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큰 하나님의 위대한 신실함

예레미야애가3:19-33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은 새해의 결심을 하셨는지요?

오늘 우리가 읽을 곳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슬픈 부분일 것입니다. 이 편은 눈물로 가득하여 예레미야의 애가라고 불립니다. 이 애가의 지은이는 눈물 짓는 예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당대의 세인에 의해 예수님과 비교되었던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6장13, 14절 예수님께서 빌립보 지방에 있는 가이샤라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人子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대답했습 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렇게 자문하고 계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새해의 첫날에 어떤 긍정적 의미를, 무슨 희망을, 어떠한 격려를 우리가 이 어둡고도 우울한 책에서 발견 할 수 있을까?”

예레미야애가의 구절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궁금해지는 것은 장시간 검은 바위를 응시함으로써, 혹은 굶주리는 아이들, 울부짖는 어머니들 속을 걸음으로써, 혹은 예루살렘을 에워싼 적군으로부터 구원을 약속했던 거짓 예언자들을 기억함으로써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도대체 어떤 중요성이 먹을 것을 찾아 도성을 배회하면서 자신들의 희생이 승리와 성공을 가져오리라 확신했었던 사제들을 살펴보는 것에 있는 것일까요? 어디에나 시체가 널렸을 때 어떻게 하나님의 선함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실제로 예레미야는 자신이 목격한 재앙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냈습니다. 거짓된 예배와 지도자의 부도덕이 사람들에게 재앙을 불러 왔고, 하나님은 백성들이 당신의 통치권을 거부했었기에 노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단 한분의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실재를 모른 체 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어겼었고 그 때문에 진정 당신께서 약속하신대로 사람들을 심판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1장 18절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시나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들어라. 내 당하는 고통을 보아라.”

하나님은 인간의 반항을 용인하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이 죄악 때문에 쓸어버릴만한 위치에 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진노로 인해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파멸시킬 수도 있었으나 대신 하나님은 사람들을 바빌론으로 보냈고 그들은 계속 살아남았습니다. 선택받은 사람들의 경우 뿌리 뽑히지는 않았었고 따라서그들이 전멸당하지는 않았 던 것이었습니다. 그 민족은 여전히 하나의 민족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자비 덕택에 그들이 완전히 쇠잔해지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3장 23절에서 말합니다:- 당신의 자비는 날마다 새롭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기 이 구절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자비에 의해 살고 있지 우리의 공로로 인해 살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능력지상주의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권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권리가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권리은 인간에 의해 창안됐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자비의 방식입니다.

“너희는 나의 이름을 지닌 이 사원이 도둑의 소굴이 되었음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느냐? 모든 사악함이 거기서 벌어지는 줄을 분명히 아노라. 나, 여호와는 말하였다.”

라고 한 이는 다름아닌 예레미야였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바로 예수님께서 사원에서 대금업자들의 탁자를 뒤집었을 때 인용했던 말입니다. 도살장으로 어린 양 같이 끌려가고 있음을 말한 것은 예레미야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길이 예수님이 연상되는 말이지요.

예레미야 11장 19절: 나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 양 같아서 그들이 나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나무를 그 열매와 같이 없애 버리자. 산 자들의 땅에서 그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사람들이 더 이상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말할 때 예수님은 그들이 예레미야 같은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거절했 었고 돌을 던졌던가 상기시켰습니다. 예레미야가 외롭고 다치고 거부당하여 고통에 신음했을 때, 기도로 많은 시간들을 보냈던 동굴은 골고다로 일컬어지는 작은 언덕의 비탈에 있다고 믿어집니다. 바로 이 동굴의 위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곳입니다. 우리는 한 해의 끝에 있습니다. 우리는 문지방에 서 있습니다. 지난 해는 가고 없으며 이제는 새해의 시초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연속적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시간 속의 한 지점에 있는 존재로 보는 까닭에 다음과 같이 특정한 방식으로 사물을 봅니다. 지난 한 해는 우리의 뒤편에 있습니다. 지난 해는 사건들, 희망과 꿈, 실패와 성공들로 채워져 이제 가고 없습니다. 우리는 그 지난 해를 보내며 새해는 더 좋아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아지겠다고 결심합니다. 우리는 상황이 아무리 암울해 보일 지라도 기독교인으로서 이렇게 소망하고 결심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적어도 예레미야애가 중의 예레미야의 현실만큼은 열악하다고 아무리 심하게 느낄지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신실하다는 예레미야애가의 약속을 갖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레미야애가의 경고 또한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출입구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교차로에 서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2개의 새해가 놓여있는데, 우리는 둘 중에서 택해야 합니다.

오늘 둘 중의 어느 새해를 택하려는 지요? 이미 여러분 자신의 2012년을 택하셨 는지요? 한 새해는 눈물과 비탄과 절치부심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들은 예수님께서 비신자가 아니라 자신의 사도들에 관해 말하던 중의 어휘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낼 새해가 있는 것입니다. 새해에 관한 두가지 시나리오 모두에서 우리는 눈물로 가득한 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 하나에만 우리는 또한 눈물을 닦아 주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믿을 만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나아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적대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심은 씨앗의 쓴 열매를 수확하도록 한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모든 소망을 하나님의 안에 둘 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고 또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임을. 우리는 이세상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고용보장, 평온함, 연금, 건강의 헛된 약속들 말이지요. 우리를 구원할 수 있고 또한 자비로운 하나님의 안에서 예레미야가 했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의지할 때, 그분은 우리를 구하실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1절은 모든 절망의 가운데서 무엇을 말하는지 보시죠. 그러나 이런 것을 생각하면 저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랑은 한결같고, 여호와의 자비는 끝이 없다. 주의 사랑과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진실과 참되심이 크도다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유산의 전부이시니 내게 희망이 있다”고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주께 희망을 두는 사람과 주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선하시다. 조용히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좋다. 온 사방이 재난일 때에, 우리가 전쟁과 북한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때에, 세계 경제가 몰락하여 우리 직장이 사라지고 있을 때에, 우리는 감히 소망 합니다. 사람들이 굶주리고 지구가 지진에 흔들리고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할 겁 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겁니다. 우리는 조용히 구원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할 것임을, 그리고 그분께서 다가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을 압니다. 폐허의 예루살렘으로부터 새로운 예루살렘이 지어집니다. 우리는 예레미야 와요한계시록21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갖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3장에서 말하듯이 하나님의 신성한 백성들은 박해를 참을성있게 견디며 신실해야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뒤의 부활. 여러분의 눈길과 마음을 우리의 신실한 하나님께 두십시요. 우리의 위대하고 큰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한 과감하고도 전적인 신뢰로써 이 한해를 만드십시요. 그분은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1장입니다. 주께서는 자기 백성을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신다.

혹 우리를 슬픔에 빠지게 하시더라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위대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함이요. 그러므로 위대하게 우리는 그분을 믿을 수 있어라.

AMEN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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