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열쇠

누가복음 11:37-54

지난 주에 우리는 브런치를 드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한 바리새인이 아침 식사시간에 예수님을 초대하여 한 무리에게 말씀을 나누시도록 했습니다. 그 바리새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신 것을 진지하게 알기 원했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아마도 그러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는 다른 바리새인들 앞에 자신의 우월함으로 보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갈릴리 출신 시골뜨기에게 영리한 질문을 함으로써 그 자신의 지혜로움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는 질문을 하려고 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예수님께서 먼저 손을 씻지 않고 말씀하시는 순간 그들을 당황하게 하신 장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47절에까지 보면, 바리새인들은 다소 불편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이 다른 유대인들보다 훨씬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화 있을찐저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은 화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명예와 영광만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한 번 이들을 살펴보고,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가리워져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니 우리 자신들 스스로가 가리워진채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닥칠 화를 보여주는 그리고 우리에게 냉철하게 말씀해 주시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의하도록 하시기 위해 이러한 것들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그 화를 피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의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순종한다면 그 화를 면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오래전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였던 사람들과 동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대 유대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박해했다고 구약성경보다 더 강조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 시대의 유대 사회는 선지자들을 기리기 위해 무덤을 세웠습니다. 다윗왕과 훌다와 같이 죽임을 당하지 않은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위해 기념물을 건립하였습니다. 랍비의 해석에 따르면, 훌다와 드로바는 주요한 여성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그 선지자들을 실제로 죽였던 사람들과 동일하게 그들도 비난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이 … 선지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기념물을 세움으로 그들의 행위에 참여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구체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죄악 가득한 사람들의 자손들에게도 여전히 그 죄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에 이와 유사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자를 벌하고 그의 죄에 대하여 그 자손 삼사 대까지 저주를 내리겠다.”

이것은다윗왕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사무엘하 21장에서 다윗왕 시대에 3년동안 지속되었던 흉년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이것에 대해서 질문했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흉년은 사울과 그 집안 사람들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여 범죄한 댓가이다.”

나의 민족과 나의 조상의 죄악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제가 행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도 회개해야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과거, 우리 민족의 죄악, 우리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을 위해 회개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그들의 형벌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화 있을찐저.

“As a result, this generation will be held responsible for the murder of all God’s prophets from the creation of the world—from the murder of Abel to the murder of Zechariah, who was killed between the altar and the sanctuary. Yes, it will certainly be charged against this generation.” (Luke 11:50–51)
그러므로 세상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죽음을 당한 모든 예언자들의 피에 대하여 이 세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음을 당한 사가랴의 피에 대해서까지 이 세대가 죄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이것을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죄’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민수기21장에서 언급된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죄는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사회 전체 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서로에게 구별된 각 개인 뿐아니라, 우리를 한 몸으로, 한 가족으로 여기시는 것의 또다른 예시입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죄를 지을 때, 우리 전체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바리새인들에게는 이것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기름 부은 선지자들이 수백년 전에 이미 끊어졌고, 그 세대의 마지막 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죄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마지막 순교자가 죽임을 당한 후 피의 샘이 성전에서 나오게 됩니다. 아벨은 첫번째 순교자였으며, 그 마지막은 스가랴 였습니다. 그들의 전통에 따르면, 수천 명의 제사장이 죽임을 당하더라도 피의 샘을 멈출 수 없다고 합니다. 이 피의 샘은 스가랴가 죽임을 당한 거룩한 곳에서부터 흘러 나왔습니다. 스가랴의 피는 복수를 외쳤습니다. 열왕기하 24장 22절에서 스가랴가 죽임을 당할 때 마지막 했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아벨의 피는 땅에서부터 호소한다고 창세기 4장 10절에서 이야기 합니다.

이 문맥에서, 예수님은 이 세대가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상상할 수 없는 참상에 대해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듣는 무리들에게 이 세대가 극도의 두려움을 넘어선 수준의 피흘림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가인부터 이 시대까지 그들의 조상들의 끔찍한 죄악 때문에 화가 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재앙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들이 행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 왜 회개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이 가인의 죄까지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특히 더 어려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조상의 죄를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저의 조상의 죄를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각자의 이름을 알고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손님으로 초대되어 그분의 신학이론을 함께 나눌 때,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앞으로 일어날 극적인 방식에 대해 경고할 때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삶을 살고자 노력할 때, 이러한 것들은 부당해 보일 수 있으며,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이제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율법학자들에게 눈을 돌리셨습니다.

율법에 있어서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율법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율법을 더 이해하기 어렵도록 만든 것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복잡하고 상세한 설명은 실제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세지의 쉬운 의미를 감추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그 열쇠를 빼앗아 가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문은 잠겨 있습니다. 지식의 열쇠가 필요한 문은 무엇입니까? 그 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 문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열쇠를 없애버렸다고 책망합니다.

그들은 매우 악하므로 스스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막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열쇠 대신에, 그들은 사람들에게 큰 짐을 안깁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가 숨겨진 채, 쓸모없는 율법과 규례로 그들 자신에게 짐을 안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매우 화나고 적대적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가면을 벗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람들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시인하는 대신에, 그들은 메시야를 대적하고, 그들 자신을 방어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예수님에 대항하여 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함으로서 예수님을 비방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규율들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식탁에서 우리들에게 성품의 중요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거룩함과 진실함이 중요합니다. 깨끗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겸손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서서 사랑의 진리를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은 여러분을 비난하고 여러분을 나쁘게 보이기 위한 모든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이야기하고, 지속적으로 사랑하세요.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의 조롱에 결코 반응하게 마십시오. 예수님도 반응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비난에 빠져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유케 되도록 진리를 말씀하시고 죄악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사랑으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이런 죄악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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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dden key

Luke 11:37–54

Last week, we started to look at Jesus having brunch. Jesus was invited by a Pharisee to speak to a group over the morning meal. We don’t know if the Pharisee was sincere in wanting to know what Jesus was teaching. Maybe he was. Maybe he wanted to appear superior in front of the other Pharisees. Perhaps by showing off his knowledge in asking clever questions of the wandering country bumpkin from Galilee. Perhaps it was a trap to get Jesus to say something that would get him into trouble.

We saw last week how Jesus managed to upset them the moment he say down without washing his hands first. By the time we get to verse 47 the Pharisees are getting rather uncomfortable. Jesus is warning them of the sorrow that awaits them, although they think themselves the most holy of all Jewish people. They see only honour and glory in the future for themselves, not sorrow. We look at them today and wonder how they could have been so blind, but we are ourselves in grave danger of being blind. We need Jesus to speak bluntly to us and show us the sorrow that awaits us if we don’t change.

God shows us these things because he is warning us. He warns us because he can prevent the sorrow. He can prevent the sorrow if we listen to him, and obey what he says.

Jesus tells the Pharisees that they are like the people of old who killed God’s prophets.

Ancient Judaism emphasised more often than the Old Testament that Israel had martyred the prophets sent by God. The Jewish community of that time built tombs in memory of these people. The erected monuments for killed prophets and for servants of God who weren’t killed, such as King David and Huldah. According to Rabbinic interpretation, Huldah and Deborah were the principal woman prophets.

Jesus tells the Pharisees that they have as much blame as the people actually who killed the prophets. He says, “your ancestors … killed the prophets, and you join in their crime by building the monuments!”

Like father, like son. He is saying that corporate guilt and sin continue among the descendants of wicked people, unless they specifically repent. An example of this is Exodus 20:5. “I lay the sins of the parents upon their children; the entire family is affected—even children in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s of those who reject me.”

This happened to King David himself. We read in 2 Samuel 21 that there was a famine during David’s reign that lasted for three years. David asked the Lord about it and the Lord said, “The famine has come because Saul and his family are guilty of murdering the Gibeonites.”

The sins of my nation and my forefathers do have consequences in my life. I do need to repent for things I didn’t do. We all need to repent for our pasts, and for the sins of our nation, our people, our ancestors. If we don’t, we can inherit their punishment. What sorrow awaits us.

“As a result, this generation will be held responsible for the murder of all God’s prophets from the creation of the world—from the murder of Abel to the murder of Zechariah, who was killed between the altar and the sanctuary. Yes, it will certainly be charged against this generation.”
(Luke 11:50–51)

The name for this is ‘bloodguilt’. It is a very serious matter as mentioned in Deuteronomy 21. Bloodguilt affects not only the individual directly responsible, but the whole community. It’s another example of how God sees us as a body, a family, not as individuals separate from each other. When one of us sins, the whole fellowship suffers.

The Pharisees listening to Jesus were very aware of this. Many of them would have believed that fully anointed prophets had ceased hundreds of years earlier, and would not return until the end of the age. They would have believed that only God could avenge the bloodguilt.

According to Jewish tradition, a fountain of blood appeared in the temple after the last martyr was killed. Abel was the first martyr, and the last was Zechariah. Their tradition said that even the killing of thousands of priests couldn’t appease the fountain of blood. This fountain of blood was flowing from where Zechariah was killed in the holiest place on earth after the holy of holies. The blood of Zechariah cried out for vengeance. 2 Chronicles 24:22 – Zechariah’s last words as he died were, “May the Lord see what they are doing and avenge my death!”

Abel’s blood cried out from the ground in Genesis 4:10.

In this context, for Jesus to say that this generation was going be held responsible for the murder of all God’s prophets was huge. Jesus was warning the Jewish people of unimaginable horrors. He was telling his audience that their generation would experience bloodshed at a level beyond any of their worst fears. The sorrow was coming because of the terrible sins of their ancestors from Cain until that day.

The only way to escape such a disaster is to repent. Some people struggle with the idea that they have to repent for things they did not do. It seems especially hard when Jesus appears to be saying that each one of us needs to repent all the way back to Cain. You need to repent for all of your ancestors. I need to repent for all of my ancestors. I don’t think this means that you have to know each one by name and repent specifically. Jesus never said that.

When you have invited a guest to share his theology with you, you might be shocked when he warns you in such dramatic fashion of what is coming. It can be very upsetting and perhaps it might seem unfair when you have been trying to live a holy life.

Jesus is not finished yet. He now turns from the religious leaders to the lawyers.

It is to be supposed that an expert in the law would increase people’s knowledge of the law.

For Jesus to accuse them of making it harder to understand was a serious charge.

All of their complicated and detailed explanations actually hid the simple meaning of God’s message to the people, he said.

Jesus says they have taken away the key. The door is locked. What door is this that needs a key of knowledge? It is the door to know God. It is the door through which people are able to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Jesus accuses the experts in religious law of actually removing the key by which people could enter God’s kingdom.

They won’t enter themselves, which is bad enough. But they actively keep others out. Instead of the key to heaven, they give people heavy burdens to carry. The people are weighed down with useless laws and regulations while the key to the Kingdom of God is hidden.

Jesus has now made them Pharisees very angry, indeed hostile. Jesus has unmasked them. He has exposed them in front of the people. Instead of repenting and admitting their sins, they attack the Messiah and try to defend themselves. They tried to provoke Jesus into saying something they could use against him.

The truth of God’s kingdom is not complicated. Rules made by men are not important. Jesus shows us around this table that matters of character are important. Being holy and true is important. Pure hearts are important. Humility is important.

When you are standing for God’s Kingdom and speaking the truth in love, people will attack you and seek all manner of ways to make you look bad. Keep on loving and speaking the truth in love. Keep on spreading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and never respond to their taunts. Jesus didn’t react. He didn’t defend himself. He didn’t get into personal attacks. Jesus just spoke the simple truth and pointed out sin so that people could be set free. He always did it with love. Jesus wanted them to repent and be saved. Jesus still wants these kinds of wicked people to come into his kingdom.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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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wkward meal

Luke 11:37–54

Today, let’s have a look at what it was like to have a meal with Jesus.

This story about a meal comes in the middle of Luke’s Gospel. That seems rather suitable place as having meals with people seems to have been an important part of the work that Jesus did.

Eating together is in some ways symbolic of the Kingdom of God, with the closeness and sharing. When Jesus walked the dusty trails of Palestine, it was the custom to eat two meals day. The major meal was supper, usually eaten after work had ended and the sun gone down. At that time of day it was cool and they could relax. Evening was also when the Greeks and Romans ate their main meal.

On this occasion, Jesus has been invited to eat by one of the Pharisees who was listening to his outdoor speech. It was the first meal of the day to which he was invited. That’s the meaning of the Greek word aristao. It was a small meal that we might call brunch, breakfast and lunch rolled into one, eaten at noon.

The focus of these meals was not eating as you might expect. It was in fact an occasion for talking. These types of meal were common at the time. The purpose was to sit around, or perhaps recline, and listen to moral instruction. It came to be called a ‘symposium’.

Jesus was invited by the Pharisee not for food, but to talk to a group while they shared a small meal. It was not strange that Jesus started to give a sermon in the middle of breakfast, that was partly why he had been invited. Another reason may have been to get him to say something incriminating. If they expected Jesus to give a quiet talk, the Pharisee and his friends were probably surprised by the aggressive words and actions of Jesus.

The host would be seen by society as an honourable man. He probably had invited prominent teachers on many occasions so that they could show off their education.

To start with, Jesus didn’t wash his hands before the meal. How many of you would be upset by that behaviour in your home? Polite society and important guests all washed their hands according to the tradition. It was good manners, and it showed respect for the Jewish religion.

The fact is, however, that this was not a rule from the Old Testament. It was a strong tradition that had become somehow very important. Perhaps we have similar feelings about some of our church traditions that aren’t actually in the Bible. We can feel most upset when they are ignored. For example, some people feel disturbed by women in church who don’t wear a veil or don’t cover their head.

Jesus began his teaching at the door, by rejecting the traditions of man.

His host was amazed to see that he sat down to eat without first performing “the hand-washing ceremony required by Jewish custom”. (verse 38)

Jesus then started to talk about the cups and dishes on the table.

The Pharisees were not only scrupulous about hand washing but also about ritual purity. They washed themselves in ritual baths. And they washed their plates and cups in ritual baths.

The majority of Pharisees belonged to the school of Shammai. They taught that the outside of a cup could be clean even if the inside was dirty. The minority view, held by the followers of Hillel, was that the inside of the cup had to be cleaned before the outside or it could never be wholly clean.

Jesus agrees with Hillel and then applies the rule to the people around the table. By extension, this applies to all of us. Jesus says that unless the inside is clean, the whole can never be clean. Jesus tells them that they are “filthy—full of greed and wickedness!” They’ve washed their hands scrupulously, and their cups and plates, but they are filthy. Jesus has of course done none of these rituals and yet he is perfectly, spotlessly clean. Jesus has a clean heart, the rest of us have dirty hearts. The other people around the breakfast table with Jesus knew he was telling them that they had dirty hearts.

Perhaps they were prepared to answer back, or maybe just thinking to themselves how ridiculous that idea was. After all, they tithed diligently, down to the correct proportion of their herbs. The law of the Old Testament does not command anyone to tithe their garden herbs. The Pharisees would enjoy long debates on such topics as whether a herb was a food or not, and thus what laws of the Old Testament it was subject too.

In their meticulous observation of the Old Testament law, the Pharisees were also very strict about social hierarchy. In public places and the synagogues, people were seated according to their rank. Their rank was determined by, among other things, their knowledge of the law. The custom of the day dictated particular greetings for people of different rank.

Jesus is being quite offensive by accusing such superior people of being unclean. “You ignore justice and the love of God,” Jesus says. They are focusing on the wrong things. They are spending much to much time and effort arguing about things that are not even commanded in Scripture and ignoring the important things that are commanded.

All of us need to take a moment to look at our own lives in case we are doing the same.

Jesus makes the point that what they are doing makes them no different from a hidden tomb.

A person was thought to be defiled by any contact with a grave or a dead person. A corpse could spread ritual impurity faster than anything. These Pharisees taught that you could become ritually impure if even your shadow touched a corpse or a grave. A hidden grave was therefore a serious problem. A person could become impure by accident. To prevent this from happening, tombs were whitewashed.

Jesus says that on the contrary the Pharisees do not have whitewash.

In verse 44, Jesus tells them straight. “You are like hidden graves in a field. People walk over them without knowing the corruption they are stepping on.”

When a prominent lawyer complains that he has been insulted, Jesus goes even further.

The job of the teachers of the law was to guide people in the ways of obedience to the law. It is part of the job of a teacher to help people understand and clear up confusion. Instead, says Jesus, these people are obscuring the truth of God’s ways with all kinds of petty and burdensome rituals and customs of their own making. Jesus says they “crush people with unbearable religious demands” and do nothing to help them.

That’s what it’s like to have a meal with Jesus.

It isn’t about the food. Our meals should also be times of talking and sharing, seeking the deeper ways if God. If Jesus does come and sit down with us, he is likely to say things that make us feel uncomfortable. If we listen humbly and obey him, we will learn so much and perhaps we shall no longer be a corruption influence in this world but a blessing.

Filled with the Holy Spirit, purified inside, we are learning to focus not on the burdensome rituals made by man but on what Jesus said was important – justice and the love of God.

God is not calling us to be experts in religious law, but experts in love and fellowship. We are called to be holy priests who minister to all God’s people. Let’s see if this next week we can discern in our own lives areas where we have wrong priorities or wrong focus.

Maybe you can invite Jesus to eat with you, ask the Holy Spirit to be candid in his evaluation of your own purity. Ask him to give you some advice on how to live a Kingdom life.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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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식사

누가복음 11:37-54

오늘은, 예수님과 식사를 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지 한 번 살펴봅시다.

이 식사에 관한 이야기는 누가 복음의 중간부분에 나옵니다. 적당한 위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것이 예수님의 사역중에 중요한 부분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친밀감과 공유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중요한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먼지 가득한 길을 다니실때 하루에 두 끼를 먹는 것이 통상적이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식사는 저녁이었고요, 주로 일을 마치고 해가 저물었을 때 먹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의 그 즈음은 시원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었지요. 저녁은 또한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그들의 가장 거창한 식사를 하는 때 이기도 합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바리새인으로부터 식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야외 설교를 들었던 사람에게 말입니다. 그 초대된 식사는 예수님의 그 날의 첫 식사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어로 ‘아리스타오’라는 의미 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침 겸 점심으로 정오쯤에 먹는 브런치라고 하는 간단한 식사자리 입니다.

이 식사의 중요한 점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많이 먹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이야기를 위한 자리입니다. 이런 종류의 식사는 주로 정오쯤에 이루어집니다. 그 식사의 목적은 주로 함께 앉아서, 혹은 아마 편하게 기대 앉아서 도덕적은 가르침을 듣는 것입니다. 이 것이 나중에 ‘심포지엄’이라고 불리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바리새인에게 초대받았지만, 식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간단한 식사를 나누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 위해 초대 받은 것입니다. 아침식사를 하는 중간에 설교를 시작하신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사실 초대된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또다른 이유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책잡히게 하는 말을 하게 하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의 조용한 말씀을 듣기를 기대했다면, 그 바리새인과 그의 친구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공격적인 언어와 행동에 놀랐을 것입니다.

집 주인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었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아마도 다양한 뛰어난 교사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교육을 자랑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은 식사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중에 얼마나 많으신 분들이 댁에서 그런 행동에 화를 내십니까? 예의바른 사회의 중요한 손님들은 모두 전통에 따라 그들의 손을 씻습니다. 그것이 좋은 매너이며, 유대 종교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구약에서부터 오는 원칙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매우 중요하고 강한 전통이 되기는 했습니다. 아마도 우리 역시 성경에는 실제로 나와 있지 않지만, 교회의 전통에 따라 비슷한 감정을 가지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전통들이 무시되어지면 대개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베일을 쓰지 않거나 그들의 머리를 가리지 않으면 약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문에 들어서자 마자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바로 사람의 전통을 거절하시면서 말입니다.

집 주인은 예수님의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하려 앉으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잡수시기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8절)

예수님은 그러고 나서 테이블 위의 컵과 그릇에 대해 이야기하시기 시작합니다.

그 바리새인들은 손 씻기에 대해서 꼼꼼할 뿐만 아니라 의식적인 순수함에대해서도 꼼꼼했습니다. 그들은 의례에 따라 그들을 씻고, 또한 의례에 따라 컵과 그릇을 씻었습니다.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샤마이 학교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만약 컵의 안쪽이 더럽다 할지라도 컵의 바깥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힐렐을 따르는 자들은, 소수의 입장이지만, 컵의 안쪽은 바깥쪽 이전에 깨끗해져야 하고 그렇지 않아면 전체적으로 깨끗해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힐렐의 입장에 동의하였고, 그 규칙을 테이블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하셨습니다. 확대하면,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면이 깨끗하지 않으면, 전체는 절대 깨끗해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더러운-탐욕과 사악이 가득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손을 매우 꼼꼼하게 씻었고, 그들의 컵과 그들의 그릇 또한 깨끗하게 씻었지만, 그들 자신은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론 이러한 의식적인 것들을 하지 않으셨음에도 완벽하시며 흠이 없이 깨끗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외 우리 모두는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들이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하려고 준비했을 것입니다. 혹은 아마도 단지 그 생각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지를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들은 부지런히 십일조를 했고, 그들의 정원의 허브(향초)의 정확한 비율까지도 지켜 십일조를 했습니다. 구약에서는 어느누구에게도 정원의 허브까지 십일조를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허브 또한 음식인지 아닌지 그러한 주제에 대한 긴 토론을 즐기곤 했으며, 그래서 구약이 어느정도까지의 법칙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도 토론을 즐기곤 했습니다.

그들의 구약에 대한 꼼꼼한 관찰의 결과로서, 바리새인들은 또한 매우 엄격한 사회 위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공장소와 회당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지위에 따라 앉았습니다. 그들의 지위는 무엇보다도 율법에 대한 그들의 지식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관습은 다른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인사법을 사용하도록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높은 위치의 사람들을 깨끗하지 못하다고 고발하시면서 매우 공격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무시하는 자들이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성경에 나와있지도 않은 것에 대해 논쟁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 정작 중요하고 성경에서 명령한 것은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의 삶을 잠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하는 행동이, 그들을 숨겨진 무덤과 차이가 없다고 콕 집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무덤이나 죽은 사람과 접촉한 사람은 그 당신에 더럽혀졌다고 생각되어졌습니다. 시체는 의례적으로 불결함을 다른 어떤것보다 더 빠르게 퍼뜨릴 수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심지어 그림자가 시체나 무덤에 닿기만 해도 의례적으로 불결해진다고 믿어왔습니다. 숨겨진 무덤이라는 것은 그러므로 아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사람이 불시에 갑지가 불결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덤을 표나게 하얗게 칠하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반대로 바리새인들이 깨끗해지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4절에 보시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숨겨진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한 유명한 율법교사가 자신도 모욕을 받았다고 불평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심지어 더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교사들의 직업은 사람들을 법을 따르는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분명한 율법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율법교사의 역할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이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무수히 많은 부담스러운 의례와 관습으로 하나님의 진실의 길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견딜 수 없는 종교적인 요구로 사람들을 괴롭히며, 오히려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음식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식사는 이야기하며, 나누며, 하나님의 더 깊은 방법들을 찾아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앉아계시다면, 주님은 분명히 우리를 불편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말씀들을 하실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겸손하게 듣고 그 말씀을 따른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며 아마도 더이상 이 세상에 악한 영향이 아닌 축복만을 끼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령충만으로, 안으로부터 순결하여져서, 우리는 사람들이 만든 의식에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종교적인 법칙에 전문가가 되도록 부르신것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에 전문가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살피는 성직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이번주 한주간 우리가 우리의 삶의 부분에서 잘못된 우선 순위과 잘못된 포커스를 맞추고 살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예수님을 여러분의 식사에 초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님에게 여러분의 순결함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여쭈어 보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해 보십시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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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iceless value of knowing Christ

Philippians 3:1–11

Today we are looking at Paul’s letter to the Philippians. This letter was written while Paul was under house arrest in Rome. He wrote to thank the believers in Philippi for two special gifts that they had sent him, money and a helper. It is an unusual letter for Paul. Usually Paul wrote letters to correct problems or to solve a crisis. In this letter he is writing to friends and talking about their relationship.

The Christians of Philippi had a special place in Paul’s heart. Philippi was the first city in Europe in which Paul started a church. He had a deep love for the believers, and they for him. It was the only church that gave Paul financial support for his ministry.

Paul’s letter to the Philippians is a rather personal letter filled with personal details that reflect his deep feelings of love and gratitude towards them. Like the letters we write, it is chopped up into bits and pieces. Now a section about shining brightly for Christ and then some remarks about Timothy and how he genuinely cares about their welfare. Next some words about Epaphroditus, who was so ill he nearly died. He says how grateful he was for Epaphroditus, because he did for Paul what his friends in Philippi couldn’t do from far away.

Paul’s love for this colony of heaven and for his friends shines through his letter.

In Philippians chapter three, Paul turns to his own story. First he warns about the Jews who still insist on circumcision, rudely calling them evil dogs. I don’t think we are allowed to talk like that these days. Paul aligns himself with the Gentile believers by saying only they are truly circumcised while the Jews who reject Jesus are just uselessly cutting themselves. Then from verse 5 Paul shares his testimony.

He reminds his friends in Philippi how he once was just like those Jews, but now he is a different person. In fact he was superior to many of them. Paul was circumcised when he was eight days old. Paul is a pure-blooded Jew of the tribe of Benjamin, a real Hebrew. Paul was a Pharisee, who lived in strictest obedience to the Jewish law. He was so zealous that he harshly persecuted the church. And he obeyed the law without fault.

All these things he valued highly before he was born anew. In Hebrew society, he was held in high esteem because of these things. Paul, who has called such Jews dogs in verse two, now calls these qualifications ‘skubalon’. I apologise for using a rude word, but Paul used it first. Skubalon means dog excrement.

Paul describes how his thinking has changed. He sees things differently now. Once it seemed so important. He had all these good deeds he would hold up to God expecting to get praise.

Now he sees that it was like proudly holding up a bowl of your own excrement to God.

This change in thinking that Paul expresses is what we call repentance. He is showing how he has repented. Repentance is a critical step in becoming a follower of Jesus and a citizen of the Kingdom of God. Just like Paul, we have to change to way we think about things. We have to change the way we think about our qualifications and our good deeds. We must stop asking for God’s approval for our actions. Did you do some great thing for God? Are you unhappy that you haven’t been given the recognition that you feel you deserve? Repent! Change your thinking. Your own efforts, even if they are for God, are like dung.

What then should be our new way of thinking? Paul says in verse eight.

“Yes, everything else is worthless when compared with the infinite value of knowing Christ Jesus my Lord.”

The new way, the way of the citizen of the Kingdom of God, is to know Jesus.

Paul had never met Jesus except in a vision. Paul had never seen the face of Jesus or felt the touch of his hand. Yet Paul still says “the infinite value of knowing Christ Jesus.” Paul did not say “the infinite value of going to heaven when I die” or “the infinite value of making the world a better place.” He did not say “the infinite value of helping the poor and fighting for social justice.” Paul did not even say “the infinite value of serving God.”

The one thing that is more valuable than anything is knowing Jesus. That is where we find ourselves when we accept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What does it mean to know Jesus? Know is a relational word. It means to live in God’s presence. It has nothing to do with working for God. We get to know Jesus by talking to him and listening to him. ‘Know’ is a word of experience. That’s why the Bible uses the word ‘know’ for the act of sexual intercourse. It isn’t a word for intellectual knowledge alone such as you might get from a book. Paul also says of knowing Jesus in verse 8: “so that I could gain Christ 9and become one with him.”

To know Jesus means to have a relationship with Jesus. It means you are connected to Jesus and share his feelings and his thoughts. That is what is of infinite value. That is what we gain when we change our thinking and let go of all that other garbage we once thought was important. The Greek and Hebrew ideas of knowledge were different. We often have the Greek idea, when as followers of the Hebrew Messiah we should have the Hebrew concept of ‘know’.

The Hebrew view and thus the Bible view is that to know God is not to be aware that he exists. It was assumed everyone was aware that God was real. To know meant to recognize God for who and what he truly was. To know Jesus implies to accept he is the Messiah and submit to that reality. To know requires experience, such as the experience of his love. To know is to have spiritual discernment above mere reason or faith. And so Paul can say in verse 10: “I want to know Christ and experience the mighty power that raised him from the dead.”

Connected to this is another word Paul uses.

Verse 6 “And as for righteousness, I obeyed the law without fault.”

The key word here is ‘obeyed’. In verse 9 Paul says, “I no longer count on my own righteousness through obeying the law.” Just before this in his letter to the Christians in Philippi in 2:12 Paul had written, “Work hard to show the results of your salvation, obeying God with deep reverence and fear.”

John 3:36 says, “Anyone who doesn’t obey the Son will never experience eternal life.”

Obey is one of those words you think you know the meaning of. We believe that we should repent. We have learned the excellence of knowing Jesus. And we are told we should obey.

The obedience the Bible is teaching us here is assumed to be motivated by a compelling love of Jesus, who we know. It isn’t an obedience born out of fear or duty or guilt. It is ruled by freedom and love.

To help us think of obey in a new way, and escape the legalistic way of thinking, try this. Instead of obey use the word ‘respond’. We are invited now not to obey the Gospel but to respond to the Gospel. We are invited to respond to Jesus. We are being asked to respond to the truth that Jesus is the king of the Kingdom of God. That is how to obey.

Adam and Eve in the Garden of Eden turned away from God and ignored him. That was disobedience. To obey is to accept and pursue a relationship with Jesus. It is not to pursue a literal interpretation of written laws while ignoring God. That is disobedience. That is the sin of so much of Israel’s history. It is the sin of much of church history.

God’s call to you today is to respond to him. Change your ways of thinking. Get to know him. And Paul’s promise is that doing that will make everything that came before look about as enticing as dog excrement.

We are not invited to say special words or perform worthy tasks. The Good News of Jesus Christ is that we are invited to enter into a relationship of love that will change us totally. God has come to us, and all we have to do is to respond. Jesus came down to earth, and he spoke to us and walked among us. All we have to do is respond to Jesus. He removes our sin and brings us into the Kingdom of God. We will know him more as we obey him more. Not by following rules, but by responding to his outreach of love. Jesus is our awesome saviour.

He has prepared a feast for us and sent out the invitations. Let go of all that is excrement in your life and seek only to know Jesus. It is worth it. It’s so very worth it.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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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최상의 가치

빌립보서 3:1–11

지금 우리는 빌립보서에서 바울의 편지를 보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바울이 로마에서 체포되었을 때 쓰여진 것입니다. 그는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 보냈던 두가지 특별한 선물, 돈과 조력자에 대해 감사하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이것은 바울에겐 보기 드문 편지입니다. 보통 바울은 문제를 고치고 해결하기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애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의 교인들은 바울의 마음속에 특별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빌립보는 바울이 유럽 최초로 교회를 세운 도시였습니다. 그는 신자들을 깊이 사랑하였고, 그들 역시 바울을 사랑했습니다. 이 교회는 바울의 사역에 대한 재정 지원을 해준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로 보낸 편지는 그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개인적인 세부사항들로 가득찬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우리가 쓰는 편지와 마찬가지로, 그의 편지도 몇 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밝히 밝히는 부분, 디모데에 대한 약간의 의견 그리고 그가 그들의 생활에 대해 진정으로 염려하는 부분. 너무 아파서 거의 죽을뻔 했던 에바브로디도에 관한 부분. 그는 에바브로디도에 대해 얼마나 감사했는지 말합니다. 빌립보의 친구들이 멀리있어서 할 수 없었던 것을 그가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천국도시와 그의 친구들에 대한 바울의 사랑은 그의 편지를 통해 빛납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 그는 여전히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을 사악한 개라고 부르며 경고합니다. 요즘에는 이렇게 말해선 안되지만 말이지요. 바울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은 단지 쓸모없이 잘라냈지만, 본인은 진실로 할례를 받았다고 말하며 자신을 이방인들과 일치시킵니다. 그리고 바울은 5절부터 그의 간증을 나눕니다.

그는 빌립보에 있는 그의 친구들에게 그가 한때 그 유대인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으나 지금 그는 다른 사람이란 것을 상기시킵니다. 실제로 그는 많은 유대인들보다 월등했습니다. 바울은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인 베냐민지파의 순수혈통입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유대인 율법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도 열광적이며 가혹하게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흠 없이 율법에 복종했습니다.

그가 새롭게 태어나기 전에는 자신의 이러한 것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히브리 사회에서 그는 이러한 일 때문에 크게 존경 받고 있었습니다. 2절에서 유대인 개들이라고 불렀던 바울은 이제 이것들을 ‘스쿠발론’이라고 부릅니다. 무례한 말을 써서 죄송합니다만, 바울이 이 말을 최초로 썼습니다. 스쿠발론은 개의 배설물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합니다. 그는 이제 사물을 다르게 봅니다. 한때 그것은 정말 중요하게 보였던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칭찬 받기를 기대하면서 모든 선행을 했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 당시 행동들이 마치 자랑스럽게 자신의 배설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표현하는 이 생각의 변화를 우리는 회개라고 부릅니다. 그는 그가 어떻게 회개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회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되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의 자격과 선한 행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을 요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했습니까? 당신이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인정을 못 받아 불만이신가요? 회개하세요! 생각을 바꾸세요. 그것들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여러분 자신의 노력은 배설물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은 어떠해야 할까요? 바울은 8절에서 말합니다.

“Yes, everything else is worthless when compared with the infinite value of knowing Christ Jesus my Lord.”
“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새로운 방식, 즉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생각하는 방식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은 환상을 빼고는 예수님을 결코 만난 적이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얼굴을 결코 본적이 없으며 그의 손길을 느낀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전히,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무한한 가치”를 말합니다. 바울은“내가 죽어서 천국에 가는 무한한 가치”또는“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무한한 가치”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는 무한한 가치”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하나님을 섬기는 무한한 가치”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들일 때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안다는 것은 관계형 단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애기하고 그에게 귀 기울임으로써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앎’은 경험의 단어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관계에 ‘앎’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책에서 얻게 되는 지식만을 위한 단어는 아닙니다. 바울은 또한 8절에서 예수님을 아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예수님을 아는 것은 예수님과 관계를 가지는 걸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에게 연결되어 그의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무한한 가치입니다. 우리 생각을 바꾸고 한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다른 모든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릴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앎에 대하여 그리스인들과 히브리인들은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그리스인들의 생각으로 ‘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히브리인으로 오신 메시아를 따르는 우리들은 히브리의 개념으로 ‘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히브리 관점과 성경의 관점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실재한다고 알고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진정으로 누구이며 무엇을 했는지 알아야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그가 메시아인 것을 받아들이고 그 사실에 순종하는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안다는 것은 예수님게 사랑을 받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안다는 것은 단지 이성이나 믿음보다 더한 영적 분별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서“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사용하는 다른 단어와 연결됩니다.

6절,
“And as for righteousness, I obeyed the law without fault.”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여기서 핵심단어는 ‘순종’입니다. 9절에서 바울은“나는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더이상 내 자신의 의에 의지하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이 바로 전인 빌립보 2:12절에서 바울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썼습니다.

요한복음 3:36절에서 말합니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순종은 여러분이 그 의미를 알고 있다는 생각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잘 알게 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순종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순종은 우리가 아는 예수님의 강력한 사랑에 의지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의무감 또는 죄책감에서 태어난 순종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유와 사랑으로 행해집니다.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순종하고, 율법적인 방식을 피할 수 있도록 이 방법을 시도해 보세요. 순종하는 대신에 ‘응답’이라는 말을 사용해 보세요. 우리는 이제 복음에 순종하지 말고 복음에 응답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는 사실에 응답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순종하는 법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그를 무시했습니다. 그것은 불순종이었습니다. 순종하는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받아들이고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율법의 해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순종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의 많은 부분에 대한 죄입니다. 그것은 교회사에서 많이 있었던 죄입니다.

오늘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에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 보세요. 그를 알고자 합시다. 바울은 이것이 전에는 매력적으로 보였던 모든 것들을 개 배설물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말이나 가치있는 임무를 행하도록 초대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를 전적으로 변화시키는 사랑의 관계에 우리가 들어가도록 초대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응답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와 함께 걸어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응답만 하면 됩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없애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십니다. 우리는 그에게 더욱 순종할 때 그를 더 잘 알게 됩니다. 규칙을 따르는 게 아닌, 그의 사랑의 실천에 응답함으로써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멋진 구원자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잔치를 준비하고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배설물인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을 알기만을 구하세요. 그것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입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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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들

마태복음 4:1–17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걸 알고 있었지요, 그렇지요?

“It has been said that democracy is the worst form of Government.”

윈스턴 처칠 경은 과거에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형태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윈스턴이 1947년 11월 11일 그의 연설에서 인용한 내용을 모릅니다. 그는 계속해서 덧붙였습니다, “때때로 시도된 다른 모든 정부 형태를 제외하고…”

예수님은 축복받은 민주주의를 선언하러 오시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금식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을 물리치고 세가지 유혹을 극복하신 후에 하신 첫번째 일은 새로운 정부시스템의 도래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었습니다. 그 복음은 한 왕국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5절에서 이 복음을 선언하셨습니다.

“The time promised by God has come at last!” he announced. “The Kingdom of God is near! Repent of your sins and believe the Good News!”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이것이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신 방식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가 사역을 마무리한 방식도 있습니다. 예수님 부활후 40일 동안, 그는 많은 시간을 제자들을 가르치며 보냈습니다. 사도행전 1:3절은 이 시기 동안 예수께서“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애기하셨다고”적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오신 목적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교하시면서 떠났습니다. 바울은 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많은 애기를 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고난을 견뎌야 한다.”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8장에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인생의 마지막 기간을 보낼 때“하나님 나라에 대해 설명하고 증거한”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나라는 복음이 의미하는 모든 것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무시해선 안됩니다. 그것이 중심입니다.

마태복음 9:35절은,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고 말합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에수님은 우리를, 민주주의국가나 다른 형태가 아닌 천국의 시민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다른 모든 방식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거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주어집니다. 이 왕국은 무엇인가요?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요? 성경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예수님은 이걸 어떻게 정의하셨나요?

마가복음 4:26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13:31절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예수님은 마태복음의 다른 곳에서도 말씀하십니다 : “천국은 마치 여자가 빵 만들때 사용하여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이런 식으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는 매번“천국은 마치…” 식으로 천국에 대해 결코 정의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대한 우리만의 정의를 내려 봅시다. 제가 제안하는 방식은 그것을 세가지 정의로 좁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가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왕국에서 실재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통치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실재하시면서 왕국에서 통치를 하셔야 합니다. 세번째,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왕이 다스리는 백성들 말이지요.

다른 방식인 알바 맥클레인의 표현을 인용하면, 하나님 나라에는 권위를 가진 통치자와 통치되는 사람들 그리고 통치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비슷한 모습은 에덴 동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고 하나님은 그 땅에서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왕국은 사탄이 하나님의 권위를 훔쳐갔을 때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왕국을 세우셨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왕국은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애굽기 19:6절)

실제로는 이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또한 하나님의 왕국을 잃어버렸습니다. 로마서는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다른 민족이 하나님을 모독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음 계획에 착수하시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그의 왕국 백성으로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들을 에클레시아(ekklesia)로 부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 나라에서 통치를 받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의 나라로 부름받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사장인 것처럼 여러분도 제사장으로 부름받았습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계시록1:6절에선 말합니다.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의 왕국은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주권 아래 살고 있으며, 그분에 의해 통치되고,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것을 세상에 보여줍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제사장이 되는 걸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여성분이시면요.

하나님 왕국이 충성스런 제사장들과 거룩한 백성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요? 이 맥락에서 제사장이란 하나님과 그 신하들과 함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천사들입니다. 또한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했던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그의 나라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 일을 하고 있는가요. 여러분이 자신을 돌아볼 때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고, 그에게 순종하는지 얼마나 확신하나요?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할 때 그에게 불순종하게 되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떠나게 됩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에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사나요? 교회에는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살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을 도와주는 권력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지 않습니다. 오직 한 분의 왕과 그의 신하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다는 한 징표는 우리가 서로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징표들은 민족주의, 연령차별주의, 그리고 범죄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겐 음식이 주어지고, 헐벗은 사람들에게는 옷이 주어지고, 아픈 사람은 치료를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다른 나라와 연결된 끈을 끊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선거도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회개하고, 즉 우리와 묶여진 다른 모든 나라들과의 끈을 없애야 합니다. 다른 모든 충성심을 버려야 하며,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세상적인 나라를 버려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도록 부름 받습니다. 이는 로마가 그들을 싫어하고 죽였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에게 순종할 때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왕국으로 옮겨지고 제사장이 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주변에서 새로운 왕국의 징표들을 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섬길 때 다른 이들도 하나님께로 회심하고 징표를 보게 됩니다. 매일 우리가 이와 같이 살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그의 나라를 실현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의 거룩한 제사장들과 함께 일하면서 하나님의 영을 통해 이 세상에 들어옵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러분의 사랑과 순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Amen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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