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배소서의 품질관리

1 디모데서 3장 1-13절

디모데와 디도에게 부친 편지에서 바울은 교회 내의 장로들의 자질 문제를 언급하기에 얼마의 시간을 허여합니다.

두 형제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바울은 더 큰 교회를 건립하기를 혹은 비어있는 좌석을 채우기를 재촉하지 않습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에베소의 교회는 부정한 사람들이 장로 이니, 공정한 사람들로 바뀌어야 한다고 합니다. 다시 디도에게 크레타 섬의 교회는 장로가 전무하니 옳바른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과 특수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전도 여정의 도중에 특별한 만남을 위해 장로들을 30마일 떨어진 밀레도로 불렀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사도행전20장 17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일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에베소의 장로들에 관해 편지를 쓰기 5년전에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며 자신이 장로들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최후의 상면입니다. 대화가 끝나 헤어질 때, 그들은 크게 웁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상기시키기를, 장로들은 사람들의 영적인 삶에 책임져야 하며 바울 자신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이릅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간곡히 호소하여 신도들의 영적인 필요를 돌보라 말하고 다시 길을 벗어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2절-31절) 22절;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 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 하시나… 25절;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거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28절;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여러분을 장로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울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듣는 이가 모두 장로들이기에, 이 흔치 않은 연설은 장로에 관한 몇 가지를 제언합니다. 장로은 마땅히 성령에 의해 임명되며 또한 반드시 하나님의 양 떼인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가르쳐야 합니다.

바울의 장로들을 향한 경계의 당부는 애석하게도 현실이 되어, 그때문에 상황을 처리 하러 디모데를 보내야 했습니다 자신의 서한에서 바울은 데모데에게 해야 할 것과 어떻게 할 것을 일러줍니다. 장로는 자신을 정결히 지켜야하며 자신을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의 언급 이었습니다. 이는 장로에게 소중한 자질이라서 하나님의 수준을 유지하도록 장로은 필히 자신을 예민하게 응시해야 합니다.

물론이지만 주안점이 장로들에 놓였을 뿐, 그 나머지인 우리는 다른 기준을 따라 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분명하고 찬란한 하나님의 기준 속에 우리의 삶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모데서 3장 2절에서 장로은 필히 가르치기를 잘 할수 있어야한다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다른 신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살피는 것이 바로 장로의 직분이기에 장로는 하나님과 그 말씀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모범을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가르침으로 관심을 기울 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귀중한 자식들에 관심없거나 이들을 이끌어 줄 성숙함과 지식이 모자란 장로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바울은 장로을 뽑을 때 외부인의 견해를 중요한 것으로 제안합니다. 헌데 바울의 발화맥락에서 장로는 목사를 포괄합니다. 언제나 장로은 여럿이어야합니다. 리더가 한 사람인 그런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상 장로에게 유일하게 전문적 능력이 요구되는 분야가 가르침입니다. 여타 모든 요건은 인격의 문제입니다. 이는 집사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집사가 장로보다 덜 중요한 것은 아니며 동일한 중요성을 갖습니다. 집사는 물질적 필요를 다루는 좀더 현실상의 책무를 가지는 뿐입니다. 바울은 ‘겸손’ 같은 문제도 언급하여 이 문제들을 교회의 모든 성원에게 적용하는데 우리가 이 디모데서에서 살피려는 것은 우리 스스로는 지지 않아도 좋으나 장로들은 져야 하는 산더미같은 책무들이 아닙니다. 경건함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끊임없이 세상이 어떻게 교회를 보는지, 교회가 수장 예수의 자질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경험하는 훌륭한 자질을 열거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당시의 그리스인들이 이상으로 내세웠던 자질들입니다. 바울이 말하듯이 우리는 이 세상 기준의 미덕을 능가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밝은 눈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세상사람들과 다른지 어떤지 우리가 표나게 더 나은 지 어떤지를 알아차릴 것은 당연합니다.

바울이 예언했던 그릇된 가르침이 나타났고 그는 이에 대처해야 했는데, 어떤 종류의 거짓이 퍼지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노시스(신비적 직관주의) 에 유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주의는 그리스 사상을 취하여 육체를 악하다고 보았습니다. 고로 성은 그릇된 것이며, 사람들은 하나님이 허락하는 엄한 음식 규범을 지켜야 합니다. 그노시스는 이원적 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음식에 대한 견해는 강한 유대적 요소를 시사하여 구약에 대해 그들 나름의 해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노시스는 더우기 자존심이 높아서, 겉으로 그들이 경건해였을지 몰라도 실제로 그들이 행한 모든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돈에 탐욕스러웠으되 겉으로는 율법주의적이었습니다 교회에 있어 이런 리더가 있다면 그 결과는 무섭습니다. 흡사 그것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책임이 무거운 자리에 불충분한 인격의 사람이 앉아 있는 오늘날과 다름없습니다. 이것은 파멸입니다. 그릇된 그들의 가르침은 예수님 몸 안의 괴저와 같습니다. 이 기괴한 율법주의와 자유로움의 혼합은 성령이 행할 여지를 부정합니다. 그노시스는 하나님의 성령을 숨 막히게 했습니다. 리더십은 순결한 마음에서 샘 솟아야합니다.

선한 양심, 독실한 신앙심에서 샘 솟아야합니다. 고로 이 나쁜 장로들은 나쁜 것들을 가르치고 나쁜 모범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박해를 견뎌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확신이 들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독교인 에게 곤경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폭풍도 헤쳐나갈 수 있고 실로 그런 곤경을 말미암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때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영으로 채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부르게 됩니다. 허나 병이 몸 속에 있을 때는 그 독이 퍼집니다. 우리는 식욕을 잃습니다. 이것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긴급한 치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위엄있게 제대로 가르침을 규정합니다. 가르침은 교육이나 강연과 다른데 이것들은 바울은 스승이란 어떤 사람의 인생에 있어 생생한 영성의 힘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 규정 했습니다. 리더란 그를 따랐을 때, 사람들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어 줄 사람이라 했습니다. 제 부족함에 대해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서한들로 부터 제 자신에 관한 수많은 평가를 느끼기에 더 나아지도록 쉼없이 싸울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 생각으로 우리가 이 3편의 서한에서 느끼는 것은 순결함은 외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내적이어야 한다는 메세지의 강렬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 여러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이 서한들의 메세지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말이죠. 하나님은 여러분의 나이가 얼마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상관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 더 노성한 분들 그러므로 그 먼길을 걸어 온 분들을 존대해야 합니다.

교회의 미덕은 세상 기준의 미덕만 같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많은 가식들과 하는 체하는 행위에 기만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미덕은 진짜 미덕이지 않으면 않됩니다. 인격은 언제나 능력보다 더 중요합니다. 양이 아닌 양치기들은 양떼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내에서 하나님의 가치를 지켜야 할 거대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그러니 훈도하는 아버지라기 보다는 자애로운 어머니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를 여하히 살아 가느냐는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그럼 우리의 신앙을 사랑으로 실천합시다, 그럴까요?

AMEN

About Pastor Simon

Pastor at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 Formerly of Eastbourne, East Sussex, UK. I am Simon Warner of Jinju Church. We speak English at Jinju Church,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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