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

마태복음 7:13–23

한 걸음 물러서 큰 그림을 보는 것이 좋은 때가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위해 이것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순간에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닌) 즉각적인 상황만 보기 쉽습니다. 대신에 저는 제 삶의 자리에서 제 자신을 재점검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성경에서도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느헤미야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것이 어떻게 행해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느헤미야 8장에서, 에스라 제사장은 사람들 앞에서 낭독합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에스라 제사장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에 나왔다. 거기에는,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사람을 모두 나와 있었다.”

그 달 이십사일에(10월 31일),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모였습니다. “모두들 제자리에서 일어나서, 낮의 사분의 일은 주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고, 또 낮의 사분의 일은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주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그 이후 우르에서 아브람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에 대해서 시작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의 자녀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가 고소당하고 공회에서 서서 설교했을 때에도 동일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는 2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부형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주하기 전에, 아직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녀서 말씀하시기를.”

그는 솔로몬에 이어 예수님까지 계속해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성경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우리가 배운 모든 이야기들은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의 일부분입니다. 우리도 그 이야기의 부분입니다. 우리의 삶은 역사속에서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래로 그 분이 행하신 큰 그림의 일부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일은 우리가 상황을 잊어버렸을 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노아에게는 신실한 아들이 하나 있었으며, 그는 노아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노아에게 그렇지 않은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의 자손은 저주 받았습니다. 아브람은 신실한 아들 샘의 후손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과 아보리 족속은 함의 아들인, 저주 받은 가나안의 계보에 있었습니다.

가장 간단하게 여기에 소개된 것은 선과 악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인과 아벨만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이 두 힘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마태는 예수님의 부활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18절 말씀 –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예수님의 승리는 사탄에게 빼앗겼던 권세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동산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여라.”’

선과 악의 세력, 또는 하나님과 사탄의 군대는 이 땅을 움직이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군대, 하나님의 편에서 싸우도록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 땅이 바로 가나안이었습니다. 그곳은 호전적인 사람들과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분이 통치하시는 땅을 세우기 위해 일하시는 바로 그 오래된 그리고 친숙한 이야기의 첫 출발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을 인류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에 의해 온 세상이 움직여 나가도록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사탄의 지배에서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전 세계를 통치할 사람의 권세를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새롭게하고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된 가정이고, 영원히 우리의 가정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 가운데 부르신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악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첫번째 도전 중 하나는 그의 백성을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구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구별시키는 것은 다소 어려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그들과 섞이게 되었습니다. 소돔으로 간 롯은 다소 극단적인 예 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열두지파중 하나는 가나안 족속의 혈통이었습니다. 야곱의 둘째 아들인 시므온은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 애굽으로 이동시키셨습니다. 그곳에서는 목자들에 대한 애굽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시키기에 훨씬 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군대를 준비시키기 위해 수백년동안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준비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백성을 애굽을 벗어나 광야로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기간동안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그들의 땅을 주시겠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통해 온 인류가 축복받게 될 것이라고 계속해서 상기시켜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3절 –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미 다른 사람들로 가득찬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그 땅의 악한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방식과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 탄생하실 때까지 이 전쟁은 격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온 땅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늘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유혹에 빠졌고 계속해서 그들의 길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볼 때, 이전의 패턴을 따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모세처럼, 노예가 되고 무시되는 사람들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옛 왕국에서 벗어나 새로운 왕국으로 믿는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대까지, 이스라엘은 그들의 소명을 이루지 못했다. 복음은 이스라엘이 이방인(즉 로마임)의 지배하에 있는 때에 시작되었다.

요한은 요한1서 5장19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온 세상은 악마의 세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 사람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을 때, 그 땅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상기시켜줍니다. 이것은 저에게 질문을 던져줍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써 우리는 히브리 사람들과 나란히 서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를 지나가거나, 약속의 땅을 정복할 때가 되었습니까?

저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광야의 시기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가면, 죄 없는 땅인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미 요단강을 건너 갔다면,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땅을 주장해야 할 때입니다. 요한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곳은 죄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일하셔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도록…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구원하시는지에 대한 이야기인가요?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여 천국으로 이르도록 하는 하나님의 노력의 한 부분인가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으로부터 그분의 통치하심을 어떻게 회복시키시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한 부분인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그분의 형상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다르셔야 합니다. 우리는 기후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동물을 보호하고, 바다는 깨끗하게 유지하며, 오염을 멈추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기에 필요한 일을 해야합니다.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약속한 땅에 살고 있지만, 완전히 정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처럼 되도록, 즉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도록 권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였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그 기도처럼 해야 합니다. 우리와 다른 세상의 왕국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러번 그의 나라는 이 땅에이 이미 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움직임이며, 이것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그분의 통치하심이 임하시는 그 때에 끝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분의 통치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죄를 몰아내는 하나님의 능력의 일부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But we are looking forward to the new heavens and new earth he has promised, a world filled with God’s righteousness.” (2 Peter 3:13)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

Amen 아멘

Advertisements
Posted in Sermon - Korean | Tagged , , | Leave a comment

The way to God’s kingdom

Matthew 7:13–23

There are times when it is good to step back and look at the big picture. I need to do this for myself. It is too easy for me to see only my immediate circumstances at this moment. Instead there are times when I need to remind myself of my context, my place in life.

The Bible does this sometimes as well. For example, the book of Nehemiah tells how this was done for the nation of Israel. In chapter eight, Ezra the priest reads to all the people. “On October 8 Ezra the priest brought the Book of the Law before the assembly, which included the men and women and all the children old enough to understand.”

They all assembled again on October 31. “They remained standing in place for three hours while the Book of the Law of the Lord their God was read aloud to them. Then for three more hours they confessed their sins and worshiped the Lord their God.” After that, the story of God and his people was told, starting with God calling Abram out of Ur.

Stephen did the same thing in Acts 7, when he was accused and addressed the high council. He started in the same place, saying in verse 2: “Brothers and fathers, listen to me. Our glorious God appeared to our ancestor Abraham in Mesopotamia before he settled in Haran.”

He continued all the way through Solomon and up to Jesus, at which point they killed him.

All of the people in the Bible and all of the stories we have learned are part of one big story. We are part of that story. Our lives are not isolated in history. Our lives are part of a great picture of what God has been doing since he created Adam and Eve. What God is doing today in our lives is not part of another story, although it can look like that when we forget the context.

Noah had a son who was faithful, who followed in his ways. He had another son who wasn’t and that son’s son was cursed. Descended from the faithful son, Shem, came Abram. From the line of the cursed grandson Canaan, son of Ham, came the Canaanites and the Amorites.

At its simplest, what we are introduced to here is the story of the battle between good and evil. It’s a story as old as Cain and Abel. What are these two forces fighting over?

Matthew describes the first words of Jesus to his disciples after his resurrection in Matthew 28:18 – “I have been given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

The victory of Jesus was to reclaim the authority that had been stolen by Satan.

When God created Adam and Eve, he gave them authority over the garden. Genesis 1:28 – ‘God blessed them and said, “Be fruitful and multiply. Fill the earth and govern it.”’

The forces of good and evil, or the armies of God and Satan, are fighting for control of the earth. What we see with Abraham then is God calling a man to join his army and fight on his side. Abraham is the father of faith because he agrees to take God’s side. God for his part promises to give control of some land to Abraham.

That land turns out to be Canaan. It is filled with warlike people. That starts a long and familiar story of how God worked with sinful people to establish a land that accepted his rule.

God has given the whole earth to the human race. It has always been God’s intention for the world to be ruled by humans made in his image on his terms. Jesus in his victory over Satan now has restored the authority of man to rule the whole world. God will ultimately renew and restore it because it always was, and still is God’s intended home for the human race, and will be our home forever.

The people who God recruited into his service were all sinners, and we see how evil kept derailing God’s plans. One of God’s first challenges was to separate his people from the people of the world. He wouldn’t let the son of Abraham marry a Canaanite woman.

Keeping them separate seems to have been rather difficult, and the peoples were inclined to mix rather too easily. Lot moving to Sodom is perhaps an extreme example, but at least one of the 12 tribes of Israel had Canaanite blood. Simeon the second son of Jacob married a Canaanite woman.

God moved them all to Egypt, where it was much easier to keep them apart because of the extreme prejudice of the Egyptians against shepherds. And so God worked for a long time through hundreds of years to prepare his army. When they were ready, he brought them out of Egypt into the desert.

He led them through the desert and back to the promised land. All along the way, God taught them the importance of faith and obedience. And he kept reminding them that he was going to give them their own land. He also reminded them that he was doing it so that they would be a blessing to the whole world. Genesis 12:3 – “I will bless those who bless you and curse those who treat you with contempt. All the families on earth will be blessed through you.”

God led his people into the promised land. God led them into a land that was already filled with other people. He told them often not to be like these evil people. He told them not to follow the ways and customs of these evil people. From that time until the birth of Jesus, a war raged. The people of God never took over the whole land. There were always other people living there alongside them. They fell into temptation and lost their way again and again.

As we look at the story of Jesus, we see it as following the previous pattern. Jesus is like Moses, coming to a people enslaved and ignorant. He came to lead those who believe out of the old kingdom and into a new kingdom. Jesus arrived saying that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Up to the time of Jesus, Israel had never fulfilled her vocation, and the Gospels begin, in part, with a view of Israel under Gentile (that is Roman) occupation.

John says in 1 John 5:19 – “We know that we are children of God and that the world around us is under the control of the evil one.”

This reminds me of how the promised land was when the Hebrews entered. It makes me ask this question. As disciples of Jesus, where are we on the parallel timeline with the Hebrews. Are we in the time of crossing the desert, or are we in the time of conquering the promised land.

I think this matters. It is traditional for many people to say we are in the desert period. When we cross over the Jordan we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a land without any sin.

What if we have already crossed over, and we are in the time of claiming the land for God. It’s full of sin, just as John says, and the power of God is working through the disciples of Jesus to exert control and establish God’s rule.

Is the Bible telling the story of how God gets people out of the world? Are we part of God’s effort to get us off the earth (out of the land) and into heaven?

It looks more like we are part of a story of how God restores his rule over the earth. It looks as though we are the people God has called to be his image on earth. What this ought to mean is that it matters very much how we live our lives. It matters to God how we treat the world around us. We should care for the environment. We should care about climate change. We should protect animals, keep the seas clean, stop pollution and do all the other things that are part of seeking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The battle is not over. We are living in the promised land already, but it hasn’t been conquered. We live alongside other people, and we should not be like them. We urge them to be like us, to be God’s new people. We pray the Lord’s prayer, your kingdom come. We have to live that prayer, and let go of all other worldly kingdoms. Jesus told Pilate that his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but he also said several times his kingdom was here on the earth.

The story has not finished. It’s a great movement across all of human history, and it will end one day with the return of Jesus and his rule on earth. That’s the story we are living today. We are the people who are living under his rule already. We are part of God’s force driving sin out of this world. You have a great role to play in God’s story.

“But we are looking forward to the new heavens and new earth he has promised, a world filled with God’s righteousness.” (2 Peter 3:13)

Amen 아멘

Posted in Sermon - English | Tagged , , , | Leave a comment

오직 하나의 확실한 기초

누가복음 6:37-49

최근 러시아 부총리 드미트리 로고친은 지난 11월, 450만달러를 들여 발사한 인공위성이 실패한 이유를 발포했습니다.

그 로켓은 우주로 가지못하고 바다에 폐기처분 되었습니다. 기상 인공위성과 러시아, 노르웨이, 스웨덴, 미국, 일본, 캐나다 그리고 독일의 18개의 작은 인공위성들과 함께 말이죠.

그 로켓은 실제로 완벽하게 작동했습니다. 발사에도 문제가 전혀 없었고요. 그 로켓은 중국의 극동 경계지역 아무르에 있는 새 보스토치니 우주선 기지에서 발사되었습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 로켓은 원래6500킬로미터 떨어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선 기지에서 이륙을 하게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실수였지만 결과는 매우 참담했지요.

이탈리아에서 1173년 8월 14일에 하얀대리석 종탑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2층이 건설되고 5년이 지났을 때 그 탑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건축한 사람들이 기초를 충분히 견고하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쪽 편이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주 긴시간동안 중지하였다가 다시 건축을 재개하였습니다. 오늘날 그 탑은 아주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고 피사를 유명하게 만들었지요.

물질 세계에서의 원리는 영적인 세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의 출발점을 바른 곳에 두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아무리 우리가 잘 살지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결말이 좋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인생에서 좋은 기초를 두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기울고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원칙은 성경을 읽는 분이라면 별로 새롭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것을 말씀드리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단지 여러분들에게 기초를 바르게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만약 잘못되어 있다면 바르게 고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한번 상기시켜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기초가 튼튼한 반석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비유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을 건설합니다. 피사의 사탑이 만약 견고한 반석위에 세워졌다면 오늘날 기울지 않았을 것입니다. 러시아 로켓 또한 바른 장소에서 발사가 되었다면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이해해 가는 기초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배우자와 관계를 만들어감에 있어서 기초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만들어 가고 있는 다른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을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요? 성경을 이해하는 우리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잘못된 기초를 가지고 있다면 성경 전체를 암송할지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10대때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언제 기초가 세워졌는지, 제가 읽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네요.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궁금해지고 의문점들이 생겼죠. 저는 의문점이 생길때마다 친구에게 묻곤 했습니다. 한번은 귀신(영)에 대해서 길고 활발한 토의를 벌였습니다. 몇주간 지속되었던거 같네요. 우리가 귀신(영)을 본 적이 있을까? 우리가 아는 사람중에 귀신(영)을 본 사람이 있을까? 귀신(영)은 실제로 존재할까? 성령은 어떤 영을 말하는 것일까? 등등에 대해서 말이죠.

올바른 방향이 없어서 우리는 곧 헤매이곤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취하려고했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저런 물음에 대한 답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성경에게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대해 평생을 공부한 학자들은 누가 성경을 썼는지를 연구하곤 합니다. 그것들이 왜 쓰여졌고, 무엇에 영향을 받아서 쓰여졌는지를 연구하죠. 그들은 당시의 문화를 살펴봅니다. 도움이 될수도 있겠죠.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과거와 미래에 대해 말해준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창조부터 세상의 끝날까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의 목적을 역사책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영적인 책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우리의 기초가 있는 곳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말씀의 기록입니다.

신약성경은 성경 이해의 기초, 삶의 기초에 대해 이야기하는 몇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1절, 12절입니다. – “이미 놓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 이 기초 위에 건물을 세울 때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우는 사람도 있고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바로 기초입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우리는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배우자와의 관계 혹은 더 좋은 집이든 무엇을 짓든간에 예수님이 시작점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금, 은, 보석, 나무, 건초, 짚 등 어떤 재료로 지을 수 있지만, 반드시 기초로는 예수님을 삼으셔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29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집이며 그리스도 예수님은 친히 그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지어진 집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닙니다. 특별한 혈통과 조상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인 믿음의 사람들에게 지어진 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야 비로소 기초가 견고하게 세워지고 주춧돌이신 예수님을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의 첫번째 주춧돌 입니다. 우리는 그 이외의 돌입니다.

예수님은 모든것의 기초가 되십니다. 그는 삶과 거룩의 기초이십니다. 그는 또한 성경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방향없이 성경을 이해하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10대일 때 성령이 무엇인지 예수님께 물어보아야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은 성령님께서 혼란을 피하도록도움을 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해하기 위한 기초로써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때 우리는 혼자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을 멈출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관계를 살펴볼 때 서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성경은 여러가지 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포의 아우구스틴과 타르수스의 폴은 모두 그들의 가르침에서 이 방법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많은 저자와 버젼들이 있다고 말하는 학자들과 논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 모두가, 우리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생길때에도 우리는 예수님안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이 너무 악해서 항상 화나 계신것은 아닐까하고 의문이 들 때, 예수님을 봅시다. 예수님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항상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그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을 자유가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자체이시므로, 그의 안에서 반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행동하신 것처럼, 이 악한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사신것을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모욕하고 배반할때 번개같은 것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강함속에서도 관대함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치료와 적에 대해서도 자비를 베푸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에 살아계시다는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탄생 이전에 행하신 모든일들을 이런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모든것의 진정한 기초이신 예수님은 튼튼한 반석을 예를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누가복은 6장 4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과 같다.”

이런사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튼튼한 반석위에 세워진 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진짜 기초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가 진짜라는 것을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시지 마십시오.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단순히 받아들이지만 마십시오. 그가 천국, 즉 그가 여전히 살아계신곳으로 가셨다는 것을 그렇게 믿지 마십시오. 그곳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불을 내려주시고 성령의 불로 태우시고 정결케하시며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모든것들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 핵심은, 그 기초는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이며,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확실한 기초이며, 그 관계가 여러분에 삶의 모든것에 올바른 방향을 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 4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삶이 무너지며 폐허가 될 것이다. ”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예수님께 순종하십시오.

Amen 아멘

Posted in Sermon - Korean | Tagged , | Leave a comment

The only sure foundation

Luke 6:37–49

Russian deputy prime minister Dmitry Rogozin recently revealed the reason for Russia’s failure last November to launch a $45 million weather satellite into orbit.

The rocket dumped with weather satellite and 18 smaller satellites belonging to Russia, Norway, Sweden, the US, Japan, Canada and Germany in the ocean instead of in space.

The rocket actually functioned perfectly. There was nothing wrong with the launch, which went flawlessly. The rocket took off from the new Vostochny spaceport in Amur near the border with China in the far east.

What went wrong was this. The rocket thought it was taking off from Baikonur spaceport in Kazakhstan, which is 6,500 kilometres away. Just a small mistake, but the consequences were huge.

Construction of a white marble campanile began on August 14, 1173, in Italy. By the time the second story was completed five years later the tower had started to lean. The problem was that the builders had not made the foundations strong enough. One side started to sink. Even so, after a long pause they continued to build. Today the tower is a great tourist attraction and has made Pisa famous.

What is true for the physical world is true for the spiritual world. If we don’t get our starting place in life right, our life will go wrong and however well we live it will end badly. If we don’t have a good foundation for life, our life will tilt and fall.

This principle is not news to anyone who has read the Bible. I realise I’m telling you something you already know. I want to remind you just how important it is to get your foundations right, and to correct them if they are wrong.

Jesus says our foundation must be solid rock. That is an illustration. We are building spiritual things. The tower of Pisa would not be leaning today if it had been built on rock. The Russian rocket would not have been lost if it had been launched on the foundation of truth.

What is the foundation upon which you are building your understanding of the Bible? What is the foundation upon which you are building your relationship with your spouse?

What other things are you building, and what is the foundation of those things?

Let’s take for example how we understand the Bible. Where do we start? What is our foundation for understanding the Bible?

If you have the wrong foundation you can memorise the entire Bible and still go wrong.

I started to read the Bible as a teenager. I don’t recall being given a foundation for my reading or shown how to understand what I was reading. I kept running into roadblocks. When I hit a roadblock I would stop. I might ask my friends. One time we had a long and animated discussion about ghosts. It seemed to last for weeks. Had we seen a ghost? Had anyone we knew seen a ghost? Did ghosts really exist? What kind of ghost was the holy ghost? And so on!

Without correct directions, we quickly got lost. The Bible has a different direction than the one we were trying to take. It does not exist to answer questions such this. So where can we find the correct direction?

I think that one answer is to ask the Bible. Scholars who spend their lives studying the Holy Book ask questions such as who wrote a passage. They ask why it was written, and what influenced the way it was written. They look at the culture. That can be helpful.

We believe the Bible can tell us things about the past and future. It is the story of God from creation to the end of time. We do not believe the purpose of the Bible is as a history book. The Bible is a spiritual book. It is God’s word. There we have part of our foundation. The Bible is the word of God spoken to the human race.

The New Testament has a couple of ways of talking about the foundation of understanding, the foundation of living.

It is written in 1 Corinthians 3:11, 12 –
“For no one can lay any foundation other than the one we already have—Jesus Christ. Anyone who builds on that foundation may use a variety of materials—gold, silver, jewels, wood, hay, or straw.”

Jesus, the Messiah, is the foundation. Without Jesus you don’t have the foundation on which to build an understanding of the Bible. Whatever you build, whether it is a better relationship with your spouse or a better house, Jesus is the starting point. You can build with gold, silver, jewels, wood, hay, or straw, but you have to have Jesus as the foundation.

It is written in Ephesians 2:20 –
“Together, we are his house, built on the foundation of the apostles and the prophets. And the cornerstone is Christ Jesus himself.”

In these verses we are told that God lives in a house that is built out of people. Not just any people. Not people with special blood or ancestry. It is built out of those who are members of God’s family. In this view the foundation is made strong and straight by the corner stone, which is Jesus himself. Jesus is the first stone of the house of God. We are the other stones.

Jesus is the foundation of everything. He is the foundation of life and holiness. He is also the foundation for understanding the Bible. We cannot hope to understand the Bible without the directions given by Jesus. For example, my teenage self should have come to Jesus to ask what is meant by Holy Ghost. These days our translations say Holy Spirit to help avoid the confusion, but we still need Jesus as the foundation to understand.

When we do this, we stop struggling to understand in isolation.

We begin to learn that when we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Jesus and the Holy Spirit it all looks different. Suddenly the Bible is not talking about various ghosts, but about the work of salvation. This is called a Christocentric reading of the Bible.

Augustine of Hippo and Paul of Tarsus both emphasised this way of thinking in their teaching.

We do not dispute with scholars who say there are various authors and voices in the Bible, but we say they all were inspired by God to tell us about his story. When we find in the creation story some questions, we find in Jesus the answers.

When we wonder if God is angry all the time because man is so evil, we look at Jesus. Looking at Jesus we quickly see that God is in love all the time. We see from Jesus that God is love. Love is his nature. God has no freedom to not love, because he is love and in him is no contradiction.

What that looks like in action, being lived out in this evil world, is what we see in Jesus. No thunderbolts are thrown when people insult him or betray him. Gentleness in strength is what we see. And healing and mercy for enemies. Jesus is the example of God living in this world. All that God did in this world before the birth of Jesus is to be understood this way.

Jesus used the rocky foundation as an illustration for the real foundation of everything. He said in Luke 6:47, “I will show you what it’s like when someone comes to me, listens to my teaching, and then follows it.”

What it looks like, Jesus said, is a solid foundation for a house. The real foundation is Jesus. Not just admitting he is real. Not just accepting that he was crucified, buried and resurrected. Not even believing he went up to heaven, where he is still alive. From up there he sent us fire – the Holy Spirit that burns and purifies and empowers his followers. It’s important to know that.

All of these things are important. They are not most important. Jesus says there is more. The essence, the key, the foundation is to come to him, listen to him and obey him. That relationship with Jesus is the sure foundation, and that relationship gives you the correct direction for everything else in life.

Anything less than this, says Jesus in verse 49, and your life “will collapse into a heap of ruins.”

Come to Jesus. Listen to Jesus. Obey Jesus.

Amen 아멘

Posted in Sermon - English | Tagged , , | Leave a comment

Put feelings in their place

Galatians 5:16–26

How are you feeling this morning? Sad? Hungry? Tired? Useless? Cold? Scared? Rejected? Are any of you feeling afraid? If you are wise you are afraid, according to the Bible.

“Fear of the Lord is the foundation of true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discipline.”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첫걸음이건만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교훈을 멸시하고 있다.” (Proverbs 1:7)

Fear is a feeling. The Bible suggests that there’s nothing wrong with having feelings. Feelings can be helpful if they make us wise. You know what a feeling is, don’t you. But it’s actually very hard to describe or to define.

During World War Two, some British soldiers were marching through the Egyptian desert when they began to feel extremely thirsty. Their guide was taking them to the nearest water. Suddenly they saw a lake and changed direction. They all died. It was a mirage, one of them wrote in his journal before dying. It seems that they despised discipline.

Turn with me to Genesis 3:6 and look at why Eve ate the forbidden fruit. It was because of her feelings. “She saw that the tree was beautiful and its fruit looked delicious, and she wanted the wisdom it would give her.” Beauty lives in the realm of feelings, as does taste. She was convinced and deceived by her feelings.

What then, are we to have no feelings? We have more feelings than we have names for them, and we have hundreds and hundreds of names for feelings. Feelings are a particular blessing and at the same time an exceptional problem.

The challenge for us is to understand the place of feelings in our walk with Jesus. And to give our feelings over to his control so that he can change them. The renewed person in Jesus will have not only renewed ideas, but renewed feelings too.

There is a battle for our feelings. Galatians 5:17 explains it like this. “The sinful nature wants to do evil, which is just the opposite of what the Spirit wants. And the Spirit gives us desires that are the opposite of what the sinful nature desires. These two forces are constantly fighting each other, so you are not free to carry out your good intentions.”

Our feelings touch us and move us. They can attract, but they can also repel. It is common to hear people say, “If it feels good, do it.” It is how many people live, seeking good feelings. And soon they are addicted to feelings. That’s not how God intended us to live.

If you have thought about it you may have realised that it’s impossible to control your feelings. You cannot wish them away, and you cannot manufacture them at will. For this reason many people give in to their feelings, and you will be able to think of many examples.

Those people who remain under the influence of their feelings often believe it is right to obey their feelings. And to deny them is wrong, they believe. In these cases, who is god? The person becomes a slave to their feelings.

As children of God, we have made Jesus the Lord of our lives. We do not have to obey our feelings. We struggle, especially with extreme feelings of despair or pain or pleasure, but we don’t give them control.

Our aim is not to avoid sin. What do I mean by that? Shouldn’t we all avoid sin? Look at Romans 6:12 and see what it says there.

“Do not let sin control the way you live; do not give in to sinful desires.”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악한 욕망에 따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It is the desires we are to avoid. It is the temptations and inclinations toward sin we fight. We never should let it get as far as the acts of sin. Jesus clearly stated in Matthew 5 that it is the desire that is wrong. Jesus said that “if you are even angry with someone, you are subject to judgment!”

An important part of growing as a Christian is to develop a desire to not have certain feelings. For example, to encourage the feeling of distaste for the feeling of being angry with someone.

We aim to desire new desires. We feel a longing for different feelings. This is the first step, but it isn’t the last. A battle awaits. It requires copious amounts of God’s grace. We reject our sinful self and instead we desire to be holy, fully remade in God’s image. We admit that we cannot do this ourselves, We admit we need to give up all our feelings and have God change us.

Jesus told a story about Levites who refused to help a robbery victim and a Samaritan who did. Jesus told his disciples to be like the Samaritan. Luke 10:33 – “Then a despised Samaritan came along, and when he saw the man, he felt compassion for him.”

What we are told to emulate is the feeling of compassion that the Samaritan had. We are thus being told to reject the feelings of the others. They had feelings too, but wrong ones. They felt disgust, or disdain. They had selfish feelings and hard hearts. We are shown we should have sacrificial feelings and soft hearts despite the pain and difficulty it will surely bring.

So often we have destructive feelings. James 3:16 says, “For wherever there is jealousy and selfish ambition, there you will find disorder and evil of every kind.”

God’s purpose is not to remove the effect, which is disharmony. God’s aim is to remove the cause, which is wrong feelings. This is not done by denying the feelings. Of course, we should resist them and not act on them. We must recognise them for what they are.

Leprosy is a terrible disease that leaves it’s victims horribly disfigured. It wasn’t realised until recently that a major reason for the disfigurement was that victims lost feeling. They didn’t feel when they hurt their finger or toe, for example, and so they damaged themselves.

It is good to remind ourselves also that feelings are not conditions. Peace is a state or condition. The feeling is called peacefulness. When we seek peace, we must be careful not to seek peacefulness instead. That way is the path of seeking feelings. For example, a common problem is people seeking the feeling of love rather than seeking love itself.

You may have noticed that it is impossible to reason with some people. Logic and truth do not move them, they are only persuaded by feelings. These people are called blind in the Bible.

“Those who belong to Christ Jesus have nailed the passions and desires of their sinful nature to his cross and crucified them there.” (Galatians 5:24)

There is so much more to say, but let me conclude. Your feelings were created to be servants, not masters. Feelings are like angels, given to us by God to serve us. Eve was mastered by an angel and by feelings, and this was a reversal of the created order. It was sin. It was evil. It destroyed her relationship with God.

When I see a beautiful sunset it stirs feelings in me. I can then share those feelings with God. That is how God made us to live. Then I hear God say to me, “My son, I created that for you. Look at it and feel my love for you. Think upon it with wonder, and know that I made you to appreciate a glorious sunset.”

When you start to feel unpleasant feelings as someone pounds nails into your wrists and pins you to a cross, bring them to God. He will help you with those feelings. He will cause you to think how the person hurting you is a slave to sin and doesn’t know what they are doing.

Ideas have the power to direct our feelings. Our feelings should not direct our ideas. Ideas take hold of feelings and direct them into the appropriate action. Onl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t work in us can restore the proper order. When you feel guilty, bring that feeling to God. Don’t let it control you. God will whisper to you that he is greater than your feelings of guilt. “Even if we feel guilty, God is greater than our feelings, and he knows everything.” (1 John 3:20)

As disciples we may find we are asked to do things we don’t feel like doing. We bring our feelings of dislike to God, and he takes control. You may call it self-control, but actually we are talking about having God-control in your life. It’s discipline. Don’t despise it.

God promises that when the Holy Spirit is in charge, you will have feelings based on love, joy, peace, etc. as listed in Galatians 5:23.

Holy Spirit, come and take control.

Amen 아멘

Posted in Sermon - English | Tagged | Leave a comment

감정을 제자리에 두세요

Galatians 5:16–26

오늘 아침 기분이 어떠신가요? 슬픈가요? 배고픈가요? 피곤한가요? 쓸모없다는 느낌? 추운가요? 무서운가요? 거절당했나요? 두려운 감정이 혹시 있으신가요? 성경에 따르면, 여러분이 두려워한다면 현명한 것입니다.

“Fear of the Lord is the foundation of true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discipline.”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첫걸음이건만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교훈을 멸시하고 있다.” (Proverbs 1:7)

두려움은 느낌입니다. 성경은 감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감정은 우리를 현명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감정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실제로 감정을 설명하거나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2차 세계 대전중 일부 영국 군인들이 이집트 사막을 행군하고 있을 때 그들은 갑자기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군대의 선두가 그들을 가장 가까운 물가로 데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갑자기 호수를 보았고,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것은 신기루였으며 그들 중 한 명은 죽기 전에 일지를 썼습니다. 그들은 훈련을 경멸한 것으로 보입니다.

창세기 3:6절로 돌아가서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 이유를 살펴봅시다. 그것은 그녀의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의 과일을 보니 먹음직스럽고 보기에 아름다우며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였다.” 아름다움은 맛과 마찬가지로 감정의 영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감정을 확신했으며, 그 감정에 속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감정이 없어야 하나요? 우리는 우리가 감정을 이름지어 부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감정을 갖고 있고, 감정들을 수백개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감정은 특별한 축복인 동시에 예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우리의 삶 가운데 감정의 위치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감정들을 통제함으로 바꿀 수 있도록 감정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된 사람은 새로운 생각을 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The sinful nature wants to do evil, which is just the opposite of what the Spirit wants. And the Spirit gives us desires that are the opposite of what the sinful nature desires. These two forces are constantly fighting each other, so you are not free to carry out your good intentions.”

우리 감정은 전투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7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육체의 욕망과 성령님이 바라시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서로 대적하여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합니다.”

우리 감정은 우리를 감동시키고 움직입니다. 그들은 유인하기도 하고 내쫓기도 합니다. 사람들이“기분이 좋으면 해라.” 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적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찾고 살고 있는 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곧 그들은 감정에 중독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살도록 의도하신 방식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면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감정들을 멀리할 수 없으며, 의지대로 만들어 낼수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에 굴복하며, 여러분은 이와 관련된 많은 예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감정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틀렸다고 믿습니다. 이런 경우에서는 누가 하나님일까요? 그 사람은 자신의 감정의 노예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에 순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특히 절망이나 고통 또는 쾌락에 대한 극단적인 느낌으로 싸우지만, 우리는 그들을 통제하지 않습니다.

우리 목표는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 모두는 죄를 피해야 하지 않나요? 로마서 6:12절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악한 욕망을 따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욕망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죄에 대한 유혹과 이끌림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죄의 행위에까지 미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잘못된 것은 욕망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누군가에게 화를 낸다면, 너희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성장하는데 중요한 한 부분은 특정한 감정을 갖지 않으려는 마음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감정을 싫어하는 마음을 점점 더 많이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감정을 원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감정에 대한 갈망을 느낍니다. 이는 첫 번째 단계이지, 마지막은 아닙니다. 전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죄 많은 자아를 거부하고 대신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완전히 새롭게 거룩하게 되기를 갈망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모든 우리의 감정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해야 함을 인정합니다.

예수님은 강도를 당한 사람을 도와주길 거절한 레위인과 도와준 사마리아인 애기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마리아인처럼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33절 –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 중에 그 길로 지나다가 그를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예수님께 듣고 있는 것은 사마리아인이 가졌던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거부하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들도 감정이 있지만 잘못된 것들입니다. 그들은 혐오했거나 경멸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인 감정과 완악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고통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희생적인 감정과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파괴적인 감정을 갖습니다. 야고보 3:16절은, “시기와 이기적인 욕망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일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결과를 제거하는 부조화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잘못된 감정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감정을 부정함으로써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것에 저항해야 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 감정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문둥병은 환자의 모습을 흉칙하게 만들어 버리는 끔찍한 질병입니다. 최근까지도 그 피해자가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흉칙한 모습을 만들어낸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상처를 입어도 감각이 없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손상시켰습니다.

감정은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평화는 어떤 상태나 조건을 말합니다. 그 느낌은 평화로움이라고 불립니다. 우리가 평화를 찾을 때, 평화로움을 대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 길은 감정을 찾는 길입니다. 예를 들어, 흔히 일어나는 문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사랑 자체를 찾기 보다는 사랑의 느낌을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과는 논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논리와 진리는 그들을 움직이지 않으며, 그들은 다만 감정에 의해서만 설득됩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Those who belong to Christ Jesus have nailed the passions and desires of their sinful nature to his cross and crucified them there.”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Galatians 5:24)

제가 할 이야기는 훨씬 많지만,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여러분의 감정들은 하인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주인이 아닙니다. 감정들이란 천사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섬기도록 주신 것입니다. 하와는 천사와 감정에 의해서 지배되었고, 이것은 창조의 질서를 역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였습니다. 그것은 악이었습니다. 그것은 하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했습니다.

아름다운 일몰을 볼 때면 제 안에선 감정이 일어납니다. 저는 그 감정을 하나님과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살도록 하신 방식입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이 저에게 말씀하신 것을 듣습니다. “나의 아들아, 나는 너를 위해 그것을 창조하였다. 그것을 보고 내 사랑을 느껴보아라. 경이로움으로 그것을 생각하고, 내가 너를 영광스러운 일몰을 감상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도록 하여라.”

어떤 사람이 여러분 손목에 못을 박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처럼 여러분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그들을 하나님 앞에 데려 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감정들로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어떻게 죄의 노예가 되는지, 그리고 그들 스스로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깨닫도록 하실 것입니다.

생각은 우리의 감정을 이끌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이 생각을 유도해서는 안됩니다. 생각은 감정을 잡아서, 그것을 적절한 행동으로 유도합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권능만이 올바른 질서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죄책감을 느낄 때, 그 감정을 하나님께 가져오세요. 그 감정이 당신을 조종하지 못하게 하세요. 하나님은 그가 당신의 죄책감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속삭이실 겁니다. “우리 마음도 우리를 책망할 경우가 있는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더욱 책망하시지 않겠습니까?” (요한일서3:20)

제자로서, 우리는 내키지 않는 일을 하도록 요청받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싫어하는 감정을 하나님께 가져오고, 그는 그것을 통제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스스로 절제하는 것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사실 하나님게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통제하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훈련입니다. 경멸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이 여러분을 다스리실 때, 갈라디이서 5:23절에 열거된 사랑, 기쁨, 평화 등이 바탕이 된, 감정을 가질거라고 약속하십니다.

성령님이여, 오셔서 다스려 주옵소서.

Amen 아멘

Posted in Sermon - Korean | Tagged | Leave a comment

성령 안의 삶

로마서 8:1–17

지금까지 2개월을 넘도록 저의 삶은 보통과는 다르게 지내왔습니다. 아내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이것은 몇가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찬장을 열고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그릇들을 바라봅니다. 거의 모든 그릇에 대해 저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마루바닥은 전과 다르게 닦여집니다. 하지만 가장 크게 보통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식사입니다.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내와는 다른 방식으로 요리를 합니다. 아내는 요리를 잘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제가 감자와 당근을 요리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흙을 씻어낸 후에 얇게 썹니다. 껍질은 절대 벗기지 않습니다. 차가운 소금물에 썬 당근과 감자를 떨어뜨려 넣고 불을 켭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끕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런식으로 요리하는 사람이 또 있는지는 모릅니다. 요리학교에서 가르쳐주는 방식이 아닐겁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일리가 있게 느껴집니다.

일어나는 일이란 이렇습니다. 물이 끓어 넘칠까 염려하지 않으면서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일정시간이 지난 후에 저는 돌아옵니다. 타이밍을 잘 맞췄다면 당근과 감자는 익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불을 다시 켜서 1,2분 후에 요리를 마칩니다. 맛있는 야채를 점심에 먹기 위해 들이는 최소한의 노력과 소동입니다.

여러분은 이 과정에 과학이 들어있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열에너지는 물 안에 저장되어 있다가 가스를 끈 후에도 요리하는 과정을 진행합니다. 열의 근원은 사라져도 환경은 여전히 똑같이 남아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저의 당근과 감자와 같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챤입니다. 빛의 자녀입니다. 악의 불꽃은 꺼졌습니다. 위대하지요.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환경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불꽃이 꺼져버린 후에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죄의 에너지는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보이는지 봅시다. 우리는 다시 태어났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도하지만 우리 삶에 잘못은 계속되어 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따르고 있는데 왜 우리의 삶은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엉망일까요? 모든 것들이 왜 이렇게 엉망일까요?

질문이 시작되었고 의심도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진짜 계신건가? 그냥 꿈이 아닐까? 나는 희망없는 죄인일까?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제자라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그리고 또 그리고…

바울은 이것에 대하여 어떤 말을 했습니다. 사실 할 말이 많습니다. 그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고대에서 가장 긴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뜨거운 물에 쳐박혀서 여전히 익어가는 것에 대한 그의 생각이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첫째로 그 스스로가 몸부림치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는 로마에 있는 그의 독자들에게 그가 얼마나 계속 실패하고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내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육신은 죄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는 로마서 7장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할 의지가 있다. 그러나 할 수가 없다. 선한 일을 하기로 결심했으나 진실로 그것을 하지는 못한다. 나쁜 일을 하지 않으려고 결심했지만 어쨌든 하게 된다. 내 결심들은 어떻든 간에 행동의 결과는 그렇지 않다. 바울은 그의 속 깊은 곳에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으며 매번 그를 더 낫게 만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바울보다 위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울과 같은 분투를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에 놀라워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만 사랑하시거나 우리를 버려 두시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견이 가능한 일들은 꽤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바울이 좋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에 죄는 그에게 실수를 하도록 만듭니다. 그의 일부는 은밀하게 반역을 합니다. 그가 최소한 그것을 예상했을 때 그 반역자들은 책임을 떠 맡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노력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밧줄의 끝에 매달려 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가? 그것은 진짜 질문이 아닌가?

그것은 좋은 질문이었고 바울은 답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답이십니다. 우리 삶의 모순에 대한 해결방법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서 8장에 이르게 됩니다.

죄의 영향력으로 우리가 전혀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른 일을 하면서 끌려갈 때, 우리는 이것들에서 돌아설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는 매일 그것들에게서 돌아설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죄가 아니라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여전히 앉아 있는 것이 뜨거운 물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에게 속한 모든 것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 the power of the life-giving Spirit has freed you from the power of sin that leads to death.” (Romans 8:2)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죄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바울의 말을 볼 수 있습니다. 죄는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 구절은 말합니다. 죄는 여러분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여러분이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작용하는 죄의 힘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순결한 아기와 같은 존재는 없습니다.

선택의 자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을 때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는 우리의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첫번째 사람들의 선택한 결과로 죄가 우리에게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뜨거운 물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다룰 지에 대한 자유만 있습니다. 물의 열은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죄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최종적인 문제가 됩니다. 다른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감자 익히기를 멈추고 싶다면 열 에너지를 제거해야 합니다. 차가운 물을 붓던지 뜨거운 물에서 건져서 차가운 곳에 두어야 합니다.

죄의 힘에 맞서는 힘은 생명의 성령의 힘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성령을 말했을 때, 그는 우리의 정신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육체는 악하고 정신은 선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러분의 정신과 육체간의 싸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정신이란 하나님의 정신=성령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힘은 여러분의 삶 안으로 들어왔고 죄의 힘은 제거되었습니다. 죄는 그러므로 힘이 없습니다.

이 싸움에 대한 우리의 역할을 4절에서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우리가 죄된 본성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는 자유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힘과 하나님의 힘이 우리의 삶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선택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다른 선택이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 아래에서 작동되도록 선택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실은 죄의 힘 아래에 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길로 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로 가고 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삶에 역사하는 죄의 힘을 느끼지 못합니다. 바울은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로 걷고자 노력한다면 우리는 우리 삶에 죄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나요? 여러분이 편안한 상태로 생각하게 될 때, 어떤 종류의 생각들을 하게 되나요. “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님의 일을 생각합니다.”

죄가 우리의 삶에서 힘을 가지는 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분명하게 드러냈지만 우리를 뜨거운 물 안에 익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해결책은 우리의 삶을 성령님이 컨트롤하시도록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생명과 평화로 이끌어 가시도록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죄가 결정의 힘이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반복적으로 매일 이루어지는 의식적인 선택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선택의 결과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You are controlled by the Spirit if you have the Spirit of God living in you. (And remember that those who do not have the Spirit of Christ living in them do not belong to him at all.)”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지배를 받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죄의 힘이 여러분에게 하도록 만드는 일들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면 그는 도망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죄된 본성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죽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죄된 본성의 결과로 죽음 앞에 가게 된 여러분이라도 성령님의 힘을 통한다면 결국 살게 될 것입니다. 죄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위대한 힘이 그것을 대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의 힘 아래에 있습니다.

“For all who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are children of God.” (Romans 8:14)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2018년에 여러분의 삶을 누가 이끌기를 원하십니까? 성령님입니다. 맞지요? 지금 바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죄의 힘을 거부합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누립니다. 우리는 우리가 제어하려고 했을 때는 죄의 노예였습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우리를 맡겨드리면 우리는 결국 자유가 됩니다.

Amen 아멘

Posted in Sermon - Korean | Tagged , , | Leave a comment