 자식들을 주어 일을 시작합니다.
몇세기가 지나가고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이름의 한 인간을 불러내기 까지 상황은 꽤 나빠지죠.
임무 중의 구조대를 돕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일련의 계율을 주어 백성들에게 전하도록 합니다.
이 계율은 백성들이 품위있게 살고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모세의 이러한 소임은 하나님과 지도자들의 관계에 새로운 시기를 초래합니다.
사제, 예언자, 정치 지도자들이 민족 공동체의 발전과 어려움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백성들을 인도하는때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여서마침내 약 천년 후에 백성들은 다윗왕의 영도하에 평화와 안정의 시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 대목에서 안타깝게도 상황이 나쁘게되죠.
악화 얼마의 어리석고 교만한 치세기간이 존재합니다.
2세대 뒤에 나라가 내란에 휘말리고, 외세가 들어와 통치권을 잡지요.
다시 천년이 지나 다른 국면이 열립니다.
이야기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나오죠.
그는 모든 희망이 깨지고 구조대가 산산이 파탄났을 때 태어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어떻다고 보았을까요?
예수님은 자신이 이 구조대의 지도자로 태어난 것을 알았죠.
Jesus – leader of the rescue mission.
한 젊은이로서 예수님은 그 이야기와 그 안에 놓이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그에게 가르쳤던거죠.
예수님은 자신이 역사적인 이야기 내의, 역사적인 순간에, 역사적인 역할을 맡은 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어떤 식으로 이해했으며 어떤 식으로 대처했을까요?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 이야기 내의 자신의 처지와 그리고 이 구조대 수장으로서의 지위를 인식하며 대중 앞에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과거사의 전 맥락이 자신의 시대로 종합됨을 자각했던 거죠.
우리는 누가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첫 연설들 가운데 하나에 대해 읽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러한 시야를 갖고 연설하고 있음을 이해됩니다.
예수님이 소년기에 향리에 있습니다.
안식일이고 예수님은 교회당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앞으로 나아 와서 성서를 읽습니다.
예수님이 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당신이 방금 들은 성서 문구가 바로 오늘 실현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당대에 이 모든 이야기가 현실화 됨을 아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라를 언급함으로써 위대한 다윗왕에 관한 기억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위대했던 평화,번영,축복의 시절을 환기시킵니다.
예수님은 나아가 자신이 새로운 다윗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해방에 대해 말할 때, 예수님 말씀은 그 이야기 속의 모세가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시켰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경이로왔던 과거의 구원을 상기시킵니다.
요한복음 13:34절에서 말씀하시죠.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그리고 마태복음 5:21절에서 말씀하시죠. “우리의 선조들은 … 하라는 계명을 받았다고 너희가 들었으나 내 너희에게 말하노니…”
예수님은 자신이 새로운 모세이자 입법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믿으라’ 고 외치는데, 추종자들에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상기시키면서, 불가능이 하나님에게는 가능함을 믿을 줄 알아야 함을 확언하면서 말이죠.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거슬러 올라갔다가 모든 것을 자신의 당대로 되가져옵니다.
아브라함은 축복받은 자였으므로 지상의 모든 민족들에게 축복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비 유대인과 유대인, 율법주의자 바리새인과 창녀들과 먹기를 함께 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이런 점을 실현합니다.
예수님은 제2의 아담으로서 모든 사람들을 화해시키려 노력하죠.
예수님은 병든 이를 낫게 하고, 죽은 이를 일으켜 세우고 악귀들을 내쫓습니다.
예수님은 자연의 천지 만물과 경이롭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인류에 관한 이야기의 중심 인물인 하나님과 직접 연계시키죠.
예수님이 말하기를 자신을 만난 사람도 하나님과 만난 것인데,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기 때문이라 했죠.
– 요한복음 14:9절
예수님은 그저 뛰어난 스승 한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시와 철학을 훨씬 넘어가는 무엇이죠.
그의 확언은 심지어 예언자들의 예언조차 초월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뒤집으려합니다.
안락한 것들을 뒤흔들어 불안하게 하려하죠.
예수님은 구조대에게 준비할 것을 이르고 있는데 세상을 죄 로부터 구원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우 이상합니다.
잘 기름쳐진 정치적인 기계 혹은 무기는 전혀 없지요.
예수님은 거듭 거듭 말하기를, 자신의 새로운 나라는 다르다-피를 흘려서 지어지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반죽 안의 효모같이 표면 아래에서 서서히 나아간다. 이것은 믿음을 통해 실현된다.
용서하는 사랑과 화해를 통해서 성장합니다.
우리가 이방인과 적들을 사랑하는 순간에 말이요.
우리가 예수님이 가르친 것을 너무 잘 믿은 나머지 우리가 이처럼 어리석게 살게될 때, 그 때에 우리는 지상에 도래하고 있는 천국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전 역사가 나아가고 있는 그 목적을 향해 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우리에게 구원을 주었기에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이 시작한 이야기의 마지막 대목을 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가 아는 가장 힘센 민족도 타도할 수 있습니다.
가장 번창한 도시도 정복될 수 있습니다.
군수산업 기지가 전복될 수도 있죠.
모 든 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 중의 중심 인물이 무명의 유대인 목수였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전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혁명이었고 우리는 그의 믿음과 사랑의 멋진 혁명의 일부입니다.

AMEN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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